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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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역전
기도의 역전
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서론
서론
산 위에서 말씀을 가르치시는 예수님을 보며 유대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라말싸미 하면 세종대왕을 떠올리고, 거북선 하면 이순신을 떠올리듯,
산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예수님을 보며 그들을 자연스럽게 모세를 떠올렸을 것이다.
심지어 직접 모세의 율법에 대해 언급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은 산상수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장면은 유대인들에게 마치 새로운 모세의 출현처럼 여겨지는 극적인 등장장면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이 대단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이상하기도 하다.
모세의 율법에 대해 언급하시며 그보다 한 층 높은, 아니 인간으로 가능한가 싶을 정도의 아주 이상적인 윤리 기준을 말씀하신다.
미워서 죽이고 싶은 것도 아주 꾹꾹 참고 있는데, 아예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도 죄라고 하시고,
갖고 싶은 것도 억지로 참고 있는데, 아예 가지고 싶은 마음조차도 안된다고 하시고,
용서하고, 내어주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아무 일에도 억울해하지 말라고 하시니 세상에 누가 이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모세의 율법도 구약시대 전체에 걸쳐서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하나님의 거룩한 기준이라고 결론이 났는데,
그보다 더 높은 기준을 말씀하시니
마태복음 7: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 무리가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우리의 노력과 수고로는 안되었던 거룩, 누구도 도달할 수 없던 성화를 예수님께서는 더욱 높고 완전하게 제시하고 계시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안되는 일이니 포기하고 외면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 가르침을 다시 우리가 지킬만한 수준으로 편집해서 따라야 하는가?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마주하고 나오자 그의 얼굴에는 광채가 나왔는데, 그 빛을 보기 두려웠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빛을 가려줄 수건을 모세의 얼굴에 두르기를 요청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 율법을 완성시키는 가르침을 내 입맛대로 축소하고, 할 수 있을 때만 따른다면 모세의 얼굴에 수건 두르기를 요청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를바가 무엇인가?
억울함을 버리고 기꺼이 내어주라 하셨다면, 그럴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해야한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면, 원수의 범위를 그래도 사랑할 만한 사람으로 제단하는 것이아니라 그 원수를 진실로 사랑해야한다.
미워하는 마음으로도 살인한 것이라 말씀하셨다면, 실제로 내 안의 미움을 살인의 죄와 같이 여겨야한다.
내가 가진 어떤 수건으로도 그 영광과 거룩을 가리고 받아드리지 말아야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휘장은 찢어졌고, 하나님과 영광과 거룩의 빛은 모세를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직접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말도 안되는 거룩이 이 못난 나에게도 가능하게 될까?
2주전 제가 이 자리에서 억울함이 우리를 넘어지게 한다는 산상수훈의 첫 메세지를 전한 이후 어떠셨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에서 억울한 마음이 완전히 사라졌나요?
제 메세지가 의도에 맞게 잘 전달되었다면, 2주간 한 번 정도는 참다참다 울분이 터졌어야하는데.
제가 산상수훈을 처음 묵상하던 때 딱 그랬거든요.
20대 중반에 처음 이 말씀이 나의 심령을 찔러 쪼갠 후, 그 때 이후로 얼마나 많이 이 말씀이 나를 괴롭게 했는지 모른다.
안되는 걸 억지로 노력하다보니 성화가 아니라 화병이 들겠더라.
참다 참다 조금만 억울한 마음에 화를 쏟아내고 나면 또 후회하고 죄책감이 들고
10년쯤 그 억울함 자체와 씨름하고 나서야 알겠던 것, 아, 이건 진짜 내 힘으로는 안되는 거구나.
포기하고 내 승질머리대로 그냥 살까 할 때, 그제서야 보였던 5장 너무 6장.
나와 주님의 가르침 사이의 이 좁혀지지 않는 간격의 틈은,
산상수훈의 중심을 관통하고 있는 기도에 대한 가르침으로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거룩에 대한 분명한 답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본문1 : 기도의 특징
본문1 : 기도의 특징
빌 하이벨스 목사님의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라는 책이 있다.
어떤 책들은 그 제목만으로도 삶의 놀라운 영향력을 미치는데, 이 책의 제목이 딱 그렇다.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
책의 내용을 따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여러분에게는 이 책 제목이 담고 있는 메세지가 이해가 될 것이다.
분주하고 바쁜 마음을 내려놓고 기도에 힘쓰는 영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은 왜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가?
본래 바쁨이란 기도와 참 어울리지 않는 말이기 때문이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모든 신앙 활동 중에서도 아주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생명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신앙 활동이란 보통 움직이고 확장하며, 자라나지만,
그 중 기도만큼은 멈추고, 중단하며, 마치 본질적으로 죽음과 가장 가까운 모습이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 지식이 확장된다. 선포되는 말씀은 사람들을 감화시키거나, 어떤 형태로든 반응하게 만든다.
찬양은 어떤가? 찬양이 불러지면 사람들에게 들려진다. 같이 부르는 사람들도 나오고, 그러면 찬양의 목소리는 더욱 커진다.
저도 찬양을 인도하고 나면, 너무 감사하게도 성도님들이 찬양에 은혜를 받았다고 말씀하실 때가 있는데, 내가 하나님께 올린 찬양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들려졌기 때문이다. 노래의 실력이 성장하기도 한다.
전도는 어떠한가. 전도만큼 생명력 넘치는 신앙활동은 없다.
생명이 생명을 낳는, 영원한 생명이 죽어가는 영혼에게 전달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도는 이성적으로 볼 때 아무런 생산성이 없다.
어찌나 비효율적인지, 설교문을 작성하면서 열심히 기도했지만, 기도를 마치고 돌아와봐도 한 글자도 더 타이핑 되어있지 않았다.
기도의 골방에서 배우자를 달라고 아무리 기도해도, 골방 안에서 나의 하와가 짠하고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기도 잘하는 사람이라고 인정이라도 받으면 좋을텐데
마태복음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아무에게 기도하는 모습조차 보이지 말고, 티내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오직 일년에 한 두번 있을 대표기도가 내가 기도 잘하는 사람이라고 인정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다.
그 외에는 다 숨고, 아무도 모르는, 그대로는 아무에게도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이 기도다.
참 얼마나 비생산적인 활동인가?
기도하는 사람은 마치 자는 사람이나, 죽은 사람처럼 눈을 감는다.
기도하는 사람은 수갑을 찬 사람처럼 두 손을 모은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때때로 스스로 벌 받는 사람처럼 무릎을 꿇는다.
심지어 금식하며 기도하는 자는 생명의 가장 기본 활동인 먹는 것까지 중단한다.
멈추고, 보지도, 듣지도 않으며, 무엇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 비생산적인,
그 어떤 때보다 내가 죽는 시간, 그것이 기도의 본질이다.
만약 하나님이 없다면.
만약 하나님이 듣고 계시는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나,
마태복음 6:9–10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이 기도의 시작과 같이,
하늘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우리 하늘 아버지가 계시기에 놀라운 역전이 일어난다.
모든 것의 순서가 뒤집어지는 기도의 역전.
우리가 멈춰서 기도할 때, 하나님은 가장 역동적으로 활동하시며,
우리가 죽은 듯 주 앞에 엎드릴 때, 하나님의 참된 생명 활동이 시작된다.
죽은 활동, 비효율적이며 비생산적이라고 여겼던 그 기도의 순간이 나의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할 유일한 답이 된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
이것이 기도의 유일한 유익이다.
하지만 가장 완전하여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다.
본문2: 기도의 유익을 세상에서 찾는 실수
본문2: 기도의 유익을 세상에서 찾는 실수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의 대가를 사람과 세상에게서 찾는다면 이 완전한 유익을 잃게 될 것입니다.
기도 많이 하는 자로 인정 받기를 버리고, 몇 날 며칠이고 금식하며 기도했다는 그런 인정을 사람에게서 구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의 인정은 받을 수 있을지 모르나, 정작 하나님의 뜻은 거기에 없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기만족과 평안을 위해, 의미 없는 말을 중언부언으로 반복하지 마십시오.
“내가 이렇게 많이 기도했다. 내가 얼마나 치성을 드렸는가?”하며 자기만족을 스스로에게 기도의 대가로 주지 마십시오.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은밀한 중에도 들으시는 하나님께만 여러분 기도의 응답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아멘.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 어떤 행동이나 활동, 수고나 노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만이
바로 앞서 예수께서 가르치신 산상수훈의 감히 범접하기 어려웠던 완성된 율법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애써 원수같이 미운 그 사람이 사랑스러워질 때까지노려보지 마시고, 눈을 감으세요.
억지로 내민 사랑의 손을 부들부들 떨며 내밀지 말고, 두 손을 모으세요.
뒷걸음치고 싶은 발걸음 무겁게 앞으로 옮기지 말고 차라리 무릎을 꿇으십시오.
그리고 기도합시다.
주님,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의 중보자 되시는 예수의 이름을 의지하며 기도합시다
우리의 기도에 귀 기울이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의지마며 기도합시다
성령 하나님이 나의 본성으로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거룩,
즉 예수를 삶의 모든 순간에서 온전히 따르게 하시는 것을 기대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이 먼저 잘 안되어도, 일단 기도를 시작합시다. 그리고 계속 기도합시다.
기도 가운데 상대를 사랑스럽게 만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사랑을 채워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엘리야가 기도하였을 때 구름 한 점 없던 마른 하늘에 손바닥만한 구름이 생기고,
그 구름에 온 땅을 뒤흔드는 비구름이 되었습니다.
그러기까지 엘리야는 끝까지 기도하였습니다.
메말라 사랑하지 못하는 내 심령에, 손바닥만한 작은 사랑을 주시기를,
모든 허다한 것을 덮는 사랑의 비구름으로 덮으시기를 포기하지 말고 기도합시다.
언젠가 여러분의 모든 삶의 가장 작은 영역에서도 덮여졌던 거룩을 가린 수건이 벗어지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온전히 따르게 하심을 경험하는 거룩한 성도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하늘의 것을 구하게 하소서.” 후렴만
주신 말씀과 각자의 기도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님을 세번 간절히 부르며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