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1장
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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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Transcript
열왕기하를 3부분으로 나눌 때 엘리사의 사역에 집중한 1-8장은 1부에 해당.
9-17장은 2부에 해당.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역사.
3부는 18-25장으로 유다의 역사와 멸망까지.
9-10장에서 예후가 북이스라엘에서 구데타를 일으켜 아합 왕가를 무너뜨리고 왕이 됨. 남유다의 왕 아하시야도 예후에 의해 죽임을 당함.
11장
1-3절:
이런 상황에서 아달랴는 왕자들, 즉 자신의 손자들을 모두 죽이고 왕위를 찬탈.
아달랴의 손을 피해 여호세바가 요아스를 구출하여 성전에 숨김
6년간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보호 아래 성전에서 양육
4-12절: 7년째 되는 해, 여호야다가 성전 경비병들과 함께 요아스를 왕으로 세움.
13-16절:
아달랴는 왕이 등극한 것을 보고 반역이라고 외치지만, 백성은 그녀를 거절.
성전 바깥에서 죽임을 당함
17-21절:
여호야다는 여호와와 왕, 백성 간의 언약을 새롭게 함.
바알의 신당을 파괴하고 바알 제사장을 죽임
요아스는 7세에 왕이 되어 유다를 다스리기 시작.
유다에 들어온 아합의 딸 아달랴는 결국 유다의 왕을 멸절시키려는데 까지 이름.
여호람 왕은 경제적인 이익 혹은 이방 나라들과의 대립되는 상황에서 견고한 동맹을 위해 아합 왕의 딸 아달랴와 정략적으로 결혼했을 것. 아합 왕의 통치시기는 북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강력하고 화려한 시기로 평가된다. 경제적, 군사적으로 강한 나라였음. 여호람이 아합 왕과 정략적으로 동맹을 맺은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겉으로 볼 때는 잘한 결정인 듯 하지만, 여호람 왕은 창자에 중병이 들어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그의 아들 아하시야는 예후에 의해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여호람 왕의 손자들은 할머니 아달랴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 벌어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합리적인 결정으로 인해 다윗 왕가를 향한 하나님의 언약이 끊어질 뻔한 위기에 놓였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 왕가를 영원히 보존하게 하시겠다는 언약을 패하려는 계략. 다윗의 자손을 통해 예수님께서 오셔야 하는데, 마귀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막으려고 한 것. 신앙을 떠난 합리적인 결정은 우리 삶에 저주를 불러오는 통로의 역할을 함.
우리의 삶의 행, 불행, 복과 저주, 생명과 사망은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됨.
그러나 우리는 너무 자주 신앙을 배제하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눈으로 삶을 해석하고 결정한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관점으로 분석하고 결정하되 신앙이 중심이 되어야만 한다.
왕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 분명히 이상한 부분이 있다. 우리는 성경에 익숙해서 그냥 지나치는 부분이다. 왕을 이야기하는데 그의 치적을 말하지 않는다. 어떤 결정과 어떤 정책과 어떤 성과, 성취 등을 거의 말하지 않는다. 그런 것을 말할 때는 하나님께 순종을 칭찬할 때 순종의 선한 열매로 제시하는데 쓰일 뿐이다. 성경에서는 왕의 탁월함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가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집중한다. 그에 따라 평가가 나뉜다. 아합 왕이 아무리 나라를 부강하게 했더라도 그는 악한 왕이었고, 그의 죽음은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이다.
여기에 우리가 삶을 보는 관점을 수정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우리 삶의 성공과 실패, 우리 삶의 평가는 곧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었는가?에 따라 나뉜다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관심은 내가 맡은 일을 어떻게 잘 수행할까? 어떻게 탁월한 결과를 낼까? 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성경적인 관점이 아니다. 성경적인 관점은 내 삶의 방향이 하나님께 맞추어져 있는가이다. 하나님께 맞추어진 삶이 곧 성공적인 삶이고, 성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
우리가 하나님께 맞추어진 삶을 살면 우리에게 맡겨진 일도 열심히 하게 된다. 그러나 그 역은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면 자연스레 하나님께 맞추어진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프로테스탄트의 직업 소명에서로부터 생긴 오류였다. 깔뱅 등 종교개혁자는 자신의 직업에서 성실과 노력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보고, 신앙인의 고유한 소명으로 여긴 것이다. 결과로 직업에서 좋은 성과, 많은 소득을 얻는 것을 칭찬하게 된다. “직업 소명”이 성도들에게 성속의 구분에 대한 관점을 넓혀준 선한 영향을 미쳤지만, 부정적인 영향도 있었던 것이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 아닐 수 있다.
하나님께 맞추어진 사람이 성실하게 하는 일할 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일이 된다.
우리 자녀들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자녀들에게 무엇보다 하나님께 맞추어진 삶을 살도록 가르쳐야 한다. 신앙을 최우선 가치로 두도록 가르쳐야 한다. 삶의 평가가 거기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삶의 성공과 실패가 거기에 달려있다.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내가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내 삶에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하나님께 맞추어진 삶을 살아야 한다. 신앙을 떠나 합리적인 선택은 여호람 왕의 예와 같이 삶에 저주를 불러들인다. 하나님의 언약을 패하게 할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신앙 안에서 선택은 하나님의 뜻을 내 삶에 이룬다.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하나님의 뜻을 중요하게 여겼고, 목숨을 걸고 왕자를 숨겼고, 아달랴를 폐위시키고 왕자 요아스를 왕으로 세웠다. 여호야다의 하나님 중심의 선택과 순종으로 다윗 왕가를 향한 하나님의 언약이 패하지 않을 수 있었다. 다윗의 자손을 통해 메시아 예수님을 보내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계속될 수 있었다. 여호야다는 왕이 아니었음에도 왕들의 묘실에 묻히게 된다.
왕들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그 길만이 우리를 생명과 복으로 이끄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