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요한 사랑, 하늘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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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292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Luke 15:1–10 NKRV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8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9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들어가는 말
잃어버린 한 어린양 비유와 한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에 대한 비유로
드라크마(Drachmas, ten silver coins) 헬라의 은화(銀貨)로, 무게는 약 6g이다(눅 15:8). 바사(페르시아)의 은화 ‘다릭’(스 2:69느 7:70–72)이나 로마의 은화 ‘데나리온’과 같은 가치로 추정된다. 신약 시대 1 드라크마는 1/4세겔에 해당하며, 이는 당시 노동자 하루 품삯의 가치로 통용되었다(마 20:2,9)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이 어느 곳에서 살든지 성전세(반 세겔)를 바침으로써 성전과의 연대성을 공고히 했고, 또 자신이 선민(選民)임을 확인했었다(출 30:13–16). 신약 시대에도 이 전통은 그대로 이어져 노예가 아닌 자유인으로서 성인 유대인들은 두 드라크마(노동자 이틀 품삯에 해당)를 성전세로 바쳤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에게 환영받고 , 바리새인과 서기관에게 정죄함과 비난을 받았다. 종이 주인보다 , 제자가 스승보다 클수가 없는데, 우리는 어떤 위치에 서 있는가를 돌아보게 된다.
하나님의 의지, 기독교 (하나님의 목적과 의지의 종교이다) 자녀가 되는 것이지 신을 항복시켜 받아내는 종교가 아니다.
중심되는 말
오늘 말씀속에 우리가 살펴볼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어떠한 사랑인가? 책에서의 제목은 집요한 사랑이라고 하는게 이것은 어감이 별로 좋지 않다.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단어인데 과연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신다고 말하는가?
(1) 가장 큰 사랑은 독생하신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사랑이다. 요한복음 3:16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2)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오셔서 죽으신 사랑이다. 로마서 5:8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너무 작게 여긴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우리는 하나님을 반역하고 창조자의 피조세계 질서를 파괴했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셨다.
(3)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다. 제2위 성자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의 두본성을 지니신 제2위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지금도 여전히 온 우주의 통치권을 지니고 계신 완전한 인간 이시고 완전한 하나님이시다.
빌립보서 2:5–8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4) 우리는 하나님이 자신을 주시는 것으로 사랑하는 존재인 것이다. 로마서 8:31–32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전제로 하여 오늘 말씀을 다시 한번 살펴보면 좋겠다.
죄인들(창녀와 세리로 대표되는)과 어울린다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리자 예수님이 오늘 말씀을 하신다. 누가복음 15: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여기서 기억해야 하는것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나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는 시작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할때이다. 하나님 앞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로마서 3:12–19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 앞에서는 죄의 정도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조금 더 죄인이 있고 조금 덜 할 죄인이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십자가를 지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할 육체가 없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타인을 정죄하면서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속성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상대주의적 세상에서 보면 의롭다고 볼 수 있으나, 하나님은 우리가 만든 신이 아니라 절대적이고 초월적이며 전능하신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누가복음 15:2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상종하고 대화를 하는 정도가 아니라 음식을 같이 먹는 것은 식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별명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죄인들의 친구입니다. 우리의 친구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친구는 모든것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15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눅3-10은 대를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세상의 셈법인 효율에 반합니다. 천하보다 귀한 한 사람이란 말을 들어 보셨는지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귀한 자 입니다. 한 영혼도 흥정과 거래의 대상이 도리 수 없다는 것을 예수님이 우리에게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수보다는 소수가 중요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한 영혼도 뺴앗기지 않겠다는 주님의 선언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것을 이룰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고, 이 땅에서는 우리가 마땅이 빌바를 모르지만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보혜사 성령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당히 선언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8:37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드라크마 비유도 반복적인 내용을 통해서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그리고 하나님의 열심을 확중하고 있습니다.
마무리 하는 말
말씀을 정리합니다. 3가지를 기억했으면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우리를 원수에게 내어주지 않는 완벽한 약속이다. 로마서 8:38–39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둘째, 우리는 하나님이 자신의 존재를 주실 정도로 소중한 피조물이다. 우리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과 우리가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분별을 해야 한다. 우리의 능력과 본질은 가치를 둘 만한, 사랑받을 만한 것이 전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사랑하시고 가치있다고 생각하셔서 인간이 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존재로 가치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가치있는 존재로 발견되어 지는 것이다.우리의 원함은 형통이 전부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더 나아가게 한다.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신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우리를 이끌어 가신다. 놀라운 비밀이다.
셋째,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2:20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믿음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달아 아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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