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24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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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Transcript

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543장(어려운일 당할 때) 입니다.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오늘도 이른 새벽 저희를 깨우시고, 주님 전에 나오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루의 첫 시간을 주님께 드리오니 이 시간이 헛되지 않게 하시고, 이시간을 통해 주의 뜻을 알고 순종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지만 이 새벽을 찾는 이 마음을 주께서 기억하시고, 그 마음에 하늘의 위로와 새 힘을 부어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오직 주님의 얼굴을 구하며, 주의 평안과 지혜로 이 하루를 시작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이 시간을 통하여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새로워지게 하시며, 주님의 음성에 민감한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새벽 저희의 삶에 은혜를 베풀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예물을 올려드립니다. 우리의 손에 들려진 것은 작고 부족하지만 기꺼이 받으시고, 주의 나라와 뜻을 이루는 데에 사용하여 주옵소서.
또한, 감사의 마음이 매일의 삶이 되게 하시고, 이 예물을 드린 손길마다 주님의 은혜가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 Corinthians 1:4–9 NKRV
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6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만약에 어떤 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의 성도들이 서로 자기 리더가 최고라고 다투고, 예배 안에서는 질서가 없고, 어떤 성도는 교만하고, 어떤 이는 음란한 죄에 빠져 있으며, 성찬 시간에는 가난한 자들이 소외당한다면 그 교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이 드시겠습니까? 아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지는 못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교회가 신약 성경에 실제로 등장합니다. 바로 고린도 교회입니다.
고린도는 당시 로마 제국 내에서도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로 손꼽히는 도시였습니다. 다양한 민족과 종교, 철학과 사상이 뒤섞인 곳이 고린도 였습니다.
그래서 고린도는 물질적 풍요와 향락의 도시로도 유명했습니다.
특히 아프로디테 여신을 섬기는 신전은 도시의 상징 중 하나였고, 그 신전에는 약 천 명 이상의 신정 창녀가 있었습니다. 도시 자체가 쾌락과 성적 타락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 사람처럼 산다'는 말은 당시에도 '방탕하게 산다'는 의미로 통용될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도덕적으로 매우 타락한 환경이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대부분 이방인이었고, 이전 삶의 방식이 여전히 몸에 배어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과거의 습관과 문화가 그들의 신앙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그들은 서로를 비교하고, 누가 더 영향력 있는 사역자인지를 두고 성도들끼리 나뉘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성적으로 매우 부도덕한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에는 아버지의 아내와 동침한 사람이 교회 안에 있었고, 그것이 공동체 안에서 묵인되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은사의 문제도 심각했습니다. 은사를 자신의 자랑거리로 여기고, 방언과 예언, 지식과 지혜를 드러내 서로 경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은사는 공동체를 세우기보다 자기 자랑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고, 오히려 예배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성찬의 문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성찬은 식사와 함께 이루어졌는데, 부자들은 먼저 와서 좋은 음식을 먹고 마시며 취하고, 가난한 자들은 배고픈 채 성찬을 맞이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고전 11:20-22)
이 모든 상황을 바울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이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바울은 오늘 본문 4절에서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어떻게 이런 상황의 교회를 보며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감사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감사한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그들이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지금 당장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본 것입니다.
은혜란,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전적인 선물입니다. 그것은 공로가 아닌 선물이고,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부족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셨고, 예수님 안에 두셨으며, 다양한 은사를 통해 사용하고 계셨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연약함보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더 크고, 그들의 실수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더 크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끝까지 붙드실 것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중에 수제자인 베드로는 누구보다 자신감 있는 제자였습니다. 그는 감정이 앞서는 사람이었고, 때로는 성급하기도 했지만 베드로는 언제나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6:33에 “다른 사람들은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주를 결코 버리지 않겠습니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 아는 것 처럼 베드로의 고백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 베드로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조차 부인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닭이 울고, 베드로는 밖에 나가 통곡합니다. 베드로는 실패했습니다. 제자의 자격도, 인간적인 용기도 다 사라진 그 밤에 베드로는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그런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십니다. 바닷가에서 예수님은 불을 피우고, 생선을 구우시며, 따뜻한 식사로 베드로를 맞이하시며 이렇게 물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 21:15)
베드로의 세 번 부인했던 기억을 덮기 위해, 세 번의 사랑 고백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내 양을 먹이라.” 말씀하시며 베드로의 실패 위에 다시 사명을 얹어주십니다. 베드로는 버림받지 않았고, 오히려 더 깊은 신뢰 속에서 새롭게 세워졌습니다.
또한 출애굽기 3장에서 하나님은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그때 모세는 이미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도 그럴것지 지금 자신의 상황은 애굽에서 사람을 죽이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 양치기로 40년을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모세를 하나님은 부르십니다. 하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자신을 부정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다섯 번이나 거절의 의사를 표현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출애굽기 3:12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출 3:12)
하나님은 능력이 있는 자를 쓰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부르신 자를 끝까지 책임지시는 분입니다.
오늘 본문 7-8절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1 Corinthians 1:7–8 NKRV
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들이 성숙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디모데후서 2:13 이렇게 고백합니다.
2 Timothy 2:13 NKRV
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우리의 연약함을 뛰어넘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보며 낙심할 필요도 없고, 나의 연약함을 보며 실망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붙잡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지금 내 모습이 아무리 초라하고 부족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셨고, 끝까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오늘도 만들어 가십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자격없는 우리의 모습을 보지 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서 일하시며 역사하실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오늘 하루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우리의 약함과 부족함 속에서도 우리를 붙잡으시고 포기하지 않으시는 주님의 신실하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주님의 약속을 기억하게 하시고, 넘어져 있을 때마다 다시 일어설 힘과 용기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오늘하루도 주님의 신실한 사랑과 은혜가 우리 삶 가운데 가득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다함께 말씀을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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