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일

다해 사순시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5 views

사랑받는 죄인임을 깨닫자

Notes
Transcript

사랑받는 죄인의 자세

1. 죄의 비참함, 아버지 없이 사는 것

오소서 성령님. 새로 나게 하소서. 성경을 보면 죄를 지은 사람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사람으로 아담과 하와가 있겠지요. 또 동생을 죽인 카인도 있겠지요. 그밖에 수많은 죄인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죄를 짓고나서 어떤 반응을 보입니다. 이들도 사람인지라 이들의 반응을 잘 살펴보면 지금 우리가 하는 반응과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나오는 이 두 명의 아들들의 이야기도 그러합니다. 이 두 아들을 보면서 죄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를 드릴까 합니다.
작은 아들을 봅시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재산을 타서 먼 고장으로 떠납니다. 아마도 큰 도시였겠지요. 이 아들은 거기서 어떻게 지냈을까요? 한 번 상상해 봅시다. 매일 밤마다 술도 먹고, 여자도 끼고 놀았을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클럽도 가고 나이트도 가면서 지냈겠지요. 낮에는 어땠을까요? 일단 전날에 질펀하게 놀았으니 늦게 일어났을 것이고. 또 나름대로 잘 살아보겠다고 여러 사업도 구상하고 도전해 보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게 빠져 있는 삶이었지요. 바로 아버지 없이 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작은 아들은 자기가 받아 온 아버지의 재산을 모두 날려먹었습니다. 그래서 그 고장에서 돼지치기로 삽니다. 그러면서 먹을 게 없어서 돼지들의 사료로 배를 채우려고 하지요. 그러나 그마저도 사람들이 주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돼지보다 못한,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산 것입니다. 첫번째로, 죄에 빠진 인간의 상태가 이러합니다. 죄란 하느님 아버지 없이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떠합니까. 나름대로 잘 사는 것 같지요, 뭔가 성공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뭔가 고갈되고 맙니다. 내 영혼의 밑천이 금방 드러납니다. 그래서 정말 비참한 삶으로, 짐승보다 못한 삶으로 떨어집니다.

2. 죄의 결과: 자기 비하

그래서 작은 아들이 말합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무엇입니까. 아들에서 종이 됩니다. 자신의 지위가 떨어집니다.
같은 일이 큰 아들에게서도 일어납니다. 큰 아들이 복음의 막바지에서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큰 아들은 자기 자신을 아들이 아니라 종으로 말합니다. 놀라운 구절입니다. 또 복음의 시작 부분을 보십시오. 거기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었다고 했습니다. 작은 아들에게만 준 것이 아니라 큰 아들에게도 준 것입니다. 그러니 아버지는 모든 것을 아들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큰 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얘야, 넌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여기서 두 번째로 죄의 결과가 바로 이러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의 아들과 딸로서 창조되었습니다. 아들딸로서 이 세상에서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라고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죄는 이것을 방해합니다. 우리가 자유롭고 행복한 자녀로서 살지 못하게 합니다. 종으로, 노예로 살면서 전전긍긍하게 하고 두려워하게 합니다. 또 하느님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수많은 은총과 선물을 내가 깨닫지 못하게 가로막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기쁘게 사는 것을 가로막습니다.

3. 자녀의 지위로 돌아오라

세번째로 이런 자녀들에게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하시는지 살펴봅시다. 복음 속에 아버지는 이러합니다. 작은 아들이 혹시 돌아오지는 않을까, 언제 돌아올까 몰라 매일 같이 길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멀리서 다가오는 작은 아들을 발견고 가엾은 마음이 듭니다. 단순히 불쌍한 정도가 아닙니다. 몸 속에 있는 내장이 끊어지는 것 같은 느낌, 우리 말로는 애가 끊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멀리 있는 아들에게 달려가 입을 맞추고 좋은 옷을 입히고 반지를 끼우고 신발을 신겨 줍니다.
이런 행동들, 껴안고 옷을 입히고 반지를 끼우고 신발을 신겨 주는 것은 단 하나를 의미합니다. 바로 다시 아들의 지위로 돌려놓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은 죄를 지었을 때 스스로 하느님의 아들딸이 아니라 종으로 여깁니다. 다른 누가 우리를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은 한결 같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시 우리를 종에서 아들딸의 지위로 높여 주고 싶어 하십니다. 당신의 은총과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가 지금 보내고 있는 사순시기가 이러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기에 우리는 판공성사라고 하여 고해성사를 많이 봅니다. 고해성사를 볼 때 어떻습니까. 숙제를 하듯 해치우거나, 귀찮은 일로 여기지는 않습니까. 또는 나의 죄책감 때문에 너무 부끄러워 하며 숨지는 않습니까.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용서하여 주십시오.’라는 말 속에 너무 많은 것을 숨기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고해성사를 통해서 이런 아버지 하느님의 마음을 느껴야 합니다. 다시 아들딸의 지위로 돌아옵시다. 두렵고, 무겁고, 불안하게 살지 말고, 죄에서 벗어나 가볍고 기쁘고 행복한 아들딸로 살아갑시다. 아멘.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