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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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누가복음 6:27-38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2025. 4. 2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계속해서 예수님의 평지설교의 내용이 이어집니다. 지난 시간에는 4복과 4화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는데요. 세상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으셨죠. 부요한 자가 아니라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그리고 부요한 자에게는 화가 있다. 서로 맞지 않는 단어가 짝을 이뤘어요. 가난과 복이 짝을 이루고, 부요함과 화가 짝을 이뤘습니다. 이것은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세상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달라요. 부자가 되는 것, 높아지는 것, 유명해지는 것,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 매여 살지 말아야 돼요. 좀 가난하면 어떻습니까? 좀 낮은 곳에 있으면 어떻습니까? 물론 우리가 부요하면 좋죠. 높아지면 좋고. 그러나 인생의 가치가 거기에 있지 않아요. 우리는 세상처럼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처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돈 많은 것을 좋아하실까요?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을 좋아하실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으로 볼 수 있다면, 진정한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도 마찬가집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에요. 원수를 사랑하라. 어떻게 원수를 사랑합니까? 사랑하면 원수가 아니죠. 미우니까 원수 아니에요? 미운데 어떻게 사랑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자, 오늘 본문을 봐 볼가요? 오늘 본문 27절 28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아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어요. 그런데 원수가 한 종류가 아니죠. 원수가 있고, 미워하는 자가 있고, 저주하는 자가 있고, 모욕하는 자가 있어요. 크게 네 종류로 분류가 됩니다.
굳이 이렇게 구분해서 말씀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모든 종류의 원수를 다 사랑하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섭니다. 피해가지 말라는 거예요. “내가,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랑해도, 나를 저주하는 자는 도저히 사랑을 못하겠다.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만 해도 잘한 거지. 저주하는 자는 그냥 패스하자.” 이러지 말라는 거예요. 나를 미워하는 자든, 저주하는 자든, 모욕하는 자든, 구분하지 말고, 다 사랑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분류된 네 부류의 사람들만이 아니라, 이 외에도 다른 많은 원수를 다 사랑해야 돼요. 나에게 사기 친 사람, 훔쳐 간 사람, 때린 사람, 모든 종류의 원수를 다, 다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27절 28절을 다시 보면, 이 네 종류의 사람들에게 각각 네 종류의 사랑을 실천하라고 되어 있죠. 사랑하고, 선대하고, 축복하고, 기도하라. 사실 세상사람들도 이렇게 살아요. 친한 이웃들을 사랑하고, 선대해주고, 축복도 해주고, 또 나름대로 자기가 믿는 종교에 따라서 기도도 해줍니다.
우리들도 이렇게 살고 있죠.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발 나아가라는 거예요. 친한 이웃들만을 위해서 이렇게 살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바꿔서, 원수를 위해서도 이렇게 살아보라는 거예요. 원수를 사랑하며,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며, 모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해라.
그래서 밑에 32절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32절에 뭐라고 하십니까?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아멘.
죄인들도 사랑을 해요. 나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할 줄 압니다. 뿐만 아니라 이 뒤에 33절, 34절에도 가서 보면 나를 선대하는 자에게 선대할 줄 알고, 나에게 갚을 것을 바라고 꾸어 줄 줄 알아요.
그런데 이런 사랑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칭찬 받을 일이 아니에요. 여러분, 여러분이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누가 사랑하라고 해서 사랑하는 겁니까? 내 자녀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거잖아요. 내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거예요. 내가 내 자녀를 사랑한다고 해서 누가 칭찬해주지 않아요. 당연한 거니까.
우리는 이 당연한 사랑의 경계를 넘어야 합니다. 당연하지 않은 사랑을 해야 돼요. 누가 봐도 정상적이지 않은 그런 사랑. ‘어떻게 그런 사람을 사랑해?’ 라는 말이 나올 만한 그런 사랑.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9절과 30절을 보면,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떤 사람까지 사랑해야 하는지, 우리가 어떻게까지 사랑해야 하는지 그 예시를 들고 있는데요. 29절 30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아멘.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네 가지 상황이 나오죠. 누가 아무 이유 없이 내 뺨을 쳐요. 또 누군가가 내 겉옷을 빼앗아요. 또 누군가는 당연하다는 듯이 내 것을 요구해요. 또 누군가는 말도 없이 내 것을 가져가요.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하면 어떨까요? 황당하죠.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하다가, 점차 분노가 차올라요. 그리고 행동으로 옮기게 됩니다. 멱살을 잡고 똑같이 때린다든지, 좋지 않은 말과 행동이 오고 가겠죠. 이것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당연한 반응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당연하지 않은 반응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반응해야 됩니까? 뺨을 맞으면 다른쪽 뺨을 돌려대고, 겉옷을 빼앗기면 속옷까지 양보하고, 구하는 자에게는 그냥 내어주고, 내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는 돌려달라고 하지 말라는 겁니다.
세상에서 보기에 이런 사람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죠. 이런 사람을 전문용어로 “호구” 라고 그래요. 국어사전을 보면, 호구는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바보같이 자기 이익을 생각 못하고, 손해가 나는데도 웃어 넘기는 사람. 나를 울궈먹는 사람에게 싫은 소리 한번 못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호구라고 그러죠.
그런데 오늘 말씀이 꼭 그런 사람이 되라는 말씀 같네요?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에게 호구가 되라고 하신 걸까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호구가 되라고 말씀하신 게 아니에요. 오늘 말씀 제목이 뭡니까?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호구가 아니라 자비로운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자, 오늘 본문 36절 봐 볼까요? 36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아멘.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그런데 여기에 기준이 있어요. 누구만큼 자비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너희 아버지만큼 자비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비의 기준이 하나님이에요. 우리가 하나님만큼 자비로워져야 돼요.
누가 뺨을 치면 다른쪽 뺨도 돌려대고, 내 것을 빼앗겨도 그냥 줘야 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자비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신다는 거예요.
성경의 사건들을 보면, 하나님이 정말로 그렇게 하셨죠. 백성들이 배신해도 구원해주고, 배고프다고 원망을 해도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고, 정말 딱 호구처럼 행동하셨어요.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잘 알아야 돼요. 하나님은 호구가 아니십니다. 화를 낼 줄 몰라서 안 내시는 게 아니에요. 왜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그렇게 오래 참아주시고 해달라는 대로 해주셨을까요? 그 이유는 하납니다. 백성들을 사랑하시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참아주고, 용서해주고, 베풀어주시는 겁니다.
때로는 백성들이 미운 짓을 할 때가 있죠. 그럴 때는 미울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사랑해도 미워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미워도 백성들이 순종 한번 하면 눈 녹듯이 사르르 녹아요.
저도 딸이 이제 네 살인데, 이렇게 봐도 예쁘고 저렇게 봗 예뻐요. 그런데 항상 예쁜 게 아니에요. 미운 짓을 하면 미워요. 갑자기 말을 안 듣고 고집을 부리면서 떼를 쓰면 화가 납니다.
거실에서 놀 때도 얌전하게 안 놀아요. 여기서 어질러놓고, 저기서 우당탕탕, 꼭 거실에 개 한 마리 풀어논 것 마냥. 발발거리면서 난리를 쳐요. 그러면 이걸 누가 다 치울까? 제가 치워야죠. 치워노면 또 와서 우당탕탕.
그런데 그렇게 미운 짓을 해도요, 저를 보고 한번 웃어주면 사르르르 녹습니다. 밉다가도 왜 이리 이쁜지 모르겠어요.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백성들을 보실 때 그러셨던 거예요. 밉다가도 순종 한번 하면 그렇게 이쁜 거예요. 내 백성이니까. 내 자녀이니까. 하나님의 사랑의 비결은 다른 게 아니에요. 내가 사랑하는 자들이니까 사랑하시는 겁니다. 그들이 나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내가 그들을 사랑하니까, 용서하고 오래 참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사랑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경계를 넘어서 내 백성이 아닌 자들까지도 사랑하십니다. 이방인들. 나를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자들까지도 사랑하셔요.
그래서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기꺼이 내어주셨어요. 내 뺨을 치는 자들에게 다른쪽 뺨을 내어주신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우리가 이 정도 자비의 단계까지 올라가야 된다는 거예요.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되려면 되고, 말려만 말아라’, 가 아니에요. 반드시 되라는 겁니다. 반드시 하나님처럼 자비로운 자가 되어서 자비를 베풀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본분이에요.
평지설교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역전된 가치를 따라서, 세상의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따르고, 세상의 사랑방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사랑방식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에요. 우리가 이 가르침대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원수를 사랑해야 돼요. 원수와 사랑. 이 두 단어가 세상에서는 맞지 않죠.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맞아요.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모든 기준이 하나님이에요.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이 다 당연한 일이 됩니다. 하나님이 원수를 사랑하신다? 그러면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는 거예요. 나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신다. 그러면 이것도 당연한 일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하나님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이 아닌데 어떻게 하나님처럼 살 수가 있겠어요? 여전히 세상에서 발버둥치며 살고 있는 우리가 그럴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나 가능하지, 우리는 불가능해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살라고. 여러분, 왜 예수님이 이토록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명령하시는 걸까요? 그 이유는 이 일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능한 일이에요. 그래서 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36절을 다시 보면, 우리가 누구와 같이 자비로운 자가 되라고 하셨어요?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 아버지 같이 되라고 하셨죠.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이에요. 그러면 당연히 우리가 하나님의 유산을 상속받게 되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무엇을 상속받을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상속받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품. 사랑과 자비와 긍휼과 정의, 인간의 성품을 초월한 하나님의 성품을 상속받아요.
그래서 인간의 성품으로는 차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성품으로는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다 하나님의 성품을 상속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우리 안에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이 내재되어 있는 거예요. 이것을 끄집어내기만 하면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이것을 내가 어떻게 끄집어내야 할까? 이게 쉽지가 않은 거죠. 내 안에 원수사랑이 있는데, 끄집어내기가 어려워요. 아니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안 돼요. 도대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어떻게 꺼냅니까?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까? 오늘 본문 31절에서, 우리에게 그 방법을 제시해주십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성품을 끄집어낼까?
오늘 본문 31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아멘.
대접 받고싶은 대로, 먼저 대접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황금률”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의 윤리적 삶의 가장 가치 있고 중요한 원칙이 되기 때문에 ‘황금의 원칙’, ‘황금률’이라고 불러요.
이 황금률은 성경에서만이 아니라 수많은 문화, 종교서도 발견됩니다. 그만큼 인류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원칙이에요.
그런데 예수께서 이 황금률을 말씀하셨단 말이죠.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다음에 ‘너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라고 하셨어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세상에서 통용되는 원칙이 아니에요. 그런데 이 뒤에 세상에서 통용되는 원칙을 말씀하셨어요. 세상에서 통하지 않는 원칙과 세상에서 통하는 원칙. 서로 반대되는 원칙이거든요. 그런데 이 두 원칙을 같이 붙여놓으셨단 말이에요.
여기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습니다. 그 의도가 무엇인가 하면, 원수사랑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먼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세상의 원칙에서부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따를 수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황금률이죠. 대접 받고싶은 대로 먼저 대접하라. Give and Take. 먼저 주라는 거예요. 그러면 받을 것이다.
내가 원수를 사랑하기가 어려워. 그러면 반대로 한번 생각해 보는 거예요. ‘내가 원수를 사랑하기가 어렵다면,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까? 나를 원수로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나를 사랑해 줄 수 있을까?’
내가 받을 것을 생각해 보는 겁니다. 나도 사랑 받고 싶잖아요. 내가 상처 줬던 사람, 내가 눈물 흘리게 만들었던 사람, 그 사람에게 용서 받고 싶고, 사랑 받고 싶어요.
그러면, 받고싶은 대로, 먼저 사랑해 보라는 거예요. 받기를 원하거든 나도 줘야 돼요. 세상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거꾸로 하면 어떻게 돼요? 내가 용서하면 나도 용서를 받게 된다는 것이죠. 그러면 해볼만 하지 않습니까? 공짜가 아니고, 나도 보상이 있잖아요.
그래서 비록 원수사랑이 아직까지도 너무나 어려운 영역에 있지만, 이 31절 황금률을 통해서 그나마 해볼 만한 가능의 영역으로 내려오게 되는 겁니다. ‘그냥 무작정 퍼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주면 나도 받는구나. 원수사랑도 해볼만 하겠구나.’ 이렇게 여기게 되는 것이죠.
자, 그런데. 밑에 32절부터 보면, 예수님께서 다시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하면, 다시 또 세상에서 통용되지 않는 원칙을 말씀하십니다. 그냥 31절까지만 하고 끝났으면, 우리도 할 수 있겠다는 분위기 속에서 끝났을 텐데, 다시 우리를 불가능의 영역으로 끌고 가셔요.
아까 32절 말씀을 봤죠.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한다. 죄인들도 자기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고, 돌려받을 것을 바라고 꾸어 줄 줄 안다. 세상의 원칙이죠.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칭찬을 못 받는다는 겁니다.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여러분, 받기를 바라고 주는 것은 칭찬 받을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죄인들도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세상사람들이 다 할 수 있는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칭찬 받을 일이 아니에요.
그렇다면, 왜 예수께서 굳이 칭찬도 못 받는 황금률을 말씀하셨을까? 좀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황금률은요, 우리가 진정한 사랑을 하기 위하여 나아가는 시작 단곕니다. 원수사랑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먼저 이렇게 한번 해보라고 주신 거예요. 여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점차점차 진정한 사랑의 단계로 넘어가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Give and Take” 에서 끝나면 안 되고,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돼요. 죄인들도 할 줄 아는 단계를 넘어서, 오직 하나님의 성품을 상속받은 자들만이 가능한, 진정한 사랑의 영역으로 가야 됩니다.
저는 그 영역을 “Give and Give”의 영역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Give and Give” 주고 또 주라. 보상을 바라지 말고, 뭘 받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주라. 이 영역이 바로 35절이 말씀하는 영역이에요. 자, 35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아멘.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거저 주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주고, 선대를 주고, 꾸어 주라. 이것이 바로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사랑의 영역이에요. 우리가 거기에 도달하게 되면, 비록 우리의 육신이 여전히 세상에 속하여 있더라도, 그러나 우리의 영은 원수에 대한 미움과 원망의 속박에서 풀려나 천국을 맛보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원수를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도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우리를 사랑해주셨어요. 나같은 죄인을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까? 없어요. 자격이 없는데도 그 지극하신 사랑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뭘 받기를 바라고 주신 게 아니에요.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거저 주신 겁니다. 이제는 우리가 줄 차례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줘야 돼요.
세상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사람은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자비로우심 같이 우리도 자비로운 자가 되어서, 세상을 놀라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할, 위대한 사랑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