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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요한1서 4:7–11 NKRV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사랑합니다! 꿈사땅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어떤 것을 떠올리는가? 요즘 넷플릭스에서 핫한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떠오르는가? 나는 드라마 볼 시간이 없어서 방학되면 몰아서 보려고 한다. 아무쪼록 드라마나 영화, 가요에서 자주 사랑에 대해서는 보통 남녀 간의 뜨거운 사랑을 많이 다루곤 한다. 병원에 관련한 영화나 드라마 작품을 보면 꼭 빠지지 않는 내용은 병원이 배경이면 병원에서 남녀의 사랑 스토리가 등장한다. 법원이 배경이면 법원에서 다루는 남녀간의 사랑, 군대가 배경이면 군대에서, 학교면 학교에서 회사면 회사에서 조선시대 배경이면 사극에서, 한국 사람이 실수로 북한에 잘못 들어가 버렸는데, 사랑에 빠진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 외에도 사랑을 떠올릴 때 부모와 자녀 간에 사랑을 떠오르기도 하고, 친구 간의 사랑도 떠오르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 사회에서는 사랑이란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많은 예술 작품들을 통해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다. 생각해보면 사랑은 눈에 보이는가? 사랑에 빠진 사람은 있어도 사랑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중요한 것이지만, 정작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사전적으로 ‘사랑’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이렇다. ‘사랑 또는 애정은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히 좋아하며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자신의 모든 걸 내어 줄 수 있는 감정, 또는 그런 관계나 사람을 뜻하는 단어’라고 한다. 전도사님은 여기서 작은 사랑과 큰 사랑을 구분하고 싶다. ‘진심으로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히 좋아하는 것’은 작은 사랑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그러나 다음으로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자신의 모든 걸 내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최고의 사랑, 큰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전도사님이 방금까지 말하면서 계속 강조하는 것과 오늘 읽은 말씀 요한1서에서 자주 반복하여 강조하는 핵심 단어가 무엇인가? 그렇다. 이번 주제는 ‘사랑’에 대해서 여러분들과 나누려고 한다. 오늘 7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자.
요한1서 4:7 NKRV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여기서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부르는 것은 사랑은 입은 사람, 사랑을 받은 사람을 부른다. 그러면 누구를 지칭해서 부르는 말인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배우고 누리고 있는 교회, 그러니까 여러분들에게 사도 요한이 우리를 부르는 말이다. 그 요한 사도가 우리에게 무엇을 하자고 말하고 있는가? ‘서로 사랑하자’고 도전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랑이 누구에게 속했다고 말하고 있는가? 하나님께 속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사랑의 근본은 누구이신 것인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사랑할 줄 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랑하면 누구를 안다고 하는 것인가? 하나님을 알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도 요한은 그렇다면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요한1서 4:8 NKRV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를 알지 못한다고 하는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무엇이기 때문에? 사랑이시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이 아니라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는가? 100% 사랑 그 자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사랑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은 곧 누가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인가?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증거이고, 사랑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은 내 안에 누가 계시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기에 사랑하며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왜 하나님이 사랑이실까? 요한 사도는 곧 바로 질문에 대답을 해준다.
요한1서 4:9 NKRV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 누구를 보내셨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주셨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굳이 살리실 이유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살리시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실제로 생명까지 내어주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진짜 사랑을 나타내셨다. 예수님도 자기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만큼 큰 사랑이 없다고 인정하신다. 이 세상에서 정말 사랑하고 친한 친구를 위해서 죽은 사람도 있다. 자식을 위해 죽는 부모도 있다. 어떤 이는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분들도 있다. 나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정말 감명 깊었던 장면이 소울스톤을 얻어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자신이 소중한 사람을 희생시켜야 얻어낼 수 있었다. 호크아이가 나타샤 대신 죽어서 소울스톤을 얻어내려 했지만, 서로 자기가 죽겠다고 격렬하게 싸우다가 결국 나타샤가 절벽에 떨어지는 장면을 보고 아주 감명 받았다. 그렇다. 내가 가장 친한 친구 또는 누군가를 위해 죽는 것은 너무나 아름답고 누가보아도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다. 그러나 여러분은 나와 관계가 없는 사람을 위해, 아니 원수를 위해서 죽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기도 훨씬 전, 진노의 자녀라고 불렸던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진짜 이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분명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2000년 전 피 흘리신 십자가에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진짜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지 않은 사랑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진짜가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수많은 노래들이 사랑에 대해서 노래를 한다. 그러나 많은 노래들은 보통 감정적이고 개인적인 사랑에 초점을 맞춘다. 로맨틱한 사랑을 갈망하며 연애 감정, 설렘, 이별의 아픔, 첫사랑, 짝사랑, 이별 후의 아픔과 그리움에 대해서 노래한다. 그러면서 “네가 없으면 나는 안 돼”와 같은 가사처럼 상대방을 소유하려는 듯한 감정도 자주 표현된다. 그러면서 “네가 나를 사랑해줘야 행복해”와 같은 가사로 상대방에게 보상과 기대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상은 연인이나 짝사랑하는 누군가 특정한 사람에게만 고백하는 이야기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기에 반쪽짜리 사랑이다. 반쪽짜리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사랑은 희생적이고 이타적이고 조건이 없는 무조건적 사랑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설렘과 열정과 아픔을 훨씬 넘어서 헌신과 용서와 사랑에 대한 표현과 서로 사랑함으로 실천할 것을 이야기한다. 더 나아가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을 성경에서 말하고 있기에 그 사랑까지 해야 진짜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 사랑을 누가 먼저 보여주셨기 때문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에게 희생과 용서와 무조적 사랑으로 헌신하셨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이 하는 사랑은 감정에 따라 변할 수 있다. 또 누군가를 더 사랑하려고 하더라도 죽게된다면 더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없기에 인간이 베풀 수 있는 사랑은 제한적이고 한계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 영원한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2000년이 지나도 우리에게 그 사랑을 베푸실 수 있는 것은 그 주님이 지금도 살아계시기 때문에 그 사랑은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것이다.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절대 불가능하다.
그러니 사랑하는 꿈사땅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말 바다보다 깊고 넓으신 사랑을 베푸셨다는 사실을 믿으시는가? 하나님이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안다면 그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베풀며 살아가는 것은 어떨까? 나는 최근에 르완다에서 신학공부를 하러 온 외국인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전도사님은 영어를 잘 못하는데, 이 친구는 끝까지 기다려주면서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내가 밥을 먹고 있을 때 내 앞에 혼자 앉아서 식사를 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서로 대화하기 시작했고, 금요일 점심 때마다 만나서 식사하고 엊그제 금요일엔 내가 식사를 대접했다. 가서 불고기에 쌈장과 함께 쌈을 싸서 먹는 방법, 비빔밥 먹는 방법을 알려주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왜 이런 일을 했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단언컨데 하나님께 너무나도 받은 사랑이 커서 홀로 있는 사람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이 아니라면 “내가 왜? 굳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면 사랑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 있는 여러분들도 학교에서 홀로 밥을 먹고 있는 친구가 있거나, 왕따를 당하는 친구가 분명이 주변에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대화해보고 떡볶이같은 음식을 함께 먹어보면 어떨까? 그리고 부모님께 가서 꼭 감사하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을 해보기 소망한다. 전도사님은 가끔 엄마에게 너무 부끄럽고 민망한 마음을 꾹 참고 갑작스레 뜬금없이 “엄마~ 사랑해~엄마가 내 엄마라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해~”라고 말하고 나니, 다음날 아침 밥상이 고기 반찬으로 거하게 차려지는 것을 보는 놀라운 일을 경험했다. 꼭 해보기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교회의 일을 열심히 섬기는 것, 훈련하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이 된다. 교회를 섬기는 것은 곧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을 섬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훈련을 받는 것은 하나님을 알아가고자 하는 몸부림이기 때문에 훈련 받는 일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그리하여 여기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실천함으로 살아내기를 소망한다. 사랑하는 실천하는 사람은 점점 어떤 사람이 되어가겠는가?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먼저 사랑하기를 소망한다. 그리하여 사도 요한은 이렇게 우리에게 이렇게 도전한다. 함께 읽고 찬양하기 원한다.
요한1서 4:11 NKRV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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