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2장 1-16절(하나님의 판단하심)

로마서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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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사진1]
저런 동상을 사진이나 직접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저 동상의 이름은 정의의 여신상 유스티티아 라고 합니다. 
유스티티아상은 각 나라의 법원이나 사법기간 앞에 서 있는 동상인데 
그림과 같이 한쪽에는 칼을 가지고 있고, 다른쪽 손에는 천칭, 저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눈은 눈가리개로 가려져 있습니다. 
칼의 뜻은 법의 어려움과 사법의 권위와 권력을 의미합니다. 
천칭, 저울은 법의 공정함과 공평함을, 
눈을 가리는 것은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각 나라마다 정의의 여신상의 모습이 조금씩 다른데, 대한민국 대법원의 정의의 여신상은 
한쪽 손에 칼이 아닌 법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눈가리개를 하지 않고 눈을 뜨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많은 네티즌들이 법전을 족보로 비유하면서, 단호하고 불의를 심판할 마음이 대한민국 사법권에는 없다고 하고, 
눈을 뜨고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신분을 보고 판결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대한민국의 사법불신으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남을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정확한 기준과 법이 있어야 하고, 공정해야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판단하는 자리에 앉은 자의 삶 또한 흠이 없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절은 이렇게 시작 합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로마서 1장에서 죄를 짓는 자들,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듣지 않고 /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자들은 이방인들입니다. 
그런데 2장으로 넘어오면서 바울은 이방인들의 죄악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유대인들을 향한 질책을 이어갑니다.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판단자, 심판자의 자리에 올라 이방인들을 판단하고 정죄 합니다. 
스스로를 정당하고 당연한 위치에 있는 민족이라고 자부 하지만, 
바울은 오히려 유대인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판단자, 심판자의 위치로 올려놨습니까?
그 이유는 단 한가지, 선민사상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택하여 주셨고,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기에, 율법의 잣대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심판하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선택하신 진짜 이유는 무엇입니까? 
신명기 7장 7절 입니다. 
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그들이 뛰어나서도, 대단한 민족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너무나도 작고 초라하고 힘이 없는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택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가장 연약하고 작은 자를 택하셔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지키며, 사랑하며, 순종하며, 섬기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은혜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모습을 모든 열방이 바라보며 /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을 보게 하는 / 구원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십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고 순종해야 할지를 / 이스라엘 이라는 모델을 통해 배우고 살아가게 하시기 위하여 그들을 택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택하심이 자연적인 구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하고, 순종할 때 구원과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구약의 역사를 볼 때도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길 때 경고와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열방을 향한 불순종의 모델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회개하지 않는 이방인들을 보며 정죄와 판단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며 하나님의 부르심과 말씀에 순종하는 자여야 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유대인들이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 합니다. 
본문 2절 입니다. 
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참된 회개의 돌이킴이 없는 유대인들에게도 / 그들이 받을 것은 심판 뿐임을 경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듣고 깨닫기를 원하십니까? 
첫번째,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경고 합니다. 
3절과 4절 입니다. 
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본문을 새한글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3. 그런데 그런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판가름하면서도 똑같은 짓을 저지르는 사람이여, 그대 자신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4. 아니면 하나님이 아주 다정하시고 너그러우시고 참을성이 많으시다는 사실을 우습게 보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다정하심이 그대를 회개로 이끈다는 것을 모르고서 말입니다. 
하나님은 누군가가 행하는 죄악상을 보며 / 나의 삶을 하나님 말씀 앞에서 다시 점검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또한 우리의 행함 그대로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담겨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회개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계속해서 참고, 용납하시고 기회를 주신다는 사실 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가 함부러, 마음대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인내의 은혜를 깨닫게 하실 때 / 만약 우리의 악한 마음으로, 
내가 좀 더 세상과 가까이, 죄를 짓고 살아가, 십자가에서 구원받은 강도 처럼 죽기 전에 회개하면 되겠지 라는 악한 생각을 하고 살아간다면, 
분명한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또한 다른 사람들의 모습과 여러가지 방법을 통하여 
우리가 속히 하나님의 인자하심 앞에 엎드리며, 회개하며,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누군가의 죄를 통해 나 자신의 의로움을 찾으려 하는 어리석은 마음을 내려놓고, 
모든 판단과 징계를 하나님께 맡겨놓으며, 
하나님의 은혜 앞으로 겸손하게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 합니다. 
두번째 하나님의 판단은 언제나 의로우십니다. 
유대인들의 모습은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주인의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방탕한 삶을 살고 탕진해버렸습니다. 
아무도 찾지 않고, 갈 곳없고, 먹을 것이 없어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그를 내쫓지 않고, 오히려 맨발로 달려가 안아주며, 좋은 옷을 입혀주고, 소를 잡아 돌아온 아들을 위해 기쁨의 잔치를 벌입니다. 
그런데 일을 하고 돌아온 첫째아들이 이 소식과 광경을 보고 화를 냅니다. 
나는 아버지를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어떻게 방탕하고 재산을 날리고 온 둘째 동생을 사랑할 수 있느냐고 합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누가복음 15장 31-32절 입니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아버지에게 있어서 재산을 탕진하고 방탕한 삶을 산 둘째 아들이나, 
그런 동생을 정죄하는 첫째 아들이나 다 똑같은 죄인이며, 또한 똑같은 아들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어려운 이유는 바울이 유대인들에 대한 질책을 하면서 율법의 행함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하는 율법의 행함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구원받은 자의 행함과 마음 입니다. 
바울은, 그리고 성경은 단 한번도 행함을 구원의 기준으로 제시한 적이 없습니다. 
집나간 동생이 돌아왔고, 그 동생을 기다린 아버지의 마음을 첫째 아들이 알았다면, 사랑과 용서의 마음으로 동생을 안아줘야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모습은 어떻다고 하셨습니까? 
그를 정죄하고, 싫어하고 분을 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마음도 / 마음을 아는 것도 아니기에 질책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야고보서 2장 8-9절 입니다. 
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진정으로 구원받은 믿음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죄인된 자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바라며, 돌아왔을 때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또한 이들의 모습을 보며 내가 먼저 그런 구원과 회복의 은혜를 누렸고, 누리고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무엇이라 하십니까? 
6절 입니다. 
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또한 12절 입니다. 
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율법을 언제 받았느냐? 왜 받았느냐가 아닙니다.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지키고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은 간단하면서도, 정확하고, 단호합니다. 
본문 7절과 10절 입니다.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구원받은 자가 선을 행할 때 오는 고난을 인내하며 행할 때 / 그에게 영생과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하지만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8절과 9절에서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하나님을 알고, 율법을 알지만 그것을 지키지 않고, 살지 않고, 믿지 않는 자에게 그들이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동일한 심판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먼저 그리스도를 믿은 우리에게 있어서 선을 행하는 것은 
아직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구원과 심판에 대한 모델링이 됩니다. 
그러므로 나의 행함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음을 보여주는 자, 
사랑으로 역사하시는 믿음을 고난 가운데서도 인내하며 보여줌으로 
우리의 이런 한 삶을 통해 하나님 영광 받으시는 복음의 통로로 쓰임 받는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들의 구원 받은 자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바울은 16절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16.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나의 복음에 이른 바 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입니다. 
바울은 처음부터 끝까지 구원은 그리스도 밖에 없다고 강조합니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아님을 그 누구도 핑계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뜻은 어느 누구도 율법을 지킴으로는 /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죄인임을 그리스도 앞에서 깨달을 때, 
비로소 그 모든 율법을 성취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붙잡는 구원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의 능력과 구원의 은혜를 누린 자 만이 정죄자, 판단자가 아닌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자, 배워가는 자,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가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교인이 아닙니다. 
종교는 우리를 교만하게 하고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차게 합니다. 
하나님도 알고, 율법도 알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모른채 / 그저 위선과 교만과 자기 의로 가득차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유대인들처럼 살아가게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은 단지 율법을 안지키면, 제대로 살지 않으면 심판을 받고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말씀의 행함은 자랑이 아닌 순종입니다. 
[사진2]
2024년 종교인식조사의 결과를 보면 기독교, 천주교, 불교를 생각해봤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천주교에 대하여 천주교인들은 마리아, 성모, 신부, 평화 라는 이미지를, / 비천주교인들은 마리아, 성모, 성당, 신부 와 같은 이미지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불교에 대하여서 불교인들은 자비, 마음, 종교, 절 등의 이미지를, / 비불교인들은 스님, 절, 느낌 이런 이미지를 떠올렸습니다. 
기독교에 대하여 기독교인들은 믿음, 사랑, 하나님, 구원 등의 이미지를, / 비기독교인들은 목사, 전도, 종교, 사이비, 이기적 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비신자들이 불교나 천주교에 대해서는 비교적 중립적 이미지를 가지는 반면에 기독교에 대하여서는 부정적인 특성을 담는 단어들이 유독 많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써 우리의 자랑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 생명을 구원하시면 그 구원은 절대 취소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참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또한 그것에 감사하며 살아간다면 
우리의 믿음을 합당한 삶으로 나타내고 보여 주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죄인임을 알고, 
깨닫게 하시는 은혜와 회개의 합당한 자리에서 주님만을 겸손하게 의지하며 
나의 나된 것을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정죄하지 않으며, 
오직 주님만을 닮아가는 참된 구원의 은혜를 누리며 자랑하는 
주님의 거룩한 구원의 통로로 쓰임받는 
저와 여러분들의 구원받은 자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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