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주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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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3:14-23

1. 닥쳐온 파국의 예고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13장에서 하신 예언은 당시 제자들에게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너희가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막 13:14). 이 예언적 경고는 서기 70년, 로마 제국의 티투스 장군이 이끄는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성전을 파괴한 역사적 사건으로 정확히 성취되었습니다.
여러분, 잠시 그 상황을 상상해 보십시오. 유대인들에게 성전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곳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가 거하는 곳이었습니다. 민족의 정체성이었습니다. 희망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성전에 로마의 군대가 들어와 이방 신들의 우상을 세우고, 성전을 불태우고,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게 무너뜨렸습니다. 어떤 유대인에게도 이것은 상상할 수 없는 파국이었습니다. 단순히 전쟁으로 초토화 되리라는 말 이상의 그러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끔찍한 예언과 함께 "너희는 삼가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왜 '삼가라'는 말씀을 반복하셨을까요? “삼가라”는 말씀은 똑똑히 정신차리고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이 무너지면, 사람들은 두 가지 치명적인 함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절망과 낙담에 빠져 신앙을 포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혼란 속에서 거짓 메시아, 거짓 구원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막 13:21-22)
이 경고는 단지 2천 년 전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너희는 삼가라'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2. 성전 중심에 이미 자리 잡은 현대의 우상들

오늘의 '멸망의 가증한 것'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 침략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영혼의 지성소,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이미 자리잡고 있는 보이지 않는 우상들입니다. 성경은 충격적인 진단을 내립니다. "너희 몸은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9). 그런데 이 성전의 제단, 가장 거룩해야 할 곳에 무엇이 자리잡고 있습니까?
여러분, 내면의 제단을 한번 들여다보십시오. 그곳에 하나님이 계십니까, 아니면 '안전', ‘풍요’, ‘과시’라는 이름의 우상이 앉아 있습니까? 불확실한 시대에 우리는 '안전'과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보다 은행 잔고, 보험 증서, 부동산 명의를 더 의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마 6:34)는 주님의 명령과는 달리, 우리는 미래의 불안을 물질적 안전장치로 해소하려 합니다.
더 깊이 들여다보십시오. '성취감'이라는 우상도 보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의 정체성보다 사회적 업적과 인정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고 있습니다. 남들의 부러움을 사려는 여러 모습을 보면, 이것들은 주는 새로운 형태의 구원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는 마음에 사로잡힐 때가 많습니다. 삶이 불안할수록 모든 걸 계획하고 관리하며, 내 뜻대로 흘러가기를 원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삶을 꽉 붙들고 놓지 않으려는 태도가, 결국 하나님께 “주님,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라고 기도하는 대신, “하나님, 내 뜻대로 이루어지게 해 주십시오”라고 요구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는 않습니까?
주일에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하지만, 일상에서는 하나님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고 붙잡으려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것이 성공이든, 인정이든, 관계든, 건강이든, 혹은 자녀든 간에, 하나님 대신 다른 무언가를 붙잡으려 할 때마다, 우리 안에 보이지 않는 우상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레미야 선지자가 말씀한 두 가지 잘못, 곧 “생명의 물이신 하나님을 떠난 것과, 스스로 물을 담지 못하는 터진 웅덩이를 파고 있는 것”(렘 2:13)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우상들이 단순히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의사결정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직업을 선택할 때, 배우자를 고를 때, 자녀를 양육할 때, 여가를 즐길 때, 은퇴를 계획할 때... 이 모든 결정의 기준점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가 아니라 "내게 무엇이 가장 이로운가?"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우상들은 극도로 교묘합니다. 그것들은 종종 '지혜'나 '책임'이나 '성공'이나 심지어 '거룩'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됩니다. 마치 에덴동산에서 뱀이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고 속였던 것처럼, 오늘날의 우상들도 "이것은 죄가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다"라고 속삭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전의 이스라엘 백성보다 더 교묘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같은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붙잡고 살아갈 때, 우리 삶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가진 것이 많아도 마음은 허전하고, 늘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지만 외롭고, 분명 이루고 얻었는데도 어딘가 허무합니다. 하루하루가 막연히 불안하고 만족스럽지 않은 마음으로 채워집니다. 이것은 단순히 심리적 문제만이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우리 삶의 가장 중심에 계셔야 할 하나님이 밀려나고, 그 자리에 다른 것들이 들어와 앉아 버렸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는”(마 24:15) 그 시대를 이미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할 우리 마음의 중심, 그 가장 귀한 자리를 다른 것들이 빼앗아버렸습니다. 더 슬픈 건, 우리가 이것을 전혀 문제로 느끼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며 이것을 ‘복 받은 삶’이라 여기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3. 삼가라 - 깨어 있으라

그렇다면 우리는 이 위기의 시대에 어떻게 삼가야 합니까?
첫째, 분별해야합니다. "너희가 전쟁과 전쟁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막 13:7). 세상의 혼란과 소음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해야 합니다. 모든 재난과 사건이 종말의 신호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무엇이 영원하고, 무엇이 한시적인지 말입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분별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단순히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것을 넘어, 영원한 것과 일시적인 것, 본질적인 것과 부차적인 것,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욕망을 구별하는 영적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잠기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기도의 생활을 통해서 우리는 이 혼란의 시대에 분별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선한 일에는 지혜롭고 악한 일에는 순전하기를 원하노라"(롬 16:19)
둘째, 대비해야합니다.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며"(막 13:14,16). 대비한다는 것은 단지 물질적인 준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영적 대비를 의미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위기의 순간에 견딜 만큼 단단합니까? 박해가 오고, 조롱이 와도 여러분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을 만큼 견고합니까?
안타깝게도 우리 시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세상의 풍요 속에서 영적 근육은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윤택한 환경 속에서 우리의 믿음은 도전받지 않고, 시험받지 않으며, 단련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작은 어려움, 작은 유혹에도 쉽게 넘어지고 맙니다. 여러분, 이제 믿음의 근육을 키울 때입니다.
또한 우리는 공동체적 준비가 필요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4-25). 영적 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혼자서 싸울 수 없습니다. 함께 모여 서로를 격려하고, 서로를 책망하며, 서로를 세워주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셋째, 기도하라.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막 13:18). 예수님은 어려운 시기가 오더라도 기도의 능력을 믿으라고 가르치십니다. 기도는 상황을 바꿀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섭리에 참여하는 특권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얼마나 기도하고 계십니까? 5분? 10분? 여러분의 기도는 위기의 때를 대비할 만큼 깊고 강합니까? 진정한 기도는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뜻을 하나님께 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려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이 위기의 때를 준비하는 주님의 모범입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간절히, 깊이,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눅 18:1)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4. 종말의 징조와 그리스도인의 자세

예수님은 종말의 징조로 여러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거짓 그리스도의 출현, 전쟁과 기근, 박해와 배신, 복음의 전파... 그러나 가장 중요한 징조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입니다. 거룩해야 할 곳에 불의한 것이 자리 잡는 것, 이것이 진정한 위기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종말을 멀리 있는 사건으로 볼 수 없습니다. 종말은 이미 우리 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거룩한 성전,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이미 점령당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전 파괴를 목격하는 세대가 아니라, 성전 변질을 체현하는 세대입니다.
이 시대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우리 시대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경계의 붕괴'가 아닙니까? 거룩함과 세속의 경계, 진리와 거짓의 경계, 선과 악의 경계, 희생과 탐욕의 경계... 이 모든 경계가 무너지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조차 이 경계 무너짐의 물결 앞에 무력합니다. 예배가 콘서트가 되고, 설교가 동기부여 강연이 되고, 제자훈련이 자기계발 프로그램이 되고, 기도가 소원 성취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장식품이 되고, 성경은 처세술 안내서가 되고, 교제는 인맥 관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종말의 때에 살고 있습니까?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깨어 있습니까? 당신은 삼가고 있습니까? 당신은 준비되어 있습니까?

5. 영적 분별력의 회복

우리 시대에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영적 분별력의 회복입니다. 분별력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세상의 가치를, 영원한 것과 일시적인 것을, 진리와 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빌 1:9-10).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기도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얼마나 쉽게 속고 있습니까? 세상의 거짓된 약속에, 물질의 유혹에, 명예와 권력의 달콤함에, 편안함과 안락함의 함정에... 우리는 너무나 쉽게 속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속임수는 때로 영적인 모습으로 포장되어 나타납니다.
현대의 거짓 선지자들은 어떤 모습입니까? 그들은 번영 신학의 옷을 입고, 자기계발의 언어로 말하고, 심리학의 도구를 사용하며, 때로는 사회정의의 이름으로 나타납니다. 그들의 메시지는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 핵심에는 십자가가 빠져 있고, 회개가 없고, 자기부인이 없고, 고난이 없습니다.
"모든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요일 4:1). 이것이 우리 시대의 절실한 명령입니다. 어떻게 시험할 수 있습니까?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분별력을 키우는 기준입니다. 모든 가르침, 모든 생각, 모든 문화적 흐름을 말씀의 빛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6. 마침내 - 소망의 약속과 결단

예수님의 경고 가운데에도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미리 말하였노라"(막 13:23). 이 말씀은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혼란과 두려움의 때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주권자이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약속하십니다. "그러나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막 13:20). 환난의 때에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보호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삼가십시오. 단순한 경계를 넘어 적극적인 영적 준비를 하십시오. 깨어 있으십시오. 영적 무감각과 나태함에서 벗어나 민감하게 시대를 분별하십시오. 분별하십시오. 진리와 거짓을, 영원한 것과 일시적인 것을 구별하는 지혜를 구하십시오. 거룩함을 지키십시오.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십시오. 기도하십시오. 깊고 진실한 기도의 생활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화하십시오. 소망을 잃지 마십시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으십시오.
여러분, 혹시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의 성전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에, 여러분의 삶에, 여러분의 가정에, 여러분의 일터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이 주인 자리에 앉아 있지는 않습니까?
당신의 성전은 누구를 위해 자리를 내어주고 있습니까? 당신의 삶에서 가장 높은 자리는 누가 차지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시간과 에너지와 재능과 물질은 어디에 가장 많이 투자되고 있습니까? 당신은 진정 깨어 있습니까?
이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우리에게 분명한 선택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가치냐, 세상의 가치냐. 영원한 것이냐, 일시적인 것이냐. 진리냐, 거짓이냐. 생명이냐, 사망이냐.
"오늘 내가 네 앞에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두었노니... 그러므로 생명을 택하라"(신 30:19)
"너희는 삼가라" - 이 단순한 명령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이 경고를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이 부르심에 응답하십시오. 깨어 있으십시오. 준비하십시오. 분별하십시오. 그리고 소망을 품으십시오.
"세상과 그 정욕은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우리 모두 이 진리 위에 서서 흔들리지 않는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도 확실한 믿음으로, 주님 오실 그 날까지 신실하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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