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메시아를 원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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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월만에 설교를 하려니 잘 할 수 있을까 긴장이 된다. 2개월 간 쉬었으니까 이제 다 회복이 되어서 건강해졌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여전히 하루하루 컨디션이 아슬아슬하다.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 그저 기도만 해주면 좋겠다. 하나님께서 고질적인 질병을 위해 기도한 사도 바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라고 하신 말씀이 큰 위로와 소망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약한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분임을 믿는다. 하나님은 어줍잖은 나의 지혜와 능력과 재능을 통해 일하시기보다는 나의 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나타내며 일하시는 분임을 믿는다.
담길 가족들도 나의 연약함에 실망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친히 능력으로 행하실 것을 믿고 기대하며 나아가기를 바란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러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실 때에 있었던 일이다.
새끼 나귀를 타시다
새끼 나귀를 타시다
예루살렘과 가까운 곳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 근처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 제자 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30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1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당시 ‘주’라는 표현은 로마 황제에게 사용하던 말이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자신을 ‘주’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그 말씀대로 했더니 나귀 주인이 순순히 내주었다. 왜 내주었을까? 예수님을 ‘주’라고 인정한 것이다. 아마도 나귀 주인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나귀를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영광스럽게 여겨서 오히려 기쁘게 내주었을 것 같다. 이를 통해 당시 예수님에 대한 여론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평소처럼 걸어가지 않으시고 새끼 나귀를 타셨을까? 영광스럽게 입성하시려면 새끼 나귀가 아니라 위엄있게 말을 타시면 더 좋지 않았을까?
이유가 분명하다. 메시아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서였다. 스가랴 선지자가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해 이렇게 예언했었다.
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이 예언대로 자신이 예언된 메시아(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시기 위해서 새끼 나귀를 타신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새끼 나귀를 타는 메시아보다는 위대한 왕이나 전쟁 영웅처럼 멋진 말을 타는 메시아의 모습을 원했을 것이다. 스가랴가 왜 메시아가 새끼 나귀를 타고 임하신다고 예언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상식적인 왕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예수님이 새끼 나귀를 타신 이유는, 자신은 사람들이 원하는 메시아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무리들이 예수님을 찬양한 이유
무리들이 예수님을 찬양한 이유
유대인들은 메시아에 대한 갈망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스가랴 선지자의 메시아 예언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실 때 유월절을 위해 예루살렘에 모였던 수많은 유대인들이 대대적으로 환호하며 찬양했다.
37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38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오늘 본문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이때 무리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찬양했다. 종려나무는 야자수다. 오늘날로 치면 수많은 환영 현수막을 내걸고 깃발을 흔드는 것과 같다.
류모세 선교사에 의하면 종려나무는 불굴의 이스라엘 민족주의 상징한다고 한다. 그런데 예루살렘에는 종려나무가 없고 여리고에는 많이 있다고 한다. 이를 통해 무리들이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여리고에서 미리 준비해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걸 알려면 예수님 탄생 전, 구약과 신약 사이 이스라엘의 중간기 역사를 알아야 한다.
주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 멸망, 성전 파괴. 이후 다니엘서의 예언대로 여러 제국들이 나타남.
바벨론이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에 의해 멸망. 고레스 칙령으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
주전 516년 스룹바벨에 의해 제2성전 재건.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지 70년 만.
알렉산더 대왕의 출현으로 이스라엘은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됨.
알렉산더 사망 후 헬라제국은 4개로 분할됨.
이스라엘은 프톨레마이오스 제국의 지배 후 셀레우코스 제국의 지배를 받음.
셀레우코스의 안티오쿠스 4세의 헬라화 정책으로 이스라엘에 온갖 만행을 저지름. 이름이 ‘안티’로 시작되는 것이 어울리는 사람이었음.
친헬라파 사람을 대제사장으로 세움.
유대교 말살 정책 - 율법 행위를 금지시킴 : 할례 금지, 제사 금지, 안식일과 명절 금지.
성전에 제우스 신상과 제단을 세우고, 돼지와 부정한 동물로 제사함.
명령을 어긴 수많은 유대인들이 고문과 학살을 당함. 처형 당한 유대인만 약 4만 명.
주전 168년 유대인의 항쟁인 마카비 전쟁 시작. 전혀 상대가 안 되는 전쟁인데, 놀랍게도 유다 마카비가 3년만(주전 164년)에 예루살렘 탈환에 성공함. 더렵혀진 성전을 정화 (수전절-하누카).
그 기세를 이어서 주전 141년에 유다 마카비의 형인 시몬이 이스라엘 독립을 쟁취(바벨론에 의해 멸망 후 445년 만). 승리 후 시몬이 예루살렘 입성할 때 유대인들이 대대적으로 환영함.
마카베오 상권 13장 51절
“유다인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호소리도 드높게 비파와 꽹과리와 거문고 소리에 맞춰 찬미와 노래를 부르면서 요새 안으로 들어왔다. 민족의 큰 적이 참패를 당하고 이스라엘 땅 밖으로 쫓겨간 것을 축하하는 것이었다.”
시몬은 유대인들에 의해 독립한 이스라엘의 왕(하스모니안 왕조)이자 대제사장으로 추대됨. 시몬이야말로 유대인들이 원하는 메시아였다.
하스모니안 왕조는 약 80년 간 유다 독립국가를 다스렸으나 왕권쟁탈과 살육으로 얼룩지고 말았다.
그러다가 하스모니안 왕조가 몰락하고 주전 63년부터 또 다시 로마제국의 속국이 됨.
이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찬양했던 이유가 무엇이었겠는가? 예수님이 유다 마카비와 시몬처럼 강력한 지도력과 무력으로 로마 제국으로부터 독립시켜 줄 강력한 메시아가 되어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원하는 메시아가 아니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독립시켜주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유월절 어린 양이 되어서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시려고 오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로마 군인에 의해 체포되었을 때 그토록 예수님을 찬양했던 유대인들이 불과 며칠만에 돌변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아우성쳤던 것이다. 로마로부터 독립시켜 줄 메시아일 줄 알았는데, 그들이 볼 때 예수님이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로마 군인에게 체포된 것에 대해 실망감과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이 원하는 메시아는 예수님이 아니라 차라리 로마제국에게 용감하게 항거하다 체포된 바라바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고 바라바를 풀어주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열두 군단 이상의 천군천사를 부르실 수도 있지만,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대로 우리의 허물과 죄를 담당하심으로써 영원한 구원을 주시려고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이 잠잠하셨던 것이다. 이처럼 아무리 성경에 명백하게 예언된 진짜 메시아가 오셔서 예언 그대로 이루어주셔도 자신이 원하는 메시아와 다르면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거나 오히려 적대하게 된다.
여러분은 어떤 메시아를 원하는가? 예수님이 어떤 분이기를 원하는가? 혹시 성경이 아닌 자신의 상상만으로 이상적인 메시아상을 만들고 숭배하지는 않는가? 만약 그런 신앙이라면 우리가 아무리 예배를 감동적으로 드리고 열렬하게 찬양을 드리고 여러 봉사활동으로 헌신한다 할지라도 진짜 예수님이 아닌 우상 숭배가 될 뿐이다.
내가 원하는 예수님과 실제 예수님이 달라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겠는가? 예수님이 여러분이 원하는대로 해주지 않아도 메시아라고 믿는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는데 들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망을 하거나 아예 등을 돌리고 안티가 된다. 내가 원하는 메시아와 진짜 메시아가 다르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가 그려낸 메시아상을 지우고 성경을 통해 진짜 메시아가 어떤 분인지를 겸손하게 알아가야 한다. 그래야 진짜 예수님을 알고 믿고 따를 수 있다. 그럴 때 비로소 지금도 살아계시는 예수님과 동행할 수가 있다.
바리새인들의 항의
바리새인들의 항의
엄청난 무리들이 예루살렘 성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환호와 찬양을 하니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강력하게 항의를 했다.
39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한글 성경에는 바리새인들이 정중하게 부탁하는 것처럼 번역이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강하게 항의하는 말투였을 것이다. 단순히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하게 하라는 요구라기보다는, 대규모 군중들이 예수님을 왕이라고 외치는 것이 자칫 정치적으로 로마제국에 대한 반란으로 여겨져서 이스라엘이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고, 또한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바리새인들이 보기에는 무리들의 찬양이 신성모독적 행위로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인기와 존경을 먹고 사는 바리새인들의 마음에는 예수님에 대한 시기심으로 가득차 있어서 큰 위기 의식을 느꼈을 것이다. 이래저래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바리새인뿐 아니라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메시아와 다르면 이처럼 진짜 메시아를 적대시할 수 있음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40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자신이 바로 모든 사람들과 모든 만물에게 찬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영원한 왕이요 메시아이심을 선언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내가 원하고 바라는대로 해주지 않더라도 우리의 찬양을 받으실 영원한 왕이시다. 오히려 그 분이 왕이시기 때문에 내가 바라고 원하는대로 하지 않으실 수도 있는 분이다. 오히려 우리가 예수님이 바라고 원하시는대로 순종하고 찬양과 경배를 드려야 한다.
예수님의 눈물
예수님의 눈물
그토록 열렬한 환호와 찬양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을 향해 가시는 예수님께서 탄식하며 우셨다. 찬양하는 유대인들의 바램과는 달리 예루살렘의 패망이 가까웠음을 아셨기 때문이다.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주후 66~70년에 일어나게 될 유대전쟁으로 인해 예루살렘이 완전히 패망하고 성전도 파괴될 것을 예고하신 것이다.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아가 아니라는 이유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를 쳤던 유대인들은 결국 자신들이 원하던대로 무력으로 독립을 쟁취하려다가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혀서 멸망하고 말았다. 이후 유대인들은 2천년 동안이나 나라 잃은 민족이 되어서 전 세계를 유랑해야 했다.
성전 청결
성전 청결
새끼 나귀를 타고 우시며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신 예수님이 성전으로 가셨다. 성전 안에는 소와 양과 비둘기 등 희생제물을 파는 사람들과 세겔 환전상들로 인해 시장통이 되어버려서 소란스러웠다. 그 모습을 보신 예수님은 평소와는 달리 큰 소리를 질러 화를 내시며 그들을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45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46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그들이 장사한 곳은 성전 안 이방인의 뜰이었다. (그림)
이방인들이 예배하며 기도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을 장사꾼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대제사장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돈벌이를 위해서 이방인들을 무시하고 장사꾼들을 들여보낸 것이다.
과거에는 이교도인 셀레우코스 제국의 안티오쿠스 4세가 성전을 더럽혔지만 유대인들이 피흘려 싸워서 성전을 정화했고, 예수님 시대에는 대제사장들의 주도로 유대인들이 성전을 더럽혔고 예수님께서 정화하셨다. 성전을 정화하시려고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바치셨다.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각오하신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대제사장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성전을 정화하신 예수님에게 이를 갈며 죽일 계획을 세웠다.
47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48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더라
바리새인들과 마찬가지로 대제사장들과 지도자들에게도 예수님은 자신들이 바라는 메시아가 아니었다. 예수님이 메시아가 아니기를 바랐고,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죽이기를 모의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군중들이 예수님을 좋아했기 때문에 죽일 방도를 찾지 못했지만, 결국은 군중들도 예수님이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아가 아님을 알고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결론
결론
오늘 본문 등장하는 군중들과 바리새인들과 성전 지도자들은 모두 메시아를 갈망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각자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아상이 다 따로 있었다. 예수님은 그들이 원하는 메시아가 아니었다. 예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이미 예언된 대로의 모습으로 오셨지만 성경을 잘 알고 있었던 유대인들임에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여기지 않았다. 예수님이 자기들 뜻대로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런 식으로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바울도 사울이었을 때 그랬다. 누구나 이런 오류에 빠질 수 있다.
근거 없는 상상 속 메시아를 죽여야 진짜 메시아가 우리 안에 들어오실 수 있다.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면 진짜 메시아가 어떤 분인지를 알아야 한다. 성경이 친절하고 자세하고 알려준다. 그래서 성경을 읽지 않으면 예수님을 알 수 없고, 만날 수 없고, 올바로 믿을 수 없고, 끝까지 따를 수 없다. 날마다 성경을 통해 진짜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따르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