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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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고린도후서 1:8-11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찬송가 361장 ‘기도하는 이 시간’
2025. 3. 25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환난을 당해서 살 소망까지 끊어졌던 충격적인 근황을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바울이 우리가 환난을 당했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셨다고 했었죠. 이제는 그 환난이 얼마나 극심한 환난이었는가를 보충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8절에 보니까, 그 환난이 예사 환난이 아니에요. 자, 8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바울과 그의 일행이 아시아에서 환난을 당했어요. 구체적으로 보자면, 아시아의 수도인 에베소에서 당한 환난이었을 겁니다. 아시아 에베소에서 환난을 당했어요. 아마도 우상 제조업자들의 소동이 그 환난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 환난이 얼마나 컸는지,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이라고 말을 했어요. 힘에 겹도록 심한. 여기서 힘에 겹다는 말의 헬라어 뜻을 보면, “능력을 벗어나다” 라는 뜻입니다. 또 “심하다”는 말은 “초과하다” 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우리 능력을 훨씬 초과해서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고난”이라는 말이 되는 겁니다. 에베소에서 일어난 환난이 그만큼 엄청난 환난이었어요. 뭔가 극복할 만한 실마리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힘을 내보겠는데, 조금도 희망이 안 보여요. 그래서 바울이 살 소망까지 끊어졌어요. 더 살고 싶지 않은 거예요. 
    에베소에 큰 전도의 문이 열려서 열정을 가지고 사역을 하고 있었는데, 심지어 고린도교회에 문제가 있는데도 자신이 직접 가지 않고 디모데를 대신 보낼 정도였는데, 디모데는 실패를 해서 돌아왔고, 또 에베소에서조차 갑자기 도망을 치는 신세가 됐어요. 이때 바울이 느꼈을 절망감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더이상 살고 싶지가 않을 정도로, 심한 좌절과 무기력감에 빠져버렸어요. 
    그래서 9절에 보면, 그때 자신의 마음상태를 자기가 꼭 사형 선고를 받은 것만 같았다고 고백을 합니다. 자, 9절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아멘.
    여기서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 받은 줄 알았다는 말이 꼭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는데 다행히 안 받았다’는 말처럼 보이는데요. 이것은 번역상의 오륩니다. 번역이 잘못 됐어요.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는 게 아니라, 사형 선고를 받은 겁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형 선고를 이미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어요. 제가 헬라어 원 뜻에 맞게 다시 번역을 해보겠습니다. “우리 자신 안에 사형 판결을 가졌노라” 이미 사형 판결이 내려져서 사형 판결을 가졌다는 거예요.
    완전히 의미가 다르죠. 이 뉘앙스의 차이가 바울의 그 당시 마음상태에 대해서 오해를 하게 만들거든요. ‘받은 줄 알았다’, 라고 하면, ‘어 받은 줄 알았는데 안 받았나 보구나, 다행이다’ 이렇게 한시름 덜게 돼요. 긴장감이 확 떨어지죠. ‘바울이 최악의 상황은 면했나 보구나’ 이렇게 안심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그랬어요. 이미 죽음이 확정된 겁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 절망속에서 뭘 합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잖아요. 최악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과, 최악은 면한 상태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에요. 바울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한 겁니다.
    ‘내가 비록 사형 선고를 받아서 사형 집행만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은, 그런 깊은 절망속에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하나님을 의지한다. 나를 이토록 깊은 절망 속으로 던져지게 한 것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다.’ 엄청난 고백이죠. 누구라도 하나님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사도가 되고, 하나님의 뜻으로 지금까지 사역을 해왔어요. 기쁜 일도 있었고 슬픈 일도 있었고, 기적적인 일도 있었고 절망적인 일도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믿기 때문에, 이번 환난 역시도 하나님의 뜻이라 믿어요.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이 환난에서 다시 한번 나를 건져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그래서 10절에 이렇게 고백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아멘.
    지금까지 나를 건져주신 하나님이 이번 사형 판결에서도 우리를 건지셨고, 또 앞으로도 수많은 또다른 사형 판결에서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최종적으로 영원한 죽음에서 건지실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 되는 거예요.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건지실 수 있기 때문에.
    그런데, 밑에 11절에 보면, 바울이 지금까지 자기가 한 말과 모순되는 말을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라는 말을 하거든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한다고 하더니, 사람을 의지하는 것 같은 말을 해요. 자, 11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아멘.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기도로 도우라는 거예요. 분명히 하나님만 의지한다고 하면서 왜 교인들의 기도가 필요하다고 할까? 
    여러분, 우리가 어떤 급한 일이 생기면 기도를 요청하잖아요. 갑자기 사고를 당했다든지, 병에 걸렸다든지, 급한 일이 있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기도를 요청해요. 그러면 여러분, 이것이 사람을 의지하는 겁니까?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죠. 사람을 의지할 거면 기도해달라고 할 게 아니라, 돈을 좀 빌려달라고 한다든지, 뭔가 실질적인 도움을 부탁하겠죠.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기도를 부탁하는 거예요. 나 한 사람의 기도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기도가 모이면 그 파급력이 더욱 커지기 때문에. 바울이 수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겁니다.
    분명히 기도에는 힘이 있어요. 믿는 자의 기도는 하나님을 일하시게 합니다. 예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아멘.
    간청하고 또 간청하면 귀찮아서라도 주신다는 거예요. 친구라서 주는 게 아니라, 귀찮아서. 우리가 하나님을 귀찮게 해야 돼요. 나 혼자서 안 되면, 둘이서, 둘이 안 되면 셋이서, 많은 사람이 간청할 수록 더 큰 영향력이 생긴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기도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서는 할 수가 없어요.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의 말은 모순이 아니에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과 기도를 부탁하는 말은 모순되는 말이 아니라, 같은 맥락의 말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니까 기도를 부탁하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부탁하고, 또 기도 부탁을 받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할 때, 그 기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많은 감사가 생겨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어쩌면 사형 선고와 같은 환난이 오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힘이 하나님을 움직이시게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건져내시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에게 환난이 닥칠 때에, 저와 여러분에게 그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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