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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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봉독】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에베소서 2:14-19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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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의 제목은 “화평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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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이란 것을 생각해 보면, 화평은 하나님의 성품 중에 하나이다.
그러므로, 화평은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필수 덕목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예수님도 팔복에서 ‘화평’에 관해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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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일컬음을 받는 것은, 화평케 하는 자 임을 알 수 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려면, 화평케 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평케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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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화평은 무엇인가?
화평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말하면, 평화, 화평, 평안(에이레네)인데,
이 단어는 동사 ‘에이포’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것인데, ‘결합하다’이다.
전혀 다른 성질이 하나 하나 모여서 딱! 하고 하나가 되는 것이다.(찰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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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은 결합시키는 것이고,
그렇다면, 화평에 반대는 ?
‘분리’이고 분리의 원인은 ‘갈등’이다.
결론적으로, ‘화평’에 반대말은 ‘갈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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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시대에 갈등 관계는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예수님과 갈등관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갈등관계가 깊어지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죽여버리는 것’이다. 짓밟아버린다.
구약 역사속에서 이스라엘백성들도 하나님과 결합이(화평) 안되서
결국 하나님이 ‘내버려 둔다’. 화평은 ‘결합’하는 것이고, 화평의 반대는 ‘갈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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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단체든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갈등’이 있다.
오늘 본문인 에베소교회안에서도 유대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의 갈등이 존재했다.
그렇다면, 갈등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갈등의 해결은 어떻게 이루어지를 본문안에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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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대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의 갈등의 주된 원인은?
유대인들의 선입견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 선민사상(선입견)과 할례
유대인들의 세계관은 이방인과 다르다. 선입견이 존재한다.
유대인들의 선택받은 '선민사상'은 이 사상이 강할수록 애국, 혹은 신앙심 좋은 것으로 평가되는데
특히 이방나라나 이방인들과의 갈등에 주범인 된다. 선민사상이 강한 사람들이...
선민사상의 핵심은, 우월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여호와 하나님의 대한 우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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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서도 어떤 사람들을 보면, 신앙심이 깊어 보이는 사람들이 있고, 모태신앙?(우월성)
그 사람들은 신앙심이 좋은 것으로 평가되는데 꼭 그런 사람들이 갈등에 주범이 된다는 것을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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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에베소교회에 안에서도 갈등의 주범이 되는 것도 ‘이방인’이 아니라
‘유대인들’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유대인들에게 ‘무할례자들’은 구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선입견이 존재한다.
유대인들에게는 구원의 징표가 ‘할례’였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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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례’가 구원의 징표 또는 거룩한 징표라면,
현재 교회 현장 가운데 ‘할례’의 징표와 같은 역할을 하는게 ‘직분’같았다.
할례를 받은 구원의 징표를 가진 자들인 유대인 무리들이 갈등의 주범이 되는 것처럼,
때때로 ‘직분’을 가진 자들이 갈등의 주범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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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이러한 상황 가운데 유대인들을 향해
그리고 이방인들을 향해 서로 이해폭이 넓어지길 권면하고 있다.
유대인들에게는 ‘할례’를 덮는 은혜가 있음을 이방인들에게는 ‘할례’를 받은 너희만 구원받냐?
라는 지네만 거룩한 줄 알아? 이러한 마음들을 제거하길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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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이러한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갈등속에서 권면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갈등의 관계를 자기 죽음(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해결하셨다.
갈등의 원인은 인간관계 안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로 나타난다.
-> 자기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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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은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 두 가지를 허무셨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자기 육체의 죽음으로 예수님은 우리(유대인, 이방인 모두에게)의 화평이 되셨다.
자기 육체의 죽음으로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 두 가지를 허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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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무셨다. - 선입견(선민사상)으로써
- 이 담은 예루살렘의 성전에 있는 ‘이방인의 뜰’에 있던 담을 말해준다.
예루살렘 성전은 기원전 19-20년 정도에 헤롯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한다.
헤롯은 대규모공사를 좋아했고 유대인들의 환심을 얻을 것이라 여겨서 휠씬 더 큰 성전을 지어주었다.
성전의 규모가 넓어지다보니 이스라엘 백성 외의 이방인에게도 들어갈 공간이 확보가 되었다.
-> 이 공간을 ‘이방인의 뜰’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유대인과 이방인, 할례자와 비할례자,
율법을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사람들이 랍비와 율법학자들에게 하나님과 율법에 대해 물으면 이들은 존경할 만한 충분한 답변을 해주었던 곳이었다.
또한, 이방인의 뜰은 다양성이 넘쳐나는 곳이고 만남과 대화의 장소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방인의 뜰에 1.5미터에 정도의 담을 세우고 성전 안쪽을 결코 넘어오지 못하게 했다.
이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배제하고 아주 노골적으로 차별의 공간을 만들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이 차별의 공간으로 만들어 놓은 이방인의 뜰에 1.5미터에 담을 예수님이 허무셨다는 것이다.
그것은 너희가 만들어 놓은 차별의 관계를 허무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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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들에게 형제, 자매 또는 학교에서 직장에서 어떤 사람에게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 스스로가 만들었던 ‘차별의 벽’을 만들었습니까?
우리 자신도 하나님과의 벽이 있었습니다.
그런 벽을 예수님께서 허물어 주셔서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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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 - 할례로써
- 율법이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할례로 상징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할례로 구분하는 기능에 대한 비판이다.
-> 즉, 선입견과 차별의 벽을 세우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화평을 이룰 수 없다는 말이다.
만약, 선입견과 차별을 둔다면, 넌 유대인이다!!!
[말씀 읽기]
히12:14
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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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등을 해결하는 핵심요소,
-> 갈등의 해결점은 ‘자기 포기’이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우리를 어떻게 화평케 하셨을까요? 자기를 포기하셨다.
한 영혼을 위해서 형제, 자매를 위해서
내가 너무 잘하고 싶은 것들 드러나고 싶은 것들 인정받고 싶은 것들로부터
나를 포기하실 수 있습니까?
여러분 모두가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을 이루셔서 각 처소에서 주를 보는, 의의 열매를 거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컫음을 받는 삶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