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의 그림자와 새로운 시작 2025 0326 룻4: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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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23장 만 입이 내게 있으면 / 80장 천지에 있는 이름 중
Ruth 4:13–17 NKRV
13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14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15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16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17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절망의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십니다.

서론: 구속의 그림자와 새로운 시작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성경의 한 작은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크신 섭리를 바라보려 합니다. 룻기는 사사시대, 즉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던" 혼란한 시기에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기근과 상실, 절망의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은 한 사람의 신실함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어떻게 이어가시는지를 보게 됩니다.
룻기의 이야기는 베들레헴의 한 가정, 엘리멜렉과 나오미 부부에서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에 극심한 기근이 들자, 그들은 두 아들 말론과 기룐과 함께 모압 땅으로 이주합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엘리멜렉이 세상을 떠나고, 두 아들은 모압 여인들과 결혼합니다. 한 여인의 이름이 바로 룻이었습니다. 그리고 약 10년 후, 두 아들마저 자녀 없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제 나오미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남편도, 아들도, 그리고 그녀의 고향 이스라엘에서의 안정된 삶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기쁨'을 의미하는 '나오미'가 아닌, '쓴 자'를 의미하는 '마라'로 불리기를 원했습니다.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를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룻 1:21)라고 말할 만큼, 그녀의 삶은 쓰라림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나오미는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두 며느리에게는 친정으로 돌아가 새 삶을 시작하라고 권합니다. 한 며느리는 그 권유를 받아들였지만, 룻은 유명한 고백과 함께 나오미를 따르기로 결심합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 1:16).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와 룻에게는 생계 문제가 있었습니다. 룻은 이삭을 줍기 위해 밭으로 나갔고, 하나님의 섭리로 그녀는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인 보아스의 밭에 이르게 됩니다. 보아스는 룻의 나오미에 대한 헌신과 신실함에 감동하여 그녀에게 특별한 친절을 베풉니다.
나오미는 이 상황을 통해 희망을 발견하고, 룻에게 보아스를 통해 안정된 미래를 찾도록 조언합니다. 그녀는 보아스가 그들의 "기업 무를 자", 즉 구속자(고엘)가 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법에 따르면, 가까운 친족은 가문의 땅을 되찾아주고, 죽은 친족의 이름을 이어가기 위해 그의 미망인과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룻은 나오미의 지시에 따라 보아스에게 청혼하는 상징적 행위를 합니다. 보아스는 그녀의 청혼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그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음을 알립니다. 그러나 그 친족이 구속자의 역할을 포기하자, 보아스는 공식적으로 룻과 결혼하여 나오미의 가문을 잇는 책임을 맡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 살펴볼 본문의 배경입니다. 보아스와 룻의 결혼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 나오미에게 있어서는 상실에서 회복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나아가는 구속의 여정이었습니다. 이 결혼을 통해 태어난 아들 오벳은 나오미에게 "생명의 회복자"요 "노년의 봉양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크게는, 이 작은 이야기가 다윗 왕조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속 계획의 한 부분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은 이 모든 여정의 결말이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장면입니다. 보아스가 룻을 "구속"하는 이 사건은 단순한 결혼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히브리어로 "구속자"는 "גֹּאֵל(고엘)"이라고 하는데, 이는 법적인 책임을 넘어 가족을 회복시키고 새 생명을 불어넣는 사랑의 행위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때로 나오미처럼 인생의 쓴맛을 경험합니다. 전에 가졌던 것들을 잃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속받지 않은 우리에게도, 아침 커피 한 잔처럼 따뜻한 섬김의 기쁨이 필요하겠지요! 오늘 룻기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바로 그 일상에서 경험하는 구속의 따스함입니다.

본론: 보아스의 구속과 그리스도를 비추는 거울

1. 원어와 번역의 만남

본문에 등장하는 "구속자"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גֹּאֵל(고엘)"의 번역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법적인 의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의 권리와 명예를 회복시키는 사랑의 실천자를 의미합니다. 보아스는 단지 의무감이 아닌, 룻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존중으로 이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기업 무를 자"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이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주는 사람, 자유를 되돌려주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의 "고엘"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소외된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 잃어버린 가치를 회복시키는 것, 그리고 사랑으로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2. 문맥상 사건 및 인물 연구

룻기 4장의 이야기는 보아스가 공식적으로 룻을 구속하는 사건으로 시작됩니다. 그는 공동체 앞에서 합법적인 절차를 따르며, 엘리멜렉의 기업과 함께 룻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결혼이 아닌, 한 가문의 회복과 계승을 의미하는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구속' 제도는 가족과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망이었습니다. 재산을 잃거나 자유를 빼앗긴 가족을 다시 회복시키는 이 제도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사랑의 법이었습니다. 보아스는 이 법적 의무를 넘어, 진정한 사랑과 책임감으로 룻을 맞이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보아스가 룻을 "모압 여인 룻"이 아닌, 그저 "룻"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녀의 출신이나 배경보다 그녀의 신실함과 헌신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구속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과거나 배경이 아닌,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는 은혜와 같습니다.

오벳의 히브리어 어원과 신학적 의미

룻기 4장 17절에서 우리는 룻과 보아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이름이 "오벳"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히브리어 "עֹבֵד"(오베드)는 '섬기는 자' 또는 '노동하는 자'라는 의미를 지닌 어근 "עבד"(아바드)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이 어근은 구약성경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대개 하나님을 향한 예배적 섬김이나 다른 사람을 향한 헌신적 봉사의 맥락에서 사용됩니다.
이 이름의 어원을 더 깊이 살펴보면, 단순한 종속이나 노예 상태를 넘어선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섬김의 개념이 담겨 있습니다. 히브리 문화에서 "에베드"(עֶבֶד)라는 단어는 종종 '하나님의 종'이라는 영예로운 호칭으로 사용되었으며, 모세(신명기 34:5)나 여호수아(여호수아 24:29)와 같은 위대한 지도자들도 이 칭호로 불렸습니다. 따라서 오벳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사회적 위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헌신하는 고귀한 소명을 의미합니다.
유대교 학자들은 이 이름이 나오미의 회복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봅니다. 탈무드 해석에 따르면, 오벳은 나오미를 '섬기는 자'로서 그녀의 노년을 위로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합니다. 랍비 솔로몬 이츠하키(라쉬)는 이것이 하나님이 상실과 비통함 가운데 있던 나오미에게 주신 특별한 축복이라고 설명합니다.

섬김의 신학과 예수님의 가르침

오벳의 이름에 담긴 '섬김'의 개념은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섬김의 모델과 깊은 연관성을 갖습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 10:4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권력이나 지위가 아닌 섬김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그의 저서 『제자도』에서 진정한 섬김이란 자기 부정과 타인을 향한 희생적 사랑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벳의 이름은 단순한 개인적 특성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핵심 가치인 자기 희생적 사랑을 체현하는 신학적 상징이 됩니다.
영국의 성서학자 존 스토트는 그의 저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섬김은 궁극적으로 십자가에서 완성되었다고 강조합니다. 이처럼 오벳의 이름에 담긴 '섬김'의 개념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예표하며,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구속자로서의 보아스와 그리스도의 병행성

룻기에서 보아스는 '고엘'(גאל), 즉 '가까운 친족 구속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히브리어 '가알'(גאל)은 '되찾다', '구출하다', '회복시키다'라는 의미를 가지며, 레위기 25장에 나오는 친족 구속의 법적 제도와 연결됩니다. 이 법은 가난으로 인해 땅을 팔거나 자신을 종으로 팔아야 했던 사람을 위해, 가까운 친족이 그를 대신해 값을 치르고 구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보아스가 룻의 구속자가 됨으로써 나오미의 가문과 기업을 구원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궁극적인 '고엘'로서 인류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출하셨습니다. 미국의 신학자 모트 블레이크는 그의 저서 『룻기의 신학』에서 보아스의 구속 행위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완벽하게 예표한다고 설명합니다. 보아스가 룻을 법적, 사회적 소외에서 구출하여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인 것처럼,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켜 하나님의 가족으로 삼으셨습니다.
바울은 이 진리를 에베소서 1:7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구속'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아폴뤼트로시스'(ἀπολύτρωσις)로, 노예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값을 치르고 사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이는 히브리어 '가알'과 개념적으로 매우 유사합니다.
독일의 신약학자 요아힘 예레미아스는 그의 저서 『예수의 중심 메시지』에서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이스라엘의 '고엘' 전통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가까운 친족'이 되기 위해 성육신하셨으며,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대가로 치르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속 계획 속 오벳의 위치

오벳의 탄생은 단순한 가족사의 연속이 아니라, 하나님의 더 큰 구속 계획의 중요한 연결고리였습니다. 룻기 4장의 족보는 갑자기 다윗에 대한 언급으로 끝나는데, 이는 독자들에게 이 작은 가족 이야기가 이스라엘의 왕권과 궁극적으로 메시아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 계획의 일부임을 상기시킵니다.
히브리 대학의 성서학자 모셰 그린버그는 룻기가 단순한 목가적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가 평범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는 신학적 내러티브라고 해석합니다. 오벳은 이새의 아버지이자 다윗의 할아버지로서, 이스라엘의 황금기를 이끌 왕조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마태복음 1장의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서 보듯이, 오벳은 궁극적으로 메시아의 혈통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한 작은 아이의 탄생을 통해 어떻게 전진해 나가는지를 보여주는 놀라운 증거입니다.

이방인 포용과 보편적 구원의 메시지

룻기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 중 하나는 모압 여인 룻이 이스라엘의 언약 공동체에 완전히 받아들여지고, 더 나아가 다윗 왕조와 메시아의 계보에 포함되었다는 점입니다. 모압인들은 본래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에 있었으며(민수기 22-25장), 신명기 23:3에서는 "모압인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은 십 대까지도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까지 말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룻은 그녀의 신앙과 나오미를 향한 헌신으로 인해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윗과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특권을 얻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민족적, 인종적 경계를 초월하는 포용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강력하게 보여줍니다.
영국의 구약학자 데이비드 애트킨슨은 그의 주석서 『룻기의 메시지』에서 룻의 이야기가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민족을 향하고 있음을 예표하는 중요한 징표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이것이 이사야 56:6-8에서 예언된 "이방인들도 여호와를 섬기며 그의 이름을 사랑하는" 시대를 미리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신약에서 바울은 에베소서 2:13-14에서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심으로"라고 선언합니다. 룻과 오벳의 이야기는 이 진리의 구약적 예표로, 하나님의 구원이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포함하는 보편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회복과 새로운 시작의 신학

오벳의 탄생은 상실과 비통함으로 가득 찼던 나오미의 삶에 희망과 회복을 가져왔습니다. 룻기는 "내 이름을 나오미라 하지 말고 마라라 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1:20)고 말하던 나오미가, 결국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4:14)라는 축복의 말을 듣게 되는 극적인 전환을 그리고 있습니다.
미국의 신학자 월터 브루그만은 그의 저서 『희망의 신학』에서 이러한 전환이 하나님의 "회복적 정의"의 본질을 보여준다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단지 잃어버린 것을 되돌려주시는 것을 넘어, 나오미와 룻에게 새로운 미래와 희망을 부여하셨습니다.
이는 신약에서 예수님이 가져오신 회복의 사역과 연결됩니다. 예수님은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누가복음 4:18-19)고 선언하셨습니다.
독일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그의 저서 『희망의 신학』에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궁극적으로 모든 창조물의 완전한 회복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합니다. 오벳의 탄생과 이어지는 다윗 왕조의 설립은 이러한 우주적 회복의 작은 예표였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암시합니다.

결론: 섬김과 구속의 통합적 메시지

오벳이라는 이름에 담긴 '섬기는 자'라는 의미와 그의 출생을 둘러싼 구속의 이야기는 깊은 신학적 통찰을 제공합니다. 이 두 주제는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본질을 함께 드러냅니다.
첫째, 진정한 구속은 단순한 법적 지위의 회복이 아니라, 섬김의 관계로의 초대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속하심으로써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새로운 삶을 살도록 부르셨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13에서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고 가르칩니다.
둘째,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우리의 작은 이야기들을 하나님의 더 큰 이야기 안으로 통합합니다. 오벳의 탄생은 한 가족의 회복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동시에 다윗 왕조와 궁극적으로 메시아를 통한 세계 구원의 이야기로 확장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개인의 구원 이야기는 하나님이 모든 창조물을 회복시키시는 우주적 계획의 일부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구속은 민족적, 문화적, 사회적 경계를 넘어 모든 사람을 포용합니다. 룻과 오벳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은혜가 특정 민족이나 집단에 제한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을 보이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요한계시록 7:9의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는 비전을 예표합니다.
결론적으로, 오벳의 이름과 그의 출생 이야기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섬김의 삶으로 이어지며, 개인의 회복을 넘어 전 인류와 창조 세계의 궁극적 회복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받은 자들로서, 오벳의 이름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결론: 오늘을 구속하는 은혜의 초대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본 룻기의 이야기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고, 우리의 상실과 실패를 새로운 시작으로 변화시키시는지를 보여줍니다.
보아스가 룻의 구속자가 되어 그녀에게 새 삶을 주었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궁극적인 구속자가 되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오벳이라는 이름이 '섬기는 자'를 의미하듯, 우리도 구속받은 자로서 서로를 섬기며 살아가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여러분, 우리 각자도 구속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아직 구속받지 않은 이들에게도 하나님의 섬김과 회복의 초대가 있습니다. 혹시 지금 인생의 쓴맛을 경험하고 계신가요? 나오미처럼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 드시나요? 하나님은 우리의 상황을 아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룻처럼 신실하게 하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때로는 낯선 땅에서,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아스처럼 하나님의 마음으로 타인을 구속하고 회복시키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나오미'와 같이 쓰라린 상실을 경험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고엘'이 될 수 있습니다.
오벳의 탄생이 나오미에게 "생명의 회복자"요 "노년의 봉양자"가 되었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새로운 정체성은 다른 이들에게 생명과 회복을 가져다줍니다. 우리가 경험한 구속의 은혜는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도 흘러가야 합니다.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아마 내일 아침의 첫 커피 한 잔처럼 따뜻하고, 기적 같은 출발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우리는 그 역사의 일부가 되도록 초대받았습니다. 룻과 보아스를 통해 다윗의 계보가 이어지고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처럼, 우리의 작은 신실함과 순종을 통해 하나님은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 모두가 구속받은 자로서의 기쁨을 누리며, 또한 다른 이들에게 '구속자'로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더 이상 '마라'(쓴 자)가 아닌, 회복과 기쁨의 사람들입니다. 이 진리가 여러분의 삶 속에서 생생하게 경험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에베소서 1: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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