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7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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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삼권의 서론과 이해
제 삼권의 서론과 이해
왕하면 ‘전권’을 가진 힘을 생각한다. 물론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힘이라고 믿지만 실상은 ‘마음대로’하는 능력을 염두에 두고 하는 생각이다. 지난 72편에서 왕은 하나님의 인간 대리자 또는 관리자라는 위치를 분명하게 한다.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말씀이 행하는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도록 관리/정치를 해야 한다.
하지만 솔로몬은 자신의 영광으로 살았다. 평화를 이유로 지역 이방 왕들의 딸들과 결혼했다. 결국은 다윗의 영광은 떠났고 나라는 둘로 분열되는 길을 열었다. 솔로몬의 위대한 시는 그렇게 즐거움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이 되었다. 살다보면 아무래 행복이 찾아와도 ‘새옹지마’ 같기 때문에 안 될 때를 생각하며 겸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가복음 12:27에서 백합꽃이 어떻게 자라는지를 생각하여 보아라. 그것은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온갖 영화로 차려입은 솔로몬도 그 꽃 하나만큼 아름답지 않았다”는 꽃에 비교 당할 뿐인 삶을 기억해야 한다.
73편부터 11편의 아삽이라는 사람의 시 모음집이 시작된다. 앞서 개인 기도가 많았다면 공동체를 위한 기도 내용을 중심에 두고 있다. 오늘 내가 살고 있는 ‘시국’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상황이다. 아침에 눈 뜨는 것조차도 버겁다. 화마에 휩싸인 내 나라의 불길은 마치 타드러가 모든 것을 태우려는 극단의 모습을 방불케 한다.
아삽은 누구인가? 레위 지파의 음악인으로 소개된다. 성전에서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이들이다. 오늘도 노래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들이 많은데 성경의 내용을 노래 가사에 담듯이 아삽의 자손들도 성경의 내용을 노래에 담았다. 그들은 역사를 다루며 솔로몬 이후의 분열된 나라에서 발생된 불안정은 굳이 역사를 돌아보지 않아도 오늘 우리의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이들의 노래는 하나님의 구원, 돌아오라는 회개를 담고 있다.
73편의 주제는 ‘악인이 왜 번영하는가?’ 이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2절 ‘거의 넘어질뻔, 미끄러질 뻔’했다고 시작한다. 그 이유가 3절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이다. 이렇게 쓰면서 오늘 우리 상황이 계속 떠오른다. 4절부터 본 것을 이야기 한다. ‘죽을 때도 고통이 없고 힘이 강건하’다는 이야기는 말 그대로 범죄하고도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을 때도 두려움 없지 죽는다는 의미다. 흔히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 재앙’조차도 당하지 않는다는 말은 오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러니 그들의 ‘교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열거한 후 12절에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난다’는 표현은 여전히 그런 세상 속에서 기도자의 고통이 드러나고 있다.
그런 반면 자신은 올바르게 산다고 했지만 ‘헛되도다’는 말로 반대의 모습 즉 고통과 재난 속에 있고 그들처럼 되고 싶은 생각에 사로 잡히기 일보직전임을 고백한다. 말 그대로 알고 싶어하는 기도자는 ‘심한 고통’을 겪는다고 토로한다. 그는 17절에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깨달았다’라고 고백한다. 우리가 흔히 나중은 망한다는 말은 사실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기도자는 솔로몬의 길로 인한 나라의 분열, 극심한 대립을 보면서 미래를 본 것은 누구나 아는 불보듯 뻔한 이야기이다. 싸우는 현장에서 극적인 화해가 얼마나 있었는가? 양보없이 대립은 끝날 수 없는 파괴의 길일 뿐이고 각자도생은 고난과 재앙으로 치닫는 과정일 뿐이지 않는가?
오늘 아픈 대한민국이 현실에서 교회에서 모든 것을 깨닫는다고 말할 수조차도 없지만 사실 내 주변에 ‘주 외에 누가 있는가?’하는 말에는 그렇다고 동의가 된다. 다만 여기를 떠나 악다구로 살아가는 길이 좋다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피하는 자들과 함께 서로를 위로하는 길이 어쩌면 주님이 예배해두신 길은 아닌가 묵상하면 나도 묻고 싶은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