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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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지서와 소선지서
대선지서와 소선지서
저희가 지난 주 까지는 이사야서를 알아보았다가 오늘은 미가서로 넘어오게 되었는데요, 이 이사야와 미가는 동시대, 같은 유다 왕국에서 활동했던 예언자들입니다. 둘다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로 이어지는 왕들의 시대에 남유다에서 활동을 했었는데요, 그런데 이 두 예언서에게는 주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바로 이샤야서는 저희가 대선지서라고 부르고, 미가서는 다른 여러 선지자들과 엮어서 소선지서라고 부릅니다.
왜 그럴까요? 단순히 텍스트의 양이 달라서, 이사야는 막 66장까지 있는 긴 글이고, 미가서는 7장밖에 안되는 짧은 글이라서 그런걸까요? 사실 여러분 대선지서라고 불리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그리고 소선지서라고 불리는 12권,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서는 두루마리의 차이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서들은 각각 한 권의 큰 두루마리 하나로 이루어진 것이구요, 그 뒤의 12명의 선지자들에 대한 소선지서들은 The Twelve, 열둘, 십이경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한 권의 두루마리에 다 담겨있기 때문에 소선지서라고 부르는 겁니다.
오늘날의 책을 생각하면 코덱스라고 해서 저희가 한장 한장 넘기는 책을 생각하기 쉽지만 옛날에는 책이라고 하면 기다란 두루마리로 제작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이 예언서들이 전승되어서 내려올때, 여러개로 나눠서 하기보다는 한번에 묶어서 긴 사본 하나로 만드는게 편해서 그렇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미가는 누구인가
미가는 누구인가
그럼 이 열두 선지자들 중에 미가는 어떤 말씀을 전할까요? 먼저, 미가는 대체 누구일까요?
유다의 왕들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 곧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묵시라
라고 미가서가 시작하는데, 사실 이것이 저희가 미가에 대해서 알수 있는 전부입니다. 이사야와 비슷하게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했는데, 모레셋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 모레셋이라고 하는 곳은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35키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인데, 이곳은 농촌입니다. 이사야는 나름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고 추측하지만 미가는 반면에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지난 주까지 저희가 봤던 이사야의 말씀들에서는 주로 왕들의 부덕함과 불순종이 나라를 망하게 했다라고 하는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앗수르와의 관계에 있어서 외교적인 정책에 하나님을 빼뜨리고 다른 나라를 의존하는 것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요. 미가서의 말씀에서는 가난한 사람들과 힘없는 농촌의 백성들을 괴롭히는 지주들, 그리고 이것을 방관하거나 동참하는 지도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게 됩니다.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차지하니 그들이 남자와 그의 집과 사람과 그의 산업을 강탈하도다
내 백성의 부녀들을 그들의 즐거운 집에서 쫓아내고 그들의 어린 자녀에게서 나의 영광을 영원히 빼앗는도다
이처럼 유다 왕국 내부의 약한 백성들이 당하고 있는 부당함을 조명함으로써 유다 왕국이 그냥 왕들의 부덕함만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것을 빼앗고 탐하는 부도덕한 사회 구조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가서에서는 우상숭배에 대한 내용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농촌 출신 사람인 미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부정부패입니다.
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하는도다 그 지도자와 재판관은 뇌물을 구하며 권세자는 자기 마음의 욕심을 말하며 그들이 서로 결합하니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주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라 라고 하는 메시지를 주로 전했다고 한다면, 오히려 미가서에서는 하나님을 찾아도 악한 모습이 가득한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선견자가 부끄러워하며 술객이 수치를 당하여 다 입술을 가릴 것은 하나님이 응답하지 아니하심이거니와
아무리 하나님을 찾는다고 해도 그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실컷 악을 행하고 남의 것을 빼앗고 있는데 그런 백성에게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신다는 것이지요.
고발
고발
보통 저희가 어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는 어떻게 하죠? 경찰에 신고하거나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서 민사 소송을 걸기 마련입니다. 유대인들에게도 모세 율법을 통한 소송과 고발, 그리고 그에 대한 재판의 제도가 있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각 성에서 네 지파를 따라 재판장들과 지도자들을 둘 것이요 그들은 공의로 백성을 재판할 것이니라
각 성마다 재판장들과 지도자들, 또한 신명기 21장의 경우에는 반항하는 자녀들에 대해서 성읍 장로들에게 재판을 받게하라는 내용도 나오는데, 각 성과 마을에 지도자를 세우거나 성읍의 장로들에게 재판을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소송을 할 때에는 두세사람의 증인이 필요하기도 한데요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한 증인의 말로만 하게 되면 정확하게 그 사건을 판단할 수 없으니까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보고 무엇보다도 아까 읽은 16:18 말씀처럼 공의로 재판할 것을 모세 율법이 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드렸듯이 미가서의 상황은 소위 지도층과 부유한 사람들의 부정부패, 그리고 백성들의 부도덕한 상황이 문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재판관이 있는데 소용이 없는거에요
야곱 족속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 곧 정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아 원하노니 이 말을 들을지어다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사람들을 공의로 재판해야할 우두머리들이 뇌물을 받아서 재판하고 선지자들조차 돈 때문에 부패한 상황이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 중에서도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화! 평화로다!”라고 외치면서도 정작 그 삶을 들여다보았을 때는 돈 때문에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일들이 만연해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를 통해서 본것처럼 하나님을 찾지 않고 우상과 이방 국가들을 의지하는 것도 문제지만, 하나님을 찾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지 않고 찾는 것이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럼 이런 상황에서 그 가난한 농촌 출신인 미가 선지자와 이러한 부정부패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누구한테 재판을 의뢰해야할까요?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찾아야할 것도 바로 의로운 재판관이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말씀 1절을 보시면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는 일어나서 산을 향하여 변론하여 작은 산들이 네 목소리를 듣게 하라 하셨나니
여기서 “너는 일어나서”라고 할 때에 너는 바로 미가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미가에게 일어나서 산을 향하여 변론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변론이라고 하는 말은 히브리어로는 리브(רִיב)라고 하는 단어인데요, 이것은 법정 용어로서 고소, 고발의 뜻을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내용은 미가로 하여금 유다의 죄, 고발할 내용들을 샅샅이 밝혀라,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날의 저희들의 법정을 생각해볼 때도, 어떤 사람이 무엇인가를 잘못해서 고발할 때에는 형사 소송이 열리는데요, 이 형사소송은 피해자가 직접 재판에 나가서 고발할 내용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피해자를 대신해서 검사가 가해자의 죄를 재판장에게 고하면 재판장이 처벌하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그럼 이 미가서에서 등장하는 재판, 하나님의 법정에서 검사는 누구일까요?
2절 말씀을 보시면
너희 산들과 땅의 견고한 지대들아 너희는 여호와의 변론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변론하시며 이스라엘과 변론하실 것이라
하나님께서 직접 소송 내용을 밝히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고발하시는 검사가 되겠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3-5절을 보시면,
이르시기를 내 백성아 내가 무엇을 네게 행하였으며 무슨 일로 너를 괴롭게 하였느냐 너는 내게 증언하라
내가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어 종 노릇 하는 집에서 속량하였고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네 앞에 보냈느니라
내 백성아 너는 모압 왕 발락이 꾀한 것과 브올의 아들 발람이 그에게 대답한 것을 기억하며 싯딤에서부터 길갈까지의 일을 기억하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공의롭게 행한 일을 알리라 하실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검사일 뿐만 아니라 재판을 담당한 판사로서 유다 백성들에게 어디 한번 변호해보라고 기회를 주시는데요, 대체 하나님께서 이 백성들에게 어떻게 해오셨는데, 괴롭게하려고 하신게 아니라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하던 이들을 구하려고 모세를 보냈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민수기 22-24장에 등장하는 발락과 발람의 이야기를 말씀하시는데요, 간단하게 요약하면 모압 왕 발락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땅에 들어오려고 하니까 고명한 선지자였던 발람을 불러서 저 백성들을 저주해달라, 라고 했는데 오히려 이 발람이 저주하기는 커녕 축복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너희들의 역사를 한번 돌아보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이렇게 너희들을 구원해주시려고 애썼는데, 대체 너희들은 왜 그렇게 악한 삶을 사는 것이냐? 어디 한번 변호해봐라! 라고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예배가 아니라 공의의 실천
예배가 아니라 공의의 실천
그래서 백성들은 변호합니다.
6-7절 말씀에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백성들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는 것, 하나님께 “어떻게” 예배해야할 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송아지를 바칠까? 천천의 숫양과 만만의 기름을 바칠까? 아하스 왕이 했던 것처럼 아들을 바칠까? 자녀를 바칠까? 뒷 내용의 자녀를 번제로 바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는 가증한 것이지만, 부도덕한 상황과 부정부패가 가득한 백성이 예배를 어떻게 드릴까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만합니다. 무엇인가 잘못 살아가고 있는 상황에 하나님께서 벌을 주신다고 하는데, 그럼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라고 하고 있는 것이지요.
여기서 미가는 예배를 “어떻게 해야할까”를 고민하는 것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을 이야기합니다.
8절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이것이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아무리 겉으로는 세련되고 잘 드려지는 예배, 아주 큰 돈을 헌금하듯이 천천의 숫양과 만만의 기름을 쏟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를 실천하는 것, 인자, 다른 말로는 선량함을 사랑하고,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겁니다.
저희가 이사야서를 살펴볼때 임마누엘의 하나님에 대해서 보았었죠? 임마누엘“עִמָּנוּאֵל” 을 히브리어로 분석을 해보면 임(עִם)은 “~와 함께”라는 뜻을 가지고 있구요, 누(נוּ)는 우리, 그리고 엘(אֵל)은 하나님을 뜻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났었지요? 아멘하지 않는 자에게 아멘하지 못하게 하시고, 아멘하는 자에게 아멘하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반면에 미가서에서 등장하는 하나님과 함께 행한다라고 하는 말은 히브리어로 레켓 임-엘로헤이카(לֶ֖כֶת עִם־אֱלֹהֶֽיךָ)라고 합니다. 레켓이라고 하는 단어는 걷다, 행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구요, 임-엘로헤이카는 아까 보셨떤 것처럼 ~와 함께라는 뜻의 임과 하나님을 뜻하는 엘로힘, 그리고 “너의” 를 뜻하는 엑카가 붙어서 “너의 하나님과 함께”라고 하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분명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에는 저희가 아멘으로, 믿음으로 나아가야하고, 그에 따라서 하나님도 저희에게 아멘으로 화답해주신다고 하셨지만, 정작 하나님께 “아멘! 아멘! 믿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남의 것을 빼앗고 도둑질하고 부패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백성들, 그냥 더 좋은 번제물로 예배드리면 되는 줄 아는 백성은 하나님께서 고발하신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 뿐만 아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 즉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만 우리와 함께하셔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고자 하나님의 정의를 행하고자, 하나님의 사랑을 펼치고자 나아가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께 아멘하는 “믿음”과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 즉 “행함”이 모두 필요하다는 것을 전하는 것이 미가 예언자의 말씀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예수님께서도 주여 주여라고 하면서 말로만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행함”을 가진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헤세드를 사랑하는 것. 예배는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이어진다.
헤세드를 사랑하는 것. 예배는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이어진다.
본문말씀 8절 말씀을 다시한번 함께 읽겠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예언자가 말하는 행함 가운데에 인자를 사랑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저희가 지금 있는 이 예배당 이름이 무엇이지요? 헤세드 채플이지요. 이 인자의 히브리어가 바로 헤세드입니다. 이 헤세드는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충성, 책임감, 신실함, 경건함, 은혜, 자비, 인애 등등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중요한 가치들이 이 단어에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이 헤세드가 과연 이 헤세드 채플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일까요? 이 예배당에 와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이 전부일까요?
아닙니다. 오늘 본문말씀에서 본 것처럼 제사를 열심히 드리는 것이 선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선한 것이라는 말씀처럼, 헤세드를 사랑하는 것은 이 헤세드 채플에서 예배드릴 때와 같이, 교회 밖에서도 이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이 예배를 예루살렘에서 드려야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예배가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과 진리로 드려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에서 예배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하나님께 비싸고 좋은 번제물을 드리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교회에 나와서 세련되고 멋있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행하고 헤세드를 사랑하고 겸손하게 하나님과 날마나 동행하는 것, 즉 삶에서 날마다 드려지는 영과 진리의 예배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헤세드 채플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마친다고 해서 저희의 예배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삶의 자리에 나아가서 드리는, 헤세드를 사랑하는 예배를 드리고, 불의를 지나치지 않으며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고, 그렇게 날마다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나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며 나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