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사랑

사도행전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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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과 사랑

본문: 사도행전 15장 1-5절

찬송: 219장

<말씀의 문을 열며>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극단적 대립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제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대화와 타협보다는 상대방을 적대시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서로가 자신의 입장만 고수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듣기보다는 비난하는 데 급급합니다. 그 결과 사회는 점점 더 분열되고 갈등은 깊어갑니다.
이러한 극단적 대립은 위에서 이야기한 영역 외 삶의 여러 영역에서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들은 진리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사랑을 저버립니다. 반대로 또 어떤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진리를 타협합니다. 진리와 사랑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공허한 이론에 갇힌 사람은 자신의 이론으로 사람을 죽이기 쉽고, 현장의 사람은 자신의 손과 발로 사람을 살리는 사람입니다. 이는 현실에서 부딪혀 배운 것과 이론만 알고 있는 것의 차이를 잘 보여주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사도행전 15장은 초대교회가 맞닥뜨린 첫 번째 심각한 신학적 갈등과 그 해결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갈등은 수리아 안디옥 교회에서 일어났습니다. 수리아 안디옥은 당시 로마제국에서 로마, 알렉산드리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도시였고, 최초로 이방인들 땅에 이방인들을 위해 교회가 세워진 곳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처음 사용된 곳이기도 합니다. 이 안디옥 교회의 갈등을 통해 우리는 복음의 본질, 진리를 위한 담대한 자세, 그리고 사랑과 진리 사이의 균형에 대해 중요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복음의 본질과 이를 위협하는 도전>

사도행전 15장 1절 을 보면,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고 가르쳤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본문 5절을 보면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라 되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정통한 유대교 지도자들이었고, 그 중 일부가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여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구약의 율법 준수를 강조했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도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왜 문제였을까요? 그들의 주장은 복음의 본질을 위협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본질은 인간의 어떤 행위나 노력이 아닌, 오직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유대주의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에 인간의 행위를 더함으로써 예수님의 구원 사역의 완전성을 부정하고 있었습니다.
할례는 본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의 표시로, 유대인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표시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본질이 아닌 부수적인 것이었습니다. 할례는 먼저 베풀어진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에 대한 응답이었지, 구원의 조건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할례를 구원의 필수 조건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이는 마치 하나님의 은혜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전통을 이방인에게 강요함으로써,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선물에 조건을 달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이 사람들은 다른 민족을 사랑하여 이방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현장에는 단 한 번도 서본 적이 없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릇된 이론을 신봉하는 공허한 이론가들이었을 뿐입니다. 우리는 이론만 가득한 머리가 아니라, 실제 삶의 현장에서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고 증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복음에 불필요한 조건들을 더하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때로는 특정한 예배 형식이나 문화적 관습, 혹은 개인적 성취를 구원의 표지로 삼으려 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며 복음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복음의 본질을 흐리는 위험한 시도입니다.
한편으로는 진리를 강조한다는 명분으로 사랑을 저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올바른 교리를 주장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상대방을 무시하고 판단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이는 사랑 없는 진리의 추구로, 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에서 경고한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와 같은 것입니다.

<진리를 위한 바울의 담대한 대응>

본문 2절은 바울과 바나바가 유대에서 온 사람들과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을 벌였다고 기록합니다. 이 표현에서 '다툼'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어는 '스타시스'(στάσις)인데, 이는 단순한 논쟁이 아니라 '폭동'이나 '반란'에 가까운 강도 높은 충돌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왜 그토록 강력하게 반응했을까요?
바울의 대응은 단순한 감정적 반응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본질에 대한 깊은 신학적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만으로 충분함을 확신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이런 유대주의자들을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갈 2:4)이라 부르고, 심지어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9)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으며 선언하기까지 했습니다.
(작은목소리)이러한 바울의 강력한 대응이 사랑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놀랍게도 그렇다는 겁니다. 바울의 강력한 대응은 이방인들을 향한 깊은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지 않도록 보호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 모든 사람을 위한 최선의 사랑임을 알았습니다.
바울이 그토록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는 "현장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최소 1년 이상 지속된 전도 여행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직접 목격한 증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고 변화되는 모습을 직접 보았습니다. 이런 현장 경험이 그들에게 확신을 주었던 것입니다.
진리를 타협하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며, 사랑 없는 진리는 그 능력을 잃어버립니다. 바울이 유대주의자들과 타협했다면, 그것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보여준 이런 태도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는 종종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진리를 타협하거나, 반대로 '진리'라는 이름으로 사랑을 저버리는 실수를 범합니다. 교회 안에서 불의한 일이 일어날 때 "사랑으로 덮자"며 문제를 방치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반대로, 교리적 순수성만을 강조하며 형제자매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 역시 그리스도의 방식이 아닙니다.
진실은 꼭 이야기되어야 하지만, 그 방식은 사랑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15절 에서 바울은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고 말합니다. 진리와 사랑은 함께 가야 합니다.

<복음과 사랑의 균형을 찾는 지혜로운 해결책>

바울과 바나바가 유대주의자들과 맞서 싸운 것만으로 이 이야기가 끝났다면,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주목할 점은 그들이 이 갈등을 어떻게 해결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2절 후반부를 보면,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이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인 다툼으로 끝내지 않고, 교회 공동체의 지혜와 분별을 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가 보여준 지혜입니다. 진리에 대한 확신이 있더라도, 교회 공동체의 권위와 분별에 자신을 기꺼이 복종시킨 것입니다. 교회의 갈등은 서로를 존중하고 경청하는 과정을 통해 성령의 인도하심 안에서 해결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직접 예수님으로부터 복음을 받은 사도였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공동체의 판단에 이 문제의 결정을 맡겼습니다. 이는 겸손함과 지혜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는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면서도, 교회의 일치를 위해 함께 분별하는 과정을 존중했습니다.
3-4절은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도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갈등 중에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증언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는 진정한 '현장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태도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 사실을 알았기에,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증언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서도 다양한 갈등과 의견 차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바람직한 태도는 무엇일까요?
첫째, 진리에 대한 확신이 있더라도 혼자 결정하지 말고 교회 공동체와 함께 분별해야 합니다.
둘째, 갈등 중에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증언하고 기쁨을 나누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서로의 입장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바로 이 ‘진리와 사랑의 완벽한 균형’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진리를 위해 타협하지 않으셨지만, 언제나 사랑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셨습니다. 우리도 그 모범을 따라 진리와 사랑의 균형을 이루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복음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사랑으로 행하는 지혜를 배웠습니다. 진리와 사랑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임을 이제 깨달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진리를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사랑을 잃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진리와 사랑의 균형을 이룬 건강한 교회를 세워나가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복음의 본질과 진리와 사랑의 균형에 대해 배우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담대하게 서는 믿음을 주시고, 동시에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우리 교회가 '공허한 이론'이 아닌 '살아있는 현장'이 되게 하시고, 모든 갈등 가운데서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함께 구하는 겸손함을 배우게 하옵소서. 진리를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사랑을 잃지 않는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으로 우리를 세워주시기를 원합니다.
올해 우리 교회의 목표인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모든 성도들이 말씀 충만, 믿음 충만,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우리 교회가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며 그 기쁨을 나누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참고 문헌

이재철.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서울: 홍성사, 2014.
황원하. 『사도행전 -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 설립 60주년 기념 성경주석』. 서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출판국, 2019.
"공허한 이론의 사람과 현장의 사람" 개념은 이재철 목사님의 설교 “어떤 사람들이”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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