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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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예수님을 묵상하며
예수님을 묵상하며
저번주에 광고한대로 우리는 오늘부터 3주간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묵상하는 주간을 가집니다. 이 기간은 부활하신 주님을 기억하고, 우리를 위해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희생을 떠올리며 감사하는 주간이에요. 우리는 잘 지키지 않지만 ‘사순절’기간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저희는 3주동안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에 대해서 묵상하고 함께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을 다시한번 떠올리는 경건의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예수님을 묵상하는 기간을 가질 때 첫 시작을 어떤 말씀으로 할 지 고만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문득 이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로마서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우리를 위해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우편에서 간구하시고 계시는 분이신데, 어떤 것을 간구하고 계실까?
오늘 우리가 묵상하며 함께 나눌 내용은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간구는 사람으로 오셨을 때도 하나님께 우리를 위해 간구하셨습니다.
오늘 이 내용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고 하나님께 기도하실 때, 무엇을 위해 기도했는지를 볼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인데, 예수님의 관심과 그 분이 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나누며,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 가운데 새겨지는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기도하시다.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기도하시다.
오늘 말씀은 17장 전체를 다루는 말씀이에요. 예수님은 본격적으로 십자가를 짊어지고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를 드립니다.
요한복음 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먼저 예수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때가 이르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이유가 이뤄질 때가 되었다고 하십니다.
2절에 보니 이렇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7: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자신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다.
예수님이 보내진 이유, 예수님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영생을 줄 수 있는 이유는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가 예수님께 있기 때문이죠.
친구들 영생이 무엇인가요? 단순히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게 영생인가요? 그렇다면 너무 잔인하지 않아요?
가뜩이나 우리 사는 것도 쉽지 않은데, 이런 고민을 안고, 답답함과 허전함을 안고 영원토록 사는건 오히려 잔인한 거잖아요.
성경이 말하는 영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영생과 다른 의미에요.
예수님은 영생을 이렇게 말씀해주십니다.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해요.
우리가 예수님이 누군지를 확실히 아는 것,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이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창조주 라는 사실을 아는 것, 이것이 영생이에요.
다시말해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을 영생이라고 말하고 또 다른 말로 뭐라고 하죠? ‘천국’을 사는 것이라고 말하죠.
그래서 이런 말을 해요. “천국이라고 말하는 곳에 내가 원하는 것이 전부 다 있는데, 그 곳에 하나님이 없다면, 그것은 천국이 아니다.”
왜죠? 영생, 천국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는 어디든 천국이고, 영생의 삶이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오셨어요. 다시 말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더이상 친구들이 혼자가 아닌 주님과 함께 사는 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이죠.
유혹에서 건지고 기쁨을 주시고자 함
유혹에서 건지고 기쁨을 주시고자 함
요한복음 17: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예수님은 또 자신을 따라 말씀을 따르며 예수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자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요한복음 17:11–12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예수님이 계실때는 예수님이 그들을 보호하고 지켰지만 이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보호하여 주시고 우리중에 어느 누구도 멸망하지 않기를 구합니다.
우리가 때로는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방황하는 시기가 있어요. 세상이 더 좋아보이고 그럴 때가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도 우리를 주님께서 떠나지 않는 이유는 예수님이 지금도 이렇게 기도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왜죠? 예수님은 여전히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아무도 멸망의 길에 빠지지 않기를 구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자신을 믿는 누구든 멸망하지 않고 주님의 보호아래서 이 땅을 살아가게 하기 위해 오셨다는 거에요. 끊임없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구하고 계신거죠.
왜 이렇게도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해주시고 보호하시고 멸망의 길에 빠지지 않기를 간절히 구하셨을까요?
바로 이 기도가 있기 때문이에요.
요한복음 17: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 안에 있는 충만한 기쁨이 어떻게요? 우리 안에도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오셨어요.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앞둔 이 시기에도 여전히 충만한 기쁨이 있으셨어요. 세상이 줄 수 없는 그 기쁨을 우리들이 누리기를 예수님은 원하고 계신거에요.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기쁨이 있어요. 실은 선생님도, 저도 이 기쁨을 알기 전까진 예수님한테 관심조차 없었고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이 바보같아 보이고 한심해 보였죠.
그런데 그거 알아요? 겪어봐야 이게 진짜 말로 설명이 안되거든요. 진짜 참된 채움, 참된 기쁨 단순히, 뭔가 원하는걸 얻어서 기쁜게 아니라 말로 설명하기 힘든 기쁨을 경험하고 누린단 말이에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기에 이 땅에 오셨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는거에요.
왜냐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언제나 이런 상황이기 때문이에요.
요한복음 17: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이 땅에서 사는 이상 우리는 언제나 악에 빠지기 쉬운 환경이기 때문이죠. 악은 다른게 악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되는 모든 것이 악이에요.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함께 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을 말해요.
하나님과 멀어지기 쉬운 환경 속에서 지키기 위해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기도한다는 거에요.
모두를 위한 기도 - 하나되길
모두를 위한 기도 - 하나되길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앞으로도 예수님을 믿게 될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하세요.
요한복음 17:20–21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어떻게 하길 기도하고 있죠?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이 하나인 것 같이, 우리도 다 하나가 되어서 함께 교회가 되어지길 기도하고 있어요. 왜죠? 우리가 하나될 때 사람들이 하나님이 누구인줄 알게 되기 때문이에요.
친구들 세상은 끊임없이 분열해요. 서로 다투고 경쟁하고, 누군가를 짓밟고, 누군가를 소외시키기도 하죠.
‘약육강식’ 이 단어가 세상이 추구하는 단어에요. 약한 자들은 도태될거고 약한 자들은 외면당하고 무시당하죠. 그래서 모두가 강해지기 위해서 약한자들을 누르고 강한자들끼리 더 강한 자가 되기 위해 분열하고 싸우는게 세상의 모습이에요.
아니 꼭 세상이라고 넓게 잡을 필요도 없어요. 여러분 학교에 있는 수많은 친구들 관계를 생각해보세요.
하나된다는게 쉽나요? 이간질하고 서로 끼리끼리 구분지어서 좀 더 자신들의 무리가 돋보이고 싶어서 다른 아이들을 뒤에서 험담하거나 또는 형제들 무리는 어때요. 힘을 과시한다고 약한 애들 괴롭히고 빵셔틀 시키고 이런게 세상의 모습이에요. 끊임없이 분열되고 하나되지 못하죠.
그런데 예수님은 교회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길 구하고 계세요. 우리가 하나되기만 해도 세상과 구별되어서 세상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알기 때문이에요.
교회는 어떤 곳이라고 했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배워가면서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공동체가 교회라고 했어요.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가 되기를 구하는 이유를 이렇게 또 설명해요. 새번역으로 읽어볼게요.
23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을 보내시고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사랑하시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기 위해,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서 나아갈 때, 교회는 저렇구나도 있지만 하나님이 정말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보게 하기 위해 기도하시고 계시다는거에요.
예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였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였다.
친구들, 말씀을 정리해보려고해요.
예수님을 묵상하는 주간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정리하면 ‘우리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셨어요.
우리 때문에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예전에 한번 어떤 친구가 저에게 그랬어요. 나는 예수님도 모르는데 나 때문에라고 하니까 너무 억울하다. 맞아요. 나 때문에 대신 죽은게 아니라 나를 위해서 대신 죽어주신거에요.
억지로 죽으신게 아니라 기꺼이 우리를 위해 희생하셨죠.
예수님은 기도하는 그 순간에도 마음속에 우리밖에 없었어요.
우리에게 영생을 선물하기 위한 간절함과 세상가운데 악에 빠지지 않고 보호하고 싶은 그 마음과 세상이 줄 수 없는 충만한 기쁨을 선물해주고 싶은 그 마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믿는 우리들이 하나님안에서 하나되어 사랑을 배우고 경험하며 세상이 우리가 사랑받고 주길 원하는 마음, 그래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게 되길 원하는 마음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를 위한 마음밖에 없으셨어요.
예수님의 처음부터 죽으시고 부활하신 순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 우편에서 여전히 우리를 위한 마음밖에 없으시죠.
사랑하는 친구들, 예수님은 지금도 여전히 친구들 한 명 한 명을 바라보시며 이렇게 구하십니다.
진짜 영생을 누리고 있다는 것,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 방황할지라도 보호하시고 위험에서 건져내시는 것, 믿음의 공동체를 선물해주시는 것
친구들은 그 만큼 소중한 존재로 여기고 계시다는 것을 알기를 구하고 계세요.
바라기는 이번 한 주간이 우리만 바라보시는 예수님을 우리도 한 번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마음을 느끼는 한 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생각의 한 편에 예수님으로 가득채우면서 예수님이 우리만 바라보며 십자가를 준비하셨듯이 우리도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서 감사와 고백의 시간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