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맞으라

요한복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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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12:12–19 NKRV
12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14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15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16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17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언한지라 18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19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하니라
서론
요즘 제일 핫한 드라마가 무엇일까요? 아마 ‘폭싹 속았수다’같습니다. 저는 드보라 전도사만 보는 줄 알았는데 차목사님도 보셨다길래 아 진짜 요새 인기가 많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폭싹 속았수다를 보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그게 뭘까요? 바로 2025년 초에 방영을 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2025년 초에 방영을 한 드라마는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서 연말에 상을 받기 힘드니까요.
제가 농담으로 이야기 했지만 연말에 상을 받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입니다. 많은 배우들이 상을 받고 울음을 터뜨리며 감격해 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졸업식 때에 상을 받았는데 이 상을 받으니까 지난 3년의 고생이 헛된 것 같지 않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제가 상을 받을 때 앞에 나가서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박수소리와 환호소리를 받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아마 대대분의 사람들은 저처럼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를 좋아할 것입니다. 소심한 사람도 부끄러워 하겠지만 분명히 기분이 좋을 것입니다. 오늘 그러나 우리와 같지 않은 분이 계십니다. 사람들의 박수도 사람들의 환호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신 분이 계십니다. 우리 그분이 누군지 모두 살펴보겠습니다.
본론
예수님께서 유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오신다는 소식에 예루살렘은 시끄러워 졌습니다. 그 분위기는 과거처럼 예수님을 미워하고 죽이려던 분위기와 달랐습니다. 예루살렘은 명백히 예수님에 대해 호의적이었으며 예수님이 오시는 일을 기뻐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가까이 오셨다는 소식에 모두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달려나갔습니다. 그들은 모두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하나씩 들고 나갔습니다. 그리곤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예수님을 보며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거리는 사람들의 외치는 소리와 환호성으로 가득찼습니다. 너무나 큰 소리와 환호성으로인해 다른 것들은 들리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왕이신 예수님이 오신 것에 너무 기뻐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이 보내주신 진짜 이스라엘의 정당한 왕이 오셨으니까요.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통치를 이스라엘에 실현시키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환영한 예수님의 모습은 좀 이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주 멋지고 큰 말이나 전차를 타는 것이 아니라 초라한 어린 나귀를 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그 표정 또한 감격과 기쁨이나 혹은 근엄한 표정이 아닌 어딘가 수심에 잠긴 듯한 표정이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모두 퍼레이드를 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놀이동산에 가면 일정 시간이 될 때 아주 화려하고 멋있는 퍼레이드를 합니다. 그 퍼레이드를 보면 지나가는 기구들이 어떻습니까? 아주 크고 화려합니다. 거기에 타고 있는 사람들 또한 아주 멋있는 표정을 짓습니다. 놀이동산의 퍼레이드만해도 이렇지만 국군의 날과 같은 때에 하는 행진은 더합니다. 온갖 비싸고 멋있는 군사장비들이 지나가고 군인들은 표정을 근엄하게 한 후에 발을 맞춰 지나갑니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이 나오도록 퍼레이드를 연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주 작고 초라한 어린 나귀를 타셨습니다. 그나마 큰 어른 나귀를 타는 것도 아닌 어린 나귀를 타셨습니다. 아주 볼품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비유하면 예수님께서는 30년도 넘은 털털거리는 다 낡은 포터를 타고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런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유대인들이 기대한 왕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유대인이 기대한 군사적으로 승리를 가져다 주는 육적 왕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유대인이 기대하던 왕은 전쟁으로 로마를 물리치고 해방을 가져올 왕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13절의 종려나무 가지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성경 당시 종려나무 가지는 유대인에게 군사적인 승리를 축하하기 위한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전쟁에서 이긴 왕을 위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습니다. 유대인은 예수님이 로마와 전쟁을 통해 승리하고 자신들을 해방시켜줄 왕이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것이 아닌 것을 보여주기 위해 어린 나귀를 타셨습니다. 말은 전쟁을 위해 사용되지만 나귀는 짐을 짊어지기 위해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전쟁이 아니라 세상의 온 죄를 짊어지는 분이심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에 대해 착각합니다. 예수님께선 아주 멋있고 잘생기고 능력이 많으셔서 내 원수와 문제를 소위 말하는 사이다처럼 통쾌하게 해결해주실 분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게서는 비천하고 초라한 모습이셨습니다. 문제와 원수들을 힘으로 다 때려부셔서가 아니라 겸손과 희생과 순종으로 해결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오늘 바로 안다면 기도가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원수가 재앙을 겪어서 내 앞에 무릎 꿇게 하소서.”, “문제가 짠하고 멋있게 해결되서 내가 사람들 앞에서 ‘거 봐라’하고 큰 소리 치게 하소서.”가 아니라 “내가 원수를 사랑하게 하소서”, “문제 속에서 내가 겸손하고 거룩하게 하소서”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닮은 모습이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모습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이유는 하나님께 순종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16절을 보면 제자들이 나중에 오늘 본문의 사건이 생각이 났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경을 따라 어린 나귀를 타셨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에 대해 기록된 성경은 구약에 스가랴 9:9 입니다.
Zechariah 9:9 NKRV
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예수님께서는 이 성경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 기꺼이 어린 나귀를 타신 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이 만약 유튜브를 하다가 어떤 영상이 대박이 났습니다. 그래서 kbs, mbc, sbs 이런 곳에 초청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방송에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 사람들이 막 기대를 하고 좋아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했다 생각해보십시오. 단이야 “너는 하루 종일 하수구 청소를 하다가 냄새나는 머리, 더러운 것이 묻은 얼굴, 빨지 않은 옷을 입고 그대로 방송에 나가라”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아니면 “너는 하나님을 전하기 위해 방송에 나가서 미친 사람처럼 하나님 만세! 하나님 믿으세요!만 하고 와라”라고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평생에 한 번 뿐인 많은 사람들 앞에서 환호받을 기회를 이렇게 날리고 싶은 분이 있을까요? 아마 없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러셨습니다. 사람들의 환호성을 받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보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경은 16절에 특이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라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환호성을 받은 퍼레이드를 마친 후를 표현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 표현은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고통받다 십자가에 달려 비참히 죽으신 것을 영광을 얻으셨다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어째서일까요? 그것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예수님이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따르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이 하나님의 뜻을 가장 완벽하게 성취한 것이시기 때문에 영광을 얻으신 것입니다. 성경은 돈이 많고, 유명해지고, 왕이 되는 세상과 육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성취하는 영의 영광을 영광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래야 합니다. 육의 영광이 아닌 영의 영광을 구해야 합니다. 내가 부자가 되고, 대표이사가 되고, 장로, 전도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성취하기를 바래야 합니다. 내가 높아지려는 것이 아닌 낮아지려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꺼이 낮아지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않았고, 사람들의 환호성을 즐기지 않았습니다. 많은 물질도 구하지 않으셨고 높은 지위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과 온 세상에 유일하고 정당한 왕이시면서 예수님은 기꺼이 낮은 자리로 가셨고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의 자리로 가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높아지려기보단 하나님의 뜻이 낮은 자리에 있음을 알고 가야 합니다. 내가 많은 것을 알고 가지고 떵떵거리며 적선을 하고 도와주려기보단 스스로를 낮추고 상대를 높혀 섬기려 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이런 말씀을 주시는 것은 우리를 준비시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큰 일을 이루시기 위하셔서 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시고 나서 세상이 그 분을 높혔습니다. 그분을 왕이라 부르고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떠셨습니까? 아 드디어 내가 힘든 시간을 견디고 정당한 보상을 받는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 내가 이제 겸손했으니까 상으로 받은 이 명예를 누려야지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라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끝까지 겸손하고 낮은 자세를 취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와 같습니다. 이제 사업이 열리는 것 같고 뭔가 되는 것 같으니까 이제 고생에 대한 보상이 오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사업으로 부자되는 것이 목적이 되어 누리려는 마음을 고쳐 먹으십시오. 하나님의 최종적인 뜻이 오늘 본문의 환호성이 아니라 십자가였던 것처럼 우리 교회의 사업의 최종적 목적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적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사업이 아닌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영혼을 살리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일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업을 통해 육적으로 뭔가 되는 것 같아도 항상 나를 낮추고 겸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경이 말하는 겸손은 무엇입니까? 오늘 성경이 말하는 겸손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싼 옷을 입고 싼 차를 타고 싼 집에서 사는 것이 겸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듣고 겸손해지겠다고 겉으로만 후줄근하게 꾸미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해 겸손해지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이 실천해야 합니다. 먼저 교회와 담임 목사님의 말에 철저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저번에도 제가 말했지만 우리 교회 담임 목사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목적이십니다. 하나님도 모든 것을 담임 목사님을 통해 일하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담임 목사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해야 합니다. 담임 목사님이 운전하라면 운전하고, 밥하라면 밥하고, 백번이고 심부름하라고 하라면 하고, 커피 타라면 커피 타야 합니다. 이 정도 각오도 없이 사업에 덤비다간 사업 어렵습니다. 오늘 모두 사업에 있어서 담임 목사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겠습니다. 같이 결단하며 외치겠습니다. 담임 목사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겠습니다.
다음으로는 어떤 상황에도 감사하기입니다. 사업을 해도 여러분 상황이 크게 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여전히 시다바리하고 있어야 할 수도 있고요. 지금 같이 돈 없어서 대충 밥 먹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보다 하나도 나아지지 않은 집에서도 살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사업이 되서 돈이 들어와도 여러분에게 혜택이 1도 없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감사해야 합니다. 사업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다면 그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내 상황보다 하나님 나라와 일이 1순위가 되어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다시 결단하며 외치겠습니다. 어떤 상황에도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순종으로 겸손을 보이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다음 이야기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결론
제가 유튜브를 보다 한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쉽게 말해 밸런스 게임이었는데, 1억 받기 대 서울대 입학하기 어떤 것이 더 좋냐가 주제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게 더 나은 것 같습니까? 제가 이 영상을 보고 기억에 남은 것은 영상의 내용이 아니라 댓글이었습니다. 댓글에 뭐라 적혀 있었냐면 서울대만 입학하면 뭐 하냐 능력이 없으면 견디지도 못하고 나올 것이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운 좋게 서울대에 들어가면 뭐합니까? 내가 그대로면 서울대라는 이름이 아무 의미도 없을텐데요.
우리도 같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복된 길을 여셔도 우리가 준비되지 않아선 안됩니다. 실컷 복된 길로 들어가 봤자 누리기는 커녕 오히려 그것이 우리에게 해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에 하나님이 길을 여시고 있습니다. 막 상황이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준비되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이 일순위이고 그것에 순종하는 겸손함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준비하려면 공부를 한다거나, 자격증을 딴다거나, 영적 능력을 받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내 자세입니다. 내가 하나님 말씀에 어떤 상황에도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우리 모두 겸손히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하나님의 일을 성취하는 복된 그리스도인 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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