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고 충성된 종: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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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착하고 충성된 종: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삶
제목: 착하고 충성된 종: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삶
본문: 마태복음 25장 14-30절
본문: 마태복음 25장 14-30절
찬송: 335장 크고 놀라운 평화가
찬송: 335장 크고 놀라운 평화가
<말씀의 문을 열며>
<말씀의 문을 열며>
가끔 보다보면 부모님 말을 참 잘듣는 아이들을 보곤 합니다. 그런 아이들은 어찌나 성격이 온화한지 착하고 또, 순합니다. 이런 아이들을 순종적인 아이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러한 순종에도 질이 있습니다. 어떤 순종은 기꺼이하는 순종이 있고, 어떤 순종은 강제로 하는 순종이 있습니다. 짐승을 예로 들어봅시다. 맞으면서 훈련받은 짐승은 맞기 싫어서 순종합니다. 그러나 맛있는 간식을 먹으면서 훈련받은 짐승은 간식을 먹고싶어서 순종합니다. 순종할 때 마음이 다르죠. 억지로 하는 순종이 있고 기꺼이 하는 순종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순종을 한다고 해서 그게 다 기꺼이 하는 순종은 아닙니다. 어떨때는 기꺼이 하고, 어떨 때는 보상을 바라고 하며, 어떨때는 무서워서 말을 듣고, 또 어떨 때는 그냥 부모님이니까 순종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순종하는 아이들을 보고 '철들었다.'라고 말하는 부모는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왜그럴까요? 철이 들었다는 것과 순종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철이 든다는 것은 사전에 의하면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철든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철든 자식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자식은 대게 부모가 되어 봤을 때, 부모의 심정을 조금씩 알아가며 조금씩 철이 든다고 합니다. 그러니 어린 아이들이 아무리 부모님께 순종한다고 한들 철이 드려면 마음을 알아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주인의 마음을 헤아린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 달란트 비유의 핵심은 단순한 재물 관리가 아닌 주인을 아는 지식입니다. 달란트를 가지고 열심히 살아라! 이것은 1차원적인 생각입니다. 우리는 주인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마음을 헤아리기 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마음을 헤아리기 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주인양반이 타국으로 먼 길을 떠나기 앞서서 종 세 사람을 불러다가 각각 돈을 맡겼습니다.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 마지막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그때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생각합니다. '아, 주인께서 이 돈을 맡긴 이유는 이걸 잘 관리해서 결산하기 위함이구나!' 그래서 그 돈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처럼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전혀 딴 생각을 했습니다. '에이 나에게 왜 이런걸 맡긴거야 귀찮게~' 그러고서는 달란트를 가져다가 땅에 묻어두고 말았습니다. 이 세 종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의 차이입니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한 달란트 받은 종의 문제는 단순히 게으름이 아니었습니다. 본문 24-25절을 보십시오.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이 종은 주인에 대해 완전히 잘못된 이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인을 불공정하고 가혹한 사람으로 오해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에 대해 이런 잘못된 이미지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엄격하고 까다로워서 항상 우리를 벌하려고 기다리는 분이라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을 그런 분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분입니다.
짐승 훈련을 다시 생각해봅시다. 맞으면서 훈련받은 짐승은 주인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볼 것입니다. 그러나 간식으로 훈련받은 짐승은 주인을 기쁨의 대상으로 볼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우리의 믿음과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신앙생활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두려운 심판자로만 이해한다면, 우리는 한 달란트 종처럼 두려움에 얽매여 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분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종처럼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단순한 순종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할 수 있고, 영광돌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분을 바르게 이해하여 기쁨으로 반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창조 목적에 부합하는 삶을 '착하다'고 말씀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창조 목적에 부합하는 삶을 '착하다'고 말씀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31 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흔히 착하다라고 생각하면 성격이 좋다는 정도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착하다'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어 'καλός(칼로스)'는 단순한 도덕적 선함이 아닌 목적에 적합하다, 탁월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 '착하다'는 표현은 창세기에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여기에 나와있는 좋았더라! 이 말과 오늘 본문에서 읽은 착하고라는 말이 같은 말입니다. 이 단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최상품 과일에 붙이는 표현이라고 합니다. 칭찬 중에 최고의 칭찬, 모든 것을 통틀어서 좋을 때 이 표현을 씁니다.
천지 창조에도 이 표현이 쓰인 것입니다. 천지 만물이 하나님 말씀대로 지어졌을 때 좋다! 하셨습니다. 천지만물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순종했을 때 하나님이 심히 좋구나! 하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인이 다섯 달란트를 맡긴 종을 보고 '아, 이 종은 내 마음을 알았구나!' 싶었을 때 착하다!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악한 종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하셨습니다. 이 악하다는 말도 창세기에 등장합니다. 창세기 6:5-6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바로 사람들이 타락해서 악해졌을 때 이 악하다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탄식하셨습니다.
악하다는 표현은 창조의 목적을 빗나갔을 때 사용되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도 주인의 마음을 오해하고 어긋나게 생각해서 악하다는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착하다, 악하다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성격이 좋으면 착하다, 심성이 곱지 못하면 나쁘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창조하신 목적에 부합할 때 착하다!,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났을 때 악하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착하다'는 것은 주인의 목적과 의도에 부합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들은 주인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그들은 주인이 자신들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알았고, 그 기대에 부응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맞게 살아갈 때 우리는 '착한 종'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특별한 목적을 위해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그 목적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보시며 "착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 하나님은 작은 일에 신실한 자를 '충성되다'고 말씀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두 번째로 충성된 종아 할 때 무엇이 충성된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충성은 곧 신실하다는 말입니다. 그리스어 'πιστός(피스토스)'는 신뢰할 수 있다, 믿음직하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믿음직하게 일)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잘하였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믿음직하게 일하였다!"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충성은 믿음직스러운 자세, 곧 신실함입니다. 맡겨진 일을 신실하게 돌보고 이행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이 곧 충성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죽도록 충성하라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죽는 그 날까지 끝까지 신실하라!라는 뜻입니다. 믿음을 빼앗기지 말고, 사명을 빼앗기지 말고, 소명을 잃지 말고! 신실하게 충성되게 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신실한 사람은 나에게 주어진 일이 무엇인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내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이 무엇인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이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충성', '헌신' 하면 딱 떠오르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왕의 충신이나 군대의 병사들이죠. 성경에서는 구원받은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병사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디모데후서 2:2–4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병사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병사가 생각하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어떻게하면 상사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병사는 자기 삶에 얽매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먹을거 마실거 입을거 걱정하느라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잘먹고 잘 살 일을 계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병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입니다. 사명을 이행하는 사람입니다.
충성된 종의 특징은 작은 일에도 신실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적은 일에 충성한" 종을 칭찬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세상은 큰 업적과 화려한 성공을 추구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작은 일에 대한 신실함이 가장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25장 후반부에 나오는 양과 염소의 비유를 보면,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작은 일들, 작은 사람들을 향한 우리의 태도와 행동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실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작은 일에 충성할 때, 우리는 '충성된 종'이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는 놀라운 초대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마태복음 25장은 예수님의 말세 설교 중 일부입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조용히 나아와서 물어봅니다. "주님 마지막 날에는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그때 주님께서 마지막 날의 징조를 쭉 설명해주시다가 이 달란트 비유를 제자들에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단순한 재정 관리의 교훈을 넘어 종말론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주인이 돌아오는 날, 즉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우리는 어떤 종으로 발견될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배운 세 가지 핵심 교훈을 다시 한번 기억합시다.
첫째,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단순한 순종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종처럼 하나님을 오해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신뢰를 이해하고 기쁨으로 반응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둘째, "착함"은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하는 삶입니다. 세상적인 의미의 착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에 맞게 살아갈 때 우리는 참으로 '착한 종'이 됩니다.
셋째, "충성됨"은 작은 일에 신실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군사가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상관을 기쁘게 하려는 것처럼, 우리도 일상의 작은 일에 신실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들 모두 주인이 언제 오실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끝까지 신실하게 사명을 다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열 처녀 모두 다 신랑이 언제 올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늘 주님 오실 날을 준비했습니다.
우리도 주님이 언제 오실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실하게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알아가고, 그에 합당하게 반응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큰 일이 아닌 작은 일에도 신실하게 반응하는 삶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분의 창조 목적에 부합하며, 맡겨진 작은 일에 신실하게 반응하는 도초중앙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기도
말씀을 통해서 오늘도 말씀하시는 하나님, 오늘 나눈 말씀을 통해 저희에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저희가 단순히 규칙을 지키는 종이 아니라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을 오해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깊이 알아가며 기쁨으로 반응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우리가 창조된 목적에 합당한 삶을 살게 하시고, 일상의 작은 일에도 신실하게 반응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언젠가 주님을 뵙는 그 날,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의 말씀을 듣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소서.
이 말씀이 우리 삶의 모든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 되게 하시고, 이 말씀이 우리 삶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이기게 하는 뜨거운 능력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