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정도로 멋진 복음(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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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었으나
믿었으나
예루살렘 성전은 사람들로 붐볐다.
늘 시끌벅적했다.
하나님을 믿는다며 모인 사람들로 가득한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구원받습니다. 아멘?
그렇다면 이 사람들 모두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사람들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니 모두 ‘기독교인’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알아봤다. 그리고 그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예수님을 쫓아와서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은 그들을 믿지 않았다.
‘믿습니다.’는 거기서 끝이어야 한다. 더 이상 토를 달아서는 안된다. ‘믿습니다. 그러나 .… 합니다.’
이런 신앙이 우리 주변에 흔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시험기간이라서 학원에 가야합니다.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저의 미래를 위해서 교회를 잠시 쉬어야겠습니다.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이 돈은 드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이번 일은 참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제가 하고 싶은 일은 해야겠습니다.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무시하고 욕하고 흉봅니다.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제가 아끼는 것은 건드리면 용서 못합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예루살렘 교회에 모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겠다고 모인 사람들입니다.
지금도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기독교인들의 모습과 닮았다는 것입니다.
믿으면 믿은 것이지 ‘그러나’가 왜 붙습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똑같이 반응 하십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러나 네가 학원에 가버려서 오늘 주려고 했던 것을 못주겠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러나 네 미래를 위해 교회를 쉬겠다니 내가 도울 수 없겠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러나 네가 그 돈을 아까워하니 더 큰 돈을 줄 수 없겠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러나 네가 못참으니 나도 용서해줄 수 없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러나 네가 하고싶은대로 하니 내가 하고싶은 일은 못하겠다.’
아무리 앞에 그럴듯하고 좋은 것이 붙어도 뒤에 ‘그러나’가 있으면 다 헛것입니다.
그러나가 붙는 순간 앞에 것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난 공부를 잘했다. 그러나 지금은 못한다.
난 결혼 전엔 잘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난 부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가난하다.
어때요? 앞에 좋은 것들이 조금이라도 의미있게 들려집니까?
몸을 의탁하지 않았다
몸을 의탁하지 않았다
23절에 ‘믿었으나’와 24절에 ‘의탁하지’는 같은 단어를 사용합니다.
둘다 믿었다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이 문장은 쉽게 이렇게 해석이 됩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믿지 않으셨다.’
왜 그런지는 이미 잘 알고 계실거라고 생각합니다.
상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접하는 사람은 영생을 얻는다.
어떻게 예수님과 영접하는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님이 몸을 의탁해야 한다.
예수님이 믿을만해야 한다.
당신은 예수님이 믿을만한 사람인가?
믿는다고 쉽게 말못한다.
믿는게 무엇인가?
행동으로 말해라.
나는 교회에서 장로를 세울 때 돈을 받는다며 욕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교회에서 십일조하란다고 비난하며 해야되네 말아야되네 말이 많다.
난 이렇게 되묻고 싶다.
그정도 돈도 못내는 사람에게 어떻게 교회를 맡기겠는가?
여러분이 내 시간과 헌신과 몰질을 다 쏟아서 세운 교회라면 아무에게나 맡기겠습니까?
하나님이 모두 주신것이라고 말하면서 나의 생명도 드린다고 눈물 흘리며 말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수입에서 십분의 일도 아까워서 못내는 사람들을 예수님이 믿을만할까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러 가실 때 그 형벌도 너무나 끔찍하지만 그만큼 마음에 걸리는 것이 또 있습니다.
바로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예수님은 가장 믿을만한 제자에게 그의 어머니를 부탁합니다. 그 사람이 요한이었습니다.
요한을 처음부터 계속 지켜보던 예수님이 그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믿음을 주는 것이었기에 그에게 의탁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믿음이나 신뢰를 가볍게 생각합니다.
아예 생각지도 않고 이익만을 쫓아 살아갑니다. 그런 인생이 어디 행복하겠습니까?
믿을만한 사람 하나 없는 인생, 배우자와 부모자식 간에도 이익을 따지며 사는 인생에
행복이랄 것이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돈도 명예도 자기 유익도 다 버리면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가지 지키셨습니다.
믿을만한 분이라는 사실.
예수님을 닮는 다는 것은 믿을만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약속을 가볍게 여기고, 습관처럼 지각하거나 펑크내는 사람은 믿을 수 없습니다.
돈을 빌리고 안갚거나 돈이라면 뭐든 할 사람들 믿을 수 없죠.
때로는 손해보는듯 해도 예수님처럼 살려고 씨름하는 사람이 믿을만한 사람입니다.
니고데모도 믿었으나 일뻔했죠.
그러나 예수님께 물음으로 깊은 신뢰의 관계로 발전되어 갑니다.
믿음이 깊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말씀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할 때에 이렇게 기도하세요.
그러나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예수님이 나를 믿어줄 수 있겠냐고?
그랬더니 너는 못믿겠고 완전히 새사람이 되어야 믿겠답니다.
그래서 어떻게 새사람이 되냐고 물었더니 성령이 임해야 새사람이 된다고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대상이 못됩니다. 오직 사랑에 대상이죠.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기에
그분이 믿을만한 분인 것입니다.
결국에 믿음은 결과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이나 보여지는 것만 행동하는 의미없는 행동이 아니라 성령께서 이끄시는대로 행동했을 때 그것이 믿음의 결론이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믿음으로 구원을 받죠. 믿음이 있어야 성령의 임재와 인도하심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 속을 모릅니다. 다 요한같은 분들인줄로만 알죠. 누가 난데없이 가룟유다처럼
자기 이익을 위해 믿음을 져버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 아시지요?
누가 요한같고 유다같은지 다 아십니다.
그래서 요한에게는 어머니를 맡기고, 유다에게는 네가 나를 팔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다며 따라오는 무리들을 피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나중에
예수님을 못박으라고 소리지를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무리’로 적당히 신앙생활하지 마세요.
무리도 가르침을 듣고, 병고치는 것을 보고, 떡과 물고기를 함께 먹었습니다. 스스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고 따라다녔어요. 그리고 나귀를 타고 오실 때 종려나무를 들로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 이스라엘의 왕이여’라고 외치며 기뻐했다가 하루만에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치고 빌라도가 도무지 이 사람은 죄가 없다며 풀어주자고 세번이나 사정해도 더 크게 소리지르며 예수님을 죽인 장본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믿을만한 사람들은 매우 소수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마리아의 말대로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한 ‘종’들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친구’ 아무나 다 친구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친구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이 친구라고 부르는 사람은 동창이나 그저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이런 사람이 친구입니다.
예수님의 ‘신부’는 절대 간음하지 않는 여인입니다. 왜 간음했을 경우만 이혼을 허락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예수님 외에 다른 우상을 섬기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의탁하지 않으실 것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관계는 ‘무리’와는 상관없는 관계들입니다.
예수님 믿는데 아무 일이 안일어 난다?
혼자 상상 결혼한 사람이 ‘왜 저 사람이 나에게 아무것도 안해주는가?’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성도와 합창단 여러분 저는 두려운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예수님과 관계를 잘 쌓으세요.
믿음이 단단해지기까지 많은 시간과 시험을 통과해야하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 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요한처럼 예수님처럼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