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404 금요기도회: 열왕기상 1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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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번 한 주도 저희를 지켜주시고, 이렇게 기도회 자리로 저희를 부르셔서 함께 하나의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하게 하심 참으로 감사합니다. 한 주를 바쁘게 살고, 분주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잠잠히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이 고요한 시간 속에서 저희의 마음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걱정과 염려라는 요란한 마음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간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의 마음이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져서 하나님을 향유하며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해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것을 기뻐하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시간 그런 저희가 되기 위하여 말씀과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이 시간도 함께해주시고 저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항상 저희에게 복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열왕기상 13:1-10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보라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니 마침 여로보암이 제단 곁에 서서 분향하는지라
하나님의 사람이 제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이르되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그 날에 그가 징조를 들어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징조라 제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 하매
여로보암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여 외쳐 말함을 들을 때에 제단에서 손을 펴며 그를 잡으라 하더라 그를 향하여 편 손이 말라 다시 거두지 못하며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보인 징조대로 제단이 갈라지며 재가 제단에서 쏟아진지라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나를 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여 내 손이 다시 성하게 기도하라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니 왕의 손이 다시 성하여 전과 같이 되니라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에 가서 쉬라 내가 네게 예물을 주리라
하나님의 사람이 왕께 대답하되 왕께서 왕의 집 절반을 내게 준다 할지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이 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이에 다른 길로 가고 자기가 벧엘에 오던 길로 되돌아가지도 아니하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어느덧 벌써 4월이 되었습니다. 2025년 시작부터 참 다사다난했고, 오늘도 국가의 중대사항이 마침내 결정이 되었는데요. 세상이 시끌시끌하고 떠들석하지만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잠잠히 하나님께 나아가며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가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기도라는 큰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 기도회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말씀을 듣고 함께 기도제목으로 삼으면서 기도하면 좋겠는데요.
오늘 말씀은 열왕기상 13장의 말씀으로 여로보암이 세운 벧엘의 제단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깨닫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앞에 있었던 말씀을 잠깐 말하자면, 솔로몬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분열시키셔서 심판하시려고 하시는데, 여로보암에게 10지파에 대한 왕권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에 순종함으로 잘 통치한다면 심지어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여로보암이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했다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이루어졌을 겁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침내 솔로몬 사후에 10지파들에 대한 왕권을 받았지만, 마치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을 연상시키듯 벧엘과 단에 각각 금송아지를 만들어 두고 그것을 백성들이 예배하게끔 만드는 심각한 범죄를 저지릅니다. 그 이유는 백성들이 예배하러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면 남유다에게 백성들을 빼앗길 수 있다는 하나님을 생각한 행동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결정을 내린 불안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의 예배를 바로 잡으시기 위해 선지자를 보내시는데요. 그것이 오늘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 1절은 12장 33절에서 벧엘에서 우상숭배하는 북이스라엘의 현실 가운데서 “보라!”라는 말로 집중시킵니다. 도탄에 빠지고 어두움의 한 가운데로 가고 있던 이스라엘에게 “보라!”라는 말로 이목을 집중시킵니다.
그러면서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니 마침 여로보암이 제단 곁에 서서 분향하는지라”라며 여로보암이 우상숭배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파송하신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여로보암의 상반된 모습을 열왕기 저자는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북이스라엘로 파송하시는 이유는 북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바로 잡고 다시 하나님을 예배하게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2절에서 선지자를 통해 예언의 말씀을 전달하십니다.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아주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2절의 말씀은 무려 300년 뒤에 남유다의 왕이 되는 요시야가 하나님의 예언에 따라 예배개혁, 종교개혁을 행할 것을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일이 요시야 왕 때에 정말 이루어졌습니다. 열왕기하 23:19-20 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전에 이스라엘 여러 왕이 사마리아 각 성읍에 지어서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산당을 요시야가 다 제거하되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대로 행하고
또 거기 있는 산당의 제사장들을 다 제단 위에서 죽이고 사람의 해골을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요시야는 여로보암의 우상숭배 범죄를 모두 청산하고 2절의 말씀처럼 산당의 제사장들을 죽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예언이 이렇게 반드시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지금 선지자의 말씀을 듣는 여로보암과 백성들은 이 일이 일어나기 전이며, 언제 이 일이 일어날지를 모른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반드시 이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을 확신시켜주고 이들에게 엄중한 경고를 날리시기 위하여 징조를 보여주기로 하십니다. 3절입니다.
“그 날에 그가 징조를 들어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징조라 제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
바로 벧엘의 제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는 징조가 일어날 것을 말씀하십니다. 선지자를 통해 이 말씀을 들은 여로보암의 반응은 어떻겠습니까? 남유다에게 백성이 빼앗기지 않으려고 산당과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없애겠다고 하는 이 선지자의 말을 듣고 “감사합니다.”라고 하진 않을 겁니다. 자신의 노력이 들어간 것이니까요. 그래서 여로보암은 선지자의 말을 듣고 분노하여 선지자를 잡으라고 명령합니다. 그러자 그를 잡으라 라면서 선지자를 향해 편 손이 갑자기 마르게 되어 움직이지 못하게 됩니다. 바로 무려 북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왕임에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에게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게 하나님께서 무력화시키십니다. 여로보암에게 왕이 될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그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왕으로도 만드실 수 있으심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선지자가 미리 예언한 징조대로 5절에서 그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을 통해 비록 하나님께서는 징계하시고 심판하셨지만, 하나님의 본심은 사실 이들이 이 일을 통해 회개하고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북이스라엘의 예배가 회복되는 겁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이 순종하길 바라십니다. 선지자를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으로 인정하고 이 징조가 결코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님을 인식하면서 경각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백성들을 다시 바르게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징계를 통해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이런 마음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그렇다면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6절에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손이 말라 고통받자 여로보암은 선지자에게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여서 손을 다시 회복시켜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왕의 요청을 들어주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며 기도하니 여로보암의 손이 다시 예전처럼 회복이 됩니다. 여기에서 여로보암은 선지자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무력화시키심으로 자신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을 알고 선지자를 의지함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여로보암의 모든 일생은 악하고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모습들로만 가득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잠깐이라도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의지하려는 자를 결코 내치지 않으시기에 그에게 기꺼이 은혜를 베푸십니다. 여기에서 바로 하나님께서 심판 자체에 목적을 두기보다는 여로보암과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오길 바라시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항상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에게로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경고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여로보암은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로 돌아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그분의 율법대로 통치하는 것이 기대되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알다시피 여로보암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북이스라엘 왕들의 표본이 되어 북이스라엘의 모든 악한 왕들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였다고 평가됩니다.
이스라엘은 비록 불순종하여 분열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들 여로보암에게 왕권을 주시면서 그가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대로 통치하길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남유다에게 백성들을 빼앗길 것을 염려하고 우상숭배라는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런 염려가 인간이기 때문에 충분히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왕에게 중요한 것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말씀과 율법에 순종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말씀에 따른 바른 예배를 추구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말씀과 율법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비단 왕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지자에게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7절에서 여로보암이 선지자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 그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며 예물을 주고자 합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8-9절에서 “왕께서 왕의 집 절반을 내게 준다 할지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어니하고 이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 하리니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 하셨음이니이다”라고 대답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이 이렇게 하실 것을 아시고 미리 선지자에게 말씀하셔서 그와 모든 것을 함께하지 말고 왔던 길로도 가지 말고 다른 곳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이유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선지자에게 이같은 하나님의 말씀은 불합리하고 공평하지 못한 처사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선대하겠다는 여로보암의 호의를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과 함께함으로 그와 교제하면서 선지자가 같이 타락할 수가 있기에 이러한 조치를 취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지 중요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고, 자신의 입장에서는 불합리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반드시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10절에서 다른 길로 갑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은 왕뿐만 아니라 선지자에게도 너무나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여로보암에게 왕권을 주시면서 그가 말씀과 율법을 지키면서 살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것과 같은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너무나도 큰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보다 자신의 뜻대로 하는 것을 더 좋아하여 북이스라엘을 우상숭배에 빠지게 만드는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우리를 속박하고 얽매는 목적이 아닙니다. 그분은 자신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가 행복에 이르는 길이며 우리에게 마땅한 일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을 따를 것이냐, 금송아지를 따를 것이냐 여로보암에게는 이 두 선택지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금송아지를 섬기며 금송아지의 법 아래에 살아갑니다. 그 길은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만드는 길이며 불행의 길입니다. 이러한 북이스라엘의 예배를 하나님께서는 요시야를 약속하시면서 바로 잡으시기로 합니다.
끝까지 자신의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겁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와 의지를 안다면 우리는 그분의 말씀에 반드시 순종해야 합니다. 북이스라엘의 왕뿐만 아니라 오늘 그에게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도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내가 이해가 되지 않고 불합리해 보일지라도 그분이 말씀하셨다면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원하시는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너무나 중요함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너무나 힘들어하고 어려워합니다. 그러나 어려워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는 반드시 순종해야 합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지금도 베풀고 계신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마땅히 순종해야 합니다. 은혜를 아는 자가 은혜를 베푼 이를 배신하면서 산다면 진정으로 그 은혜를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교회는 무엇보다 말씀에 순종하는 교회가 되길 힘써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행복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을 가장 잘 지키신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부당하며 불합리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기꺼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순종하셨기에 우리가 이러한 복을 누리고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에게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심지어 내가 부당하고 불합리한 상황에 있을지라도 말씀대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특별히 왕과 선지자에게 순종이 중요했던 것처럼 우리 교회 직분자가 말씀에 순종하며 바른 예배로 우리 교회를 이끄는 직분자가 세워지는 복된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행복의 길을 걸어가는 모든 저와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 시간 함께 오늘 말씀을 두고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여로보암과 그에게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에게 중요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이었습니다. 여로보암처럼 인간적으로 염려가 되는 일이 있습니까? 그럼에도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복된 길이기 때문입니다. 선지자처럼 불합리하고 부당한 것처럼 보이는 일이 있습니까? 그럼에도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겁니다. 마땅히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더 나아가서 우리에게 주신 직분자가 인간적인 염려로 인하여 말씀에서 벗어나 예배를 더럽히는 직분자가 되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이 교회가, 이 강단이 하나님을 밀어버리고 우상으로 대체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채워지는 이 교회가 되지 않도록 직분자를 위해 반드시 기도합시다. 직분자가 말씀에 항상 순종하며 바른 예배로 이끄는 직분자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이 시간 이 기도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