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28 금요기도회: 사무엘하 14:25-33
Notes
Transcript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금요기도회 자리로 불러주시고,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게 하심 참으로 감사합니다. 한 주도 무사히 저희를 지켜주시고, 한 주를 마무리하는 오늘 저희가 다른 것을 할 수 있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금요일을 즐기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지만, 저희는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이 자리로 나아왔습니다. 저희의 모든 염려와 간구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니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주님의 말씀을 깨닫기 위해 먼저 나아갑니다. 저희에게 날마다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이 말씀을 잘 깨달을 수 있도록 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이 말씀대로 저희가 삶으로 살아낼 수 있도록 능력도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삶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저희가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함께 하실 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하 14:25-33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그의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연말마다 깎았으며 그의 머리 털을 깎을 때에 그것을 달아본즉 그의 머리털이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이었더라
압살롬이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았는데 딸의 이름은 다말이라 그는 얼굴이 아름다운 여자더라
압살롬이 이태 동안 예루살렘에 있으되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압살롬이 요압을 왕께 보내려 하여 압살롬이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 부르되 그에게 오지 아니하고 또 다시 그에게 보내되 오지 아니하는지라
압살롬이 자기의 종들에게 이르되 보라 요압의 밭이 내 밭 근처에 있고 거기 보리가 있으니 가서 불을 지르라 하니라 압살롬의 종들이 그 밭에 불을 질렀더니
요압이 일어나 압살롬의 집으로 가서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 종들이 내 밭에 불을 질렀느냐 하니
압살롬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일찍이 사람을 네게 보내 너를 이리로 오라고 청한 것은 내가 너를 왕께 보내 아뢰게 하기를 어찌하여 내가 그술에서 돌아오게 되었나이까 이 때까지 거기에 있는 것이 내게 나았으리이다 하려 함이로라 이제는 네가 나로 하여금 왕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하라 내가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는 것이 옳으니라 하는지라
요압이 왕께 나아가서 그에게 아뢰매 왕이 압살롬을 부르니 그가 왕께 나아가 그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어 그에게 절하매 왕이 압살롬과 입을 맞추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산불로 인해 지금 대한민국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요. 다행히도 가장 최근에 접한 소식은 울산에서 일어난 산불은 6일만에 완전히 진화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디 우리나라에 자비를 베풀어주셔서 나머지 산불도 얼른 진화가 되길 바랍니다.
오늘도 말씀을 먼저 듣고 같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사무엘하 14장의 말씀으로 다윗과 압살롬에 대한 말씀입니다. 압살롬은 누이 다말이 암논에게 강간당하자 암논에게 복수를 행하고 그술로 도망갔었는데요. 그술에서 3년을 지냈을 때 요압이 다윗에게 청하여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다윗은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긴 했지만, 그의 반응은 압살롬을 아꼈던 전과 달리 반응이 좋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인 24절에서 압살롬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다윗을 만날 수 없는 가택연금을 당한 것 같은데요. 이것은 다윗이 압살롬을 보고 싶지 않은 것이었고, 압살롬에게 자신의 왕위를 물려줄 생각이 없다는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암논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오늘 본문에서 또 요압에 의해 다윗과 압살롬이 화해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윗의 실수이며,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이후에 영적으로 얼마나 어두워졌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무엇인지 깨닫고, 말씀을 두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25-26절부터 보시면 압살롬의 용모에 대해서 사무엘하 저자는 알려줍니다. 압살롬은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어서 온 이스라엘 중에 가장 아름답다면서 그의 용모를 극찬합니다. 이것은 사울을 떠올리게 만들면서 백성들이 압살롬을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용모가 빼어난 사람을 왕으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압살롬은 백성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백성들은 압살롬이 다윗의 왕위를 물려받을 사람으로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압살롬은 머리털이 아주 많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에서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에서가 어떤 위치였습니까? 바로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은 아들이었습니다. 이 압살롬은 에서처럼 아버지인 다윗에게 사랑을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압살롬은 백성들에게도 칭송을 받았고 아버지 다윗에게도 사랑을 받던 아들이었습니다. 백성들도 원하고, 왕이자 아버지인 다윗도 그를 사랑합니다. 그 누구도 압살롬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단 한분에게 이 압살롬은 거부되었습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26절에서 압살롬은 자신의 머리가 길어서 잘랐다고 합니다. 율법에 따르면 머리카락을 잘라서는 안됩니다. 더구나 압살롬이 머리카락을 자른 이유는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머리카락을 자른 것이 아니라 머리카락이 무거워 불편해서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잘랐습니다. 압살롬이 머리카락을 자른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전혀 연관이 없는 행동입니다. 마치 사울이 진멸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진멸하지 않은 모습이 여기에서 겹쳐보이기도 합니다. 즉, 압살롬의 삶에서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압살롬을 왕으로 원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이 압살롬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실 생각이 전혀 없으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자신이 기여코 왕이 되고자 합니다. 28절에서 압살롬은 2년 동안 다윗을 보지 못해 자신에게 올 왕위가 위태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대로 가다간 자신이 왕이 되지 못하겠다는 위기감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압살롬은 다윗과 관계 회복을 하고자 합니다. 자신이 직접 만날 수 없기에 압살롬은 요압을 통해서 다윗을 만나고자 합니다. 그러나 요압은 압살롬을 그냥 만나주지 않습니다. 그러자 압살롬은 한 가지 꾀를 내게 됩니다. 바로 요압의 밭을 불태워 그가 자신에게로 찾아오게끔 만드는 방법이었습니다. 이것은 압살롬이 율법을 이용하는 행동입니다. 율법에 따르면 압살롬이 요압의 밭을 불태운 것에 대한 배상을 해야 했고, 요압이 이 배상금을 받기 위해서는 압살롬을 찾아와야 했습니다. 그래서 압살롬은 이것을 이용하여 자신이 요압의 밭을 배상하는 것보다 다윗을 만나 왕위를 계승받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생각하고 이것을 실행하였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율법을 이용하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본래 배상하도록 하는 율법은 손해받은 이웃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에게 배상하고, 그와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기 위한 하나님의 의로운 행위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자신에게 무엇이 더 이익인지 손익 계산을 한 뒤에 이 율법을 이용하는 방법을 취합니다. 다시 한번 압살롬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분의 목적에 따라 율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율법을 이용합니다. 압살롬은 율법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 위에 군림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먹혀 들어갔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요압은 결국 압살롬에게 따지고 배상받기 위해 압살롬을 찾아갑니다. 요압은 압살롬에게 찾아가 “어찌하여 너의 종들이 나의 밭에 불을 질렀느냐”하며 따집니다. 그리고 압살롬은 자신이 이런 행동을 한 이유는 자신이 다윗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차라리 그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지 않은 것이 나았을 것”이라고 요압을 시켜 대신 말하게 하여 다윗의 마음에 연민을 불러 일으키면서 다윗의 마음을 이용하여 자신의 권리를 복권시키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다윗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압살롬에게 왕위를 주지 않으려던 그의 태도가 계속 유지되었을까요? 그랬다면 참 좋았겠지만,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33절을 보시면 다윗은 결국 압살롬을 왕궁으로 부르고, 압살롬이 땅에 대어 절하자 압살롬과 입을 맞추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바로 왕자로서 압살롬에 대한 모든 권리가 회복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 압살롬에게 왕위를 계승하지 않겠다는 뜻은 압살롬을 만나자 변하였습니다. “그술에서 사는 것이 더 낫습니다.”라고 말하는 이 압살롬의 말에 다윗의 마음은 녹아버렸고, 암논을 죽인 것에 대한 압살롬의 죄를 단숨에 용서해주었으며, 압살롬에 대한 모든 권리를 복권시켜줍니다.
이런 다윗의 모습은 다윗이 지금 얼마나 영적으로 무뎌지고 어두워졌는지를 보여줍니다. 밧세바를 범하기 전의 다윗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로 다스렸습니다. 그는 무엇이 올바르고 그른지 너무나 잘 알았습니다. 심지어 모두가 하나님의 뜻이라며 사울을 죽일 수 있는 현실적인 기회 앞에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여선 안된다는 하나님의 뜻을 잘 따를 정도로 영적인 민감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다윗은 영적인 장님이 되어 올바르게 이스라엘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으며 아버지로도 가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압살롬은 결코 왕이 되어서는 안되는 인물입니다. 압살롬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전혀 없고, 사울과 에서의 길을 걸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아들이며 이 아들이 호소하는 연민 때문에 복직시킵니다. 영적으로 민감하지 않습니다. 특히나 지금 이 압살롬이 다윗에게 보이는 태도는 정말 진심으로 다윗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것이 아닐 겁니다. 압살롬의 관심은 온통 왕위에 있기 때문에 어떻게하면 왕위를 계승받을지만 고민하고 있습니다. 용모가 아름답고 남자다워 백성들이 원하는 왕입니다. 아버지에게 사랑받는 아들입니다. 압살롬이 왕이 되지 못할 이유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압살롬이 왕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입니다. 압살롬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삶을 살기 때문에 그는 결코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압살롬이 암논을 죽인 것에 대해 반드시 권징해야 하며, 암논을 죽임으로 왕위 계승에서 탈락된 것을 계속 이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밧세바를 범한 그 잘못된 선택과 판단이 밧세바를 범한 죄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이렇게 그 이후의 모든 영적인 시야가 흐려지도록 만든 영향을 주었습니다. 백성들을 주님의 공의와 판단으로 다스리지 못하였고, 자신의 가정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결과를 불러오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이상적인 왕인 다윗에게서 이런 모습이 보이며 하나님을 전혀 섬기지 않는 압살롬이 왕위를 계승할 가능성이 높아지니 이스라엘의 앞날이 어둡기만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도 이 이스라엘을 지키고 보호하시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다윗과 맺은 그 언약을 기억하시고 다윗의 왕위를 견고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잊지 않으시고 이 이스라엘을 지키고 보호하십니다. 15장에서 압살롬이 결국 자신이 왕위를 찬탈하는 반역을 저지르게 되지만, 이 압살롬을 막고 다윗의 왕위를 지키셨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앞날은 결코 어둡지만 않습니다. 다윗에게도 아직 소망이 있으며 아직까지 늦지 않았습니다. 지난 날을 돌이켜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하나님의 공의와 판단으로 이스라엘을 제대로 다스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왕위를 견고하게 하시겠다는 이 약속은 결코 방종을 불러일으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약속대로 이루어질 것에 동참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이 나라를 다스리려고 최선을 다하게 될 것입니다. 압살롬이 왕이 되어 만들려고 했던 나라는 어쩌면 세상의 관점에서는 좋은 나라, 강성한 나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나라가 좋은 나라가 아니라, 악한 나라라고 평가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좋은 나라는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그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다스리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강성한 나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의 왕위와 이스라엘을 굳건하게 지키고 계신 분은 결국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이상적인 왕인 다윗마저도 이런 연약한 모습을 보인 한 인간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러나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이 다윗의 나라를 지키셨습니다. 더 나아가 이 다윗 언약은 예수님에게서 완전히 이루어졌고, 예수님께서 다스리시는 이 교회 또한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무엇보다 이 교회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스리고 죄가 어느 한순간에라도 틈타지 못하게 힘써야 합니다. 이 교회를 하나님께서 굳건하게 지키신다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시겠지”라는 방종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교회를 지키시니 그분의 말씀과 통치로 이 교회를 바르게 다스려야 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만듭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의 직분자가 이것을 따라 교회를 다스리는 직분자가 되도록 기도하며 힘써야 합니다. 압살롬의 아름다운 외모는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영향을 줍니다. 직분자의 외형도 뜻하지만, 그 직분자가 가지고 있는 다른 외적인 모습들, 즉 능력이나 수려한 언변이나 뛰어난 용인술 등등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수요강론을 통해 배웠듯이 교회 직분자를 뽑을 때 가장 중점으로 두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통치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느냐에 두어야 합니다. 이것에 부차적으로 직분자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능력이 쓰여야 합니다. 이것이 바른 교회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의 개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아니라 죄가 우리를 다스리게 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유익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과 통치를 이루는 교회가 되도록 모두가 힘쓰는 교회가 되는 복된 새순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놓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압살롬의 모습은 사울과 에서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는 결코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에게 그 길을 열어주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미래가 어두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이 이스라엘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과 통치를 이루는 교회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특별히 우리 교회의 직분자가 이것을 이루는 직분자가 되게 하시고, 앞으로의 직분자 선출에 있어서도 중점을 두고 뽑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더 나아가 우리의 삶을 통해서도 우리가 다른 것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백성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