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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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12장은 아달랴를 이어 왕이 된 요아스가 성전을 수축한 일과 그의 죽음에 대해 기록.
13장의 내용은 3가지로 구분.
1-9절: 북이스라엘 왕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
10-13절: 북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
14-21절: 엘리사의 죽음
22-25절: 북이스라엘과 아람 사이의 전쟁
1-9절은 북이스라엘 왕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에 대한 내용.
2절: 여호아하스- 여로보암의 죄를 떠나지 않음.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 전체를 우상 숭배로 끌고 간 시스템을 만들었음. 정치적 동기로 거짓 종교 체제를 만들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제사 제도를 변경했음.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공고하게 하기 위해서였음. 북이스라엘의 백성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사를 드리면 남유다 왕 르호보암을 쫓을 것을 염려해서.
여로보암 이후 모든 북이스라엘의 왕들이 여로보암의 죄를 담습함. 북이스라엘을 멸망하게 한 원인.
하나님께서 왕들에게서 악하게 본 것과 선하게 본 것은 왕 개인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도 있지만, 백성을 하나님께로 인도했느냐, 하나님을 떠나게 했느냐가 그 왕을 평가하는데 결정적인 것.
여러분이 교회 공동체에서 리더를 맡거나, 가정에서 리더 → 구성원이 하나님을 섬기도록 해야 함. 어떤 이유 때문에라도 하나님을 섬기지 않도록 이끈다면 그 죄는 하나님 앞에 가장 악한 죄가 됨.
3절: 여호아하스의 악으로 인해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이 아람에게 침략당하도록 하심.
4-7절: 아람 왕의 침략으로 고통 가운데 여호아하스는 하나님께 기도함. 하나님을 떠났던 이가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하여 얼마나 대단한 기도였을까?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아하스의 기도를 들으시고 구원자를 보내서 이스라엘을 아람의 손에서 구원하심.
그러나 북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음. 아람의 공격 아래 이스라엘은 나라로 존재하기 힘들 정도로 큰 피해를 당함.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의 악행을 공의로 심판하심. 그러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때 긍휼로 응답하심. 회개와 용서에 대해 너무 자주 접하고 경험했기에 하나님의 용서를 너무 쉽게 생각할 수 있음. 회개했으니까 용서해주시는 것으로 당연하게...
그러나 열왕기의 맥락을 보면 과연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 간구한다고 하나님께서 바로 마음을 돌이키시는 것이 당연한가? 너무 이상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들어야 함. 하나님의 은혜를 셀 수 없이 저버리고, 돌이키는 듯하다가 배역하기를 수도 없이 한 이스라엘인데, 그들의 간구를 듣고 바로 돌이키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음. 하나님은 그런 분이심. 죄악으로 행하는 자에게 진노로 불붙다가 회개하면 또 긍휼이 주체할 수 없이 차 오르시는 분이심. 그분 앞에 죄인 우리는 항상 겸손하게 서야 함.
여호아하스가 죽고 그의 아들 요아스가 북이스라엘의 왕이 됨.
요아스도 여로보암의 죄를 좇아 행한 악을 행한 왕임.
14절: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요아스가 엘리사를 찾아감.
악한 왕 요아스는 엘리사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눈물을 흘림. 엘리사를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라고 부름. 여호아하스 왕 때 아람에 의해 나라가 될 수 없을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기에 요아스가 왕이 되고 나서 이방 나라로부터 나라를 지켜내기가 불가능했을 것. 엘리사의 도움으로 외적의 침입을 막았을 것. 여호아하스 때에 이스라엘에 병거는 10대, 마병은 50대 밖에 없었기에 실제로 엘리사가 이스라엘의 병거고 마병이었을 것.
15-19절: 자신이 죽을 것을 안 엘리사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죽고 난 뒤를 걱정하는 요아스 왕을 위해 이적을 베풂.
요아스 왕에게 활과 살을 가지고 예언적 행동을 하게 한 것. 그러나 요아스 왕은 엘리사가 시키는 것을 신중하게 대하지 않았고, 전심으로 순종하지 않았음. 그의 영적 상태였던 것. 안타깝지만 북이스라엘은 아람을 완전히 진멸하지 못하고 3번만 이길 은혜를 얻음.
엘리사는 북이스라엘에서 주로 활동한 선지자였음. 구약 선지자 중에 가장 많은 이적과 능력을 행한 선지자였음. 엘리사가 남유다가 아니라 북이스라엘에서 주로 활동했음. 하나님을 배역하고 멸망의 길로 행하는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했음.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주는 것. 엘리사가 죽기 직전까지 북이스라엘에 행한 이적은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싶은 간절함을 보여주는 것.
우리 인간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의 모습. 어떻게 이렇게까지 하실 수 있는가?
엘리사가 죽고 나서 북이스라엘에는 더 이상 하나님의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음.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며 말씀을 선포하는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음. 하나님의 침묵. 북이스라엘은 점점 더 악을 행하였음. 14-15장에는 왕들이 계속 바뀌고 구데타가 일어나는 혼란의 절정을 이룸. 결국 앗수르에 의해 멸망 당하게 됨.
우리 삶에 일어나는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께 원망하는 때가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징계라 하여도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 것을 알면 절대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죄가 하나님의 징계보다 비할 수 없이 크다. 하나님은 길이 참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징계는 다른 방법이 없을 때 어쩔 수 없을 때 임하게 된다. 하나님은 징계를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회개할 기회가 있을 때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칠 때가 있다. 회개하고 싶어도 회개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마음을 낮추고 회개에 빨라야 한다. 우리가 중심으로 회개할 때 하나님은 진노를 거두시고 긍휼로 우리를 보신다.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를 보면서 하나님의 백성의 죄악은 왕들의 죄악으로 말미암고, 이스라엘 공동체의 죄악으로 나라에 어려움이 닥치고 망하는 것을 본다. 여러 어려움을 겪고, 혼란 가운데 출구가 보이지 않는 우리 나라의 상황이 떠오른다.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가 죄를 지어서, 성도의 죄는 성도를 인도하는 목회자의 죄의 결과이고, 나라의 어려움은 교회 공동체의 죄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정치 활동이 아니라 회개이다. 한국 교회가 회개해야 나라가 산다. 우리 힘으로 자유민주주의 한국을 세운 것이 아니듯이, 우리 힘으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한국교회가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기도하여 나라가 부강해졌다고 한다면, 나라의 어려움은 한국교회의 불순종에 결과라고 해야 한다. 교회의 회개가 나라를 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