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IN, 실망 OUT
Notes
Transcript
Intro
제가 대학교 1학년인가 2학년즈음에
학교에서 재미있는 수업을 들었어요.
수업의 이름은 ‘연극의 이해’였습니다.
굉장히 재미있는 수업이었어요.
직접 연극을 해보는 수업은 아니었지만,
연극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뀔 수 있도록
연극을 이해하고 연극이란 무엇인가를 배우는
수업이었어요.
그 수업의 기말과제가
소극장에 가서 연극을 보고 와서
보고서를 제출하는거였어요.
그래서 난생 처음으로
소극장에 가봤어요.
생각보다 작고 아담하고
무대랑 너무 가까워서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연극이 시작되는 순간 전부 사라졌어요.
너무 재밌는거에요.
너무 깊에 내용에 몰입해서
시간가는 줄 몰랐어요.
그런데,
주인공이 굉장히 불쌍한거에요.
주인공이라 하면 화려한 모습으로 나와야 하는데,
자꾸 비극만 생기는거에요.
연극이 전도사님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은거죠.
그래서 연극 보는 내내 불평했어요.
아니 감독 뭐함? 주인공을 왜 저렇게 비참하게 해?
이정도면 감독이 주인공 싫어하는 거 아니여?
연극 내내 그렇게 주인공이 힘들어하다가
결국에는 해피엔딩으로 끝나긴 했어요.
그래서 연극이 끝나고 난 뒤에
무슨 배짱이었는지
무대 감독을 찾아갔습니다.
무대 감독을 찾아가서
연극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러고 보니까
본론이랑 어떻게 이을지 생각해야하고
배신감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아주 타당한 감정 → 욥이 겪음 → 루이스도 겪음
→ 심지어 예수님도 겪음 → 종려주일은 아주 깊은 배신감의 시작을 알리는 주일임 (종려주일 언급)
→ 예수님이 그렇게 인간에게 배신을 당함 → 예수님은 하나님에게도 배신을 당했다고 느꼈음
→ 인간이라면 누구나 삶의 어느 시점에서 하나님의 숨어계심에 직면하는 순간이 찾아옴
→ 믿음이 약해서가 아님 → 인간이라면 고통 앞에서 누구나 타당하게 겪는 감정임
→ 그럴때 어떻게 해야함?
→ 하나님께 우리가 가진 슬픔, 분노, 의심, 쓰라림, 배신감, 실망감을 다 쏟아 놓아야 한다. 하나님은 그걸 다 소화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22:24)
→ 시편 기자도, 예수님도 땀이 피가 되도록 그 힘든 마음을 다 토해내셨다.
→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있으니 토해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하다.
→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는다는 신뢰를 꼭 가져야함.
→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것임
→ 고후 4:16-18 //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 이때 우리의 마음은 회복되고 치유될 수 있음
→ 시편기자는 21절까지 계속 토해내다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 (28절)
→ 예수님도 그러셨음. 피가 땀이 되도록 기도하셨더니 그 끝에서는 하나님의 크심을 바라보며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말씀하심
→ 객석에서 바라보는 것 vs 무대 뒤를 보게 되는 것.
→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영광의 길은 기가막힌 하나의 공연을 만들어가시는 무대 뒷편의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와 순종의 길이다.
Outro
종려주일에 예수님께서 당당하게 입성하신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음.
모든 종류의 고통과 아픔과 배신감을 경험하게 된다고 할지라도
무대 뒤에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겠습니다.
라는 선포의 날이다.
고통과 아픔과 온갖 종류의 배신감 뿐인 이 세상 속에서
이 세상을, 내 삶을 여전히 감독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믿어야 한다는
예수님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우리의 한 주간의 삶도 그랬으면 좋겠다.
1,2절
하나님에게 버림받은 것 같다는 생각
배신감이 주는 고통
상대방을 사랑했는데 어느 순간 잠에서 깨어 보니 모든 게 끝나 버린 고통.
인생을 하나님께 걸었는데 하나님이 실망시켰다.
12제자들, 시편기자, 예수님
욥의 고통 끝에 하나님은 욥에게 나타나셨지만 우리에게는 안 나타나시지 않는가?
C.S.루이스 / 아내가 암으로 죽음
그때 쓴 글 : 그건 그렇고,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이런 느낌은 정말 불편하다. 우리가 너무도 행복해서 하나님의 필요성조차 못 느낄 때는… 하나님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우리를 환영하실 것이다. 또는 적어도 그런 느낌이다. 하지만 그분이 절박하게 필요할 때, 다른 도움이 전혀 소용없을 때 그분께 나아가보라.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 면전에서 문이 쾅 닫히고, 안에서 자물쇠를 이중 삼중으로 잠그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고는… 침묵. 그때는 우리도 발걸음을 돌리는 게 낫다. 오래 기다릴수록 침묵도 더 깊어질 테니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삶의 어느 시점에서 하나님의 숨어 계심이라는 진실에 직면해야 한다.
욥도 루이스도 믿음이 약해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써 나올 수 있는 아주 타당하며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의심을 가진다고 해서 믿음이 부족하다는 프레임을 자기에게 씌우지 말기 바란다.)
예수님도 겟세마네와 갈보리에서 하나님의 숨어 계심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종려주일은 배신감을 상징하는 날이다.
이 때는 모든 성경구절들과 영감 어린 슬로건들 그 어떤 말씀도 나의 고통과 외로움을 잠재우지는 못한다.
하나님도 나에게 자신을 드러내시지 않는데 내가 왜 그분을 인정해야함?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해야함?
하나님께 우리가 가진 슬픔, 분노, 의심, 쓰라림, 배신감, 실망감을 다 쏟아 놓아야 한다. 하나님은 그걸 다 소화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22:5)
고통 앞에서 우리의 시야는 제한된다. 그 제한된 시야는 현실을 왜곡한다.
내가 보는 세상 밖의 세상에서는 우리가 전혀 보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보는 것과 무대 뒷편에서 공연이 이뤄지기 위해 준비되는 것을들 바라보았을때 느껴지는 것들이 다르듯이.
그렇기에 어려운 시기에 고집스럽게 하나님께 매달려 있다면, 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오로지 기도만 하고 있다면 반드시 우리가 꿈꾼 것보다 더 많은,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일어난다.
(22:3, 22:24)
하나님이 아무리 멀리 계신 것 같아도,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 버리지 않으신다는 신뢰가 필요하다.
끈질기게 기적을, 심지어는 육체의 치유를 구하는 마음이 때로는 믿음을 풍성하게 하기보다는 부족하게 만든다. 하나님께 조건을 제시하는 기도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문제가 기적적으로 해결되기를 갈망하는 건 보이는 세상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시느냐 아니냐에 따라 우리의 충성의 여부가 달라지겠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을 우리에게 이루어 줍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뜻대로 해주시도록 조정하고 조종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원대로, 시편의 기자도 ‘그러나’ 주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 해결책이 될 수 있을듯 // 3대지
모든 실망은 ‘일시적’이다.
감정을 자유로이 표현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