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30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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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하신 하나님
공평하신 하나님
1 모세가 장막 세우기를 끝내고 그것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하고 또 그 모든 기구와 제단과 그 모든 기물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한 날에
2 이스라엘 지휘관들 곧 그들의 조상의 가문의 우두머리들이요 그 지파의 지휘관으로서 그 계수함을 받은 자의 감독된 자들이 헌물을 드렸으니
3 그들이 여호와께 드린 헌물은 덮개 있는 수레 여섯 대와 소 열두 마리이니 지휘관 두 사람에 수레가 하나씩이요 지휘관 한 사람에 소가 한 마리씩이라 그것들을 장막 앞에 드린지라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5 그것을 그들에게서 받아 레위인에게 주어 각기 직임대로 회막 봉사에 쓰게 할지니라
6 모세가 수레와 소를 받아 레위인에게 주었으니
7 곧 게르손 자손들에게는 그들의 직임대로 수레 둘과 소 네 마리를 주었고
8 므라리 자손들에게는 그들의 직임대로 수레 넷과 소 여덟 마리를 주고 제사장 아론의 아들 이다말에게 감독하게 하였으나
9 고핫 자손에게는 주지 아니하였으니 그들의 성소의 직임은 그 어깨로 메는 일을 하는 까닭이었더라
오늘 본문은 성막이 세워진 후, 이스라엘 각 지파의 지도자들이 예물을 드리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 예물은 단순히 자신들이 드리고 싶은 것을 드린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실제로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성막을 옮기고 봉사하는 데 꼭 필요한 실용적인 예물, 곧 수레 6대 와 소 12 마리가 드려졌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묻고, 공동체의 필요를 살펴 드린 예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예물을 받으시고, 모세를 통해 지혜롭게 나누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레위 지파 안의 세 가족에게 나누도록 하셨습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의 헌신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것을 드리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헌신은 내 열심보다, 하나님의 필요에 맞추는 순종입니다. 마치 몸의 지체가 각기 다르게 쓰임받듯, 우리의 헌신도 서로 다르지만 모두가 귀한 것입니다.
게르손 자손은 성막의 휘장과 덮개 등 부드럽고 가벼운 물건들을 운반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수레 2 대, 소 4 마리가 주어졌습니다. 이들은 성막의 덮개를 정리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했기에, 그 사역의 특성에 따라 적절한 자원이 필요했습니다.
므라리 자손은 널판, 기둥, 받침대 등 무겁고 많은 구조물들을 운반했습니다. 성막의 구조를 담당했던 이들에게는 더 많은 짐을 운반할 수 있는 수레 4 대와 소 8 마리가 주어졌습니다. 이는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계산하신 공급이었습니다.
그리고 고핫 자손은 법궤, 제단 등 성소의 가장 거룩한 기구들을 맡았는데, 이들은 수레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지성물을 수레에 싣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직접 어깨에 메도록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거룩한 것을 다루는 자들에게 더 많은 거룩한 책임을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육체적으로는 더 힘들 수 있지만, 영적으로는 가장 무거운 사명이었습니다.
[공평의 하나님 설명]
하나님은 단순히 수를 똑같이 나누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짐의 무게와 특성에 따라, 각자의 역할에 따라 다르게 공급하셨습니다. 더 무거운 짐을 맡은 자는 더 많은 수레를, 더 가벼운 짐을 맡은 자는 적게 받았습니다. 필요에 따라 나누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공평'입니다. 하나님은 평등하게, 즉 똑같이 나누는 분이 아닙니다. 각 사람의 사명과 필요에 맞게 정확하게 나누시는 분입니다. 이것은 불공평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공정한 분배입니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맞는 몫을 주셨고, 그것이 바로 최선이었습니다.
[평등과 공평의 구분 예화]
아이 셋이 담장을 넘어서 야구 경기를 보려 합니다. 키가 다른 세 아이에게 모두 똑같이 나무 상자를 하나씩 나눠준다면, 가장 키 작은 아이는 여전히 경기를 볼 수 없습니다. 이게 바로 평등입니다. 똑같이 나누는 것이지만,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공평은 다릅니다. 키 큰 아이에겐 상자가 필요 없고, 중간 키의 아이에겐 하나, 작은 아이에겐 두 개를 줘서 모두가 경기를 볼 수 있게 하는 것. 이게 공평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각자의 필요를 고려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분배는 항상 목적이 있고,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 안에서 공평의 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달란트 비유를 떠올려 봅시다. 어떤 사람에겐 5달란트, 어떤 이에겐 2, 또 어떤 이에겐 1달란트를 맡기셨습니다. 그 기준은 "각자의 능력대로"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각각에게 맡긴 것을 기준으로 평가하셨지, 양을 비교하지 않으셨습니다. 5을 5으로, 2를 2로 남긴 자 모두에게 동일한 칭찬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평입니다.
또, 만나를 내리실 때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많이, 어떤 사람은 적게 거두었지만, 각자의 가족 수대로 정확하게 먹을 만큼 거두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형편과 필요를 정확히 아시고, 필요한 만큼만 공급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지나치게도, 모자라지도 않게 주시는 하나님의 세밀한 공급입니다.
[우리의 적용]
우리는 서로의 수레를 비교하며 낙심하거나 교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감당할 사명을 아시고, 그것에 딱 맞는 은혜와 자원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내게 주어진 것이 많아도 그것은 더 큰 짐을 위한 것이고, 적어도 그것은 가벼운 사명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자리에는 그만큼의 책임과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내가 받은 수레가 작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그것은 정확하고, 충분하고, 완전한 공급입니다. 그리고 그 수레를 끌고 가는 여러분의 섬김을 하나님은 반드시 기억하십니다. 사람의 눈에 드러나지 않는 섬김일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때로는 내가 원하지 않았던 자리일 수도 있고, 내가 하고 싶었던 사역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맡기신 자리라면, 그 안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신은 나의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필요에 응답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드리는 섬김이 하나님께는 향기로운 제물이 됩니다.
이것은 교회 안의 사역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의 터전, 곧 직장, 가정, 학교, 사회 속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어떤 이에게는 직장에서의 책임이 큽니다. 사람을 관리하고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런 분에겐 더 많은 수레와 소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반면, 누군가는 가정 안에서 아이를 돌보고, 묵묵히 집안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지만, 그 또한 하나님께서 맡기신 귀한 사명입니다.
학생은 공부라는 수레를 끌고, 직장인은 책임이라는 수레를 끌며, 부모는 자녀 양육이라는 수레를 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각자의 위치에서 반드시 필요한 만큼의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남의 수레를 부러워하지 않고, 내게 주신 수레를 감사함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그 자리에 두신 이유를 믿으며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진짜 믿음의 삶입니다.
[맺는말]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입니다. 사람마다, 가정마다, 교회마다 다르게 역사하시지만, 결코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내 삶에 주어진 형편과 자리가 하나님의 정확한 분배임을 믿고, 감사함으로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섬김이 비록 작아 보여도, 하나님 앞에서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무게를 아시고, 내 길을 아시며, 나에게 꼭 맞는 수레를 주신 분이십니다. 그 수레를 기쁘게 끌고 가는 자, 바로 그 사람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묵묵히 수레를 끌고 가는 자가 됩시다. 게르손처럼, 므라리처럼, 그리고 고핫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짐, 주신 자원, 주신 자리에서 충성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시고 사용하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