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23 주일오후예배: 시편 24; 네덜란드 신앙고백서 13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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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24편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편 24 NKRV
다윗의 시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네덜란드 신앙고백서를 함께 보겠습니다. 네덜란드 신앙고백서 13항입니다.
벨직과 네덜란드를 혼용해서 쓰지만, 요즘은 네덜란드 신앙고백서라고 더 많이 부르기 때문에 앞으로 네덜란드 신앙고백서라고 하겠습니다. 네덜란드 신앙고백서 13항을 함께 읽겠습니다. 제가 제목을 읽으면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제13항 하나님의 섭리
우리는 이 동일하신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만물을 버려두거나 운명이나 우연에 맡겨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분의 거룩하신 뜻에 따라 다스리고 통치하심으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지시 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음을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죄의 조성자도 아니시고, 또한 발생된 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분도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이 너무 위대하고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는 것이어서 마귀들과 악한 자들이 불의하게 행할 때조차도 하나님은 가장 탁월하고 공의로운 방식으로 그분의 일을 정하고 실행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여 행하시는 일에 대해서는 호기심을 발동하여 우리의 능력이 허용하는 이상의 것을 물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최고의 겸손과 경외감으로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을 찬양하고,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계시해주신 것을 배우면서 그 경계를 넘으면 안 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라는 사실에 만족해야 합니다.
이 교리는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위로를 줍니다.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며, 오직 은혜로우신 하늘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모든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부성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지켜 보십니다.
또한 모든 피조물을 그분의 능력 아래에 두셔서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도(다 세신 바 되었으므로), 참새 한 마디로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 아버지를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마귀와 우리의 모든 원수들을 제재하심으로 아버지의 뜻과 허락 없이는 그들이 결코 우리를 해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만물에 아무런 관심이 없으시고 모든 것을 우연에 내버려 두셨다고 말하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가증한 오류를 배격합니다.
서론: 전능에 대한 오해에서 벗어나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도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셔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는 우리를 너무나도 기뻐하십니다. 예배의 자격을 우리 스스로 갖출 수가 없기에 그리스도를 주셔서 예배할 수 있게 하실 정도로 하나님은 예배를 너무나도 받고 싶어하십니다. 그분이 표독스럽거나 교만하셔서가 아니라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은 우리에게 행복이 되는 일입니다. 영원히 행복하신 그분을 예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이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자신을 알려주시는 이 말씀의 자리에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자신을 하나님께서 어떤 분으로 계시하셨고, 이것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지 함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가고 있는데요. 오늘도 이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를 말씀을 통해 깨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능력’있는 사람에 대한 동경심을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일을 잘하거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능숙하게 잘하거나, 아니면 내가 하지 못하거나 가지지 못한 것을 하거나 가지고 있는 사람을 우리는 부러워하거나 동경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또한 우리는 능력있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능력있는 사람이 되어 내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거나,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거나, 안정있는 생활을 얻고자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능력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여도, 목표에 도달하고자 하여도 하지 못할 때가 있는 우리는 한계가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상황이나 환경 때문에 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포기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고 싶다고 한들, 그리고 우리에게 여건이 갖춰졌다고 한들 우리의 뜻대로 하지 못하거나 포기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와 달리 성경에서 하나님은 ‘전능’하시다고 합니다. 그분은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으시며 하고자 하시는 것은 못할 것이 없다고 말입니다. 오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 바로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한 말씀을 선포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말씀에서 어떻게 나타나 있고, 이것을 우리가 깨닫는 것이 우리에게는 어떤 유익을 주는지 “선한 일을 행하시는 전능자”라는 제목으로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겠습니다.
먼저, 말씀을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하나님의 전능에 대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오해와 함께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이해하는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제를 말씀드리고 오늘 말씀을 들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오해는 우리가 이해하는 힘 개념의 최상급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이해한다는 겁니다.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대단한 힘이나 또는 완벽한 힘일 겁니다. 이것이 맞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것으로만 절대로 생각해선 안되고 이것이 곧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나타낸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어떤 다른 힘은 단순히 정도의 차이만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우리가 힘이라고 부르는 것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자신을 ‘전능자’라고 알려주셨습니다. 또한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 등장하듯이 ‘만군의 여호와’ 또는 ‘만군의 주’라는 이름으로 전능하심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우리는 어떤 추상적인 개념으로 만들어선 안되고, 반드시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그분의 무한한 지혜, 그리고 선하심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결코 하실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부인할 수 없다고 하시고,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하시고, 악에게 시험을 받으실 수 없으시고, 죄를 지으실 수 없으시며, 그분은 악과 공존할 수 없으신 분이십니다. 정리하자면 하나님은 자신의 본성과 어긋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없으십니다. 하실 수 없다는 것은 그분이 무능력하다, 하실 수 있으신데 그럴 능력이 없으시다는 뜻이 아니라 애초에 그럴 수 있는 가능성조차 없다는 겁니다. 부족하지만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면 우리는 하나님처럼 창조하거나 무슨 공간에든지 편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할 수 없다고 해서 무능력하다고 하지 않듯이 말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거룩하십니다. 그렇기에 그분은 자신의 전능을 선과 거룩을 위해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선한 곳에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악을 목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날카로운 칼은 맛있게 요리하기 위해 재료를 자르고 잘라야 하는 물건을 자를 수 있게 해주는 유용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지만, 동시에 사람을 해치는 목적으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애초에 이것이 불가능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본질적으로 다르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악한 목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실 수 없으십니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전능을 이해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보다 더 힘이 쎈 하나님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겨버립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자유로 하나님께 범죄한다는 것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축소되거나 감소시킬 수 있다는 생각 또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거나 감소시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방금 우리가 고백한 네덜란드 신앙고백서에서도 고백하듯이 하나님은 죄의 조성자가 아니며, 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분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한 책임은 언제나 피조물인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오늘 말씀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원수를 이기시고 개선하신 왕이신 하나님
오늘 선포할 말씀인 시편 24편은 원수를 무찌르시고 개선식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시편입니다. 온 세상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적들로부터 구원하시고 승리하신 것을 축하하는 개선 행진의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특히나 시인인 다윗은 하나님의 전능하시기에 자신의 주권대로 행하시는 왕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노래합니다. 1절과 2절이 바로 이것을 노래합니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다윗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며, 그렇기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의 것임을 노래합니다. 마치 하나님을 건물을 짓는 건축자의 모습으로 2절에서 묘사하고 있는데요. 건축자가 토목 공사를 하고 건물의 기초를 놓으면서 건물을 아름답게 완성하듯이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시고 강들 위에 건설하셔서 세상에 있는 모든 만물들을 그곳에 창조하셨다고 합니다. 창조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일하심 중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창조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만드는, 무에서 유로 만드는 것이고 이것은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존재도 하지 못하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만들었을 때 그것을 만든 사람이 주인이듯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으니 당연히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주권대로 이 세상은 움직입니다. 이 세상은 왕이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공간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3절에서 여호와의 산과 그의 거룩한 곳에 좌정하고 계시다고 다윗은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말하는 여호와의 산은 어디일까요? 성경에서, 특별히 시편에서 말하는 여호와의 산은 시온산을 가리킵니다. 이 시온산은 왕이신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산이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1-2절에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셨고, 이 모든 세상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이 사실상 자신의 영토이지만, 그 세상 가운데서 시온산을 선택하시고 그곳에 임재하심으로 자신의 왕적인 통치가 이루어지는 온 세상의 중심으로 삼으셨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이 시온산을 자신의 왕궁으로 삼으셨습니다. 이 시온산에서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더불어 하나님께서는 이 시온산을 자신이 통치하는 왕궁으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예배하는 곳으로 삼으셨습니다. 3절에서 “그의 거룩한 곳”이라고 하는데, 성경에서 거룩한 곳, 거룩한 장소라고 한다면 보통 어디를 가리키고 있습니까? 바로 성소를 말합니다. 이 시온산에 하나님께서는 성소를 두심으로 자신을 예배하도록 하셨습니다.
이 시온에서 자신의 통치를 실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다윗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함께 노래합니다. 그 내용이 7-10절입니다. 우리가 언틋 보면 이 말씀이 갑자기 튀어나온 말씀 같습니다. 왜냐하면 문들아 머리를 들으라는 것이 무슨 뜻이며 1-6절과 7-10절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궁금증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7-10절에서 지금 그리고 있는 그림은 전쟁에서 승리하시고 개선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여기서 다윗이 말하는 문은 개선문을 뜻합니다. 원수들을 무찌르시고 당당하게 개선하시면서 백성들로부터 환호와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을 다윗은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지금 머리 속으로는 다윗이 그리고 있는 이 개선식 그림을 한번 상상하면서 그려보면 좋겠습니다.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화가들이 그린 그림을 통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개선식을 말입니다. 왕의 궁전으로 가는 길에 개선문들이 놓여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가운데로 놓고 양 옆에 백성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왕께서 먼저 보낸 전령을 통해 백성들은 승리의 소식을 듣고, 이 소문이 퍼져 하나 둘씩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승리하고 돌아오시는 왕과 그의 군대를 발견하자 7절과 9절에서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라며 문을 사람과 같이 의인화를 시키면서 영광의 왕이신 하나님을 환영합니다. 엄청난 환호 소리와 함께 왕이신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왕되심을 찬양합니다. 더불어 이 하나님에 대하여 이 분이 어떤 왕이신지도 함께 8절과 10절에서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라며 전쟁에서 강하고 능하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다윗이 1-2절에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기에 이 모든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노래하면서 왕이신 그 하나님은 자신의 주권대로 전쟁에서 능히 이기시는 분이심을 말합니다. 이 세상이 자신의 것이니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하나님께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죠.
장더 나아가 추가로 이 시편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또 한 가지는 이 시편을 다윗이 언제 지었거나 언제 이 시편을 불렀는지를 아는 것이 24편을 이해하는데에 있어서 큰 깨달음을 줄 겁니다. 다윗이 이 시편을 과연 언제 노래했을까요? 이 시편에서는 표면적으로 다윗이 언제 이 시편을 사용하였는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다윗이 이 시편을 지었을 때, 또는 이 시편을 불렀을 때는 법궤 또는 언약궤를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에 옮기면서 불렀을 겁니다. 사무엘하 5장에서 다윗은 예루살렘을 정복하였습니다. 그리고나서 사무엘하 6장에서 다윗은 오벧에돔의 집에 있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하여 옵니다. 이때 언약궤가 예루살렘에 입성하면서 다윗은 이 24편을 불렀습니다. 왜 이때 24편을 다윗이 불렀냐고 할 수 있냐면 언약궤를 옮긴 이후에 다윗이 아삽과 레위인들에게 24편과 비슷한 주제를 담은 시인 96편을 가르치는 것을 기록한 역대상 16장이 이런 상황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96편은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면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지으신 왕이신 하나님을 노래하는 시편입니다. 그리고 이 시편을 역대상 16장에서 다윗은 아삽과 레위인들에게 가르칩니다. 역대상 16장 1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두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리니라”
시편 96편을 부르는 상황은 언약궤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의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24편 또한 표면적으로 나타나진 않지만 언약궤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다윗이 불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언약궤의 입성과 전쟁에서 승리하고 귀환하여 백성들의 환영을 받는 개선식이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더 나아가 이스라엘의 가장 철천지 원수인 블레셋을 정복하고 나서 이 언약궤를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옮기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매번 자신이 모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뛰어난 전투 실력이나 뛰어난 전략전술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골리앗과 싸울 때 무엇이라고 고백했습니까?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라며 이 전쟁을 주관하시는 분은 다윗 자신이 아니라 이 모든 전쟁에서 능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블레셋을 정복한 후에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다윗이 옮기면서 보여준 모습은 전쟁에서 원수들을 무찌르고 돌아오신 왕을 찬양하며 잔치를 벌이는 모습이었습니다. 사무엘하 6:14-15입니다.
“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이스라엘의 직분자로서 베 에봇을 입고 원수들을 무찌르고 오신 왕이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양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직분자, 특별히 왕이기 때문에 개선식에 환영을 받아야 하는 것은 원래 다윗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보여주는 모습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중 한 사람으로서 언약궤가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개선식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언약궤 운반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며, 곧 이 왕이 이끄는 백성들의 승리입니다.
또한 언약궤는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하기 때문에 언약궤가 예루살렘에 옮겨진 것은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온 세상의 왕으로 좌정하신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하나님 나라의 수도이자 거룩한 산이자 자신의 왕궁이자 온 세상의 중심이 되도록 선포하신 겁니다. 이러한 신학적인 고백이 24편을 통해 표현되고 있기에 이 시편은 솔로몬을 통해 예루살렘에 성전이 완공된 이후에도 성전의 신학적 의미를 노래하는 시편으로 자주 불렸을 겁니다. 성전에 모인 백성들은 이 시편을 부름으로써 자신들이 온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왕으로서 성전에 좌정하신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들임을 인식하게 되었을 겁니다.
원수로부터 구원받은 이스라엘
그렇다면 이제 이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왔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승리하시고 개선하셔서 시온산의 성소 보좌에 앉으셔서 좌정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왕이신 하나님을 백성들이 높이고 찬양하며 예배드리며 왕께서는 백성들을 다스리실 일만 남았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의 백성이며, 누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으며, 누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일까요? 이 질문을 다윗은 3절에서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라며 질문을 던집니다. 다윗은 왕이신 하나님께서 계시는 시온산인 여호와의 산에 하나님을 알현하기 위하여 누가 오를 수가 있으며, 그분을 예배하기 위해 시온산 성소에 누가 설 수 있는지 질문합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 사이에는 너무나도 큰 간격이 있어서 아무나 하나님을 알현하기 위해 올라갈 수가 없으며,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버틸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에 누가 오를 수 있고, 누가 설 수 있는지를 질문합니다. 다윗은 그 누구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예배를 막으려고 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윗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너무나도 적극적으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던진 이 질문에 우리 스스로 먼저 한번 답을 해보는 것도 우리에게 큰 유익이 될 것 같습니다. 한번 생각해봅시다. 여호와의 산에 누가 오를 수가 있으며 그의 성소에 누가 설 수 있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다윗이 말하는 정답은 4절입니다.
“곧 손이 깨끗하여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다윗은 하나님을 알현하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사람은 먼저 손이 깨끗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손은 삶의 모든 행동을 뜻합니다. 그래서 손이 깨끗하다는 것은 책망 들을 것이 없이 흠 없는 삶이라는 뜻입니다. 두 번째로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손이 외적인 행동을 말한다면, 마음은 드러나지 않는 내면을 뜻합니다. 청결하다는 것은 악의가 없는 순결함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외적인 행동과 보이지 않는 내면 모두 흠 없는 깨끗한 삶을 산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않고 거짓 맹세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헛된 것을 추구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다윗은 책망 들을 것이 없는 깨끗한 삶을 살고 헛된 것을 추구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자가 하나님을 알현하고 예배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6절에서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라며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5절에서 다윗은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면서 이미 다윗을 따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은 백성들임을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이러한 답변은 울법을 완벽하게 지키는 자가 누구인가를 질문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성소로 나아가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그를 찾는 자들로서 그의 율법에 신실하게 반응하며 사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참된 예배자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러한 사실 가운데 3절에서 던진 질문에 답변한 4-6절은 항상 왕이신 여호와 앞에 서서 예배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특권과 의무를 동시에 일깨워줍니다.
다시 말해 전쟁에서 승리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그분을 왕으로 모시는 백성들은 자신들이 온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왕으로서 성소에 좌정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이라는 정체성을 확신하는 동시에 그분의 백성답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아가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교리인 칭의와 성화가 바로 이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삶을 사는 백성들을 다윗은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라며 율법적인 의를 이루기 위해 애쓰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정말 복된 사람이라고 노래합니다. 이것은 다시 시편 1편으로 돌아가게 만들기도 합니다.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노래하면서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 그리고 그 율법대로 사는 자가 복된 사람이라고 노래합니다.
이스라엘은 오늘 시편에서 노래하는 것처럼 하나님에 의해 원수들로부터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다윗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정복하게 하셨고, 철천지 원수인 블레셋을 정복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자신들의 원수로부터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자신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된 길이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원수로부터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오늘 말씀이 가르치는 것은 이처럼 전능하신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원수들로부터 보호하시는 하나님이며, 백성들은 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4편 앞의 시편인 23편은 쉴만한 물가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는 목자이신 하나님을 노래한다면, 24편은 왕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원수로부터 승리하게 하시고, 원수로부터 구원하시고 승리하셔서 개선하시는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이 하나님의 승리는 백성들에게도 승리를 주며 원수들이 절대로 해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전능성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우리의 원수가 우리를 결코 해치지 못함을 알려줍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나서 그대로 내버려두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지금도 하늘에서 왕으로서 좌정하셔서 이 세상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고백한 네덜란드 신앙고백서의 섭리 부분에서 “우리는 이 동일하신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만물을 버려두거나 운명이나 우연에 맡겨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분의 거룩하신 뜻에 따라 다스리고 통치하심으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지시 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음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이 시편 24편에서 노래한 승리하신 하나님이 지금도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는 왕이십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모든 원수들로부터 최종적으로 승리하셨다는 확인 도장을 찍으셨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그 날을 말하는 요한계시록은 이 승리하신 예수님을 백성들이 찬양하고 높이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원수들로부터 승리한 자들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왕으로 두고 있는 백성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따라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 누구도 우리를 해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죄의 권세가 우리를 결코 건드릴 수 없습니다. 오늘 고백한 네덜란드 신앙고백서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교리는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위로를 줍니다.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며, 오직 은혜로우신 하늘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모든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부성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지켜 보십니다. 또한 모든 피조물을 그분의 능력 아래에 두셔서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도(다 세신 바 되었으므로), 참새 한 마디로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 아버지를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마귀와 우리의 모든 원수들을 제재하심으로 아버지의 뜻과 허락 없이는 그들이 결코 우리를 해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신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원수들로부터 승리하고 개선하신 것을 노래하는 시편 24편의 하나님이 바로 우리가 지금도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방법으로 지금도 우리를 원수들로부터 보호하시고 지키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결코 두려울 것이 없을 겁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는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을 예배하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세상에는 많은 것들이 자신의 능력을 뽐내려고 합니다. 자신에게 능력이 있고, 자신이 최고 존엄과 전능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죄의 권세를 이긴 존재는 없습니다. 오직 우리 하나님만이 원수들로부터 승리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우리를 구원하시고 원수를 무찌르심으로 선한 일을 행하시는 왕께서 우리를 위하시니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겁니다. 또한 그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 위해 말씀대로 살기 위해 애쓰게 될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능성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이며 유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리고 그 전능자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살지 않으시겠습니까? 참된 복의 길을 걸어가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자리로 우리를 지금도 여전히 초대하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 참된 복된 길을 걸어가는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이 되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이 시간 함께 말씀을 두고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원수들을 무찌르심으로 선한 일을 행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알려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이 바로 우리가 지금도 믿는 하나님입니다. 우리를 원수들로부터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원수들을 최종적으로 이기셨습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이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예배하며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하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같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또한 그 하나님의 백성답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우리의 삶을 통해 나타내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우리의 삶으로 죄에 굴복하지 않고 승리하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복된 삶을 사는 백성이 되게 해달라고 같이 기도합시다. 이 시간 이 두 가지 기도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에게 말씀을 주시고,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깨닫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말씀을 전한 저와 듣는 모든 회중들이 말씀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저희의 어떠함과 저희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임을 고백합니다. 이 시간 이 말씀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하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라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며 섬기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삶을 살아내어 세상에 하나님만이 전능자임을 나타내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복된 길을 기뻐하며 걸어가게 하시고, 때론 지치고 낙망하여도 결코 굴복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이 길을 걸어가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도 말씀을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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