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406 주일오후예배: 요한복음 17:1-12;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8장 제3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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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시겠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복음 17:1-12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함께 보겠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8장 제3항입니다. 제가 8장의 제목을 읽으면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8장 중보자 그리스도
3. 주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신성과 연합한 인성에서 성령으로 한량없이 거룩하여지셨고 기름 부음을 받으셨다.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를 가지셨기에 아버지께서 모든 충만이 그분 안에 거하는 것을 기뻐하셨으니, 이는 예수님이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시어, 중보자와 보증의 직무를 수행하시기에 완전하게 구비되도록 하시려는 목적을 위함이었다. 예수님은 이 직무를 스스로 지신 것이 아니라, 모든 권세와 심판권을 그의 손에 맡기시고 그것을 수행하라고 명령하신 아버지로부터 이 직무로 부르심을 받으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도 저와 여러분을 말씀의 자리 초대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의 인간적인 부족함과 부덕함이 이 자리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강하시고 모든 것을 초월하신 하나님만이 이 자리에서 나타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저를 통해서 말씀이 선포될텐데요.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다루었는데요. 우리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속성들을 가지고 계심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성은 우리에게도 너무나 큰 유익을 준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가길 원하는데요. 오늘은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익숙한 교리인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선포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씀을 시작하기에 앞서 질문 한 가지를 할텐데요.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삼위일체로 계신다는 이 교리가 여러분에게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하나님께서 유일하지만 삼위로 계시는 것이 우리에게도 얼마나 큰 유익을 주는지 알고 계십니까? 우리는 이 삼위일체 교리를 하나님 안에서의 관계성으로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이 삼위일체 교리가 우리에게도 큰 유익을 주고 있다는 것에는 우리가 잘 도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남겨진 이 정통교리인 삼위일체 교리를 우리가 고백하고 믿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정말로 큰 보화이며, 우리의 신앙과 삶에 있어서도 아주 큰 영향을 줍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말씀에서 나타나있습니다. 한 분이시자 성부, 성자, 성령으로 삼위로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이 삼위일체 교리가 단지 하나님과의 관계성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큰 유익을 준다는 것을 ‘삼위 하나님과 교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특징과 관계성에 대해서는 초점을 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니케아 신경과 우리가 앞으로 고백하기로 한 아타나시우스 신경이 이것을 잘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기독교라는 것에 처음 발을 들여놓으셨거나 삼위일체 교리를 잘 모르시는 분이 계실 수 있기에 잠시 이것에 대해서 설명하고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삼위일체라는 교리는 삼위, 세 위격이 / 일체, 한 몸이라는 뜻입니다. 조금 더 쉽게 풀어서 말하자면 세 분의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보통 케로베로스 처럼 한 몸에 머리가 세 개인 존재를 상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머리가 다 따로 독립된 존재이기 때문에 그것이 삼위일체가 아닙니다. 그리고 세 위격이라고 했을 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다 따로 계시는 독립된 하나님으로 한 분 하나님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삼위일체가 아닌 세 분의 하나님을 섬기는 삼신론으로 갈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삼위일체 교리는 기독교가 여러 신을 믿는 다신교가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을 믿는 유일신을 믿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가장 큰 근거입니다. 이 삼위 하나님은 거룩과 영광과 존귀, 그리고 능력에 있어서 동일하십니다. 그리고 각각 구분된 위격이시지만, 동시에 한 분이십니다. 이것에 대해서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여러 방법을 통해 설명하고자 하였고, 이 교리를 수호하고자 하였습니다. 우리의 머리로는 이 삼위일체 교리를 100프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세 위격으로 계시는 하나님께서 한 분이실 수가 있는지 우리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삼위일체 교리를 우리는 반드시 고백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에서 이것을 말하고 있기 떄문입니다. 우리가 저번에 하나님의 유일성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이시라고 성경이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은 동시에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영이라는 삼위로 계시는 분이라고 가르칩니다. 너무나도 명백하게 이렇게 가르치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지금 삼위일체 교리를 의도적으로 우리의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고백해야 할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삼위일체 교리를 정립하는 과정 속에서도 결국 머리로 완벽하게 이해하려고 하기 보다 고백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니케아 신경과 아타나시우스 신경이라는 유산입니다. 이 신경들은 “그래, 우리가 이제 삼위일체 하나님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 우리가 이해하게 되었으니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놓자.”라는 의미로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에서 명백하게 한 분 하나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으로 계시다는 것을 말하고 있어서 우리가 이것을 나름대로 이해하려고 시도해보았지만, 결국 어느 한 주장에도 모두가 만족할 수 없었어. 그래서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대로 고백하기로 했어”라는 의미로 남겨진 유산들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시면서 오늘 말씀을 들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 신앙의 선조들이 우리에게 이 삼위일체 교리라는 큰 유산을 남겨준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유익을 주고 있는지 오늘 말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의 고별 기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예수님 자신과 제자들, 그리고 제자들을 통해 믿음을 가지게 될 신자들을 위해 아버지께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이 기도를 흔히 예수님의 “제사장적 기도”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제사장은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하나님을 예배하고 백성들의 속죄를 위해 봉사하는 직분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예수님의 기도는 그런 제사의 모습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데, 어떻게 이것이 제사장적 기도라고 할 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제사장의 속죄와 예수님의 기도 순서가 똑같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속죄 제사를 보면 속죄에도 순서가 있었습니다. 먼저 제사장이며 제사를 집례하는 아론 자신을 위한 속죄제 드립니다. 그 다음 아론 자신과 자신의 집안을 위한 속죄를 합니다. 그리고나서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한 속죄를 합니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먼저 예수님 자신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그 다음 제자들을 통해 믿게 된 자들, 즉 교회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이렇게 제사장의 속죄제와 예수님의 기도가 같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사장적 기도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의 기도는 지극히 아주 삼위일체적입니다. 특별히 성부와 성자 하나님 사이에서만 공유되고 누리시던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나누어주십니다. 먼저 예수님은 오늘 이 기도에서 자신이 이 땅에 내려와 사역을 행한 것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명령이었고,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모든 것들은 다 아버지로부터 왔고 자신의 사역 목표는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1절에서 예수님은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되시는, 영광스럽게 되시는 것은 아들을 통해서 영화롭게 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방법은 아들을 통해서 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의 빛을 발산하셔서 세상에 영광을 나타내실 수도 있지만, 그 영광의 빛을 나타내시는 방법은 세상에 예수님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아들이신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기로 정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 자신이 영광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십니다.
그렇다면 아버지께서는 어떻게 아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셨을까요? 어떤 방식으로 아버지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영광을 받으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일을 이루심으로 영광을 받으시는 방법입니다. 4절에 보시면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시는 방법은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명령과 일을 이루심으로 영화롭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이 일들은 예수님 사역 전체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17장의 문맥을 보면 1절에서 예수님꼐서 “때가 이르렀다”다고 말씀하시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 잡히시는 18장 전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명령과 일을 이루심으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한 것처럼 앞으로 있을 십자가 사역을 이루심으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실 것을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참 이 예수님의 기도는 독특하고 특이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영광은 화려하고 위엄있는 것으로 나타내는데,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의 죽음으로 자신을 영화롭게 하여 아버지를 영화롭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인간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죽음은 절대로 영광스럽지 않습니다. 영광을 빛이라고 빗댄다면, 죽음은 어둠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시선에서 죽음은 결코 영광스럽지 못합니다. 특히나 지금 이 예수님 당시에는 로마가 세상을 제패하던 때였습니다. 로마, 얼마나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나라였습니까? 로마만큼의 대제국을 유럽의 그 어느 나라도 형성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화려한 문명이 있었으며, 로마를 다스리는 황제는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였습니다. 이 당시 세상의 관점에서는 로마 황제가 영광의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이것과는 다르게 누구나 기피하고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죽음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영광받으시고자 하였고, 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이 십자가의 죽음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일이기도 합니다. 아주 역설적이게도 아들의 죽음으로 아버지께서는 영광을 받으십니다. 세상의 왕인 로마 황제는 화려하고 빛나는 것으로 영광을 받고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되지만, 세상의 진정한 왕이시며 이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죽음으로 영광을 받으시고자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면서 말씀하시는 자신을 영화롭게 하여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시려는 방법이 바로 이러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영광에 대한 독특한 특징을 말씀하고 계시는데요. 그것은 아버지와 자신이 공유하는 영광은 창세 전에 가졌던 영화라고 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창세 전부터 아버지께서는 아들이신 예수님을 자신과 똑같이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즉, 이 영광은 삼위 하나님 안에서만 공유되던 영광입니다. 그 영광을 동일하게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가지길 원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창세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공유하던 그 영광을 역설적이게도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가지고자 하십니다. 아버지께서 하신 명령과 주신 일을 통해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아버지처럼 영광을 받으시는 것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제자들을 통해서 받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10절에서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들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여기서 더 놀라운 것은 6절입니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계시하심으로 그들이 자신이 받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셨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그 일을 제자들에게 주시고, 10절에 따르면 제자들은 그 일을 수행함으로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다는 겁니다. 앞에 준비한 ppt를 보시면 보다 쉽게 이것을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먼저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명령과 일을 부여하십니다. 그리고 아들께서는 아버지로부터 일과 명령을 받은 동시에 제자들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이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부여받은 명령과 일을 부여하십니다. 그러면 이제 이 제자들은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명령과 일을 함으로써 예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예수님 또한 아버지로부터 받은 명령과 일을 이루심으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러면 이러한 논리에 따라서 결국 제자들이 받은 명령과 일은 누구로부터 받은 것입니까?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고, 우리가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곧,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ppt로 준비한 이 구조가 오늘 말씀을 이해하는 것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특별히 이것은 삼위이신 하나님 안에서만 공유되던 것들을 이제 제자들, 그리고 이 제자들로 인해 세워진 교회에게 나누어주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원래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에게 이것들을 나누어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삼위일체로 존재하신다는 것은 우리라는 존재가 없어도 가능하며, 그분이 일하시는 것에 있어도 우리가 없어도 하나님은 충분히 일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 나타나는 아버지와 아들 하나님께서는 일과 명령을 아들에게 주시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이것을 교회에게도 나누어주시기로 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중보자이시라는 것의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신다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하시는 구원론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성부 하나님과 연결시켜주시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중보자 사역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중보자 사역은 지극히 삼위일체적입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만 공유하시던 것을 교회에게 나눠주시기 때문입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이 세상의 주인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우리에게도 그분 안에서만 공유하시던 것을 주시니 말입니다. 이 세상 그 어느 신화들이나 신들을 보더라도 이와 같이 귀하게 대했다는 것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공유하시는 것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겁니다.
2절과 3절을 보시면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세 가지를 주십니다. 영생, 권세, 그리고 3절에서 아는 것이라고 번역된 지식입니다. 이것이 하나로 묶여져 있는데 우리가 앞에서 들은 ‘영광’과 같은 원리입니다. 영생을 생각하더라도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아들은 죽으셨어도 부활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살리신 것이죠. 그리고 아들에게 주신 이 생명, 즉 영생은 아들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이것을 받은 아들께서는 교회에게도 이 영생을 주십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죽음에 있었던 자들입니다. 바울은 우리를 죄로 인해 죽어가고 있는 자들이 아니라 죽은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에베소서 2장에서 바울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라고 말합니다. 이런 상태에 있던 우리를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영생을 우리에게 주시고, 특히 성령께서 다시 태어나게 하셔서 영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영생이라는 단어에 바로 이러한 삼위 하나님의 사역이 한 단어로 압축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2절에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신다.”라는 이 말씀 안에는 이미 삼위일체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권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저번에 설교한 마태복음에서 말씀하는 천국 열쇠인 교회의 치리권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이 권세를 아들께서 교회에게 주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지식도 그러합니다. 3절에서 지식은 무엇입니까? 바로 영생입니다. 그리고 이 지식은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고 생각하는 그 지식을 넘어서서 하나님과 관계하는 것을 뜻합니다.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에 우리를 넣으셔서 영생을 우리에게 주십시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이 영생, 권세, 지식을 아들께서는 교회에게도 주십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6절을 보시면 “이름”에 대해서 나옵니다. 요한복음 14-16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때”라고 몇번 말씀하셨습니다. 6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이름을 제자들에게 나타내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곧, 성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제자들과 교회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성부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기도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와 더불어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에게서 말씀들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받은 말씀들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이 말씀들을 받고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고 보냄 받으셨다는 것을 알고 믿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야이시라는 진리를 예수님께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말씀들을 제자들에게 전하심으로 그들이 알고 믿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 또한 삼위일체적입니다.
이렇게 제일 먼저 다룬 영광과 영생, 권세, 지식, 그리고 기도와 말씀이 구분되어 있는 것 같지만, 이 모든 것들이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구분되어 있지 않고 하나로 통합되어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이 모든 것들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시고, 제자들은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이 모든 것들을 이제 자신들이 나누어줄 대상인 교회에게 전해주어야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명령과 일은 바로 예수님께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들을 이 제자들로 인해 믿게 될 성도와 교회에게 나누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믿지 않는 자들이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에는 바로 이 모든 것들을 전수해주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도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제자들이 할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명령과 일, 바로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에게 명령과 일을 부여하면서 영생, 권세, 지식, 그리고 말씀과 기도를 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역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가장 영광스럽고 복된 분이신 하나님께서는 자신 안에서 누리고 계신 이 모든 것들을 제자들과 및 제자들을 통해 믿음이 생기게 되는 교회에게도 나누어주십니다. 이것이 정말 선하고 좋고, 기쁜 것이기 때문에 함께 누리고자 하나님께서는 교회에게도 이것을 나눠주시기로 정하셨습니다. 심지어 교회가 어떤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나누어주십니까? 오늘 본문 이후 제자들만 봐도 예수님께서 잡히시자 언제 예수님을 따랐냐는듯이 다 뿔뿔이 도망치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기까지 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이 제자들을 통해 세워진 교회도 얼마나 연약한 모습을 많이 보이지 않았습니까? 고린도 교회를 보십시오. 고린도서를 읽으면 고린도 교회가 얼마나 연약하고 문제가 많은 교회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미리 아셨음에도 이들에게 자신이 아버지 하나님과 누리고 있던 이것을 제자들과 교회에게도 나누어주십니다. 이렇게 연약하고 배신하기를 즐겨하는 자들에게 삼위 하나님은 자신의 것을 나누어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가 연약한 줄을 아시고 11-12절에서 자신은 이제 이 땅을 떠날 것이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이 땅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들이 분열되지 않고 삼위 하나님께서 하나이시듯이 하나가 되게 하시고, 이들을 지키고 보호해주실 것을 기도하십니다. 이들이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명령과 일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 교리가 우리에게 주는 유익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그분 자체로 완벽하시고 충만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삼위 안에서 누리고 일하고 계신 것들을 교회인 우리에게도 주기로 하셨습니다. 이것이 너무나 좋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하나님 그분의 관계성을 가르쳐주는 것으로만 봐도 우리에게 큰 유익을 줍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삼위 하나님의 관계 안에 우리를 부르셔서 좋은 것들을 함께 누리게 만드십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복된 자리인지요. 오늘 우리가 함께 고백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도 이 말씀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지신 모든 것들은 다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중보자이신 그분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이 모든 것들을 우리에게도 나누어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삼위일체 하나님을 우리가 안다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큰 보화입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것을 나누어주신다는 이것을 깨닫는다는 것은 세상에서 그 무엇도 줄 수 없는 기쁨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맡겨진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명령과 일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 그리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주님께서 주신 권세로 교회를 잘 치리함으로 최종적으로 성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우리에게 맡겨진 일입니다. 심지어 우리는 고난마저도 기꺼이 받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시는 방법으로 예수님은 십자가라는 고난의 길을 걸어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고난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유해무 교수님께서 지난 번에 오셔서 산상수훈을 설교하셨던 것처럼 교회는 박해와 고난을 받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명령과 일을 수행할 때 영광스럽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명령과 일을 수행하심으로 아버지께서 아들을 영화롭게 하셨듯이 우리가 예수님꼐로부터 받은 명령과 일을 수행할 때 우리는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영광스럽게 되는 길은 세상의 방식처럼 화려하게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고난을 받고,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명령과 일을 수행하는 것이 교회가 영광스럽게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교회 안에서만이 아닙니다. 세상으로 나아가서 삶의 각 터전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 맡겨진 일이며 영광스럽게 되는 일입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시면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일과 명령을 수행하고, 그분께서 주시는 이 모든 것들을 누림으로 고백하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이 시간 함께 공통의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어떻게 가르쳐주고 있습니까? 바로 그분 안에서만 누리시고 공유하시던 것들을 우리에게도 나누어주시는 겁니다. 그것은 바로 명령과 일, 영광과 영생, 권세, 지식, 그리고 말씀과 기도입니다. 복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꺼이 자신의 것을 주십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삼위 하나님께서 주신 이 모든 것들에 감사하며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이 모든 것들을 잘 지키고 보존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그리고 우리 모든 성도가 이것에 힘쓰며 특히 삶의 터전 가운데서도 말씀대로 살아가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우리의 삶으로 나타내는 우리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이 시간 이 기도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에게 이 말씀을 주시고 이 말씀을 깨닫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삼위일체로 계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그자체로 충만하시고 복되십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으시고 삼위 하나님께서 공유하시던 것들을 교회인 저희에게도 나누어주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