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정도로 멋진 복음(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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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배당 입구에서 일어난 일
1. 예배당 입구에서 일어난 일
주일 아침, 교회 문턱을 막 넘어설 때, 우리는 평소처럼 익숙하게 들어가 예배를 드리려 합니다. 그런데 문득, 교회 현관에 예수님이 서 계신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눈길 마주친 순간, 예수님은 잠시 걸음을 멈추시고 잔잔하게 말씀하십니다.
“지금, 기도하러 오는 거지? 마음을 열러 온 거 맞지?
아니면 여기서도 무언가 얻기 위해, 또 계산하러 오는 건 아니니?”
이 질문은 결코 우리를 비난하거나 몰아세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진짜 마음을 들여다보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의 따뜻한 초대일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 안으로 들어가셨을 때,
그 광경은 거룩한 예배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희생제사에 필요한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장사꾼, 돈을 바꿔주는 환전상들, 그리고 흥정하는 소리와 동물들의 울음소리로 가득 차 있었죠.
원래라면 기도를 드리고, 죄 용서를 구하며, 감사의 제사를 올리는 이들이 있어야 할 거룩한 공간인데 말입니다.
성전 안은 영적인 침묵과 경외가 아니라 분주함과 소란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예배드리러 온 이들이 제대로 예배하기 어려운 환경이 되어버렸죠.
우리도 혹시, 비슷한 모습으로 교회에 오지는 않았나 돌아봅니다.
몸은 교회에 있지만, 여전히 머릿속 계산서는 내려놓지 못한 채, ‘이번 주는 헌금이 얼마였지?’, ‘내가 이만큼 했으니, 하나님도 뭔가 해주셔야지’ 같은 생각이 어지럽게 맴돌 수도 있습니다.
혹은 교회에서조차 사람들과의 관계나 인정을 신경 쓰느라, 정작 하나님 앞에 마음을 낮추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모습을 보시고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16절)
마치 교회 현관에서 우리를 붙들고,
“네 마음속의 소란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겠니?
이곳은 기도와 예배의 자리다.”
라고 타이르듯이 말이죠.
2. ‘내 아버지의 집’이라는 고백
2. ‘내 아버지의 집’이라는 고백
이 장면에서 더 놀라운 부분은, 예수님이 성전을 두고 **“내 아버지의 집”**이라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그저 종교의식을 치르는 ‘공식적인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따뜻한 품을 느끼는 ‘집’**이라는 표현이지요.
집이란 어떤 공간인가요?
가장 편안하고, 마음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장소
바깥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쉴 수 있는 공간
서로 알몸으로 태어난 아기였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 모습 그대로 사랑받아온 곳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아버지의 집’**이라 부름으로써,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와의 친밀한 관계”를 상기시키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교회당만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모인 모든 자리가,
**진실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고백하는 그곳이 곧 ‘아버지의 집’**이 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현실은 어떨까요?
우리의 교회가, 예배당이 때로는 사람들의 경쟁 의식이나 외적인 활동으로 인해 시끄러워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 또한, 사실상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보다는 갈등과 생활고와 세속적인 일로 복잡해질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 아버지의 집”은 바로 이런 현실을 향한 초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집처럼,
내 교회와 가정이, 또 내 마음이
잔잔한 예배와 쉼의 장소가 되도록 가꿔 보라.”
적용해볼 수 있는 한 가지 예시
주일 아침, 혹은 부부가 함께 있는 어느 저녁에 살짝 조용히 앉아 잠시 2~3분이라도 입술로 “아버지 하나님” 하고 불러보는 겁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 집이 정말 아버지의 집이기를 바랍니다.”
“제 마음이 다시 아버지 앞에 돌아오게 해주세요.”
이렇게 진심 어린 한 문장만으로도, 우리의 가정이 거룩하고도 친근한 하나님의 집으로 바뀌는 문이 열립니다.
또 다른 예시
교회에 올 때, **‘일단 편하게 숨을 좀 내쉬고, 모든 셈법과 근심을 내려놓겠다’**는 다짐을 해보세요.
교회 현관 앞에서 “주님, 내 마음을 비우고 주님을 만나러 왔습니다”라고 짧게 기도하는 것만으로도, 그곳이 ‘아버지의 집’임을 다시 인식하게 됩니다.
이처럼 아버지와 자녀가 친밀하게 만나는 집이라는 이미지를 되살릴 때,
우리는 예배가 억지로 해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나, 편안히 나를 드러내고 회복되는 기쁨으로 변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결론: 아버지의 집 문턱을 넘어서
결론: 아버지의 집 문턱을 넘어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내 아버지의 집”**이라 부르신 것은,
곧 하나님과 함께하는 모든 예배의 장소가 **우리의 진짜 ‘가족의 집’**임을 알려주는 선언입니다.
그 집에서 주님은 우리를 불편하게 검사하거나 타박하려고 기다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도 “어서 오렴”, “고생 많았지?” 하시며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길가에 지친 자녀들을 품어주고, 회복시키고, 다시 세상으로 힘 있게 내보내시려 기다리십니다.
그러니 이곳에 들어설 때,
또 가정에서 서로 대화를 나눌 때,
“아, 여기서도 아버지와 함께 있고,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구나”
하고 깨닫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아버지의 집을 찾은 사람은 더 이상 외롭지 않습니다.
어지러운 시장판 같은 인생 한복판에서도,
아버지의 집에 들어서면 우리는 안식과 쉼, 그리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을 것입니다.
그 은혜가 여러분의 교회와 가정, 그리고 마음 안에 깊이 깃들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3. “성전을 헐라”는 낯선 요청
3. “성전을 헐라”는 낯선 요청
예수님은 성전이 시끄럽다고 그냥 갈아엎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게 아닙니다.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19절)
이 대담한 선언은 당시 사람들에게 정말 충격적이었을 거예요.
당시 상황:
예루살렘 성전은 46년간 지어온, 유대인들에게 있어 신앙과 민족 정체성의 상징.
“저 건물을 헐어버리겠다”는 말은 불경스럽고 말도 안 되는 것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중:
돌로 지은 그 성전 자체가 아니라, 예수님이 친히 “새로운 성전”이 되셔서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시겠다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더 이상 물리적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예배와 만남이 가능해진다는 약속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내가 열심히 쌓아온 삶의 탑이 무너지는 것 같은 순간이 오더라도,
“내가 다시 세울 수 있다. 부활의 능력으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세요.
때로는 우리의 직장이 무너질 때가 있고,
부부 관계가 어려움을 겪고,
자녀 양육에서 막막함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성전의 무너짐’ 뒤에 예수님이 새롭게 일으키실 순간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4. 가정, 무너질 수도 있는 작은 성전
4. 가정, 무너질 수도 있는 작은 성전
30-40대 기혼자들의 삶은 종종 ‘문제 해결의 연속’처럼 느껴집니다.
아침부터 아이들 등교 준비, 각종 청구서, 직장 문제, 부모님 돌봄, 부부 사이의 갈등 등…
분명 행복해야 할 가정이, 어느 순간에는 걱정과 갈등이 가득한 장사판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그 가정을 작은 성전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내 아버지의 집”이라는 의미처럼, 우리 가정 또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공간이에요.
때론 지쳐서 갈등이 쌓이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아도, 이 집은 여전히 하나님이 거하길 원하시는 곳입니다.
구체적인 적용
부부가 함께 예배드리기: 하루 중 5분이라도 짧은 기도 시간을 갖거나, 주일 설교 말씀에서 은혜받은 한 구절을 서로 나누어보세요.
자녀와 함께 ‘믿음 대화’ 시도하기: 억지로 성경공부를 강요하기보다, “오늘 누구에게 칭찬받았니?”, “그 때 어떤 마음이 들었니?” 등 일상 얘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을 대화 나눠보는 겁니다.
내면을 위한 자가 점검: 내가 화가 날 때, 혹은 슬플 때, “아, 지금 내 마음의 성전이 어지럽혀져 있구나” 하고 스스로 인지해보세요. 그러면 성령께 도움을 구할 창문이 열립니다.
5. 성전을 새로 짓는 사람들
5. 성전을 새로 짓는 사람들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씀은
무너짐 자체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전제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우리도 새로운 성전을 짓는 사람들이 될 수 있어요.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을 정도로 무너진 자리에서,
예수님을 초대하고,
그분을 중심에 세우며,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는 ‘진실한 기도’를 쌓아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구체적 실천 예시
‘회개와 용서’의 훈련: 갈등이 생겼을 때, 회개와 용서를 습관처럼 연습해보세요. “미안해” 한 마디가 어색해도, 그것이 성전을 새롭게 짓는 첫 돌이 됩니다.
‘관계정돈’의 용기: 혹시 내 삶에 잘못된 습관이나 인간관계가 성전 안을 어지럽히고 있다면, 예수님처럼 과감히 쫓아낼 필요도 있습니다.
‘작은 예배’ 세우기: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감사 리스트”를 함께 나누며 기도하세요. 감사가 쌓일 때, 그 자리는 점차 새로 지어진 ‘거룩한 성전’으로 변모합니다.
6. 마무리하며 – 집을 닮은 교회, 교회를 닮은 가정
6. 마무리하며 – 집을 닮은 교회, 교회를 닮은 가정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내 아버지의 집”이라 부르셨던 예루살렘 성전이 시끄러운 장터처럼 되어버렸지만, 주님은 그것을 헐고 다시 일으키겠노라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지금 우리의 가정과 삶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집을 닮은 교회: 우리가 함께 모이는 교회도, 전혀 낯선 사람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한 가족처럼 서로를 돌보고 이해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닮은 가정: 동시에 우리 가정 안에서도 말씀을 나누고, 서로 중보하며, 웃고 울 때, 그곳이 작은 교회처럼 변화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버지의 집’에 대한 예수님의 마음을 깊이 깨닫고, 그 사랑을 믿음으로 가정과 삶 속에 옮겨 심는 일이에요.
무너져도 괜찮습니다.
다시 세워질 것이고, 다시 회복될 것입니다.
아버지의 집에는 ‘중단됨’이 없고, 부활의 날은 반드시 찾아오니까요.
그러니 오늘 당신의 가정이, 교회가, 그리고 마음의 성전이
**진심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집’**이 되길 소망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