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으라(막14:3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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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1) 사람은 태도가 중요하다.

한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 사람이 삶 가운데서 일을 할 수도 있고, 가족을 책임지고 살 수도 있고, 누군가를 정말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의 인생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겁니다.
누군가는 인생에 있어서 뭐니 뭐니 해도 돈이 최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어려울 때 언제든지 든든하게 지켜줄 배경이 중요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돈도 좋고 빽도 좋다고 하지만 인생은 “자기 자신이 사는 것이지, 그런 것들이 살아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며,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태도”입니다.
“폭삭 속았수다에 나오는 “양관식”
최근에 [폭삭 속았수다]라는 넷플릭스 드라마가 종영되었습니다. 저도 많이 울면서 봤던 드라마인데요. 이 드라마에 아버지로 나오는 “양관식”이라는 사람은 돈이 많지도 않고, 그렇다고 든든한 빽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양관식이라는 사람이 자기 인생에서 최고 내세울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성실성”이라는 “태도”였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인생은 태도에 따라 결정된다.”
이처럼 사람의 인생은 그 사람이 어떤 태도로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 거짓 없이 우직하게 자기 걸음을 걸어가는 사람, 늘 겸손한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 이런 사람은 금방은 손해보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멋진 인생을 살아가게 되고, 좋은 사람들과도 많이 연을 맺으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개요2)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태도가 중요하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태도도 무척 중요합니다.” 제가 늘 생각하지만, “똑같은 예수 믿는다고 다 잘 믿는 것 아닙니다.” 그 사람이 신앙에 대해 어떤 태도로 믿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삶이 달라집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주일이 다가 올 때, “기대하는 태도”로 주일을 기다리는 사람과 준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그저 돌아오는 주일쯤”으로 생각하며 지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주일에 누리는 은혜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깨어 있는 태도와 관련하여”
이처럼 신앙에 있어서도 태도가 정말 중요한데, 오늘 말씀에서도 그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함께 말씀 속으로 들어가 살펴보길 원합니다.

본론

개요1) 겟세마네로 기도하러 오신 예수님의 첫번째 기도

“습관에 따라 겟세마네로 기도하러 오신 예수님”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겟세마네라는 곳으로 기도하러 오셨습니다. 겟세마네는 감람산에 위치한 동산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습관에 따라 자주 기도하셨기에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도 그곳에 기도하려 오셨습니다. 무엇보다 율법에 의하면 유월절 전날을 예루살렘에서 보내야 했는데,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전날 밤인 오늘 본문에서 겟세마네에 계심으로 모든 율법의 요구를 이루셨던 것입니다. 정말 죽기까지 율법을 이루셨습니다.
“제자들을 깨어있으라고 말씀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기도할 동안 겟세마네 동산에서 잠시 앉아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동산 기도 장소를 향하여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 앞에서 우리와 같이 인성을 지니신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심히 놀라시며, 슬퍼했습니다.” 그러시며 따라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4:34 NKRV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예수님은 자신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죽음을 앞두고 힘이 드셨습니다. 우리의 죄가 아니라면,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이신 그분이 이렇게까지 죽음으로 인해 고통받고 슬퍼하실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그분은 심히 슬프고 힘들었습니다.
“엎드려 기도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곧 조금 나아가셔서 엎드려서 기도하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모두 서서 기도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예수님이 엎드려서 기도했다는 것은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의 내용: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렇다면 그분은 무엇을 위해서 기도했습니까? 35-36절을 보겠습니다.
마가복음 14:35–36 NKRV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그분은 기다려온 대속의 죽음이었지만, 그럼에도 그 죽음의 잔이 지나가길 기도하셨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예수님께서 이럴 이유가 하나도 없지만,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이셨기에 이 잔을 두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기도를 마치시고 제자들을 보신 예수님 “깨어있으라”
예수님은 그렇게 기도를 마치시고, 나와 제자들을 보시고 특별히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37-38절입니다.
마가복음 14:37–38 NKRV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예수님의 말씀은 결국 “깨어 있을 수 없느냐?”라는 말이었습니다. 여기서 깨어있다는 것은 단순히 잠을 자지 않는 상태가 아닙니다. 고난의 십자가를 지셔야만 하는 예수님을 기다리며 있는 그들의 마음과 태도를 말씀하시는 겁니다.
“제자들이 잠을 잔 이유는 뭘까?”
저는 이 본문을 보면서 제자들은 왜 잠을 잤을까? 라는 의문을 가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만약 그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정말로 믿었고, 즉시 했다면… 잠을 못잤을 것이다. 결국 그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즉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졸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죽음 앞에 기도하지만, 제자들은 그 사실을 즉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육신의 피로가 그들의 정신을 잡아 먹어버린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그들의 태도가 정반대로 진지하게 받아드리고 기도했다면, 그들은 결코 피곤 가운데서도 잠을 못잤을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의 가까운 임종 앞에 그 옆 자리에 자리깔고 쿨쿨 잘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결국 태도에 문제였던 것입니다.

개요2) 겟세마네로 기도하러 오신 예수님의 두번째 기도

‘두 번째로 기도하러 가시다”
본문의 예수님은 또 다시 자신의 죽음 앞에 기도하러 동산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정말 죽음 앞에 슬프고 힘드셨습니다. 그만큼 그 죽음의 무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또 자고 있는 제자들”
그런데 예수님께서 돌아와 보니 제자들이 또 자고 있었다는 겁니다. 죽음 앞에 진자하게 나가는 예수님과 그렇지 않는 제자들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결국 또 태도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개요3) 겟세마네로 기도하러 오신 예수님의 세번째 기도

“세번째로 기도하고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이어서 세번째로 기도하고 돌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때는 예수님께서 좀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함께 41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마가복음 14:41 NKRV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이제는 “자고 그만 쉬라고 하십니다.” 이유가 뭘까요? 바로 “때가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의 손에 팔려.. 본격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러 들어갈 때가 왔기 때문입니다.

메시지

“오늘 메시지의 핵심: 깨어있으라”
결국 오늘 말씀의 핵심 메시지는 “깨어 있으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 앞에 깨어 있지 못했던 제자들의 모습을 보며, 이 말씀을 받는 오늘 우리는 “깨어 있으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단순히 자지말고 일어나 있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신앙의 태도로써 깨어있으라”는 겁니다.
“깨어 있으라의 구체적 의미: 단순 반복의 신앙적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태도”
그렇다면, “신앙의 태도로써 깨어 있으라”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단순한 신앙적 행위를 반복해라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함으로 깨어 있는 것은 맞지만, 기도하는 것에만 집중하여 “기도를 많이하면 깨어 있는 것이다”는 생각을 하지 말자는 겁니다.
오히려 깨어 있으라는 말은 날마나 “나는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모든 일에 예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는가?” “나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오늘도 기다리고 있는가?”라는 마음의 생각을 통해 우리 태도를 늘 점검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
그리고 제자들과 우리가 이렇듯 마음의 태도로써 늘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는 “오늘 깨어 있지 못하면 앞으로는 더더욱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계실 때 깨어 있어야 앞으로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이후에 교회를 건설해가며 깨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지금 깨어 있어야 마침내 종말을 때를 맞이하며 환난 가운데서도 깨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깨어 있을 때, 우리 신앙은 강철무기가 된다.”
오늘 말씀의 메시지 처럼, 우리가 깨어 있어서 바른 태도로 주님을 따라 살아갈 때, 그 깨어 있음이 종말의 때를 맞이할 우리에게 강철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결론

말씀의 결론을 맺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대충 주어진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태도를 점검하여 앞으로의 환난의 때에도 흔들림 없는 성도가 되라고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시는 것 입니다. 그러니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다음의 세 가지를 통해 우리 영혼과 마음이 깨어있기를 원합니다.
첫째, “오늘도 나는 십자가를 기억하고 있는가?”입니다.
십자가를 기억하는 것은 나를 향한 대속의 은혜를 기억하는 겁니다. 정말 중요한 사실인데 우리는 이 사실을 아주 자주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잊어버리면 우리는 우리 삶에 궁극적인 감사가 사라지고,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나의 존재와 그로 인한 감사가 있는 삶과 신앙은 어떤 시련 가운데서도 다시 일어서는 힘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로는 “오늘 나는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입니다.
우리가 대속의 은혜를 기억했다면, 우리 예수님을 닮은 삶, 곧 말과 행동과 생각에 있어서 그분을 닮은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태도를 고치지 않고서는 결코 불가능한 것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 닮은 삶을 살기를 작정해서 우리의 태도를 고칠 때, 우리는 세상과 구별되는 동시에 세상이 우리를 부러워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로는 “오늘 나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가?”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날마다 큰 욕심을 내려놓고 과하지 않지만 단정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주님을 기다리는 겸손한 성도의 자세입니다. 이런 삶을 살아갈 때, 현재의 고난이 우리로 하여금 낙심하지 않도록 합니다.
우리는 방금 말씀드린 이 세 가지 “깨어 있는 태도”를 기억하고 우리 몸에 익혀서 세상 가운데 능력있는 그리스도인, 마지막 때에도 움츠려들지 않는 그리스도인,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인 될 줄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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