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26_수요집회_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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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
부흥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오늘 나눌 교제의 주제는 “부흥” 입니다.
흔히 “부흥”이라는 단어가 사용될 때는 교회의 성도가 많아 지거나, 주일학교, 학생회 수가 많아지거나 할 때
“우리교회 부흥 했다” 라고 하면서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시말해서 양적으로, 외적으로 큰 성장이 있을 때 “부흥” 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 우리 교회를, 이 사역을 부흥시켜주세요.” 라고 기도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부흥이 필요하죠.
나 개인에게, 내 사업에, 우리 회사에, 그리고 우리 거제교회에 부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 “부흥”이라는 단어가 몇 번 사용 되었을까요?
사건이나 상황이 아닌 “부흥”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용된 성경 구절은, 오늘 본문이 유일합니다.
그래서 “부흥”이 어떤 의미로 사용 되었는지 본문을 통해 알아보고,
우리에게 필요한 진정한 부흥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교제하길 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선 하박국의 전체적인 배경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하박국 배경
하박국 배경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하박국 선지자가 지금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주님께 부르짓고 있습니다.
선지자는 예레미야 선지자와 동시대에 살고 있었다. 북이스라엘은 이미 앗수르에 의해 멸망 당했고, 이제 유다왕국은 곧 멸망을 앞에 두고 있었다.
당시는 여호야김이 유다왕국의 왕이었다. 여호야김은 원래 엘리아김이었지만 이집트의 공격에 이 전 왕인 여호아하스를 인질로 잡아가고
엘리아김을 여호야김으로 이름을 바꾸고 유다왕국의 왕으로 세웠다.
아주 굴욕적인 방법으로 이집트의 식민지가 된 유다왕국의 18대 왕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곧 바벨론이 강해져 이집트를 전쟁에서 이겨 버립니다.
그리고 바벨론이 침공해 오자 바로 굴복해 버리죠. 그리고 바벨론의 왕은 유다왕족의 젊은 인재 4명을 인질로 잡아갑니다. 그들이 다닐엘과 세친구였습니다.
그런데 이 어리석은 왕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집트에 지원 요청을 합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왕은 다시 군대를 유다왕국으로 파견하죠.
그래서 예레미야가 계속 이 왕을 뜯어 말리고 했는데,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받은 경고와 예언에 대해 적은 두루마리를 불로 태우고, 예레미야랑 같은 말을 하는 선지자를 잡아 죽이기까지 합니다.
나라의 존패가 목전에서 흔들리는데 이 왕이 정신을 못차리고 크고 화려한 궁전을 짓습니다. 그런데 수고한 백성들에게 급여를 지불하지 않았죠.
이런 상황에서 답답하고, 황망한 마음으로 하박국이 하나님께 부르짓고 있는 것입니다.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이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하나님께서 유다왕국을 혼내기 위해서 갈대아 사람, 즉 바벨론을 일으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힘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는 자들이라 이에 바람 같이 급히 몰아 지나치게 행하여 범죄하리라
그런데 이 바벨론은 또 어떤 놈들이냐… 이 놈들은 더 심한 놈들이었다.
자기들의 힘을 믿는 자들이고, 성격이 급하고, 잔인하고, 인정머리 없는 범죄자 놀들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하박국은 다시 하나님께 묻게 됩니다.
하박국의 반문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아니~ 하나님은 악과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는 분이신데, 어떻게 나쁜놈 잡을려고 더 나쁜놈을 사용하십니까? 라고 묻는 것이다.
“하나님 우리 아들이 정신을 못차리네요~ 이거 가만 두고 보실거에요? 좀 어떻게 해주세요~” 라고 했더니, 건달을 시켜서 아들을 혼내주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박국이 답답했겠죠?
그런 하박국에서 전한 하나님은 대답은..
하나님의 대답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내가 한말은 그냥 하는말 아니야, 반드시 그렇게 할거야. 너 딱 기다려봐, 잘 보고 있어라~
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대한 배경을 간단하게 설명 드렸습니다.
이런 답답하고 암울한 시대를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상황 가운데 서있던 하박국은 오늘 본문에서 놀라운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뒤엔 더 놀라운 고백과 찬양을 하게 되죠. 하박국이 왜 그렇게 변했는지 본문을 다시 보면서 교제하겠습니다.
부흥이라는 단어의 뜻입니다.
국어사전 - 쇠퇴하였던 것이 다시 일어남. 또는 그렇게 되게 함.
한자로 부흥의 뜻은 = 다시 “부” ㅣ 일어날 “흥”
“양적인 성장”이라는 느낌과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시죠?
이 부흥이라는 단어의 히브리 원어는,
히브리어(하야:생명) - 다시 일으키다, 다시 소생시키다, 다시 숨쉬게 하다
이 단어의 뜻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단어가 사용된 다른 성경 구절을 확인해 보면 좋습니다.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부흥이라는 단어는 “생명”을 그 안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성경 구절에서 생명과 관련된 의미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이제, 본문에서 말하는 부흥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안에서 말하는 부흥
본문안에서 말하는 부흥
1. 죽은 것을 다시 살리는 것 ;
1. 죽은 것을 다시 살리는 것 ;
부흥은 양적인 성장을 뜻하기 보다는 완전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을 뜻하고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죄로 인해서 하나님을 등졌던 이스라엘은 하박국의 절교처럼 죄가 만연하고, 사악한 일들을 서슴 없이 행하고,
개선의 기미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 완전한 어둠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방법은 바벨론을 통한 유다왕국의 완전한 멸망이었죠.
그리고 동시에 다시 살리신다는 약속이 그 뒤에 따라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박국은 이스라엘의 부흥을 꿈꾸게 된 것입니다.
완전한 죽음이 있어야 완전히 새로운 생명이 있게 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망으로 믿었던 것이죠.
이는 곧 우리에게도 소망이 됩니다.
죄로인해 단절(죽음)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살아남)되는 것
선악과를 따먹고 죽음이 왔다. 하나님과의 단절이 왔다. 그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부흥이다.
그래서 이 부흥은 내가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온전히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것이 바로 부흥입니다.
누가 부흥을 꿈꿀 수 있을까?
누가 부흥을 꿈꿀 수 있을까?
이런 부흥을 누가 꿈꾸고 소망할 수 있을까요?
히스기야 왕의 간절한 기도에서 옅볼 수 있습니다.
주여 사람이 사는 것이 이에 있고 내 심령의 생명도 온전히 거기에 있사오니 원하건대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 주옵소서
히스기야는 죽을 병에 걸렸고, 죽을 거라는 예언도 들었던 상태였습니다.
지금 히스기야는 자신의 힘으로는 전혀 소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자신의 생명을 오직 하나님만 살릴 수 있다고 인정한 상태에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부흥을 꿈꿀 수 있는 자는 나 스스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상태의 사람에게 허락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 삶가운데 있는 여러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계속해서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에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세계관을 갖는 것
2.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세계관을 갖는 것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주의 일이 무엇일까요?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죄로 인해 타락한 유다 백성을 더 악한 바벨론을 사용해 징계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주권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진행되는 것입니다.
하박국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이 부분을 명확하게 깨닿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선지자로서 최선을 다했는데 변화가 보이지 않고, 유다왕은 더 악해지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나 싫었는데,
그런 유다왕을 구원하기는 커녕, 더 악한 바벨론을 통해 심판하신다는 말씀이 너무나도 싫고, 자신이 무능력한 것 같아서 싫었는데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고 나니, 하박국에서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 있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주권을 상기시키기 위함일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의 해결 끝에는 항상 “주님이 하셨어요” 라는 고백이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고백은 결국 “나는 할 수 없어요”라는 내 고백을 반드시 전제해야만 가능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 삶 가운데 고난과 문제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 영역을 넓혀 가십니다.
초대 교회를 보면 더 명확하게 이해가 됩니다.
초대 교회 예루살렘 대부흥의 현장을 한번 옅보도록 하겠습니다.
교회의 부흥의 시작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예루살렘의 부흥의 시작은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을 때” 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순절날에 성령을 보내겠다고 하지 않았다. 그냥 기다리라고 했다.
제자들은 예수님 말씀을 따라 그냥 모였습니다.
여기 수요집회에 왜 오셨나요?
최복남 형제의 말씀시간이라 오셨나요? 제가 말씀인지 모르고 오셨을 확률이 98% 정도 될 것 같습니다.
그냥 오신 것이죠.
모이기에 힘쓰라고 했으니깐 모인 것이죠.
성령님이 오신 그날,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 “모여서 기도하기에 힘쓰라” 하셨기에 모였습니다.
이 날,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죠.
그리고 이 후에도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에 힘을 썼습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의 하나님께서 제자들 안에 오셨을 때, 성령님에 의해 다른 언어로 말했고,
복음이 선포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언어공부를 시작해서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였습니다.
성령의 하나님이 사도들을 통해 역사하실 때, 생명이 전달되고, 엄청난 부흥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부분을 묵상하면서 창세기의 한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영이 죄를 범한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지 않는 세상은 사람의 죄악이 가득하게 되었고, 생각과 계획 모두가 악하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소망이 끊어지고, 하나님께서 심판을 준비하실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죠.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오순절 성령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창세기에서 떠났던 하나님의 영이 돌아왔습니다.
이로써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회복이 되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도 회복되는 진정한 부흥이 이 땅에 나타났다.
하박국이 “수년내에 나타내시옵소서”라며 바랬던 진정한 부흥이 오순절 성령님의 오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부흥의 시대에 살고 있다.
3.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는 것
3.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는 것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 그럼 우리는 뭘 하면 될까요?
그것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 나의 일이다.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분 하나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과 교제를 하면 또 말씀하십니다.
성도의 필요를 보여주시고, 복음 전할 영혼을 보여주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을 보여주시죠.
그러면 보여주신대로 믿고 가면 됩니다. 그 결과는 내게 있지 않으니 하나님께 맡기고 가는 것이죠.
이 얼마나 심플한 삶입니까?
“네 짐을 내게 맡기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진짜인 것이죠.
그리고
우리는 이미 부흥을 경험한 자들이다.
죄로 인해 죽었었고, 희망도 없었고, 헛된 것들을 찾아 헤맸고, 죄가 죄인줄도 모른채,
저주 속에 살다가 심판의 지옥을 갈 수 밖에 없던 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분의 일방적인 은혜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그 분을 내 마음 가운데 모셨을 때, 다시 살아났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일이 일어날 것을 인정하게 되었고, 일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나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부흥을 이미 경험한 우리에게 있어야할 찬양이다.
나의 환경이 아니라 주님으로 말미암아 온전히 기뻐하는 것.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의 구원 받은 이유와 분명히 맞닿아 있는 것이다.
우리가 구해야할 부흥
우리가 구해야할 부흥
이제 우리는 또 다른 부흥을 주님께 구해야 한다.
내게 일어난 부흥으로 만족하지 않고, 지금도 죽어 있는 사람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생명이신 예수님을 전해야 한다. 그렇게 우리 안에 부흥이 끊임 없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토요학교, 캠프사역, 선교를 통해 생명이 다시 회복되는 부흥의 역사를 교회 안에서 목격하고, 신실한 하나님을 우리 삶으로 경험하는 삶!
바로, 부흥이 가득한 우리의 삶이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