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죄

우리의 죄, 하나님의 샬롬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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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대책본부에서 진행하는 부활절캠페인 미션투게더 부활절을 기다리며, 21일간 말씀묵상을 하는 책자입니다. 우리가 부활의 복음을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선교사님들의 희생이 있었는데요. 21일간 선교사님들의 귀한 삶을 본보기로 삼고, 우리가 가진 복음이 얼마나 귀한 복음인지 깨닫는 21일이 되길 축복합니다. 목장끼리
예배 이후에 더함소모임, 친해지길 바래 시상 광고가 있습니다.
태국단기선교
Genesis 4:3–15 NKRV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10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들어가는 말
오늘부터 새로운 시리즈가 시작됩니다. 주제는 “죄”입니다.
“목사님, 날씨도 좋아지고 그런데, 좀 밝은 주제를 하지, 죄라니 너무 무거운거 아닙니까? 목사님, 요즘 사는 것도 힘든데, 교회에서 자꾸 죄 얘기 하니깐, 힘듭니다. 뭔가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이야기를 해주십시요.”
여러분 먼저 저의 의도를 먼저 밝히겠습니다. 제가 이번 시리즈를 통해 말하려는 주제는 죄이지만, 실제로는 은혜를 이야기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유난히 별이 밝게 보일 때가 언제입니까? 밤 하늘이 깜깜할수록 별은 더 빛나보이죠.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은혜와 사랑을 주제로 설교를 많이 했는데요. 이것을 더 명확하고, 선명하게 보려면 그와 반대되는 개념인 죄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죄를 이야기하는 것을 불편해하고 싫어하죠.
믿지 않는 사람들이 기독교를 거부하는 이유 중 하나가, 자꾸 죄인이다라고 말하니깐, 기분이 안좋다라는 거죠. 나는 법 없이도 잘 사는 사람이고,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세상에서는 인정받는데, 교회 가니깐 죄인 취급 당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더 이야기해야 합니다. 아니, 우리 안에 있는 죄의 실체를 명명백백하게 폭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죄는 스스로 자신을 숨기면서 우리를 기만하고, 우리를 파괴적으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제가 드라마나 티비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닌데, 꼬꼬무라는 프로그램은 좋아합니다.
처음에는 무슨 닭 키우는 프로그램인가 싶었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라 해서 각종 사건과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범죄 사건을 이야기하듯 소개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끔직한 연쇄살인사건, 상상도 할 수 없는 범죄 이야기들이 있는데, 얼마전 고문 기술자 이근안의 이야기를 봤는데, 피가 거꾸로 솟는 줄 알았습니다. 아무런 잘못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고문해서 간첩이라는 거짓자백을 받아내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챙긴 사람인데, 경찰 신분이다 보니깐, 요리저리 법망을 피해 다니면서 최소한의 형량을 치르고 나와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사람이 악하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요.
요즘도 이러한 끔찍한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있죠. 이유없이 사람을 해하는 묻지마 살인과, 성 범죄는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왜 이러한 범죄가 끊이지 않는걸까요? 과학이 눈부시게 발달하고, 경제도 성장하고, 교육수준이 높아졌음에도 여전히 사건 사고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던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인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성경은 세상이 깨져있고, 심각한 상태에 이르게 된 주된 이유도 인간의 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죄의 힘을 보지 못하고, 외면하려고 하고, 과소평가하려고 하죠. 죄의 힘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가 더 득세하는 겁니다.
따라서, 죄를 바로 알고, 그 죄의 속성을 이해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전 이번 시리즈가 우리 모두에게 유익이 될 거라 기대합니다.
오늘 창세가 말씀에서 우리는 죄에 대해서 3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번째, 죄의 위장과 웅크림에 대해서, 둘째, 죄의 지배력에 대해서, 세번째 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죄를 이기게 하는 소망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죄로부터 승리합시다”

1. 죄의 위장과 웅크림

첫번째, 죄는 본성상 스스로를 숨기려 하고, 웅크리고 있습니다.
Genesis 4:7 NKRV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죄가 문에 엎드려 있으니라”
한글 성경은 “엎드려”로 되어 있지만, 히브리 원어는 “웅크리다”입니다. 야생동물에게 쓰이는 단어로 특별히, 표범과 호랑이나 고양이에 사용된다고 합니다.
여러분, 가끔 길에서 고양이가 지나가는거 보면 어떤가요? 어쩔 때는 마치 호랑이 같다는 생각이 들죠.
저는 고양이를 키운 없지만, 가끔 시장에서 고양기가 쥐를 사냥하는 걸로 보면 사냥꾼의 본능이 나옵니다. 어떻게 하죠? 몸을 납작 엎드려서 서서히 다가갑니다. 자신의 몸을 작게 만들어서 숨는 겁니다. 이게 웅크리고 있는 건데요.
오늘 본문에서의 죄는 호랑이나 표범에 가깝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위력을 숨기고 웅크리고 있는 죄의 모습을 생생하게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표현을 통해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죄는 본래의 모습보다 더 작아보인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볼 때, 여러분의 죄는 실제보다 작아보인다는 것이죠. 웅크려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이 생생한 표현을 보세요. 우리가 죄를 합리화하고, 죄를 변명하고, 죄를 숨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일상 속에 죄라는 야수가 공격할 준비를 하고,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보지 못하고 있는 죄의 존재를 폭로하고 계신 겁니다. “너의 원한과 분노, 질투 그 한 가운데에 무언가 웅크리고 숨어 있어. 거기에 괴물이 있어”
그렇다면,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Genesis 4:1–2 NKRV
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가인과 아벨은 아담과 하와의 자녀로 가인이 형이고, 아벨이 동생이죠. 가인은 농사하는 자, 아벨은 양 치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3절부터 5절입니다.
Genesis 4:3–5 NKRV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이후에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각각 제물을 바쳐 제사를 드렸습니다. 가인은 농사하는 자니깐,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드렸고, 아벨은 양 치는 자였기 때문에 양의 첫 새끼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안받으셨다는 것이죠.
왜,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을까요?이에 여러가지 다양한 해석이 있는데요.
아마 여러분들 이러한 해석을 많이 들으셨을 겁니다. 모세 율법에서 희생 제물은 피를 흘려야 하는 제물이여야 하는데, 아벨은 양을 잡아 그 피를 하나님께 드렸고, 가인은 곡식을 드렸잖아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과연 그럴까요?
오늘 말씀을 자세히 보면 “제물”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 단어가 오늘 본문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제물을 의미하는 히브리 단어 여러개가 있는데, 오늘 본문에서 쓰인 단어는 “민하”입니다. 이것은 “소제”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소제의 특징이 무엇이냐면, 다른 제사들과 달리 피를 흘리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즉,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께서 죄 용서를 구하기 위한 속죄 제물을 드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소제는 뭘까요? 소제라는 제사는 자신에게 속한 일부를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했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쉽게 설명한다면,
여러분 결혼식에서 신랑과 신부가 결혼 서약을 할 때, 서약의 상징으로 서로에게 반지를 끼어주는 경우가 있죠.
여기서 이 반지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반지는 그 자체로 매주 귀한 것이지만, 결혼식 때 서로에게 반지를 끼어줄 때의 반지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죠.
뭐죠? 내가 이 사람에게 온전히 속했다라는 의미입니다. 내 자신을 상대방에게 준다라는 의미인 것이죠.
그렇다면 제가 이러한 질문을 해볼께요.
어떤 남자가 있었는데, 이 남자가 여자친구에게 아주 비싼 반지를 주면서 말합니다. “나랑 결혼해 줄래? 이 반지를 받아줘”
그런데, 알고보니 이 남자는 전날 다른 여자와 데이트를 했습니다. 이것을 여자가 알게 되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거짓말하지마, 너는 날 사랑하지 않아. 반지로 내 맘을 사려고 하지 마. 이건 너의 마음이 아니라, 나에게 주는 뇌물이지”
남자는 반지라는 제물로 여자의 전부를 원하지만, 여자가 그 반지를 받아줄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마음이 이런 마음이 아닐까요?
하나님이 까다롭고, 유별나서가 아닙니다. 너무나 당연한거죠.
여러분이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고, 하나님 앞에 헌금을 드리지만,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다면, 여러분의 예배와 헌신은 사랑이 아니죠.
뇌물입니다. “하나님, 내가 이렇게 교회에서 열심히 하니깐, 잘 봐달라는거죠.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하나님, 저를 축복해주셔야죠” 하나님 뜻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내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 열심을 보이는 겁니다. 여러분, 이것은 뇌물입니다.
가인과 아벨에게 일어난 일이 바로 이겁니다.
하나님이 제물의 종류가 맘에 들지 않아서 예배를 받지 않으신게 아닙니다. 가인은 농부니깐 곡식을 드렸을 뿐이고, 아벨은 목동이었으니깐, 양을 가져왔을 뿐입니다. 어떤 제물이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1 John 3:12 NKRV
12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여러분, 보세요. 요한은 아벨의 행위는 의롭고, 가인의 행위는 악했다라고 말하죠. 제물이 중요한게 아니라 행위가 중요하고, 삶이 중요한 줄로 믿습니다.
따라서 여러분, 가인의 모습은 오늘 우리의 모습을 일 수 있는 것이죠.
여러분의 예배는 어떠합니까? 여러분의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사랑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 잘 보이기 위한 뇌물입니까?
만약 여러분의 예배가 여러분의 삶을 반영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사랑의 제물을 드리는 자이지만,
예배는 드리고, 예배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면,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께 뇌물을 드리고 있는 겁니다. 삶은 내 방식대로 살고 싶으면서, 하나님의 축복은 받고 싶은 거죠.
그럴러면 어떻게 하죠? 잘 보여서 축복을 얻어내야 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이유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사랑의 제사를 드리는 아벨과 같은 예배자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가인과 같이 하나님의 축복을 얻어내기 위해 예배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내 삶의 목적을 위해 수단으로 삼고, 하나님을 이용하는 자들이죠.
그런데,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축복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말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리고, 나보다 열심히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아벨과 같은 자들을 보면, 참을 수 없습니다.
5절에 가인이 안색이 변하고, 몹시 분했다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에게 축복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주지 않으니깐, 화가 나는겁니다. 여러분, 이것은 마치 하나님을 빚진 자로 만드는 것이죠.
혹시 여러분 마음 가운데 아주 작게라도 이 감정의 씨앗이 있다면, 그 씨앗은 더 큰 분노로 자라나서, 여러분 자신을 파괴하고, 주위 사람들까지 짓밟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까도 얘기했듯이 죄는 웅크려 숨어 있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내 마음에 이 괴물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일까요?
내 계획대로 내 뜻대로 삶이 풀리지 않을 때 내가 어떻게 반응하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벨과 같은 예배자는 삶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고, 기도응답이 없을 때에도 여전히 예배의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물론 괴롭고 당혹스럽죠. 하지만, “하나님 왜 저에게 이런 어려움을 주시나요” 하나님 앞에 씨름하면서 결국에는 “주시는 이도 여호와요 거두시는 이도 여호와이시니 하나님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지어다”라고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뇌물을 주는 자들은 삶이 풀리지 않을 때 극도로 화를 냅니다. 나는 권리가 있는 사람인데, 하나님이 날 무시했다는 거죠.
씨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쉽게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쉽게 떠납니다. 어떻게 어떻게 해서 예배의 자리에 있더라도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예배 드리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 항상 섭섭한 마음으로 있는 거죠.
여러분, 하나님이 뭘 주시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되시기에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기를 축복합니다.
혹시나 여러분들 가운데 이러한 마음들이 있다면, 그 안에 무서운 씨앗이 있다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봐라, 죄가 문 앞에 웅크려서 널 집어 삼키려고 있어, 죄가 너를 원하지만, 너는 그것들 잘 다스려야 되”라고 말씀하시는 이유입니다.
여러분, 이 분노와 질투의 씨앗 속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살인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작았아요. 잘 보이지 않았아요. 평범해 보였어요. 하지만, 그것을 다스리지 않으면, 끔찍한 괴물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하고,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소수의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해서 들어본적 있을 겁니다. 히틀러의 나치 정권 아래 수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한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이 재판을 받는 것을 보면서, 그가 괴물이 아니라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에 놀랐다라는 것이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죠. 평범한 사람이라도 괴물같은 일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악의 평범성에 대해 잘 다루었다고 평가받는 영화가 있죠. 조커입니다.
영화 조커를 보고 누군가 이러한 인상적인 말을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조커이자 조커가 아닌 셈이다”
조커가 처음부터 조커가 아니였듯이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는 조커가 웅크리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작은 씨앗처럼 보이지만, 웅크려있던 이 녀석은 언제든지 본색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웅크리고 있는 원한은 살인이 되고 싶어하고, 웅크리고 있는 정욕은 간음이 되고 싶어합니다. 웅크리고 있는 시기와 질투는 파괴적인 그 무엇이 되려고 합니다. 이렇게 죄는 우리 마음 구석에 웅크려 숨어 있습니다. 언제든지 우리를 잡아먹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그래요. 가인에게 말씀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삶 가운데 있는 작은 원한과 정욕과 분노를 보아라. 그것들은 웅크리고 있어서 별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보다 흉측하고, 생각보다 훨씬 파괴적이다”
“그러니 너는 죄를 다스려라”
여러분 죄를 과소평가하면 안됩니다. 움크려 있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고, 작아 보이는 것이지, 실제로는 큰 녀석이에요. 호시탐탐 여러분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죄를 없애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화날 수 있죠. 질투와 원한,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죄에 끌려 다니지 말고, 여러분 자신이 죄를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Ephesians 4:26–27 NKRV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려” 죄를 다스리라는 겁니다. 어떠한 상황에도, 죄가 활보할 수 있는 틈을 주지 말라는 것이죠.
여러분의 삶의 어떠한 자리에도 죄에게 내어주지 않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단호하게 끊으시기 바랍니다.

2. 죄는 우리를 지배한다.

두번째 주제는 죄는 우리를 지배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Genesis 4:7 NKRV
7 …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옳은 일을 하지 않으면, 죄를 지으면, 문 앞에 웅크려 죄가 너를 원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새번역 성경은 “죄가 너를 지배할 것이다”라고 되어 있는데, 히브리 그림 언어 맥락에서 본다면, 야생동물이 웅크려서 먹이감을 노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잡아먹기 위해서죠.
그래서,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죄는 여러분을 지배하려고 하고, 여러분을 씹어 삼킬 것입니다.
죄를 지은 후에 그 죄가 사라지는게 아니라는 거에요. 더더욱 여러분의 삶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죄는 또 다른 죄를 부른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진실이 아닌 거짓말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그걸로 끝난게 아니죠. 그 거짓을 덮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해야 합니다. 다들 경험해 봤다는 표정으로 저를 봐라보시는데요.
그러면서 어떻게 됩니까? 처음에 거짓말을 어려웠는데, 거짓말을 하면 할수록, 거짓말 하기가 더 쉬워지고, 더 대담해집니다.
거짓말이라는 죄가 여러분을 지배하고, 여러분을 삼킨 겁니다. 이게 죄의 무서운 점입니다. 죄는 중독성이 있어요.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대부분 알게 되는 것이 뭐나면, 아이들은 좋은 습관보다 나쁜 습관을 훨씬 빠르게 그리고, 쉽게 배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게 되면, 더 많이 거짓말을 하게 되고요. 누군가를 미워하기 시작하면 거기서 멈추지 않죠. 더 많이 미워하게 됩니다. 하나 하나가 다 꼴보기 싫어지죠.
그래서 C.S. 루이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치가 처음에는 유대인들이 미웠기 때문에 학대했지만, 나중에는 그들을 학대했기 때문에 점점 더 미워하게 되었다.”
처음에 그 사람이 미워서 보기 싫었는데, 이젠 보기 싫어서 더 밉죠. 증오하는 사람은 증오에 잠식당하고, 미워하는 사람은 미움에 잠식당하고, 거짓말하는 사람은 거짓말에 잠식당합니다. 악순환이죠.
아버지의 모난 부분을 보며 “난 절대로 저렇게 살지 않을거야” 평생 증오와 원한을 품고 있는 사람은요. 이후 결혼해서 자식에게 하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그렇게 싫어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죄는 여러분을 원하고, 지배하고, 삼켜버리기 때문입니다. 미움은 미움으로 먹히고, 증오는 증오로 먹힙니다. 죄는 아서 플렉은 사라지고, 조커가 되길 원할 겁니다.
따라서, 여러분 죄를 지었다고 해서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여러분을 원할 것이고, 여러분을 지배하려고 할 것이고, 여러분을 삼키려 할 것입니다.
이렇게 죄는 문 앞에 웅크려 숨어 있고, 우리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죄의 위력 앞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3. 죄는 이기는 소망

마지막 우리에게는 죄를 이기는 소망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내용이 어두운 밤 하늘이었다면, 이젠 별을 이야기할 때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죄는 문 앞에 웅크리고 있고, 그 죄는 호시탐탐 우리를 잡아먹기 위해 노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죠. 하지만, 사실 어떻게 이 죄를 다스려야 하는지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죄를 다스릴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보시면 하나님이 가인을 대하는 태도를 볼 수 있는데요.
하나님은 가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화를 내느냐? 왜 얼굴빛이 달라졌느냐?”
여러분, 이상하지 않나요? 하나님은 이미 가인의 마음을 아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질문을 하시는 걸까요? 몰라서 하는 질문이 아니죠.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하나님이 뭐라고 하셨나요? “내가 그렇게 먹지 말랬는데, 이 녀석들 내가 바로 불로 심판하겠다” 아니죠.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을 부르심을 피해 도망가다가 붙잡힌 요나는 심판 받아 마땅한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는 것을 보고 분을 참지 못합니다. 성경은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요나를 보고 하나님이 뭐라고 하셨나요?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질문하십니다.
가인에게도 질문하시죠. “어찌하여 화를 내느냐? 왜 얼굴빛이 달라졌느냐?”
하나님의 이 질문은 우리에게 도전을 주는 동시에 소망을 가져다 줍니다.
“가인, 웅크려 있는 저 죄가 보이니? 너의 진짜 적은 네 동생 아벨이 아니야. 진짜 적은 네 안에 있는 죄야. 내가 너의 제물을 받아서도 아니야. 지금 너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네 안에 있는 죄야”
여러분 이게 무슨 말이죠? “가인, 죄가 원하는대로 끌려갈 필요 없어. 너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왜 이렇게 낙담해 있니? 왜 그렇게 화가 나 있어? 그래. 맞어. 너에게 일어난 일은 너무나 힘든 일이지. 이해되지 않고, 말도 되지 않아. 근데 조심해. 너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어.”
“진짜 위험한 건 너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네 안에 있는 원한과 분노, 자존심과 상처야”
여러분, 이것이 죄를 이길 수 있는 소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회개하라”고 기회를 주고 계시다라는 거에요.
나에게 일어난 일과 상황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그 일에 대한 나의 반응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라는 것이죠. 그게 바로 “죄를 다스리라”는 거죠.
여러분, 웅크려 있는 죄에게 분노와 원한과 미움이라는 먹이를 주지 마십시요. 이 괴물은 우리가 회개할 때 힘을 못쓰게 됩니다.
여러분 안에 분노와 원한과 미움이 올라오기 시작할 때 회개함으로 죄를 다스리시는 여러분들 되시를 바랍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가인은 아벨을 죽이죠.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Genesis 4:9 NKRV
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가인에게 와서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묻습니다. 하나님이 아벨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질문하는 걸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마지막 회개할 기회를 주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이때라도 가인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아벨을 원망하는 것을 멈추고, 지금이라도 회개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죠.
하지만, 가인은 하나님 앞에 끔찍한 말을 합니다.
Genesis 4:9 NKRV
9 …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여러분, 지금 가인은 죄에게 완전히 지배당한 상태죠. 죄가 그를 삼켜버린 겁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Genesis 4:10 NKRV
10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반주] 아벨의 피가 땅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무슨 의미일까요?
여러분, 인간의 피는 단순한 액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물이 쏟아지는 것과, 피가 쏟아지는 것을 보고, 똑같이 반응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죠. 피가 쏟아지는데, 물 쏟아지는 것처럼 바라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피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은 어떠실까요? 만약 하나님이 피의 부르짖음을 듣지 않는다면, 인간을 아무런 가치 없는 존재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대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에게 있어 우리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 존재가 무참하게 짓밟혓을 때, 하나님은 그 죄를 보고 모른척 하실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기억하세요. 우리가 죄로 인해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누군가의 삶을 비참하게 만든다면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신음하며 부르짖는다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인은 아벨의 피의 부르짖음을 들었음에도 끝내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 가인이 회개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러분, 오늘 우리가 회개를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하나님, 저의 죄를 인정하겠습니다. 나에게 일어난 때문이 아니라 내 죄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렇게 고백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피의 부르짖음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히브리서 12장 24절, 새번역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Hebrews 12:24 NKSV
24 새 언약의 중재자이신 예수와 그가 뿌리신 피 앞에 나아왔습니다. 그 피는 아벨의 피보다 더 훌륭하게 말해 줍니다.
우리를 위해 흘리신 그분의 피가 우리를 위해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아버지, 아버지는 이 죄를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하지만, 나는 나를 믿는 자들의 죄를 대신해서 갚았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피는 우리를 구원하고, 회복시키는 유일한 피인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수님의 피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피는 우리를 위해 정의와 은혜, 자비와 구원을 외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가인과 같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창조세계의 흐름과 엇갈린 존재가 되어 하나님이 정의가 여러분을 대적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습니다.
혹시 가인과 같이 회개하지 못했다면,
그분의 자비로움 앞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회개하지 않은 가인은 땅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어 항상 불안하고, 방황하는 쫓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말하죠. “누군가 나를 죽일까 두렵습니다”
엄밀히 말해 가인은 죽임을 당했어야 합니다, 그는 살인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시죠? 가인에게 표를 주어서 죽임을 면하게 하십니다.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끝까지 돌보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이죠. 심판을 원치 않으세요. 그래서, 계속 여러분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겁니다.
주 안에서 친구된 여러분, 지체하지 말고 그분에게 가십시요.
여러분의 죄는요. 여러분이 생각했던 것보다 크고 심각합니다. 지금도 그 녀석은 웅크려서 여러분을 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망을 가지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여러분은 그 죄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찬양

난 죄 많던 그런 사람이었네 / 길 잃고 방황해 끝을 향해 달렸네 죄로 벌어진 틈은 너무 멀어 / 하지만 그 끝에서 주님 내 손 잡으셨네 한 길 만들어 그 틈을 메우네 / 주 보좌 버리고 내 안에 세우네 십자가에서 내 빚을 갚았네 / 죄 사슬 끊기고 내 영혼 자유해
감사해요 주님의 보혈 감사해요 나를 씻었네 감사해요 날 구하셨네 어둠에서 빛으로 날 건지셨네
날 대신해 죄의 무덤에 묻혀 / 사흘 만에 일어나 다시 걸어 나오셨네 사망 힘 잃고 생명 끝없네 / 어린 양 보혈로 난 변화되었네
감사해요 주님의 보혈 감사해요 나를 씻었네 감사해요 날 구하셨네 어둠에서 빛으로 날 건지셨네
세상을 이기신 기적을 행하는 예수의 보혈 보혈 자녀로 부르시고 우릴 대속하는 주님의 보혈 보혈 세상을 이기신 기적을 행하는 예수의 보혈 보혈 자녀로 부르시고 우릴 대속하는 주님의 보혈 보혈
감사해요 주님의 보혈 감사해요 나를 씻었네 감사해요 날 구하셨네 어둠에서 빛으로 날 건지셨네
기도제목
예수님의 보혈로 인해 우리는 죄를 이길 담력을 얻은 줄로 믿습니다.
죄에 끌려 다니지 말고 죄를 다스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은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은혜를 사모할 때에 내 안에 있는 죄는 힘을 잃게 될 것입니다.
이 시간 기도할 때에
하나님, 피흘리기까지 싸워 승리하는 자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죄의 다스림을 받는 자가 아닌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봉헌기도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마음에 숨겨져 있는 죄의 위력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죄 앞에 쉽게 넘어지는 자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죄를 다스릴 수 있는 소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둠에 집중하기 보다, 죄에 집중하기 보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그 예수님만 예배하는 자들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뇌물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인정하며, 하나님 앞에 삶의 예배, 사랑의 예배를 드리는 더디사이플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산불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로해 주시고, 황폐해져있던 모든 것들이 빠른 시일 안에 회복되는 은혜가 있게 하시고,
이 어려움을 통해 우리가 이 나라가 다시 하나의 공동체로 함께 아파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나라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목장모임을 위해서
이 시간 하나님이 내 삶과 소유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며 예물을 올려 드립니다.
우리의 신앙 고백을 담은 이 헌금을 통해 이 헌신을 통해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축도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예수님을 의지함으로 죄를 다스리고, 하나님의 길을 따르기로 원하는
이곳에 모인 청년들에게 항상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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