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서기만 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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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정말 이것만 해결되면 될 것 같은데!
정말 이것만 해결되면 될 것 같은데!
친구들, 우리 가끔 이런 때가 있지 않아요? 이것만 해결되면 내가 진짜 하고 싶은대로 하고, 자유로울텐데 싶은 시간들 말이에요.
이제 중간고사 기간에 들어가니까 아마 이런게 있겠죠?
중간고사기간만 지나면! 내가 자유로울텐데! 시험을 준비하면서 이런 간절함이 우리가운데 생겨날 것같아요.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보면 꼭 이런거 뿐만 아니라 나의 모습에 대한 실망감에 일어나는 간절함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내가 조금만더 예뻤더라면, 잘생겼더라면 좀 더 사는게 좋았을 텐데”, “우리집이 좀 더 잘 살았더라면, 돈이 많았더라면 내가 좀 행복했을 것 같은데” 등등
해결되지 못하는 어떤 것 때문에 지금 내가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이 있을거에요.
우리는 저마다 부족한 부분이 있는데, 그게 우리에게 참 크게 다가와서 지금의 내가 불행하고, 답답한 이유로 여기고는 하는데 그래서 이런 부분에 우리는 간절함을 가지고 살죠.
누군가는 돈을 벌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누군가는 사람관계에 매여살고, 누군가는 성적이나 진로에 매여사는 등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으로 생각하며 간절하게 노력하고는 해요.
오늘 말씀에서는 38년 동안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유를 얻고 싶었던 한 병자가 나옵니다.
오늘은 “나는 이것만 있으면 정말 자유로울 수 있는걸까?” 라는 질문을 가지고 말씀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헛된 희망을 쫓는 사람들
헛된 희망을 쫓는 사람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명절을 따라 예루살렘에 도착하셨어요.
그런데 예루살렘에서 특이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5:2–4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예루살렘 성전은 입구가 여러개가 있어요. 그 중에서 ‘양의 문’ 이라고 불리는 양문 곁에 베데스다라는 못이 있었는데 거기에 수많은 병자, 맹인, 다리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고 해요.
왜 이 사람들이 베데스다에 모여있는지 보니 이런 소문이 돌았죠. 이 못에 가끔 천사가 와서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이든지 나았다! 라는 소문에 온갖 병자들이 여기에서 물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리며 누워있는거에요.
친구들, 조금 이상하지 않아요? 예루살렘이면, 오늘로 따지면 교회잖아요. 교회 안에 들어와서 예배를 드리고 내 문제를 기도하며, 주님께 맡기며 안에서 해결해야할 텐데, 유대인들이라면 더더욱 그렇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예루살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곁에’ 있는 베데스다 못에 모여있는거에요.
베데스다라는 이름의 뜻은 자비의 집이에요. 자비를 구하러 사람들이 모였는데, 이유가 천사에요.
당시에 고대 문화에는 신전문화가 있었다고 했던거 기억하죠? 치유의 신전들이 있었죠. 때때로 사람들은 그 신전에서 병고침을 받았다고 해요.
지금 유대인들이 하고 있는 모습이 어떻죠? 당시의 문화에 따라서 똑같이 하고 있는 것과 같아요.
자비의 집에서 자비를 구하고 있는데, 자비를 구하는 대상이 하나님은 아닌거죠. 문화에 따라 이곳에서도 기적이 일어난다! 라는 말에 사람들이 모여서 기적을 경험하고 자유를 누리고 싶어하는 거에요.
헛된 희망에 사람들은 이렇게 간절하게 모여 있는 현장을 예수님께서 보고 계신 상황이에요.
오늘로 이야기하면 어떤 모습일까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교회로 오긴 오는데, 자신들의 간절함을 해결할 곳이 교회는 아닌거에요.
예루살렘 안에 아니고 ‘곁에’ 둘러 있던 것처럼, 나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말씀은 아닌거에요. 교회는 그냥 형식상 오는거죠.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이렇게 정의해요. ‘종교인’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을 종교활동을 하긴 하지만 진짜 그 가르침에 기대가 없는거죠. 다른 곳에서 답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거에요.
그 목적이 무엇이죠? 병자들의 목적은 딱 한가지 잖아요? “자유”
우리도 다를 바 없이 자유를 얻고 싶어서 누군가는 ‘돈’을 벌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누군가는 명예, 누군가는 권력등 저마다가 가지고 있는 ‘자비의 집’이 있는거죠.
교회는 그냥 곁에 두고 나의 종교란에 넣어둘 타이틀 정도인거에요.
그런 우리의 모습을 지금 예수님이 보고 계신 거에요.
진짜 자유를 선물해주심
진짜 자유를 선물해주심
예수님께서 베데스다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상황 속에서 한 병자를 봅니다.
요한복음 5: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서른 여덟해 된 병자가 그 곳에서 하염없이 기적을 바라고 있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찾아가서 물어보세요.
요한복음 5:6–7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님이 네가 낫고자 하느냐? 질문하니까 서른 여덟해 되는 병자가 이렇게 말해요.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낫고자 물으니까 병자가 “아무도 나를 도와주질 않아서 나는 기회가 없었어요.” 라고 말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먼저 내려가니까 자기는 기회가 없었다고 말해요.
우리로 얘기하면, 환경탓, 주변탓 하며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거에요.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든 건, 이렇게 자유롭지 못한건 ‘돈’이 없어서 그래, 성적이 별로여서 그래, 못생겨서 그래
봐바 다른 애들은 그런걸 먼저 가져서 얼마나 행복해보여 나는 아무도 도와주지 못해서 지금 이 모양이야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아요.
38년되었다는 것은 무엇이죠? 꽤 오랜 시간 간절하게 살았지만 나보다 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보며 거의 포기상태이지만 언젠간 자유를 누리겠지 라는 희망만 마음한켠에 품고 있는 상태에요.
그런 병자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그런 병자를 책망하지도 않고 딱 한 마디 하세요. “일어나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
그러자 이런 일이 일어나요.
요한복음 5: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그 병자가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일어났다는 거에요. 예수님은 어떤 조건도 내걸지 않고 그저 일어나서 걸어가라고 말하세요. 그러자 병자가 곧 나았다. 라고 해요.
병자는 이제껏 못에 들어가야만 자기의 문제가 해결되고 자유를 얻을 줄 알았는데, 예수님 한마디에 그냥 자유를 얻었어요. 어떤 조건도 없이 그냥 병자는 예수님 말에 반응했을 뿐인데 일어난거에요.
무슨 말이죠? 예수님은 우리가 뭘 해야만 구원해주시고, 자유를 누리게 하시는게 아니라 먼저 오셔서 구원과 자유를 선물해주셨다는거에요.
병자가 해야하는 건 그냥 그 말씀따라 일어나기만 하면 되는거였죠.
우리로 이야기하면, 공부 잘해야 해, 돈 잘 벌어야해, 잘 생겨야해 그런 조건따라 행복을 쫒고 자유를 쫓지만 예수님은 딱 한마디로 끝내시는거에요. “지금 자유를 누려”
아무 조건도 없이 나라는 사람 자체가 이미 충분히 자유를 누리고 감사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에요.
우리가 할건 그냥 말씀이 말하는데로, ‘일어나기만’ 하면 되는거죠. 다시말해서 말씀에 반응하기만 하면 되는거에요.
참된 안식, 자유는 예수님께만 있다.
참된 안식, 자유는 예수님께만 있다.
사랑하는 친구들, 말씀을 정리해보려고 해요.
오늘 말씀에 병자가 나은 날이 언제라고 하죠? ‘안식일’이에요.
안식일은 우리로 이야기하면 주일인데, 하나님의 일하심과 놀라운 은혜를 고백하고 감사하며 기억하는 날이 ‘안식일의 의미에요.
그런데 유대인들이 나은 병자에게 이렇게 말해요.
요한복음 5:10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안식일에 니가 병을 낫고 일어나고 그러는거 아니야! 왜냐면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안식일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누리는 날이 아니라 그냥 아무것도 안하는 날로 바뀐지 오래였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안식일에 사람들이 뭘하고 있죠? 자비의 집에 모여서 자신들의 문제가 해결되길 간절히 바라면서 열심히 하고 있죠.
‘안식’일에 정말 쉼을 누리며, 하나님이 나에게 행하고 계신 일을 누리고 감사해야 하지만, 정작 삶의 문제와 고민들 때문에 쉬지 못하고 있어요. 그리고 정말 안식을 얻고 자유를 얻은 병자에게, “너가 아무리 그래도 우리처럼 있어야지!” 라고 하는거에요.
우리로 얘기하면, “야! 너가 아무리 예수님으로 인해서 자유롭다고 해도! 돈은 놓지 말아야지, 잘생겨져야지!, 공부에 목숨걸고 해야지! 친구관계에 매달려야지!” 이런 거에요.
친구들 이미 예수님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어요. 여러분이 거기에 목숨걸고 목메지 않아도, 이미 여러분이 행복을 누릴 수 있고, 자유함을 누리를 수 있는 특권이 예수님으로 인해 주어졌어요.
우리가 할 것은 단지 그 말씀을 붙잡고 반응하는거에요. “일어나는 거에요.”
어떻게요?
요한복음 5:11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선포하는거에요. “응! 예수님이 나에게 자유를 주셨기 때문에 나는 더이상 거기에 목매지 않아!” 라고 말이에요.
반응한다는건 구원과 자유의 조건이 아니에요. 이미 여러분에게 있는 걸 발견하라고 권유하는거에요.
예를 들어서 우리 영어로 유명한 분이 누구죠? 방송에 많이 나오는 조정식 선생님이 “그거 그렇게 하는거 아니야 이렇게 해봐” 하면서 가르치죠? 그 말은 뭐죠? 그렇게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아니까 해보라는거에요.
학생은 어떻게 하면 돼요?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해보는거죠. 그럼 결과가 나오는 걸 보는거에요.
마찬가지에요. 예수님이 이미 여러분들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고, 여러분들에게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릴 참된 자유, 안식을 선물로 주셨어요.
우리가 할 건 그냥 해보는거에요. 그렇게 해볼 때, 우리 안에 정말 그런게 없어도, 내가 좀 부족해도 이미 자유롭다는 걸 경험하게 될거에요.
그걸 경험하고 나면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실거에요.
요한복음 5: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무슨 말이죠? 헛된 것을 쫓던 병자가 자유를 얻자 예수님이 말씀하세요. 이제는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죄를 짓지 말자.
다시 말해서 이제는 자유를 경험해봤으니, 헛된 희망에 빠져서 힘들지 말자 라고 말씀하시는거에요.
우리 모두가 이렇게 이미 주신 은혜를 마음껏 누리면서 예수님이 주신 참된 자유가 뭔지 경험하길 원해요.
그래서 말씀에 반응하며, 정말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자유를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