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시험을 이기는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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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다. 예수님은 사십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셨다.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광야 시험 사진)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십일간 금식하셨다.
이를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빠져나온 후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광야에서 40년간 광야에서 고난 받은 것이 연관되어져 생각되어집니다.
40일과 40년은 시간적으로 큰 차이이지만 성경에서는 하루를 1년으로 보기도 합니다.
6 그 수가 차거든 너는 오른쪽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사십 일로 정하였나니 하루가 일 년이니라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간 고난 받으신 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간 고난 받은 것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에서 40년간 고난을 받게 하신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는지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의 중심을 보시기 위함이었으며 그들이 자신과 하나님에 대해서 온전히 알며 하나님만을 따르는 자들로 만들기 위해서 였다.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의 시험에서 지게 된다. 그들은 광야에서 그들을 이집트에서 나오게 하시고 인도해 가시는 자신들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악한 말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민수기 11장은 광야에서의 삶이 시작 되는 장이다. 그전에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군 대형을 만들었다. 지파멸로 서야 될 위치를 잡아주게 체계적으로 행진하게 하셨다.
그들은 광야에서의 삶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하나님을 원망하였다. 광야에서의 삶에 대해서 만족해 하지 않아다.
군대 예화: 나도 군대 처음 훈련소에 입소했을 때 입소식이 끝나고 주을 마추어 대기하고 앉아 있을 때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건 아니다. 뭔가 잘못된다. 여기서 나가야 된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와 같은 생각을 했다.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지만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의 시험과 고난에서 지게 된다 .
1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
그리고 매일 일용할 양식으로 주시는 만나에 감사하지 못하고 이집트에서 먹던 고기와 채소를 그리워하며 하나님께 불평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전에 주어진 시험에서도 실패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그 땅음 염탕할 사람들을 각 지파별로 1명씩 뽑으시고 그들로 하여금 가나안 땅을 엿보게 하십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몰래 들어간 후 그곳에 있는 장대한 사람들을 보고 겁에 질리게 됩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땅에 돌아와 그들이 본 것을 보고할 때 그 땅에 거대한 족속이 살고 있었서 그 땅을 점령할 수 없을 것이라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갈렙과 여호수아는 그들의 믿음 없음과 겁에 질려 하는 말에 탄식하며 분노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면 우리가 그 땅을 얻게 될 것이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리하게 자신들을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한 수 거대한 족속과 전쟁을 치르게 하려는 갈렙과 여호수아를 죽이려고 했다.
6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10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은 갈렙과 여호수아를 공격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하려고 했지만 모세의 중재로 하나님은 진노를 돌이키신다. 하지만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한 자들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20세 이상의 사람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들의 자녀들만 가나안 땅에 들어 갈 수 있었다.
2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
21 그러나 진실로 내가 살아 있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을 두고 맹세하노니
22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23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20세 이상의 사람들 중에서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했던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다.
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광에서 40년간의 시험에서 지게 된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광야에서 40일간 시험을 받으신 예수님은 시험에서 이기신다.
학자들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 시험 받은 것을 모형이라고 한다. 그리고 광야에서 예수님이 40일간 시험 받으신 것을 원형이라고 합니다. 모형은 자동차 장남감 모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모형은 과거에 한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것을 모형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와 유사하면서 더 의미 있는 사건을 원형이라고 한다.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간 시험을 받았지만 그들은 시험에서 지게 된다. 하지만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간 시험을 받으셨지만 시험을 이기신다.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 시험을 받은 것을 모형이라고 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40일간 광야에서 시험 받으신 것을 원형이라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의 시험을 실패했지만 예수님은 시험에서 승리하셨기 때문이다.
죄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삶은 참된 삶이 아니다. 거짓되고 잘못된 삶이다. 진짜가 아닌 삶이다. 우리의 진짜은 하나님 안에 있다.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씬 예수님께 있다. 이를 참된 삶이라고 한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를 승리로 바꾸셨다. 에수님께서 이스라엘을 온전하게 완성시키신 것이다. 예수님으로부터 새 이스라엘이 시작된다. 예수님은 우리의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시는 분이다. 예수님은 실패한 우리의 삶을 성공한 삶으로 이끄시는 분이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 모형론적 성취라고 한다.
신신애 세상은 요지경 노래 비유
유투브에 올라온 영상에 담근 댓글에 이 노래는 인간의 깊은 철학이 담긴 명곡이다.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는 선견지명이 있던 노래이다. 라고 재평가 받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죄와 저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참된 삶에서 벗어난 삶이다. 거짓되고 잘못된 삶이다. 우리의 삶은 진짜의 삶이 아닌 가짜의 삶이다. 세상은 요지경의 가사와 같은 삶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에서 승리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습대로 변화시키신다. 참된 모습으로 변화시키신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난과 이를 통해 어떻게 우리의 삶을 가짜에서 진짜의 모습으로 회복시키는 지 알아보자
예수님께서 받으시고 통과하신 첫번째 시험은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마귀는 예수님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한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에서 ‘든’은 히브리어로 ‘에이’이다. 이 ‘에이’는 if(만약~라면)의 뜻도 있지만 since(~이므로)의 뜻도 있다. 한글 성경과 영어 번역본에서는 만약~이면이라고 해석이 되어이지만 ~이므로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
마귀가 “너 하나님의 아들 맞아?”, “하나님의 아들이면 증명해봐”. “이 돌들을 떡덩이가 되게 해봐 그러면 믿어 줄”라는 내용이 아니다. 마귀는 이미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다. 이 시험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것을 의심하면서 증명하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금식하지 말고 배불리 먹으라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이 돌들로 떡떵이가 되게 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배불리 먹게 하라는 것이다. 풍요를 가져오는 메시야, 물질적 해방을 가져오는 메시아로 살아가라는 시험이다.
예수님꼐서 구원자이므로 당연히 돌들로 떡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람들이 구원자에게 기대하는 일을 하라는 유혹이다. 풍요를 가져오는 구원자, 물질적 해방을 가져오는 구원자 처럼 백성들의 기대에 만족함을 가져다 주라고 유혹하는 것이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굶주리지 않고 로마로부터 해방되어 떵떵거리며 살게 해줄 구원자를 기대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고난 당하는 메시야로 이 땅에 보내셨다. 예수님은 이것을 알고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으셨다. 마귀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의를 행하지 말고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따르라는 유혹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성경말씀을 사용하여 마귀의 유혹을 물리친다.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첫번째 시험이 실패하자 마귀는 두번째 시험으로 예수님을 이끈다.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지고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자 마귀도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한다.
마귀가 사용한 말씀은
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이다.
마귀가 이를 말하는 바는 의인은 보호받는 다는 것이다.
그리고 악인은 심판과 형벌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앞서 나온 시편 91:8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다.
8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마귀는 ‘의인에게 고난은 없다’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의인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이다.
마귀는 성경에서 이렇게 말하는데 의인인 너가 이 땅에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맞는지를 묻는 것이다. 구원자가 고난을 받을 수 없다. 악인이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죄인들을 대신해서 대속의 죽음으로 예수님을 보내셨다.
예수님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아시고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 문장을 내가 뛰어내려서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는지 테스트 하지 말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을 통해서 이 문장을 해석해야 한다.
16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맛사에서 시험한 내용은
7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맛사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시험했다. 그들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의심하는 것이다. 맛사에서 이스라엘은 마실 물이 없어서 고난을 당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떠나셨기 때문에 고난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고난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우리에게 고난이 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복 주시는 하나님, 성취하시고 승리하시는 하나님만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고난이 찾아오자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 가운데 안 계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시지 않는다. 우리와 늘 함께 하시고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고난이 찾아와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해서는 안된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고난을 받아들이신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뜻을 이루어 가신다.
예수님께서 두번째 시험을 이기시자 마귀가 이끈 세번째 시험은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다.
마귀는 자신에게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다 네게 주겠다고 유혹한다. 하나님께서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에게 잠시 이것을 허락하실 수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것이다. 후에 마귀는 이를 예수님께 빼앗기게 된다.
온 우주의 왕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하나님께로 부터 받게 되시는 예수님이시다. 이는 십자가 부활을 통해서 받게 된다. 마귀는 십자가 부활없이 자신에게 경배하면 주겠다는 유혹이다. 이는 십자가 고난을 피하라는 유혹이며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경배하면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는 십계명 1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이는 반율법주의로의 유혹이다. 십계명 1계명을 어기면 모든 율법을 다 어기는 것이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내가 율법을 폐하러 왔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고 하신다. 지극히 작은 율법 일점 일획까지도 폐하지 않는다 하신다. 가장 작은 율법도 어기고 가르치면 작은 자다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현대 기독교는 반율법주의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다. 율법을 폐지한 메시아로 생각한다.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너무 강하게 물들어 있다. 영지 주의자들이 이를 말한다. 율법은 폐지되었다 한다. 구약의 하나님은 신약의 하나님은 다른 하나님이라고 한다. 20세기 기독교는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영지 주의 기독교는 예수님만 믿으면 되고 하나님 살아계신다는 지식만 가지면 되고 마음대로 살으면 된다고 한다. 마귀는 이를 기뻐한다. 반율법주의에 성공했기 떄문이다. 기복주의 신앙, 하나님의 아들은 돌로 떡덩이 만든다. 물질적 풍요를 기대하는 믿음, 자녀가 서울대 가면 교회 안 나와도 된다. 당신의 아들이 서울대 가고 교회 안나가는 것? 서울대 못 가고 교회 나가는 것?
이 3가지 유혹에 한국 기독교는 다 넘어졌다. 이러한 기독교는 마귀를 이길 수 없다. 마귀에게 질 수 밖에 없다. 영지 주의 기독교에서 벗어나야 한다.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 오늘날 그 버전이 구원파이다. 종교개혁자는 믿음에서 나오는 열매를 강조, 율법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기준을 제시해 준다. 언약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준다.
찬양: 오늘 이곳에 계신 성령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