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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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2장 1-2절) "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오늘  ’ 믿음의 경주를 달리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얼마전 3월 24일  동상이몽2에서 박시은 배우의 첫 하프 마라톤 경기 영상이 방송되었습니다
투병중인 이지은 아이를 돕기 위해 박시은 배우는 하프 대구 마라톤 대회에 참여했다고 했습니다. 
하프마라톤은 마라톤 경주의 반에 해당하는 21km를 달리는 경주입니다.
대구 마라톤 대회는 어려운 코스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 마라톤대회에 참여한 인원은 40,288명이었습니다.
첫하프 마라톤 도전을 한 박시은 배우가 완주를 하는 과정에서 고비고비가 있었지만 잘 인내하며 완주하는 모습이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배우자인 진태현배우가 끝까지 함께 하는 모습이 화면을 타고 나왔습니다.
시작할때는 영하의 날씨였음에도 박시은배우와 진태현 배우는 반바지 차림의 마라톤 복장으로 등장했습니다
영하의 날씨임에도 무거운 것을 벗어 버리고 가볍게 입고 대회에 임하고 있습니다
바로 마라톤 대회를 뛰는 선수의 복장이 어떠해야 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우리의 믿음의 경주와 너무나 닮아 있기에 성경은 마라톤 경주에  믿음의 경주를 비유합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은 우리앞에 놓인 경주를 하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놓인은 헬라어 문법으로 현재 중간 분사형태를 취하면서
지속적인 동작과 상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 놓인 경주는 실제 마라톤 경주처럼 몇시간안에 끝나는 경주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어져 나가는 경주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경주는 주님앞에 서는 날까지 우리앞에 계속해서 놓여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경주에 이미 참여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12장 1절은 이 믿음의 경주에서 꼭 필요한 자세가 나타납니다.
12장 1절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경주를 하면서 필요한 것은 먼저 무거운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고 권면합니다
하프마라톤을 달리는 박시은 배우가 영하의 날씨에도 반바지를 입고 참여하는 모습은 오늘 본문에서 믿음의 경주를 하는 사람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성경은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경주에 참여하라고 말씀합니다.
얽매이기 쉬운은 원어로 쉽게 휘감기는, 잘 얽히는, 감싸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라톤 경주를 할 때 몸에 쉽게 휘감기거나 얽히는 옷을 입으면 동작에 제한이 생겨 제속도를 내기 어렵습니다.
오늘 본문은 죄를 묘사하는데 얽매이기 쉬운 죄라고 표현합니다.
우리의 죄가 우리의 믿음의 경주를 달릴 때 방해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라고 명령합니다.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몸에 입거나 휘감고 신앙생활하면 계속 우리를 멈추게 하고 힘들게 할 것입니다.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지 못한다면
신앙생활 좀 하려고만하면 왜 무슨일이 자꾸 터져서 나를 세상생활에 붙들어 매는지, 왜 자꾸 시험에 빠지게 되는지 깨닫지도 못한채 그렇게 힘들어만 할것입니다.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림과 함께 요구되는 태도는 바로 인내입니다.
인내를 통하여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하라고 명령합니다.
인내는 오래 참음입니다.
인내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이를 꽉 물고 참아내는 것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참는 모습은 수동적입니다.
성경에서는 인내를 하나님 앞에서 신실함을 가지고 믿음안에서 적극적으로 견디고 지속하는 능동적인 태도를 말합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어서 누르고 억제하고 참는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온전한 인내함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청하시는 인내는 하나님이 일하심을 믿고 신뢰하면서 적극적으로 의지를 담아 지속적으로 계속 기다리는 능동적인 인내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고난을 지나면서 금방 지치고 다른 길로 빠지기 쉬울 것입니다.
인내하면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면 어느 순간 그곳에 도착해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곳곳에서 우리가 온전하고 거룩하게 살아아 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심은 하나님이 뜻하신 온전함에 이르는 것입니다. 성화라고도 표현합니다. 
우리는 그 과정중에 있고 이미 시작했기 때문에 반드시 이룰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뜻을 심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 질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 인생여정에서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기 위한 한번의 경주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경주를 시작했다면 길을 벗어나지 않는 것과 완주가 정말 중요합니다.
길을 벗어나지 않고 완주하려면 우리 믿음의 삶을 누르고 멈추어 세우는 무거운 것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믿음의 삶을 휘감아 우리를 쉽게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인내하면서 우리앞에 놓여있는 경주를 계속 달려가야 합니다.
말씀대로 무거운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완주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어릴적에는 하루에 버스가 7대정도 지나가는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하늘은 지금보다 맑고 깨끗했습니다.
게다가 별빛을 가릴 조명도 없던때였기 때문에 밤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쏟아질 것같은 광경을 한밤중에는 문만 열고 나가면 볼 수 있었습니다.
띠처럼 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수의 모습을 보면서 그냥 단순하게 은하수가 있구나라고만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자라면서 그 은하수가 어마어마한 별들이 모여 있는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그 별들이 흩어져 있는 공간도 상상할 수 없이 어마어마한 넓은 공간이라는 사실에도 놀랐습니다.
어느날 궁금한 부분이 생겨서 검색해 보았습니다.
바닷가의 모래의 수와 하늘의 별의 수중에 무엇이 더 많을까였습니다.
어느 과학자가 계산했다고 합니다.
별들의 수와 지구상에 있는 모래의 수는 어느 것이 많을까 연구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낸 결론에 따르면 현재 기술로 관측 가능한 우주의 범위내에서의 별들의 수가 10의 22승개로 계산되고, 바닷가의 모래는 10의 21승개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실제로 우주의 별의 숫자가 지구상의 모래의 수보다는 상당히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계산자마다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하고 계산은 많은 가정을 기반으로 하지만 현재 기술로 관측 가능한 우주에 있는 별이 지구 바닷가의 모래보다 많다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둘다 무한대로 많다와 같은 느낌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을 보여주시면서 네 자손이 이와 같이 많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22:17 (개역개정)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의 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습니다.
그 많은 사람중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수는 우리가 수를 셀수조차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믿음의 경주에는 우리가 시작도 아니고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는 믿음장으로 불리는 만큼 11장에서 구절마다 예로 들었던 믿음의 선배들이 믿음의 경주를 달렸습니다.
12장 1절에서는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가는 이 믿음의 길에 증인이고 목격자가 구름같이 둘러싸고 있다고 말합니다.
뭉게구름 하나에 약 10의 17승 정도의 물방울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구름이 둘러싸고 있다면 그 안에 물방울은 하늘의 별의 수만큼 많아질 것입니다.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우리가 가는 길이 참 생명의 길임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처음 가는 산행에서 정말 위험한 경우는 일행을 놓쳤을때입니다.
일단 멈춤하고 함께 등반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주변을 살펴야 합니다.
그 때 주변을 살피면서 이정표나 나뭇가지에 달려있는 노란색이나 빨간색 리본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길을 잃었다가 찾았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리본때문에 길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제대로 가고 있다면 그 등산로에는 리본이 나뭇가지에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간 누군가나 안전을 생각한 단체 등에서 리본을 묶어두어 산행로임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믿음의 여정을 달려간 사람들이 구름같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믿음의 경주를 달려갔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달려갔기 때문에 길은 아주 잘 닦여 있습니다.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달려간 길을 우리도 달려가는 것입니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기독교인구를 26억 3천만명정도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함께 경주를 하고 있습니다.
불모지 같이 어렵고 힘든 지역에서 선교하시는 선교사님들이 가장 힘들때가 주위를 아무리 찾아보고 둘러보아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자신 혼자라고 느껴질때라고 말들합니다.
누군가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은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됩니다.
우리 때문에 누군가는 믿음의 격려를 받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소문을 통해 혼자 달려가는 줄 알고 지치고 낙담했던 누군가는 다시 일어날 힘을 얻고 다시 믿음의 경주를 달려갈 것입니다.
우리도 앞으로 걸어갈 믿음의 사람들에게 믿음의 여정길위에서 이정표가 되고 용기를 주고 격려를 주는 믿음의 선배들이 될 것입니다.
이 믿음의 경주에 참여한 수많은 선배들이 있고 오늘을 함께 달려가는 우리의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있습니다.
이전에 사역한 교회 성도님들이 우리 신랑에게 제 안부를 자주 물으신다고 합니다.
전도사님 잘 계시는지, 힘드신 일은 없는지, 성도님들은 좋으신지 제 안부를 묻는다고 합니다.
얼마전에도 안수집사님 한분이 전도사님 사역하시는 곳에서 사역에 힘이 되고 돕는 분들이 많이계셔야 할텐데 괜찮으신지 물으셨다고 합니다.
신실하시고 좋은 분들도 많으시고 사역 잘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다고 전해왔습니다.
제가 사역을 시작한지 벌써 15년정도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 기간동안 제가 느끼는 점중 한가지는 어느 교회나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이 많이 있으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처음사역을 한 곳은 천명이 넘는 곳이었기에 규모에 맞게 봉사일꾼들도 많았고 물질일군도 많았습니다.
우리 교회 오기 바로 전에 사역했던 곳은 재적이 60명이었던 교회였습니다.
규모가 작아서 듣기만 해도 걱정이 먼저 생각되시는 분도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출석교인은 40명이 좀 넘었지만 제가 맡고 있던 주일학교에는 부장님과 교사가 모두 10명이었습니다. 함께 하시고 싶다는 예비대기 교사명단도 있었습니다.
성경학교나 행사할 때만 섬겨주는 스텝진 청년교사들도 몇 명이 되었습니다.
부장님과 선생님들은 처음 사역할때부터  저에게 하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전도사님 기도하시면서 하시고 싶으신 거 있으시면 봉사자나 재정은 걱정하지 마시고 마음껏 하세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학교나 어린이 주일 행사를 할 때 예산만 200만원이 훌쩍 넘는 기획을 하고 진행을 해도 그 많은 금액이 모두 채워지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주일학교 부모님중에는 대부분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불신자분들이 많으셨습니다.
한번씩 부모님들이 연락을 하시곤 합니다.
안부 인사도 있으셨고, 때론 아이의 상황을 나누는 상담 전화도 있으셨는데 그 전화중에는 간식후원을 하시고 싶으셔서 전화를 주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 주일은 B **치킨 파티도 열리고 교* 치킨파티도 열리고 엽* 떡볶이 파티도 열리곤 했습니다.
교회 규모와 전혀 상관없이 어느 교회나 하나님은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셔서 함께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심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이땅 곳곳에 심으셨고 온세상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기를 원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이 너무나 많이 계십니다.
지금 옆을 한번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온라인으로 예배 드리시는 분들은 얼굴들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신실하고 헌신적이며 기쁨으로 예배드리고 봉사하시며 섬기시는 분들이 우리 교회에도 많이 계십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만 이 길을 가고 있지 않습니다.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걸어가셨고 그리고 예수님께서 앞서 걸어가셨고 지금 옆에서 함께 달려가며 때론 걸어가며 믿음의 경주를 함께 하고 있는 형제 자매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함께 더불어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면서 동시에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중요한 태도가 있습니니다.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신 예수를 바라보면서 믿음의 경주를 하라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예수를 바라보자 라는 말의 주어는 우리입니다.
우리가 무거운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가 인내를 통해
우리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우리앞에 당한 경주를 하자입니다.
주어는 11장에 소개된 믿음의 선진들을 본받아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라는 권면의 대상은 믿음의 공동체 우리 모두입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이 해석하시면서 쓰신 메시지 성경을 읽어보겠습니다.
히브리서 12:1-3입니다.
“길을 개척한 이 모든 사람들, 이모든 노련한 믿음의 대가들이 우리를 응원하고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까? 그들이 열어놓은 길을 따라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달려가십시오, 절대로 멈추지 마십시오. 영적으로 군살이 붙어도 안되고, 몸에 기생하는 죄가 있어서도 안됩니다. 오직 예수만 바라보십시오. 그분은 우리가 참여한 이 경주를 시작하고 완주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어떻게 하셨는지 배우십시오. 그분은 앞에 있는 것, 곧 하나님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고 함께 결승점을 지나는 기쁨에서 눈을떼지 않으셨기에, 달려가는 길에서 무엇을 만나든, 심지어 십자가와 수치까지도 참으실 수있었습니다. 이제 그분은 하나님의 영ㅇ광의 자리에 앚아 계십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시들해지거든, 그 분 이야기를 하나하나 되새기고, 그분이 참아내신 적대 행위의 긴 목록을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영혼에 새로운 힘이 힘차게 솟구칠 것입니다.”
사진작가는 카메라의 초점부터 잘 맞추고 시작합니다.
초점을 잘 맞추지 않은채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면 쓸만한 작품사진은 건지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제대로 초점을 맞추어 바라보지 않고 우리를 얽매이기 쉬운 죄에 유혹을 받거나 무겁게 하는 것에 자꾸 매어 있다면 우리의 믿음의 삶은 이리저리 휘청이고 진흙에 빠져서 지저분하고 한발 한발 힘겹게 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우리의 믿음의 삶을 찍는 사진이 있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그 사진에 충성하고 신실하며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열매 맺는 삶을 잘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찍히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그 사진들이 모여서 주님앞에서 휘리릭 비디오처럼 돌아갈 우리의 믿음의 발자취가 될 것입니다.
성도님들의 요즘 신앙생활을 사진으로 찍는다면 어떤 모습으로  찍혀있을 것 같으신가요?
오늘 우리는 믿음의 경주를 할 때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는 라는 말씀을 늘 기억하고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예수를 바라보자라는 말에서 바라보다는 헬라어동사는 단순한 쳐다봄이 아닙니다
ἀφορῶντες ἀφοράω의 현재 능동태 분사형태를 취함 복수 주격형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의를 다른 곳으로 바꾸지 않고 무엇인가를 바라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다른 모든 것을 떼어놓고 한 대상에만 시선을 고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예수를 바라보자라는 말씀은 바로 우리가 의지를 드려 선택적 집중을 해야 한다는 의미합니다.
믿음의 경주를 하면서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요소는 우리가 방향을 잘 보고 목표지점을 보고 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보는 행위가 아니라 신앙적 고백을 담아 삶의 방향성을 포함한 바라봄입니다.
3세기 유명한 교부였던 오리겐은 믿음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께 우리의 마음의 눈을 고정해야 한다고 해석합니다.
예수 외의 모든 것으로부터 시선을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았습니다.
데이비드 A.드실바 학자도 이 단어를 다른 모든 관심사를 제쳐두고 예수님께 주의를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합니다.
이는 신자들이 삶의 어려움과 유혹 속에서도 예수님을 바라보며 믿음의 길을 걸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믿음의 경주를 할 때 우리의 시선이 다른 것에 빼앗기기 않고 다른 모든 관심사를 제쳐두고 예수님을 의지를 담아 선택하고 집중하여 바라보는 태도와 행동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따라가야 할 가장 일순위입니다.
2절은 예수님이 어떤 믿음의 길을 달려가셨는지 잘 설명하고 보여줍니다.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도 인내하시면서 달려가셨던 길입니다.
그 앞에 있는 기쁨을 바라보시면서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사단은 계속해서 포기하지 않고 우리를 믿음의 경주에서 벗어나 도록 우리의 시선을 빼앗기위해 유혹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죄의 옷을 입히려고 노력합니다.
세상은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하면서 교만에 빠지고 자만에 빠지게 만들어서 거북이가 잠에 빠져 버렸던 것처럼 우리를 그렇게 세상의 잠에 빠지도록 유혹합니다.
이 믿음의 길에 형통함만 있지 않습니다.
삶의 고난과 고통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더구나 믿음의 길은 방해자가 많고 우리를 길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존재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께 두기로 결단한 집중과 의지를 놓쳐버리고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좇아가면 아브라함을 떠난 롯이 도시로 도시로 들어간 것처럼 그렇게 세상으로 세상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창세기 13장 12절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은 가나안땅에 거주하셨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이르렀더라”
예수님의 가신 여정에서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시선은 현재의 상황에 머물러 있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시고 구속을 완성하시며 사명을 감당하신 후 그 앞에 있을 기쁨을 바라보셨습니다.
우리도 우리 앞에 먼저 걸어가셨던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며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앞에 있는 기쁨을 생각해야 합니다.
고난 너머의 기쁨과 영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할 안식과 기쁨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앞에 있는 기쁨을 바라보며 참으셨습니다.
우리가 구속받을 순간들을 미리 보시면서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라 가는 믿음의 사람들인 우리 모두는 예수님처럼 이땅을 살아가고 지나가야 합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없다는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오늘 만나는 고난의 상황에 부끄러움이 아니라 순종의 용기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죄는 부끄러워하지만 주님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당하는 고난은 절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앞에 있는 기쁨을 생각하시면서 예수님처럼 인내하시고 잘 이겨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음주가 지나면 곧 고난주간입니다.
지금 고난을 지나고 계십니까?
눈을 들어 예수님께 집중하여 예수님만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은 십자가를 참으셨고, 결국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우리의 고난도 주님의 뒤를 따라 인내하며 순종하며 나아갈 때 예수님안에서 우리를 믿음에 성숙하고 온전한 사람으로 완성해 갈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지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믿음의 경주에 임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앞에 당한 믿음의 경주는 인내를 요구합니다.
단거리 경주가 아닌 장거리 마라톤 경주와 같습니다.
어느 순간 고비도 올것입니다.
박시은 배우가 다리근육이 힘들어질 때 페이스메이커로 달리던 코치님이 먼저 달려가서 뿌리는 걸 가져와서 뿌려줍니다.
목이 마를때는 남편이 달려가서 물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달려감에는 우리와 늘 동행하시는 주님이 함께 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옆에서 함께 신앙생활하면서 우리가 힘들 때 함께 기도해주고 도와주고 격려해주는 믿음의 형제 자매가 함께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때로는 내가 위로를 받고 격려를 받고 도움을 받을때도 있었다면 이제는 내가 힘들어 잠시 경주에서 쉬려고 하거나 경주에서 떨어져 나가려 하는 형제 자매를 보시면 이번에는 내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면서 모두 함께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완주 해내야 합니다.
히브리서 10장 24-2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이렇게 함께 달려가면서 우리는 인내하며 믿음의 경주를 완주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옆을 보는 순간 우리의 시선만 빼앗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시선은 우리의 마음까지도 같이 옮겨갈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고통과 수치를 당하실 때  그 앞에 있는 기쁨을 바라보시면서 지금의 현재의 좋아 보이는 것들과 수월함으로 맞바꾸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본이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시면서 고난과 부활을 기념하며 기도하는 기간인 이 4월에 깊이 주님을 만나시는 한달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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