25/03/23 오후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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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에서 종으로
종에서 종으로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서론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정말 진실로 잘 믿는 성도여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복음을 잘 이해하고 살아야 합니다. 잘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복음이 죄를 지어도 괜찮겠구나 하고 오해를 일으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다 용서 받았으니 우리가 잘못을 하고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실 거야 라는 오해와 회개는 하지만 건성회개를 하지 않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로마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말씀을 1장17절 말씀 로마서 1:17 “17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로마서에서는 믿음을 강조합니다. 믿음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성경 구절을 많이 오해하고는 합니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죄짓고도 살리라,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싸우고도 살리라’ 등 이렇게 많은 오해를 하면서 성경을 바라본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없이 듣고 오해없이 바로보고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본론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이 말씀은 종에서 종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죄의 종 노릇하던 우리가 하나님의 그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로 거룩한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합니다. 아니 이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의의 종이다. 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15절의 말씀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법,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그 경험한 은혜를 나타내고 실천하며 살아야하는데 중요한 것은 그 행위가 바리새인과 서기관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등에지고 죄를 지어가면서 떳떳하게 살아가면 안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등에 업고 죄를 짓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흔히 말해서 이단들, 왕년에 교회를 좀 다녔다던 사람들까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하고 혹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자신들의 생활에 맞춰서 적용시키며 그것으로 인해서 죄를 짓지 않아라고 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이 세상입니다. 사도바울은 그런 세상에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같은 방법으로 죄를 범하여서는 안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16절에서 설명합니다.
‘죄에 속한 사람은 죄의 종이되고, 하나님의 의에 속한 사람은 의의 종이 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사도개인 바리새인, 서기관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등에업고 죄의 종의 모습으로 살아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을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며, 자신들의 행위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을 본 받아야한다고 이야기 할 만큼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 이었던 것이죠.
이 16절에 ‘종으로 내준다’의 말씀에서 이 ‘내준다’의 단어는 헬라어로(파리스테미, παρίστημι)라고합니다. 희생 제사에 많이 사용되는 용어로서 ‘(제물로) 드리다, 바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나의 몸과 모든 영혼을 그 속한 것에 모두 바친다라는 의미로써 내가 맞겨진 곳에 모든 것을 바쳐야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너무나도 쉬운 것이지요 어디에 속하는지에 따라서 그 속한 곳의 사람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 속한 것에 순종하고 그 속한것에 살아내면 그 속한것의 문화, 그 속한 곳의 습성, 나의 모든 삶까지도 그 속에서 살아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16절 후반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른다’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듯이 롬6:23 죄의 종,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지난 주 부터 성품-순종에 대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순종의 인물들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앞으로의 오후 예배 시간에 배울 순종의 인물을 포함해서 자기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아브라함, 자기 자신은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대로 행한 모세 등 성경에서는 많은 사람들을 순종의 인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순종을 너무나도 귀히 여기십니다. 삼상15:22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요한복음 14:15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 에베소서 6:1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등 성경에서는 여러 순종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것보다도 순종을 너무나도 귀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다시 돌아와서 본문 6장 16절에서는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른다고 말하듯이 하나님께 속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의를 실천하고 이루어 낸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죄에 속한 죄의 종이아닌 하나님께 속한 순종의 종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계속해서 본문에서는 우리에게 의의종이 되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이전에는 죄에 종이었을 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의의 종이 되었다면 이제는 거룩함을 닮아가는 의의 종이 되어야한다고 말이죠
17절, 18절 말씀에서도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사도바울은 계속해서 의의종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이 십자가의 대속하심으로 우리가 죄를 씻음 받고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너희 모두 이제는 정말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아가는, 하나님이 주신 그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받아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고 그 거룩함을 닮아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의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거룩함을 닮아가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저는 신대원을 다닐 때 이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 기숙사에 지내면서 1년에 7번 정도는 일어나지 못해서 새벽기도에 참석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 새벽에 일어나서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것 너무나도 힘들지만 복된 것입니다. 7번을 빠진 날들은 세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닮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힘이 들었습니다. 새벽에 나와서 예배를 드릴 때는 정말 경건해지고 막혀있던 이 기도들이 술술 나오고, 많은 어려움들이 술술 헤쳐지는 것 같았습니다.
새벽에 새벽공기를 마시면서 기도하는 것 그 분위기며, 그 찬양들이며, 그 말씀들 까지도 정말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가려 노력하는 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빠진날과는 너무나도 차이를 보이는 듯이요
여러분 거룩함이 어디서부터 나온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하나님의 본성이시겠지만 그 본성을 닮아가려면 그 본성을 알아야하는 것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하나님이 보시기에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아 저 사람은 정말로 누가봐도 깨끗한 사람이야라고 느껴지는 것이 거룩함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매 주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하고 하루하루를 예수 그리스도로 살아가려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19절 말씀에서 바울은 “사람의 예대로 말한다”고 합니다. 이 것을 직역하면 “인간적인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말한 것이지요 이 ‘육신’이라는 것은 헬라어로 ‘샤륵스’라고 하는데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인간의 상태 즉 지금 우리가 지니고 있는 이 육신의 모습을 일컷습니다. 바울은 19절 말씀을 통해서 로마 성도들의 이전의 상태, 죄 가운데 있을 때의 모습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있습니다.
이방인들이었던 로마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자기 몸의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었다. 로마서 1:24–32 에 언급한 바와 같은 육체적 죄악들과 여러 가지 부도덕한 행동들을 행하였고, 이것은 하나님의 법에서는 어긋나는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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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러나 사도바울은 19절 하반절에서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고 합니다. 동일한 지체를 이제는 의에게 종으로 드리라는 말인 것이지요. 의를 행하고 의를 섬기는 도구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드리라’(파라스테사테)로 어떤 구체적인 경우에 ‘드리라’는 의미이다. 즉,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서 의의 종이 되었지만, 이제 그런 신분의 사람이 되었으니 그 신분에 맞게 날마다 구체적인 삶에서 자신을 의에게 종으로 드리라는 의미로써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로마 사람들처럼, 이 세상의 부정과 부패를 저버리고 하나님의 참된 의를 나타내는 성도로써의 삶을 살아 나타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의 끝은 22절 말씀에서는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의 열매를 맺고 이제는 영생을 얻어 하나님이계신 저 천국을 바라보고 소망하는 우리가 순종의 믿음을 지니고 살아가야 할 줄 소망합니다.
제가 신대원다니면서 새벽채플을 하고 기숙사를 가는데 허기가 져서 학교 편의점을 들렀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학부 찬양팀 한 명이 본인의 친구 자매 한 명을 전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도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직까지 생생한지 이 새벽에 그 친구를 위해서 정말 열심히 기도하고 만난것입니다. 그런데 이야기 하는데 정말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너를 너무 사랑하신대 너가 그런 하나님을 믿었으면 좋겠데 하면서 눈물을리면서 이야기하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친구도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서로 껴안고 우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전도하는 친구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정말 하나님을 믿어야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 되어야 정말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을 경험해야 천국에 가는 것을 알고 전했던 것이지요 하루만에 기도하고 이루어 낸 것이 아니라 몇날 몇일을 기도하고 만나서 전도하고 서로 부등껴 울고 하는 이 모든 것이 기도할 때 주시는 그 마음을 그저 두고 마는 것이 아니라 실천할 때 순종할 때 비로서 이 순종의 열매를 맺는 것이아니겠습니까? 이 전하는 친구의 평소 행실이 좋지 않았다면 이렇게 전했을 때 듣는이도 눈물을 흘릴만큼 그런 감동이 있었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행동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거룩함을 본받고 닮아가야한다는 것입니다.
결론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살아내어서 이제는 죄에 속하여 죄의 종이아닌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의 의의 종, 거룩함의 열매를 맺는 결국에는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