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장 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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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어려운 것인가?

본문 : 사도행전 1장 8절
오늘부터 해서 5주동안은 전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될 계획입니다. 전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명입니다라는 말을 많이 들으면서 살아갑니다. 그죠? 그런데 더 엄밀하게 말하면 그리스도인이 된 순간부터 우리는 전도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라는 표현이 더 정확합니다. 전도는 사명입니다. 라는 말도 맞지만 그 말을 들으면 마치 우리가 대단한 일을 완수해야 하는 일처럼 다가오기 마련인데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정확한 표현은 너희가 성령을 받게 되면 어떻게 살 수 밖에 없다고 말하냐면 증인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에는 무슨 열매가 맺어질까요? 포도열매가 맺어지죠. 무화과 나무를 심으면 무엇을 열매맺는 거예요? 무화과 열매가 맺어지게 되어있습니다. 그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안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죠. 마찬가지의 개념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인생에게서 맺어지는 열매는 무엇인가 하면 증인의 삶이고 더욱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삶 전체가 예수를 증거하는 전도자의 모습으로 살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우리는 전도하며 살아가는 것이 어렵게 다가올까요? 우리가 갖고 있는 전도에 대한 오해들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전도를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하면 예수님을 증거해서 예수님을 영접시키는 것이 전도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전도의 완성은 내가 예수를 전한 그 사람이 예배당에 와서 앉아있는 것까지가 전도의 완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렇게만 될 수있다면 정말 좋은 것이죠. 그러나 이것은 성경적인 전도의 본질은 아닙니다. 예수를 영접하여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는 일은 누구의 역사일까요?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성령님의 선하신 때와 방법에 따라 우리가 복음의 씨앗을 뿌렸을 때, 그 속에서 자라나고 열매를 맺게하시는 분은 성령님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마음이 급한 쪽은 누구일까요? 우리입니다. 지금 당장 성령님이 이 사람의 마음을 뒤집어 놓으셔서 어떤 전도의 열매를 보고 싶은 마음에 우리는 예수를 빨리 영접시키는 것까지가 전도라고 생각할 때가 많은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전도에 실패하고 좌절한 경험들이 상처로 우리 가운데 남아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전도의 본질을 알게 된다면 전도에 실패라는 말은 없는 것입니다. 흔히 말해서 “전도 못했어” “우리 가족, 내 자식들 전도해야 하는데 잘 안되네”이러한 표현은 어떤 마음에 짐을 갖고 있는가 하면 “내가 예수를 영접시키지 못했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전도의 본질은 무엇인가 하면 예수를 증거해서 영접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는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전도의 본질입니다. 내가 믿고 내가 경험한 그 구원의 은혜, 그 내가 만난 하나님에 대해 전하는 것이 전도이지, 마침표를 찍는 것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도는 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8에 사도바울이 이렇게 고백하지요.
고린도전서 1:18 NKRV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도라는 말은 다른 말로 길이라는 말입니다. 무엇을 향하는 길인가? 구원을 향하는 길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의 도가 무엇일까요? 십자가로 구원을 향하는 길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저마다 구원에 이르는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다원주의사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자기를 구원하기 위해서 쫓아 살아가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의 권세로 자기를 구원하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바벨탑 사건이 등장을 하죠? 그들은 왜 바벨탑을 쌓았습니까? 자신의 힘으로, 세상의 권세로 자기를 구원하고자 살아가는 것이 사람들이 믿고 살아가는 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이 자신을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힘과 권력이 자신을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람들로부터 얻게될 명예가 자신을 구원할 거라고 철썩같이 믿고 살아가는 그 사람들을 향해서 “거기에는 절대 구원이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구원이 있다”라고 선포하는 것이 전도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전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첫번째로 우리는 말로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1차원이고 직접적인 방법인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말로 전도를 하는 것에도 갖고 있는 한가지 오해가 있습니다. 우리는 말로 복음을 전할 때, 그 방식이 우기고 협박하고 떼를 쓰는 방식으로 할 때가 많다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1에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라는 이 구절 때문에 우리는 전도를 미련하고 무식하게 해도된다라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어” “예수 믿으면 좋아” “뭐가 좋은데” “좋다면 좋은거지 뭐가 말이 그렇게 많아” “예수 안믿으면 지옥가” 이런식으로 우기고 떼를 쓰고 위협하는 방식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을 정당화할 때가 많습니다. 죄송하지만 이것은 올바른 전도 방법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에서 말하는 전도라는 단어는 무엇으로 번역하는것이 정확한가 하면 “선포”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 선포라는 미련한 방법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는 말인 것이죠. 즉 먼저 우리가 전해야 할 그 말씀, 복음의 진리를 우리 안에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전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믿고 구원에 이르게 한 그 십자가의 복음이 무엇인지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한국교회가 가장 취약한 점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체험과 어떤 응답의 경험과 열심과 헌신은 참 많은데 복음의 진리를 알고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에는 큰 약점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제가 한번 설교 때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는데 너와 또 선배 전도사님과 함께 사무실에서 복음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또 고민을 하고 때로는 논쟁을 하고 있노라면 옆에서 꼭 심방전도사님이 뭐라고 말했는가 하면 “그렇게 복잡하고 믿는거 아니야 그냥 믿으면 되지 그렇게 복음을 다 이해하려고 하면 안돼”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무슨 의도로 하신 말씀인지는 잘 알아서 “알겠습니다” 이렇게 대답은 했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바 복음의 진리를 탐구하고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이 신앙의 기초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내가 자랑하는 복음”이라는 책에서 이부분을 너무나 날카롭게 지적을 하는데요 “기독교는 무엇보다 지성으로 깨닫는 진리입니다. 기독교는 이해를 요구하며, 그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가 바울의 말과 행동을 본받을 수 있게 합니다” 그러면서 더불어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몇 년 전에 한 저명인사가 이런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제 아버지는 이제껏 제가 알아 왔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물론, 그분은 기독교 교리는 단 하나도 믿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이 사람은 그리스도인일까요? 아닐까요? 선행도 행하고 이웃사랑도 하고 봉사도 많이 하고 헌금생활도 참 잘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기독교의 교리를 단 하나도 믿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착하고 심성좋은 종교인일 뿐인 것이죠.
사도바울은 고전 15:3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을 전하기에 앞서 우리에게 먼저 요구되는 것은 그 복음을 내가 온전히 알고 있는가입니다. 사람마다 설명을 잘 못할 수는 있습니다. 부끄러움이 많거나 말주변이 없는 경우, 유창하게 설명을 하지 못할 수도 있죠. 바울도 마찬가지였대요. 바울은 글쓰는데에는 소질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말주변은 없었던 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온전히 소유한 자의 선포를 통해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구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기둥속회 성도 여러분, 나이가 들면 점점 우리의 머리도 굳어지고 딱딱해지기 마련이지만, 우리가 복음을 이해하는 것은 머리가 좋다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역사라는 것을 신뢰하시기를 바랍니다. 더욱 복음을 알기를 갈망하고, 나를 구원한 그 십자가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며 또 성령님께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두번째는 간증으로 예수님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간증이라고 하면 꼭 병이 낫거나 기적이 나타나야 하는 강박이 있는데 간증은 무엇인가 하면 내가 만난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바울이 여러 도시들을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설교를 하는 장면이 등장을 합니다. 그 때, 바울이 자주 사용했던 전도 방법은 무엇이었는가 하면 자기 자신이 예수를 만난 이야기였습니다. 바울이 아직 사울이었을 때에, 그가 그리스도인들을 잡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향하는 그 길 위해서 예수님이 그 바울을 만나주셨습니다. 그 이야기는 사도바울의 가장 강력한 전도의 무기였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이전의 바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본래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는 예수를 핍박하던 자에서 예수를 전하는 자로, 복음을 멸시하던 자에서 복음을 위해서 멸시를 받는 자로 변화된 것입니다. 전도에 있어서 이것만큼 강력한 무기는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삶이 복음이 능력이라는 사실을 증거하는 확실한 자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다들 바울을 보며 “누가 그런 미련한 도를 믿나”라고 비아냥거릴 때, 그가 담대하게 들이밀 수 있는 것은 “여러분 저를 보십시오” “당신들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 간증은 나의 자랑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흔히 어떤 간증집회나 간증자들이 나와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대부분 예수님의 은혜를 빙자한 자기 자랑일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죠. 내가 믿음으로 얼마를 헌금했는데 하나님이 몇배로 되갚아주셨다. 내가 몇날 며칠을 금식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기도를 배로 응답해주셨다. 이것은 사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간증인 것입니다. 모든 간증은 내 삶 가운데 임하신 예수님을 드러내고 예수님을 자랑하는 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증을 듣는 이로 하여금 소망을 갖게 해야 합니다. “이런 나도 주님이 사랑해주시고 만나주셨는데 너라고 외면하실까” “나같은 죄인도 주님이 품어주시는데 그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셔” 사도바울이 간증을 통해서 하고싶은 말이 그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 뜻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끝없이 참아 주심의 한 사례를 먼저 나에게서 드러내 보이심으로써, 앞으로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본보기로 삼으시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 이러한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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