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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처럼 약속을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자
에녹처럼 약속을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자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지난 주에 우리는 살았다, 낳았다, 죽었다는 주제로 말씀을 들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로 인류는 두 부류로 구분됩니다. 한쪽은 뱀의 후손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을 떠나서 자신들이 죽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준비하고 죽음과 대적하고 이 땅에서 평안히 더 잘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인생을 가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또 한 분류는 여자의 후손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목적이 여자의 후손을 믿으며 기다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담의 족보에 들어서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갑니다. 뱀의 후손은 세상적으로 탁월한 인생을 살아가지만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분명 이후의 천국과 지옥에서 다른 삶의 결과를 서로가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아담의 족보에 탁월한 위로를 주는 에녹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입니다. 여름성경학교를 경험한 사람들은 대부분 압니다. 이 땅에서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한 두 명이 있습니다. 엘리야와 에녹이지요. 오늘 본문에 등장한 에녹입니다. 에녹은 분명 의미가 있는 인물입니다. 5장의 족보에 반복되는 말은 살고 낳고 죽었다입니다. 에녹에게는 죽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죽었다고 하지만 에녹은 죽지 않았습니다. 왜 에녹은 죽지 않았을까요? 어떤 삶을 살았기에 에녹이 죽지 않았을까요?
지난 주에 보여드린 족보 사진을 기억하십니까? 에녹은 아담의 죽음을 보았습니다. 셋의 죽음도 보았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가인의 족보의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아담과 셋의 죽음만 기억할 것입니다. 그 때에 에녹이 죽지 않고 하나님이 데려가셨습니다. 이 사실은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에녹의 삶이 아담과 셋과 다르게 던지는 메시지가 있는데 바로 죽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에녹의 삶을 한 문장으로 말합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그런데 이 사실을 두 번이나 말합니다. 22절에 므두셀라를 낳은 후에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다고 말합니다. 또한 24절에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갔다고 말합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과 동행하고 싶어합니다.
동행이라는 말은 원어로 보면 같이 걷는 것입니다. 여러분 같이 걷는 것 좋습니까, 싫습니까? 다르게 물어볼까요? 같이 걷는 것 편합니까 불편합니까? 장단점이 있습니다. 2인 3각 게임 알죠? 그게 동행입니다. 동행은 함께라서 좋기도 하지만 불편하기도 합니다. 마음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동행은 정말 불편합니다. 내가 너무 불편한 사람과 여행간다 생각해 보세요. 생각만 해도 불편하지요. 하나님과의 동행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마음이 다르면 불편한 것이 동행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마음을 나에게 맞춰야 할까요, 내가 나의 마음을 하나님께 맞추어야 할까요? 답은 너무 쉬운데 너무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몰라서 하나님께 맞추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맞추기 싫어서 맞추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죠. 하나님은 언약을 통해 자신을 우리에게 매셨습니다. 우리의 발을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에게 매셨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다른 쪽으로 간다면 불편 그 자체입니다.
호2:6-7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그가 그 사랑하는 자를 따라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그들을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그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고 기록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마음이 일치하지 않을 때 하나님이 그냥 두시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막힙니다. 담을 쌓아 그길로 가지 못하시게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의 뜻을 얼렁 깨닫고 돌아서야 합니다.
동행을 우리 인생에서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결혼입니다. 한 사람과 300년 동안 동행한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결혼해서 300년간 산다면 과연 누가 결혼하겠습니까? 그게 동행입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은 300년이 아니라 영원입니다. 에녹은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이 데려가셨습니다. 그렇다면 에녹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여전히 하나님과 동행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데려가셨다는 것은 죽음을 보지 않았다는 것인데 죽지 않고 에녹은 뭐하고 있습니까? 더 철저하게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을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에녹과 다를까요? 오늘 본문은 우리도 에녹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떻게요? 일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죽으면 천국에서 영원히 동행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에 있지 이 땅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으면 이제 천국에서 혼자 자유롭게 살아야지, 아닙니다. 천국에서 주님과 더 완벽히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을까요? 히브리서 11:5 에“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고 기록합니다. 바로 믿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나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구원받은 자로서 이 땅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구원받은 성도가 이 땅에서 행해야 할 것을 이렇게 정의하십니다. 요한복음 6:28–29 “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딱 한 마디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없습니다. 왜 오늘 본문이 에녹이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했는지를 기록하지 않습니까? 성경이 그것을 한 마디로 말합니다. 여자의 후손을 믿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도 동일합니다. 우리는 무엇인가 큰 것을 이루거나 뭔가 탁월한 업적을 쌓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아닙니다. 그저 예수님을 잘 믿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이 영생이요 우리의 할 바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의 죄악이 날마다 우리를 흔들고 불안하게 하고 어렵게 해서 우리가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것에 날마다 실패하는 것을 스스로 아실 것입니다. 이리 흔들리고 예수님을 잘 믿는 것 같은데 불신자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고, 그러다가 슬럼프에 빠지고.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이러다가 천국에 가지 못할 거 같고. 우리의 인생 아닙니까? 그러니 성경은 우리에게 오직 예수님을 믿을 주문합니다.
에녹이 몇 세에 승천했습니까? 365세입니다. 365라고 하면 무엇이 떠 오릅니까? 그죠? 그러니까 성경이 그렇게 적어놓은 것은 의미가 있는 겁니다. 에녹의 수명을 35년으로 기록한 것은 에녹의 삶에 그 전체 여정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에녹의 삶은 1년이 365일인것처럼 그의 삶의 전체 여정이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했다는 의미입니다.
아무리 에녹이 뛰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는 육신을 입고 살았던 우리와 동일한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365일 온전한 삶이 가능할까요? 불가능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바로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았기에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해 그의 의를 받은 사람이 그런 자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과 동행을 하게 된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특징이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 배우는 것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이 자기를 뜨겁게 데우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명의 제자들에게 말씀을 풀어주니 어떤 현상이 나타났습니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동시에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주님을 증거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 내기를 즐거워할 뿐만 아니라 에녹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을 증거하고 싶어 못 견디는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에녹의 이야기를 대하면서 그가 이 땅에서 하나님과 동행한 사실보다는 그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한 것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리고는 어떻게 하면 에녹처럼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그러나 성도가 육신의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하는 것은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도에게 있어 육신의 죽음이란 죄를 그치고 단지 영생으로 통과하는 문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이후를 우리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죽음은 순간이며 그 후에는 또 다른 영원의 삶이 펼쳐져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성도가 지금 이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죽음 뒤에 이어지게 되는 영생을 살고 있는가 입니다. 성도는 지금 이 세상에서 예수를 믿고 살아나서 이미 영생의 맛을 보고 있어야만 영생으로 이어지는 승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주일날 예배당이나 대충 다니면서 살다가 천국에 가서는 온전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 수 있을거라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영생은 다른 말로 하나님 나라의 삶은 이 땅에서 시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착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을 위해 가정도 버리고 직장도 버리고 수도원이나 기도원에 올라가 자기들끼리 앉아서 집단생활하는 것이라 믿고 그런 삶을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착각입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고 300년을 자식을 낳으며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동행하는 삶이 무엇인지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이미 일상생활 속에서 시작이 되어 영생으로 연결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에녹은 자식도 없고 가정도 없고 직장도 없는 수도사의 인생을 산 것이 아닙니다. 그는 아이들의 아버지였고 한 여자의 남편이었고 한 집안의 가장이었으며 한 부족의 족장이었고 패역한 죄인들 사이에서 열심히 전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은 그렇게 우리의 일상 생활속에서 펼쳐져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나라의 삶의 원리를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펼쳐내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의 일상 속에서 그 영생의 삶, 하나님과 동행의 삶을 사시면서 그 삶이 주는 행복과 기쁨을 맛 보셔야 합니다. 거기서 소망이 자꾸 굳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냄비 신앙이 있습니다. 냄비는 무엇입니까? 노란 양은 냄비 아시죠? 물을 끓이면 빨리 끓습니다. 그런데 또 빨리 식습니다. 신앙생활을 그렇게 합니다. 갑자기 확 끓어오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은 그렇게 되지가 않아요. 신앙생활은 꾸준히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이지 건너뛰거나 지름길이 없습니다. 또한 혼자 갈 수도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단기 속성 과정이 없습니다. 단기속성으로 하려는 것이 문제입니다. 40일특별새벽기도, 100일 철야. 물론 대단하지요. 그러나 신앙생활은 한 발 한 발입니다. 무언가 특별한 은혜를 받고 갑자기 레벨업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런것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런 신앙생활은 없습니다. 그저 한 걸음씩 내 딛는 것입니다. 기본에 충실해야 합니다. 에녹은 우리에게 더 좋은 곳으로 가보자 하고 목표를 지정하고 산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의 삶을 한 발 한 발 내 딛으며 살았습니다. 천국에서 에녹은 뭐 했을까요? 여전히 하나님과 동행하며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오. 다른 모든 좋은 것을 거절하세요. 신앙생활을 속성으로 하는 것, 아니면 그저 한 걸음씩 되니까 지금도 가고 있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한 걸음 내 딛으세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지 말고 뭔가 대단한 힘을 얻으려고 하지도 마세요. 그저 지금 하나님만을 의지하시고 한 걸음씩 살아가세요. 자꾸 다른 것 바라보면 하나님과의 동행을 놓치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길을 걷는데 자꾸 다른 남자나, 여자를 바라보면 그 사람이 기분이 어떨까요? 관계가 깨어지고 맙니다. 여러분은 지금 누구와 동행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입니까? 돈입니까? 먹고 살기 바쁨입니까? 다른 그 무엇을 핑계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과 한 걸음씩 함께 하세요.
그렇다면 에녹이 승천한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는 에녹처럼 우리도 승천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승천하지 못하는 것은 에녹처럼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 안해보셨습니까? 엘리야나 에녹과는 우리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질문을 하나 드려보겠습니다. 우리와 에녹의 삶이 다릅니까? 물론 이 땅에서 삶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죽고 나서는요? 우리와 에녹의 결과가 다릅니까?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에녹이 승천했다고 우리보다 나은 천국을 누립니까? 우리는 이 땅에서 승천하지 못하고 죽고 나서 부활했다고 해서 에녹보다 조금 못한 천국을 누립니까? 전혀 그렇지 않죠. 그렇다면 결과가 같다면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에녹을 본 받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은 왜 에녹의 승천을 기록한 것일까요? 한 사람 승천한 사람을 믿으라는 것이죠. 누구입니까? 에녹이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에녹의 승천은 아담과 셋의 죽음을 목도한 사람에게 소망이 되었습니다. 아담과 셋이 죽었어도 에녹처럼 이 땅에서 소망을 품으며 살 수 있구나 하고 배우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에녹처럼 소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도 에녹처럼 천국에 갑니다. 그러니 에녹의 기사는 우리에게 에녹을 본 받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살면 죽어도 에녹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재의 삶이 에녹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에녹이라는 것입니다. 에녹처럼 죽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지만, 에녹처럼 주님과 동행하면, 즉 예수님을 믿으면 너희가 지금 에녹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에녹입니다. 에녹처럼이 아니고 우리도 에녹으로서 죽어도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 예수님을 믿으며 사는 것입니다. 에녹과 동일한 믿음을 소유할 때에 우리는 죽어도 에녹처럼 천국에 있습니다. 죽든지 살든지 차이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 있느냐 입니다. 여자의 후손을 믿는 것, 그것은 단기간 속성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하루하루를 주와 동행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맞추고 하나님과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내 딛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한 걸음씩 동행함으로 에녹공동체가 여기 있다고 큰사랑교회가 에녹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는 모든 성도들 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