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깨어 있습니까?
Notes
Transcript
마가복음 13:28-37
서론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즘 우리는 참 편리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영적으로는 어쩌면 가장 위험한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너무나 재미있고, 볼 것도 많고, 할 것도 많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들이 넘쳐납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영적인 감각이 무뎌지기 쉽습니다. 마치 시끄러운 소음에 계속 노출되면 작은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세상의 화려함과 분주함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영적인 잠에 빠져들기 쉬운 환경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혹시 우리는 '나는 그리스도인이니까 괜찮아' 라고 생각하며 안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매주 교회에 나오고, 성경도 읽고, 봉사도 하니까, 나는 당연히 '깨어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잠들어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지, 나는 아니야." 라고 쉽게 단정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바로 그 생각이야말로 우리를 깊은 잠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는 정말 정신이 번쩍 들게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 13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 마지막에 일어날 여러 징조와 어려움에 대해 말씀하신 후에, 특별히 당신을 따르던 제자들을 향해, 그리고 그들을 통해 오늘 우리 모두를 향해 간절히 외치십니다. "정신 차리고 깨어 있으라!" (33절, 쉬운 번역)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한번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깨어 있으라!" (37절)
여기서 "너희들도!" 라는 이 표현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눈앞의 제자들을 향해 "너희"라고 말씀하셨지만, 곧바로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라고 덧붙이셨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 '깨어 있으라'는 명령이 단순히 2천 년 전의 제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선언입니다. 목사나 특별한 영적 지도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도 아닙니다. 이 명령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예수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모든 시대, 모든 장소의 모든 사람에게, 바로 오늘 대한민국 서울에서 예배하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 각자의 이름을 부르시며 "아무개야, 너도 깨어 있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방관자일 수 없습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외면할 수 없습니다. "너희들도!" 라는 이 말씀은 우리 각자의 영혼을 향한 주님의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부르심이자, 누구도 예외 없이 감당해야 할 책임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강력한 음성입니다. 특히, 이미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조차 예외가 아니라는, 그래서 더욱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강력한 경고가 이 안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고 해서 저절로 깨어 있게 되는 것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오히려 그 이름 때문에 더 깊은 영적 잠에 빠질 위험이 있음을 간파하셨습니다. 익숙함이 무감각을 낳고, 종교적인 형식이 살아있는 신앙을 대체하기 얼마나 쉬운지요. 오늘 우리는 주님의 이 엄중한 경고 앞에서, 우리의 신앙생활이라는 익숙한 겉모습 속에 가려진 내 영혼의 진짜 상태를 정직하게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나는 정말 깨어 있는가?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이라는 포근한 이불 속에서 영적인 잠에 깊이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스도인도 쉽게 잠든다: 우리 안의 무뎌진 영혼
그리스도인도 쉽게 잠든다: 우리 안의 무뎌진 영혼
영적인 잠은 갑자기 찾아오지 않습니다. 아주 서서히, 거의 느끼지 못하게 우리 삶에 스며듭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세상적인 걱정이나 욕심에 조금씩 물들어 갑니다. 처음에는 양심에 찔렸던 작은 잘못이나 적당한 타협들이 반복되면서 점점 아무렇지도 않게 됩니다. 주님을 향했던 뜨거운 마음은 식어버리고, 신앙생활은 그저 습관처럼 해치우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시대의 징조들(마가복음 13장 전반부)이 나타나도 무감각하게 지나치는 것처럼, 우리는 영적인 위기 신호들을 놓치기 쉽습니다.
특별히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모습으로 영적인 잠에 빠지기 쉬울까요?
첫째, 신앙을 마치 물건 사듯 '소비'하려는 태도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맺고 그분께 순종하며 살아가기보다, 신앙생활을 통해 내 문제를 해결하고, 마음의 위안을 얻고, 복을 받으려는 데 더 마음이 쏠리는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도 은혜로운 설교나 좋은 찬양을 통해 무언가 '얻어 가려는' 마음이 앞섭니다. 교회 공동체도 내 필요를 채워주는 곳 정도로 여기게 됩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보다는, 신앙생활을 통해 내가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을까를 더 계산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만족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마음이며, 영적으로 깊이 잠들어 있다는 신호입니다.
둘째, 우리는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영적인 잠에 빠지기 쉽습니다. 정말 정신없이 바쁩니다. 직장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자녀들은 남들만큼 가르쳐야 하고, 노후 준비도 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늘 시간에 쫓깁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여러 봉사와 모임으로 바쁩니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이 중요하고 가치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바쁨 때문에 하나님과 조용히 만나는 시간을 갖지 못하고, 말씀을 통해 내 영혼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다면, 그 바쁨은 오히려 내 영혼을 갉아먹는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바쁘다'고 스스로를 위로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 없이 바쁘게 뛰어다니며 영적으로는 점점 더 메말라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셋째, 양심이 무뎌지고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기 쉽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작은 거짓말, 약간의 불공정한 이득, 마음속의 음란한 생각들이 반복되면서 점점 아무렇지 않게 됩니다. "이 정도는 괜찮아," "남들도 다 이렇게 살아,"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어쩔 수 없어." 이런 생각들로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죄에 대한 경계심을 잃어버리고 세상과 점점 비슷해져 갑니다. 주일에는 거룩한 성도처럼 보이지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삶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흘러갑니다. 이것이 바로 영혼이 깊은 잠에 빠져, 옳고 그름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게 되는 위험한 상태입니다.
넷째, 신앙생활이 '기분'에 좌우되기 쉽습니다. 뜨거운 찬양이나 감동적인 간증을 통해 기분이 좋아지고 뭔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지만, 그 감정이 사라지고 나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삶의 변화나 꾸준한 순종으로 이어지지 못합니다. 신앙의 뿌리를 감정에 두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마음이 힘들 때는 쉽게 좌절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진짜 믿음은 좋은 기분이나 느낌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진리에 대한 확신과, 힘들어도 끝까지 순종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 참된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모습들이 혹시 오늘 우리의 이야기는 아닙니까? 우리는 결코 영적인 잠에서 안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만 잠든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바로 내 곁에 있는 형제자매 중에, 그리고 어쩌면 바로 나 자신이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토록 애타게 외치시는 것입니다. 너희들도! 깨어 있으라!
진짜 '깨어 있음'이란 무엇인가: 삶으로 보여주는 믿음
그렇다면 "깨어 있으라"는 주님의 명령은 오늘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라는 것일까요? 이것은 그냥 구호가 아니라, 우리의 매일의 삶 속에서 힘써 싸워나가야 할 실제적인 지침입니다. 이름만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삶으로 믿음을 보여주는 진짜 제자가 되라는 부르심입니다.
첫째, 깨어 있다는 것은 '분별하며'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28-29절)고 하신 것처럼, 우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과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냥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합니다. 대중문화든, 정치적인 주장이든, 심지어 교회 안에서 유행하는 어떤 가르침이라도 그냥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정말 성경적인지,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맞는 것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따져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깊이 생각하며, 성령님께 지혜를 구하고, 믿음의 친구들과 함께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점검하는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분별없이 무조건 열심히만 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습니다. 깨어 있는 성도는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둘째, 깨어 있다는 것은 늘 '준비하며'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2절에서 예수님은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준비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준비'란 마지막 때를 대비해 특별한 물건을 사 모으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 마음 상태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지를 매일 점검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숨겨둔 죄는 없는지, 아직 용서하지 못한 사람은 없는지,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입니다. 마치 군인이 매일 자신의 무기를 점검하고 싸울 준비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꾸준히 기도하고, 잘못한 것이 있으면 솔직하게 고백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더 거룩하게 살려고 애쓰는 것, 이것이 바로 언제든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의 준비입니다. 오늘 하루를 내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생각하며, 주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십시오.
셋째, 깨어 있다는 것은 '맡은 일에 충실하며'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비유처럼(34-36절), 집주인이 먼 길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각자의 권한과 할 일을 주고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고 명령한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기에, 각자 맡은 자리에서 졸지 않고 깨어 충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주 특별하고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가정에서 남편이나 아내로서, 부모나 자녀로서 사랑과 인내로 서로를 섬기고, 직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지키며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고, 교회에서 내가 가진 작은 능력으로 지체들을 돕고 복음을 나누는 것, 이 모든 평범한 일상이 바로 우리가 깨어서 충성해야 할 삶의 현장입니다. 사람들이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하나님 앞에서 꾸준히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것이 깨어 있는 성도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주인이 돌아왔을 때, 자지 않고 깨어 자기 일을 하고 있는 종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주인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교회여, 편안함의 잠에서 깨어나라!
이 시간, 저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시대를 향해, 특별히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향해 외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교회 공동체여, 더 이상 세상이 주는 편안함과 성공에 취해 잠들어 있지 마십시오! 처음 교회가 세워졌을 때 가졌던 복음의 뜨거운 능력과 거룩함, 세상이 뭐라 하든 진리를 외쳤던 그 용기를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교회 건물이 커지고, 모이는 사람이 많아지고, 헌금이 넘쳐나는 것이 꼭 영적으로 건강하다는 표시는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외적인 성공이 우리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서, 세상을 향해 마땅히 외쳐야 할 하나님의 목소리를 잃어버리게 만들 수 있습니다. 혹시 우리는 세상의 성공 방식을 따라 교회를 키우려고 애쓰고,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말만 골라서 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이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서는 말하기를 꺼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는 세상의 최신 유행을 따라가는 곳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 나라의 본보기이자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상처받고 지친 사람들이 와서 쉴 수 있는 따뜻한 피난처이면서 동시에, 세상의 잘못된 가치관과 불의에 맞서 싸우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교회 안에 스며든 죄와 세상적인 생각들을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회복해야 합니다. 서로의 잘못을 무조건 덮어주기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로잡아주고, 진리 앞에서 타협하지 않으며, 함께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격려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형제님, 자매님, 요즘 영적으로 깨어 있으신가요?" 이렇게 서로의 영혼에 대해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물어볼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세상은 변하고 사라질지라도, 오늘 본문 31절에서 약속하신 것처럼 주님의 말씀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진리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깨어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깨어 있는 교회는 세상에서 외면당하고 힘없는 사람들,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아픔에 함께 울고 웃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삶으로 보여줍니다. 깨어 있는 교회는 우리 자녀들에게 올바른 믿음을 물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깨어 있는 교회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쉬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잠들지 않고 깨어 있는 교회의 참 모습입니다. 너희들도! 바로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론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마가복음 13장을 통해 주님의 간절하면서도 엄중한 명령을 다시 마음에 새겼습니다. "깨어 있으라!" 이 명령은 과거의 제자들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시대를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 바로 '너희들도!' 를 향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만으로 영적인 잠에서 안전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고, 편안함에 안주하며, 영적으로 무뎌질 수 있는 약한 존재임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깨어 있을 수 있을까요? 본문 말씀처럼, 시대를 분별하고(28-29절), 언제 오실지 모르는 주님을 늘 준비하며(32-33절), 맡겨진 자리에서 충성스럽게 살아가는 것입니다(34-36절).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세상을 분별하며, 기도로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죄와 싸우고 거룩하게 살아가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삶의 자리에서, 아주 작은 일이라도 충성스럽게 감당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깨어 있는 성도의 실제적인 삶입니다.
더 이상 세상이 들려주는 달콤한 속삭임에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신앙생활이 그저 익숙한 습관이 되어버린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십시오. 오늘, 바로 지금부터 다시 한번 영적인 허리띠를 단단히 매고 깨어 있기로 결단합시다.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깨어 있도록 힘이 되어 줍시다. 언제 오실지 모르는 우리 주님,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쁨과 설렘으로 기다리며, 환하게 밝힌 등불과 가득 채운 기름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신부들이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 마지막 구절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깁시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깨어 있으라!" (35-37절)
주님, 저희가 참으로 깨어 있게 하여 주십시오. 세상의 유혹과 저희 자신의 게으름 속에서 잠들지 않도록 늘 붙들어 주십시오. 날마다 말씀을 통해 분별하는 지혜를 주시고, 기도로 준비하며, 맡겨진 모든 일에 충성하게 하여 주십시오.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깨어 있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