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한 삶

사도행전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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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실한 삶

본문: 사도행전 15:1-5

찬송: 449장

<임재의 기도>

오늘도 말씀을 통해 말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저희의 마음과 생각을 열어 주시고 귀를 밝히 하사 주님의 음성을 분명히 듣게 하옵소서. 저희의 분주한 마음을 잠잠케 하시고, 모든 염려와 걱정을 내려놓고 온전히 주님 앞에 집중하게 하옵소서. 이 말씀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뜨거운 능력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말씀의 문을 열며>

우리는 모두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어린 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엄마, 잘 그렸지?"라고 물을 때부터, 직장에서 승진을 기다리는 직원, 설교 후 반응을 살피는 목회자에 이르기까지 - 인정과 영접에 대한 갈망은 인간의 가장 깊은 욕구 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자아 만족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인정받고 영접받을 때, 그곳에서 우리는 소속감과 안전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지난 주일 우리는 같은 본문을 통해 "복음과 사랑"의 균형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신실한 삶"의 관점에서 더 깊이 묵상하려 합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신실한 삶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진정한 인정과 영접은 쉽게 오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바울의 이야기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그림자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고, 그의 변화를 의심하는 시선들이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그의 회심 이후 세 번째로 예루살렘을 공식 방문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세 번째 방문에서 주목할 점은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행 15:4)라는 말씀입니다. 이전의 방문들과 달리, 이번에는 바울이 진정으로 '영접'을 받았습니다. 헬라어 '파라데코마이'(παραδέχομαι)는 단순한 환영이 아닌 기쁨으로 받아들임을 의미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때로는 침체기를 겪기도 하고, 때로는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나 형식에만 매달리는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소명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바울의 신앙 여정을 통해, 우리도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며, 어떻게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지 함께 배워보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신실함>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 여정을 살펴보면 하나님 앞에서의 신실함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습니다.
그의 첫 번째 방문에서 예루살렘 교회는 과거 핍박자였던 그를 "다 두려워하여 믿지 아니했고"(행 9:26), 두 번째 방문에서도 구제금을 전달했음에도 장로들은 그를 공식적으로만 대했습니다. 아무도 바울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두 번째와 세 번째 방문 사이에 바울이 어떻게 살았는가입니다. 이 기간에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첫 번째 선교 여행을 떠납니다. 사도행전 13-14장 에 기록된 이 여정은 바울이 단순히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충실했음을 보여줍니다.
이 선교 여행 중에 바울은 격렬한 반대와 핍박을 경험합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는 유대인들의 시기로 도시에서 쫓겨났고(행 13:50), 이고니온에서는 돌에 맞아 죽을 뻔했으며, 루스드라에서는 실제로 돌에 맞아 죽은 줄 알고 성 밖에 버려지기까지 했습니다(행 14:19).
그러나 이런 역경 속에서도 바울은 복음 전파의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돌에 맞아 쓰러진 후에도 더베로 가서 계속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신실함입니다. 환영받지 못하고, 거절당하고, 심지어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충실한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선교 여행을 마친 후 바울이 취한 행동입니다. 그는 자신이 세운 교회들을 다시 방문하여 "제자들의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행 14:22) 권면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공로나 업적을 자랑하기보다, 성도들의 믿음과 영적 성장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선교 여행을 마치고 수리아 안디옥에 돌아온 바울은 "하나님이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일"(행 14:27)을 교회 성도들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취가 아닌 하나님의 역사하심강조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실한 종의 태도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고, 그 결과 세 번째 방문에서는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았습니다"(행 15:4).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원리를 발견합니다. 진정한 인정은 우리가 구하는 것이 아니라, 신실한 삶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의 인정을 구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부르심에 신실하게 응답합니까? 하나님 앞에서의 신실함은 사람의 시선이 아닌 하나님의 부르심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바울은 거절과 오해, 심지어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아니함으로 신실한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었으며 하나님께 인정받았습니다.

<복음을 지키는 용기>

바울의 세 번째 예루살렘 방문복음의 본질을 둘러싼 중대한 신학적 논쟁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의 본질이 위협받고 있음을 보았기에 강하게 대응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그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고 썼습니다. 할례와 율법 준수가 구원의 조건이 된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은 불완전한 것이 됩니다.
바울에게 복음의 본질은 명확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어떤 노력이나 행위도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논란이 생겼을 때 바울은 지혜로운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행 15:2). 그는 복음의 본질에 확신이 있었지만, 이 문제를 공동체적 분별을 통해 해결하려 했습니다.
오늘날 신앙에도 핵심적 본질비본질적 요소가 있습니다. 때로는 비본질적인 것들—특정 예배 형식, 교회 전통, 문화적 관습—을 본질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베니게와 사마리아를 지나며 바울은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했습니다"(행 15:3). 그는 논쟁의 와중에도 복음의 능력과 결과를 증거했습니다.
신실한 삶은 때로 복음의 본질을 위한 싸움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싸움은 개인의 자존심이나 권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온전히 드러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비본질적인 것에는 유연함을, 본질적인 것에는 단호함을 보이며 이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해결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바울은 할례 문제에서는 타협하지 않았지만, 음식 문제에서는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전 9:19)고 말했습니다.
신실한 삶복음의 순수성을 위해 때로는 홀로 서야 함을 의미합니다. 바울처럼 복음의 본질을 위해 담대히 일어서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영접받는 삶>

본문 4절을 보면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라고 말씀합니다. 이 단순한 말씀에 하나님은 큰 비밀을 숨겨 놓으셨습니다.
바울이 받은 '영접'은 헬라어 '파라데코마이'(παραδέχομαι)입니다. 이는 단순한 접대나 환영이 아닌 기쁨으로 받아들임을 의미합니다. 처음 두 번의 방문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진정한 영접을 이제 바울은 경험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바울이 보고한 내용입니다. 그는 자신의 업적이 아닌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했습니다. 진정한 영접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증거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신실한 삶은 결국 공동체 안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바울의 사역이 인정받은 이유는 그의 사역이 고립된 개인 사역이 아닌, 하나님과 공동체를 위한 사역이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5장 7절 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영접하신 것처럼 서로를 영접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공동체 안에서 영접받는 삶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 중심의 삶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강조했습니다.
둘째, 공동체의 유익을 구하는 마음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인정이 아닌 복음의 확장을 추구했습니다.
셋째, 기다림의 미덕입니다. 바울은 인정받기 위해 서두르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바울의 세 번째 방문이 예루살렘 교회와의 진정한 연합으로 이어진 것처럼, 신실한 삶은 궁극적으로 공동체적 조화와 일치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 일치는 복음의 더 큰 확장을 가능케 하는 토대가 됩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바울의 삶을 통해 신실한 삶의 세 가지 측면을 살펴보았습니다.
신실한 삶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바울처럼 때로는 오해와 거절을 경험할 수 있고, 복음의 본질을 위해 홀로 서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복음의 본질 앞에서, 그리고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신실하게 살아갈 때, 우리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됩니다.
시편 기자는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시 27:14)라고 노래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갈 때, 그 신실함은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이러한 신실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말씀을 통해 저희에게 다가와 주시니 감사합니다. 바울의 삶을 통해 신실함이 어떤 것인지 보게 하셨습니다. 그의 여정이 때로는 거절과 오해 속에 있었지만, 끝까지 주님만 바라보며 나아갔던 그 모습을 통해 저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주님, 솔직히 고백합니다. 저희는 종종 인정받기 위해 서두르고, 결과를 성급히 구하며, 때로는 주님보다 사람의 시선을 더 의식할 때가 있습니다. 바울이 그러하지 않았던 것처럼, 저희도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삶 살게 도와주세요.
성령님, 저희 교회를 새롭게 하시고 말씀으로 채워주소서. 주일 예배뿐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에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역사가 있게 하소서. 주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기쁨을 경험하게 하소서.
이 사순절 기간, 저희의 시선을 십자가로 고정시켜 주소서. 세상의 유혹과 달콤한 거짓에 속지 않게 하시고, 겸손히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제자의 길을 걷게 하소서. 주님이 저를 위해 포기하신 것처럼, 저도 기꺼이 자신을 내려놓는 순종을 배우게 하소서.
삶의 크고 작은 전쟁에서 주님이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때로는 돌에 맞아 쓰러질지라도 다시 일어나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소서.
이 모든 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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