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은 따뜻하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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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절은 따뜻하다.(5)
본문: 요 19:17
John 19:17 NKRV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히브리 말로 골고다) 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서론
여러분 우리는 지금 사순절을 지나고 있어요.
사순절은 어떤 날이라고 했나요?
부활절까지 40일의 기간이라고 했어요.
하지만 사순절에는 어떤 날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했어요. 주일이에요.
왜 그렇나요?
그것은 매주일을 작은 부활절처럼 예배를 드리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사순절을 지내며 부활절을 준비하듯, 매주일 예배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중등부에서는 사순절 기간동안 이 단어를 꼭 기억하자고 했어요.
‘구별’이에요.
구별 되었다는 것은 나의 어떤 행동 때문에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이미 내가 구별된 사람이라고 했어요.
구별된 나는 구별된 삶을 살아가죠.
구별된 사람은 내 주변에 무엇을 가까이 하는지 살펴봐야해요.
구별된 사람은, 핸드폰 보다, 티비나 게임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까이하는 삶입니다.
또한 구별된 사람은 구별된 고백을 합니다.
나의 모든 삶에 대해 감사의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요? 구별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고백을 한다고 했어요.
즉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찬양하는 삶을 살아간다고 했어요.
나의 목소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모든 삶에 있어서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사람, 그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구별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지난주 구별된 사람은 이렇게 살아갑니다.
어떻게요? 소금처럼 맛을 내는 사람입니다.
소금을 선한 영향력이라고 표현했었죠.
소금은 맛을 내는 재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딜가든 선한 영향력으로 맛을 내야합니다.
그 맛은 녹아지는 희생이 없이는 맛을 낼 수가 없습니다.
녹지않은 소금은 맛을 낼 수 없죠.
희생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은 맛 없는 소금, 즉 소금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죠.
구별된 사람은 희생하여 선한영향력으로 맛을 내는 소금과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오늘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가는데요.
저도 오늘 차를 타고 교회를 달려왔어요.
어느날 차를 타고 운전하는데 햇살이 너무 따갑고 아프게 비치는거에요.
그때 저는 차 서랍장에서 검정색 선글라스를 꺼내서 썼습니다.
그랬더니 온세상이 어둡게 보였어요.
제가 노란색 선글라스를 꼈다면 온세상이 노랗게 보였겠죠.
사람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의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여기서 우리가 쓰고 있는 안경을 우리는 관점이라고 부릅니다.
구별된 사람은 구별된 안경, 구별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사진 첨부
여러분 이렇듯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사물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지,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는 매우매우 중요해요.
관점에 따라 상황을 이해하는 해석의 방향이 달라지고요.
해석의 방향이 달라지면 살아가는 태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자신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안경,
즉 관점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 관점은 세상을 해석하고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데 수많은 선택을 낳게 되고 우리 인생의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본론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온 경험이 다르기에 관점도 달라지고 그에 대한 선택이 달라지는데요.
그러나 수많은 관점과 선택 안에는 하나로 귀결되는 논리, 즉 일맥상통하는 원리가 있다는 것이에요.
그것은 자신이 판단했을 때, 후회가 없고, 손실이 없으며 상황과 환경에 알맞은 선택을 위한 관점,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 자신의 관점으로 세상을 해석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선택은 늘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죠.
예를 들어, 아이폰과 갤럭시폰이 있어요,
여러분에게 고를 기회를 줄게요. 어떤 핸드폰을 가져가겠어요?
대부분 중학생이라면 아이폰을 고를거에요.
왜요? 여러분들의 관점으로 아이폰을 고르는게 더 합리적이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똑같은 질문을 우리 선생님들이나 저에게 물어보신다면 저는 갤럭시를 고르겠습니다.
실제로 저는 갤럭시로 바꿨어요.
왜요? 저의 관점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했기 때문이에요.
또는 제가 갑자기 오늘 여기서 설교 끝!
이러면 여러분들은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박수를 치겠죠.
하지만, 갑자기 박용준 목사님이 이 광경을 목격하신다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실까요?
아니실거에요.
우리는 합리적인 선택을 원하지만,
그 선택이 항상 좋은 선택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거에요.
즉, 완벽한 선택이라고 할 수 없는거죠.
왜요? 바라보는 관점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우리의 얕은 관점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해석하기에
완전한 선택을 할 수 없고,
우리는 합리적인 선택을 원하지만,
결국 합리적이라는 기준도 사람들마다 다른 아이러니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혼란스럽죠.
우리 이 시대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모두가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위험한 전제가 깔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거에요.
그래서 꼭 멋진 그림이 아니더라도 벽에 바나나를 붙여놓더라도,
어떤 저건 예술이야! 라고 생각하면 예술이 될 수 있는거에요.
왜요? 그 사람의 관점으로는 그게 예술이거든요.
모두가 정답이 될 수 있는 시대, 모두가 왕이 될 수 있는 시대인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혼란한 시대에서
어떤 기준을 가지고 어떤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선택해야할까요?
구별된 사람은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봐야합니까?
성경에서는 우리는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씀하실까요?
결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김병태 목사님의 저서 <하나님의 시선>이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신앙은 달라진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 한다. 그래서 과장되게 포장하고 위선도 주저하지 않는다. 내가 잘되기 위해서, 내가 높아지기 위해서, 남을 깎아내리고 악한 일도 꾸민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 거듭난 우리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말씀의 능력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그 처음이 하나님의 시선으로 새상을 바라보기다.”
우리는 상대적인 관점을 가르치는 이 시대와는 구별되어 절대적인 관점을 바라보고 따라가는 사람들이에요.
멋있지 않니?
모두가 넓은 길을 선호할 때, 올바른 진리가 좁은길일지라도 따라가는 사람들,
그렇게 살아갈 때, 어려움이 따라올 수 있어요.
때로는 내가 손해를 보는 것 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때로는 이 선택이 합리적인 선택이 맞나? 의심이 들 때가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기억하세요.
헨리 나우웬이라는 작가는 그의 저서 ‘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욕망은 상향성의 삶을 추구하고,
소명은 하향성의 삶을 추구한다.
우리 인간은 욕망을 따라 상향성의 삶을 추구해요.
그래서 더 성공하고자 노력하고 열심히 사는거에요.
나쁜건 아닙니다. 우리는 분명 열심히 노력해서 살아가야해요.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욕망을 따라가는 삶이라면 구별된 관점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죠.
우리는 소명으로 하향성의 삶을 살아가야하는 것이에요.
<반주부탁> 시선
오늘 예수님은 욕망이 아닌 소명을 따라 하향성의 삶을 추구하셨습니다.
그렇기에 높고 높은 하늘 보좌를 내려놓으시고
이 낮은 땅에 하향하셨습니다.
굳이 그러실 필요 없으신 예수님께서
하향성의 삶을 사셨습니다.
세상의 이런 종교가 어디있나요?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교 개신교를 종교라고 하지 않고 진리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설문지에 종교가 뭐니? 기독교요!
이게 아니라,
진리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진리를 따르는 사람들은 구별된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사람들,
주님을 따라 하향성의 삶을 살아가는 멋있는 사람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중등부가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를 소망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중등부가 세상과 구별되어 다르게 따르는 중등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부터 우리는 연습을 해야해요.
준비를 해야합니다.
지금껏 나의 관점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기 위한 연습을 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하여 하나님의 관점으로 살아가야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눈을 맞춰주셨듯이
우리도 친구들의 눈을 맞춰주는거에요.
모두 옆사람의 눈을 보지 말고 코와 입술 사이에 있는 인중을 바라봐요. 어색하니까요.
그리고 속으로 ‘고맙다’ 한마디 해줘요. 어색하니까요..
오늘 예배 끝나고 점심을 먹을 때 봉사해주시는 분들에게 어떻게 해야할까요?
인중을 바라봐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잘먹겠습니다. 인사하는거에요.
반 모임 때, 선생님들에게 어떻게 인사해야해요.
인중을 바라보고, 그래도 선생님이 제일 좋아요. 속으로 말해봐요.
다음주에 간식이 달라집니다. 진짜에요.
하나님께서 하향하셔서 우리의 눈을 맞춰주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맞춰주셨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상대적인 세상과 구별되어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찬양하고 기도하죠.
기도제목
하나님 제가 구별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껏 저의 욕심으로 가득찼던 저의 관점을 내려놓을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제는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의 시선으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허락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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