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서 강해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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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하시는 여호와
요나서 1:14-17
선원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모두 해봤습니다.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의 이름도 불러봤지만 허사였습니다. 배를 가볍게 하면 살 수 있을 것을 기대하면서 돈을 벌게 해줄 물건들도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러나 허사였습니다.
요나를 살려보겠다고 노를 힘껏 저어봤지만, 그것도 헛일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선원들은 막다른 길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저 요나의 말처럼 요나를 바다에 던져 넣는 일만 남았습니다.
요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거역하고 달아났던 요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서 배 밑바닥으로까지 도망쳤지만, 그곳까지 찾아오신 하나님은 요나를 막다른 길로 몰아넣으셨습니다. 자신 때문에 모두 죽게 된 상황에서 요나는 모든 일의 원흉인 자신이 죽어야 끝이 남을 알았습니다.
요나를 바다에 던지는 과정에서 선원들이 보인 행동과 말들이 14-1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4절에 선원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태풍이 왔을 때 각자의 신들을 불렀던 그들은 이제 여호와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불법한 요나를 끝까지 찾아와서 벌주시는 여호와를 알게 된 그들은 지금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이전처럼 각자의 신이 아니라 천지 만물을 다스리시고 악한 자에게 반드시 벌을 내리시는 바로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기도는 간절했습니다. 이들은 14절에 기록된 것처럼 “구하고 구하오니”라고 반복된 기도의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요나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선장이 네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촉구했을 때도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선원들과 요나의 모습이 대조적입니다.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선원들은 하나님께서 죄를 그냥 넘어가시지 않고 자기에게 범죄한 선지자까지 쫓아와서 벌하시는 거룩하신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혹시 요나를 바다에 던져 넣은 것 때문에 자신들이 벌을 받을지 두려워 근신하는 자세를 가지고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선원들은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이 선원들은 요나가 결코 죽어야 할 죄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생각에는 요나가 죽어야 할 죄인이 아니라고 보았기에 살려보려고 노를 힘껏 저어서 육지로 돌아가려고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들은 혹시나 하나님의 선지자인 요나를 바다에 던진 일로 자신들도 심판을 받게 될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요나의 불순종이 이렇게 큰 재난을 받게 되었다면 자기들의 죄야말로 그 결과가 어떠할지를 알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선원들의 이러한 모습은 훗날 이스라엘 자손들이 예수님을 죽일 때 했던 말과 행동과는 정반대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기고 난 후에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면서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외쳤습니다.
자신들은 의롭고 예수님은 의롭지 않다는 것이 이들의 태도였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요나를 바다에 던지는 선원들은 하나님 앞에 자신들의 의로움을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은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라면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고백의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뜻하는 대로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분이심을 알고 기도를 드립니다. 요나를 바다에 던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이 모든 것이 바로 여호와의 뜻임을 알게 된 선원들은 지금 그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요나를 들어서 던졌습니다. 놀랍게도 요나를 바다에 던져 넣은 직후 그렇게 요동치던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각자의 신들에게 기도도 해보고, 화물도 던져보고, 육지로 가겠다고 힘써 노를 저어도 봤지만, 모든 것이 허사였는데, 죄를 지은 요나를 바다에 던져 넣자, 모든 것이 없었던 일처럼 잔잔해졌습니다.
그러고는 바다의 상황이 바뀜을 보고 선원들은 크게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다고 16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 선원들은 이방신을 섬기던 자들이었는데, 죄를 심판하시고 바다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선원들은 요나를 바다에 던진 후에 구원받았습니다. 자신들의 배에 범죄자를 태워서 고통을 받았는데, 그 범죄한 자를 처리한 후에 그들은 폭풍 가운데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우리는 선원들과 바다에 던져진 요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교훈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첫 번째로 요나가 바다에 던져진 것은 요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입니다. 분명 하나님은 요나의 불순종에 대해서 형벌을 주셨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성경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앞에서 죄를 범한 사람이 누구이든지 그에 대한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예외가 없으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였습니다. 그런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을 저질렀을 때, 하나님은 다윗을 징계하셨습니다.
선지자여도 사랑하는 왕이어도 죄를 지으면 하나님은 징계의 회초리를 드십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답도록 만들기 위한 체벌을 가하십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직분이 있거나, 교회 일에 열심을 나타내어도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은 그 죄에 대해서 징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시고 회초리를 드시는 이유는 우리를 더욱 거룩한 자로 서게 하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벌만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두 번째로 알 수 있는 사실은 하나님은 구원의 길도 열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선원들은 요나를 바다에 던져 넣고 바다가 잠잠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선원들은 요나가 하나님께 범죄한 사람인 줄은 몰랐지만, 죄인을 태워주고 함께 했기에 죄에 대한 징계를 함께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범죄한 사람을 바다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 사람을 배에 태웠던 자신들의 잘못된 행동을 고치자, 바다가 잠잠해졌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통해서 이방인들이었던 그들이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겠다고 서원을 하고 있습니다. 잠깐의 잘못과 괴로움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것들을 통해서 이방인 선원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셨습니다. 폭풍 뒤에 구원의 길이 그들에게 허락된 것입니다. 자신들의 능력으로 구원을 얻으려던 선원들이 자신들의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은혜를 구했을 때 그들은 구원받았습니다.
요나는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낯을 피해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버리고 도망쳤지만, 폭풍으로 가로막혀서 바다에 던져져 죽음당할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해 두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물에 대한 두려움이 유독 큽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주로 생활하기 때문에 큰물을 쉽게 접하지 않아서 두려워합니다.
성막에서 사용하는 물두멍이라는 성물이 있습니다. 제사장이 제사를 드리기 전에 손을 씻으면서 정결 예식을 하는 곳입니다. 이 물두멍을 다른 이름으로 바다라고 부릅니다. 유대인들은 물이 조금만 많이 모여 있으면 바다라고 부를 정도로 물에 대한 두려움이 큽니다. 그런 유대인인 요나가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는 것은 혹시 살아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전혀 갖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나는 바다에 던져지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벌을 달게 받기로 생각한 요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선원들의 손에 의지해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요나에게 이방인들의 책망과 바다에 빠지는 형벌을 주셨지만, 곧장 큰 물고기의 배에 들어가서 살아날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이 큰 물고기가 무엇이냐고 따지는 소모적인 논쟁은 하지 않겠습니다.
단지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물고기 배속에서도 살 수 있는 것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능력이고, 계획입니다. 전능하셔서 땅의 짐승과 하늘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 모두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요나를 삼킬 물고기를 준비 못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요나를 책망하시고 징계하셨지만, 불순종한 요나에게 구원의 길도 주셨다는 것입니다. 선원과 요나를 구원하시는 여호와를 보십시오. 그 여호와께서는 불순종하는 요나를 이용하셔서 이방인인 선원들이 여호와를 믿도록 만드셨습니다.
요나는 이방인들이 구원받는 것이 싫어서 도망을 쳤는데 그러한 요나를 이용하셔서 이방인인 선원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요나는 자신의 불순종이 그렇게 사용되리라 생각도 못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활용하셔서 자기 뜻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길은 심오하여서 우리의 얕은 지식으로는 그분의 생각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선원들이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거룩하심과 주권을 깨닫게 되어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음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스스로를 구원하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런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자 그들은 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살아갈 능력이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지금도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신 것도 큰 은혜입니다. 죄인인 우리를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해 주신 일은 더 큰 은혜입니다.
이 큰 은혜를 받고 있고, 알고 있는 우리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먼저는 선원들이 배에 죄인인 요나를 태웠다가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이라는 배에 죄를 태우지 마십시오. 죄가 여러분의 삶에 찾아올 때 여러분은 주께서 주신 은혜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여서 그 죄를 속히 던져 버리십시오.
요나는 선원들에게 뱃삯을 주고 탔습니다. 선원들에게는 그 돈이 달콤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서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죄는 우리의 삶에 찾아올 때 괴로움을 앞세워서 오지 않습니다. 죄는 달콤한 꿀처럼 우리에게 즐거움을 줍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꿀을 찾아온 벌 떼들이 있습니다.
당장 유흥과 즐거움을 위해서 죄를 선택하지 마십시오. 눈앞의 즐거움을 위해서 죄를 용납하지 마십시오. 그 죄가 여러분을 폭풍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또한 요나처럼 불순종의 자리에 가지 마십시오. 요나는 니느웨로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스로 갔습니다.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있었기에 요나는 폭풍을 만나고 잠시 바다에 빠져서 죽음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있다면, 즉 순종이 싫어서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서 도망치고 있다면, 속히 그 도망치는 자리에서 돌아오십시오.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죽음의 고통을 보기 전에 돌아오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은 잠시 잠깐의 즐거움과 유희가 있을지 모르나 그 결국은 심판입니다. 진실로 여러분이 구원받은 백성들이라면 죄를 짓는 자리에서 벗어나 거룩한 자리로 서야 합니다. 인생의 배에 죄를 태워서도 안 되고, 인생의 배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방향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요나서 1장을 통해서 우리는 불순종과 죄를 미워하시고 징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순종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1장의 마지막은 구원의 이야기들로 끝이 납니다. 이방인인 선원들의 구원도 엉망진창으로 불순종하는 요나도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구원함을 얻었습니다. 요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계십니다. 선민인 요나도, 이방인인 선원들도 예외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대로 구원의 은혜가 내려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도 바로 그런 은혜로 인해서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롭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근거하여서 우리가 구원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온전히 순종해서가 아니라, 그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도 여러분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으로 인해서 그저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은혜로우시고 사랑스러우신 분의 이름으로 오늘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모든 일에 말씀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