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방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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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 하나님의 번성과 다른 죄의 번성
창5:1-6:8절까지가 한 문맥입니다. 지난 번에 우리가 살펴본 대로 아담의 톨레도트, 족보입니다. 1절에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2절에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혼인을 통해 세상이 번성합니다. 이것은 죄악일까요, 복일까요? 창1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창세기 1:28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고 하셨습니다. 즉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하나님의 복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분위기가 이상합니다. 5절에 보시면 분명 번성했는데 하나님의 복을 받은 것 같이 보이는데 사람만 번성한게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번성했다고 말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죄악이 번성한 것입니다. 그 번성이 얼마나 심했냐면 죄악이 세상에 가득했고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진짜 잘 보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세상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교회 안에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2절 하나님의 아들들은 누구일까요? 사람의 딸들은 누구일까요? 창3:15절 이후로 이제 세상은 두 부류의 사람이 살아갑니다. 여자의 후손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경건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몇 주간에 걸쳐 살펴본 아벨, 셋, 에노스, 에녹 등입니다 .바로 5장에 등장하는 믿음의 족보입니다. 또 한 부류는 가인과 그의 후손들입니다. 바로 여자의 후손을 믿지 않고 자기 스스로 힘과 권세를 취하고 어떡하든 이 세상에서 안전하고 부유하게 살아보려는 뱀의 후손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은 이 두류의 사람들이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바로 경건한 여자의 후손을 믿으며 기다리는 교회성도들입니다. 사람의 딸들은 가인과 그의 후손들인 뱀의 후손들, 즉 세상입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경건한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형성하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교회를 번성케 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바로 이 결혼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보고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습니다. 결혼이 깨진 것입니다. 결혼이 깨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깨트린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악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오늘 1-7의 내용은 신자들에게 경고하는 바가 있습니다. 5장의 족보를 보십시오. 분명히 경건한 사람들이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노아의 시대에 경건한 사람들은 전멸했습니다. 노아의 시대에 그의 아버지가 노아만 낳았을까요? 아니죠. 라멕이 노아를 낳고 오백구십오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습니다. 그의 할아버지인 므두셀라가 낳은 자식들, 그 자식들이 낳은 자녀들도 상당했습니다. 그들도 세상의 여자들을 보고 모든 여자들을 아내로 취했습니다. 즉 신자와 불신자가 섞였습니다. 교회와 세상이 혼합되었습니다. 교회입니까, 세상입니까? 분간이 가지 않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숫자가 많아지는 것이 좋습니까 안좋습니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평가는 숫자에 있지 않습니다. 분명 숫자는 많아졌습니다. 인류가 번성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이 이루어졌는데 하나님은 근심하고 한탄하십니다. 후회하십니다. 과연 이런 번성을 하나님께서 원하신 걸까요? 전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의 시대에 족보를 잘 보십시오. 당시에 사람들이 어느 정도 살았을까요? 많은 학자들이 지금과 비슷했다고 말하는데 과연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셀 수 없을 정도의 인원이 살았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노아의 가족만 구원받았습니다. 다 죽었다 이 말입니다. 노아 홍수가 있었을 때 아담으로부터 165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결과가 발생한 것일까요?
오늘 본문이 보여주는 사실은 타락은 옳고 그름의 문제인데 사람들은 옳고 그런가로 판단하지 않고 좋고 싫음으로 판단한다는 점입니다. 여러분 미녀와 결혼하면 죄 입니까? 그럼 저는 죄인입니까? 지금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악으로 치달아서 좋으면 다 취했다 이 말입니다. 두 여자와 결혼하면요? 옳으냐 옳지 않으냐 따지지를 않아요. 좋으냐 싫으냐로 판단합니다. 여러분 죄악이 바로 거기서 시작합니다. 왜 신자들이 세상과 섞입니까? 분명 교회 다니는데 믿음이 있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악하게 됩니까? 옳고 그름에, 즉 선과 악에 관심이 없습니다. 좋으냐 싫으냐로 판단합니다. 내가 할 수 있고 좋으면 나한테는 선입니다. 내가 싫고 좋아하지 않으면 악입니다. 여러분 이런 관점이 우리한테 많이 있어요. 은연중에 그런 삶이 우리에게 치고 들어 옵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으면 우리 삶이 좋고 싫음으로 바로 들어갑니다.
여러분의 삶을 두고 솔직히 판단해 보세요. 여러분은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십니까? 아니면 좋고 싫음으로 판단하십니까? 아담과 하와가 좋고 싫음으로 판단했습니다. 하나님이 먹지마라고 했는데 하와가 보니까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러웠습니다. 즉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지 않고 좋고 싫음으로 판단했습니다. 그 결과 타락하게 되었죠.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 사실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 있습니다. 2절 아름다움을 보고, 5절 여호와께서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12절 하나님이 보신 즉. 여러분 이 사실을 잘 보십시오. 노아 홍수는 심판입니다. 하나님이 죄로 가득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창1장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세상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제는 악이 되었습니다. 사람도 봅니다. 사람은 무엇을 봅니까? 딸들의 아름다움을 봅니다. 우리에게 딸들의 아름다움은 무엇입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특징은 포스트 모더니즘입니다. 진리 실종 시대입니다. 진리를 강요하지 마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정답은 없어, 내가 원하는게 정답이야. 딱 노아의 시대와 같지 않습니까! 내가 보기에 좋은 게 옳은게 되는 시대입니다. 누구도 내 삶을 관여할 수 없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잖아!
그러나 성경은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이 선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선을 추구하라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과 악의 판단을 우리가 하지 말고 하나님께 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죄악이 가득하면 선과 악의 판단을 멀리하고 좋고 싫음으로 우리 마음을 채웁니다. 혹여나 우리의 마음이 좋고 싫음에 끌린다면 내가 죄를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옳고 그름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보기에 옳고 그름도 아닙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옳고 그름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우리가 좋고 싫음을 따라 행하시는 모든 죄악을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지으신 복주신 그 땅에 죄악이 가득한 것을 보십니다. 그러나 그것만 보십니까? 아닙니다.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도 보십니다. 항상 악하다 해서 안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악을 행할 때 옆에 누군가 지켜보고 있으면 죄를 짓습니까? 안 짓죠. 인간의 악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현대의 수단이 무엇입니까? cctv입니다. 사람의 악함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죠. 눈에 보이는 증거를 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악함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보십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는 옆에 누군가 없을 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행동으로 나오는 것이 오늘 본문이 말하는 계획이라는 단어입니다. 마음으로 생각하는 계획이라는 것은 항상 악만 생각하는 거예요. 우리가 우발적으로 죄를 지을 때도 있지만 우리의 평소 생각이 평소 마음이 죄라는 형태로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그럴 줄 몰랐다! 네 당연합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 사람의 마음을 아시니 그 사람이 그런 죄악을 짓는 줄 당연히 아십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죄를 생각할 때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온 땅을 심판하십니다. 노아 홍수는 홍수, 즉 자연재해가 아니라 심판인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두고 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 심판할 수 있어! 네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시니 당연히 심판하셔야죠. 의로운 재판관은 반드시 악을 심판해야 합니다. 사랑과 자비가 있으니 심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하 결과에 마딱드립니다. 여러분이 지금 좋고 싫음을 따라 행하는 그 모든 행위들을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마음으로부터 생각하는 죄악들을 하나님이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우리의 죄악들이 지금 행하는 그 실수를 과장한 죄악들이 반드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까발려지는 날이 옵니다. 그 때에 우리는 핑계할 수 없습니다. 나는 예수님 때문에 괜찮아 라고 할 때 하나님이 나 너 몰라라고 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심판 앞에 사람들이 몰랐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배가 떠났기 때문입니다. 심판할 줄 몰라서 회개할 기회가 없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죄는 자신들이 지어놓고 하나님을 탓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보셔야 합니다. 이 사람들은, 심판 당한 이들은 세상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신자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 한 순간에 다시 세상으로 기울었습니다. 자신의 좋고 싫음으로 판단하면서 자신들이 하고 싶은 거 자신들이 보기에 좋은 것만을 취했습니다. 그 결과 세상과 교회가 섞였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떻게 행동하고 있습니까? 자신이 보기에 좋고 싫은 것만을 선택해서 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옳고 그름에 관심없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 역시 노아의 홍수 심판과 같은 마지막 불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의 모든 죄악과 좋고 싫음을 따라 행하는 우리의 행동과 우리의 악한 마음 하나하나 다 보고 계십니다. 분명 그 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2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8절은 그러나로 시작합니다. 갑자기 전환이 됩니다. 그러나 노아는 은혜를 입었다고 말합니다. 뒷말이 참 재밌습니다. 여호와의 눈입니다.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사람을 찾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노아가 아니라 하나님께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에 개입하셔서 노아를 부르셨고 노아를 말씀으로 단단하게 하셨지, 노아 자체에 어떤 뛰어난 부분이 있거나 의로워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의 인생에 개입하셨습니다. 역사의 변곡점에는 항상 하나님의 개입이 있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표현해 보겠습니다.
창세기에는 열 개의 톨레도트 족보가 등장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족보는 그리스도께로 가는 길을 보여줍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그 족보에서 그리스도가 등장하는지를 보여주십니다. 그러니 족보에는 메시아가 등장합니다. 메시아는 신약 시대에 오셨지만 그림자로서 메시아가 족보마다 등장합니다. 이 부부을 잘 기억해 두십시오. 오늘 본문에서 구원자 역할, 즉 메시아를 보여주는 인물이 노아입니다. 시대마다 메시아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그렇게 이끌어가심을 보여주십니다.
여러분 어떤 점에서 노아가 구원받을 만한 삶을 산 것입니까?왜 하나님은 노아를 부르셨을까요? 5장 후반부에 보세요. 5장의 족보에서 가장 늦게 자녀를 낳은 사람이 므두셀라인데 187세입니다. 그런데 노아는 500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고 말합니다. 무엇을 보여주는 것입니까? 성경은 노아가 몇세에 결혼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노아가 500세에 자녀를 낳았다는 것은 엄청난 믿음입니다. 왜요? 노아 시대의 결혼이 어떠했는지를 6:1-7에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들면 아내로 삼았습니다. 누구와도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옳은지 악한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좋으면 결혼 했습니다. 결혼이 무너지면 교회가 무너집니다. 결혼이 무너진 시대에 끝까지 하나님을 믿으며 노아는 참았습니다. 견뎠습니다. 믿음으로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그것을 대조하는 것입니다. 노아는 500세에 자녀를 낳았다! 성경은 이것으로 노아를 설명합니다. 노아가 왜 500세에 자녀를 낳았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그는 아무나 눈에 보이는 대로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에 신뢰했기에 기다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가지 않았습니다. 좋고 싫음이 아니라 옳고 그름으로 행동했다는 것을 기록합니다. 이것을 성경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9절 보세요.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기록합니다. 노아는 믿음이 에녹과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런 노아였기에 하나님의 눈에 그가 보였고 약속을 믿고 신뢰하는 노아와 그의 가족을 하나님은 심판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노아만 은혜를 받았을까요? 아닙니다. 악인들도 자기들이 모르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바로 120년입니다. 하나님께서 120년간 노아를 통해 은혜를 선포했습니다. 심판을 유예하셨습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기다렸습니다. 심판을 120년간이나 참으며 기다렸습니다. 방주를 짓는 것 자체가 심판을 선언하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전서 3:20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에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셨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 죄로 인해 우리만 힘들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신다는 말은 하나님이 자신이 지으신 인간이 모든 죄를 짓는 것을 보시고 계시고 다 알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죄를 짓는 것 보다 잘못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훨씬 힘든 법이죠. 하나님은 그런 마음으로 오래 참고 견디셨습니다. 그들에게 악한 자라 할지라도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를 오래 참고 지켜보십니다. 얼마나 사랑하셨느냐?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아들을 보고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믿고 나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주님께로 오십시오. 자신의 좋고 싫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옳고 그름으로 믿고 살아가십시오.
주님께서 노아에게 은혜를 베푸셨듯이 오늘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나로 시작하는 이 시대의 인물이 누구입니까? 저와 여러분이 되시는 것을 믿으십시오. 우리 큰사랑교회가 그러나 양산에는 큰사랑교회가 있다는 하나님의 자랑이 여러분이 되시는 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그 부름에 신실한 믿음으로 참고 견디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