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새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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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보라 새 일을

본문: 이사야 43장 16-21절

찬송: 370장

<말씀의 문을 열며>

19세기 초 영국에서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산업혁명으로 기계가 도입되자 방직공들이 기계에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길가 두려워 공장의 기계를 부수고 다닌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새로운 것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두려움을 보여줍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잘 살아왔는데, 왜 바꿔야 하는가?"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자동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비슷했습니다. 1903년, 미국 버몬트주에서는 자동차가 나타나면 말이 놀랄까봐 운전자가 반드시 내려서 말이 지나갈 때까지 차를 붙잡고 있어야 한다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도시는 자동차 운전자가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도착을 미리 알려야 한다는 규정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익숙한 것을 고수하려 합니다. 변화는 두렵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생각합니다. 새로운 시도를 앞두고 망설였던 적이 다들 한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이전에 해 보지 않았는데..." "항상 이렇게 해 왔는데..." 이런 말들이 우리 입에서도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선언을 하십니다. 18절에서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절에서는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이 주어진 배경은 바벨론 포로 상황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국을 잃고 낯선 땅에서 절망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이라곤 과거의 영광스러운 기억뿐이었습니다. 출애굽 사건, 다윗 왕국의 번영, 솔로몬의 성전... 이런 과거의 영광을 붙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들에게 이제 과거를 붙들지 말고 앞으로 행하실 새 일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행하실 새 일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떤 자세로 그것을 맞이해야 할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언제나 새롭게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본문 16-1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사야 43:16–17 NKRV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무엇을 가리키고 있을까요? 바로 출애굽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신 사건이입니다. 홍해를 갈라 바다 가운데 길을 내어 이스라엘 백성을 건너게 하셨습니다. 뒤쫓아오던 애굽 군대는 물에 빠져 소멸했습니다.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근본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년 유월절을 지키며 이 사건을 기념했고, 시편과 찬양을 통해 이 구원의 역사를 노래했습니다. "우리를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출애굽 이후 수백 년이 지나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라는 새로운 위기에 처합니다. 성전은 파괴되고,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고, 많은 이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들은 이방 땅에서 노래할 수 없었습니다. 시편 137편의 표현대로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라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출애굽 사건을 상기시키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과거에 홍해를 가르셨던 그 하나님이 지금도 동일하게 일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과거를 기억하는 목적은 하나님의 본성과 능력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에게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십니다. 우리도 과거에 하나님께서 각자의 삶 가운데 행하신 은혜로운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병을 고쳐주신 일, 위기에서 건져주신 일, 필요를 채워주신 일... 이런 기억들은 우리에게 소중합니다.
그러나 이런 과거의 기억이 미래에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항상 그때처럼 일하셔야 해"라는 생각이 들면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적인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방식으로만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기억하되,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셔야 한다는 틀은 깨뜨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새롭게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과거에 행하신 일보다 더 놀라운 일을 행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새 일을 기대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의 시선을 새 일로 돌리십니다.

함께 18-19a절을 읽겟습니다.
이사야 43:18–19 NKRV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방금까지 16-17절에서 출애굽 사건을 상기시키신 하나님께서 곧바로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모순된 말씀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문을 보고 천천히 읽을 것)이는 과거의 사건 자체가 아니라 과거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출애굽 사건을 잊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은 그들의 신앙의 기초가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건에만 시선을 고정하여 앞으로 하나님이 행하실 새로운 일을 보지 못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운전할 때 백미러만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것과 같습니다. 백미러는 필요합니다. 뒤에서 오는 차량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백미러만 보면서 운전할 수는 없습니다. 앞 유리창을 통해 앞길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시선을 과거에서 미래로, 이전 일에서 새 일로 돌리고자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새 일'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하다샤'입니다. 이는 단순히 시간적으로 새로운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질적으로 전에 없던 창조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사용된 단어와 어원이 같습니다. 하나님은 과거에 행하신 일의 단순한 반복이 아닌, 전혀 새로운 차원의 일을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과거를 잘 잊은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과거 이력 중 베냐민 지파, 히브리인, 바리새인, 율법으로 흠이 없는 자, 로마 시민권자, 가말리엘의 문하 등 자랑할 만한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노라"(빌 3:13)고 고백했습니다. 그에게는 과거의 성취보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더 귀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배경과 성취를 '배설물'로 여기며 오직 그리스도만을 얻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때로 과거의 성공이나 실패에 사로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과거의 영광스러운 경험은 우리를 교만하게 만들 수 있고, 과거의 실패와 상처는 우리를 두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과거를 완전히 잊으라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매이지 말고 하나님이 행하실 새 일을 기대하며 앞으로 나아가라는 초청입니다.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든지, 하나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 새 일을 행하기 원하십니다. 이제 우리의 시선을 과거에서 미래로, 로 돌리시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행하실 새 일을 기대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새 일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제 함께 20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이사야 43:20 NKRV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하나님이 행하실 새 일은, 바로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약 900km의 거리로,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사막과 광야를 지나야 했습니다. 노약자와 어린이들을 포함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여정은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는 무슨 뜻일까요? 문자 그대로 사막에 아스팔트 도로를 만들고 강을 흐르게 하겠다는 것일까요? 물론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그들의 귀환 여정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모든 필요를 채우시고 장애물을 제거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광야에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길을 내실 것입니다. 사막에 물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강을 내실 것입니다. 이것은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사막에서 강이 흐른다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입니까? 사막은 물이 거의 없는 건조한 지역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곳에 강을 내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새 일이 우리의 상식과 경험을 초월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요한복음 12장에서 마리아의 이야기를 보면, 그녀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그때 가룟 유다가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삼백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의 일 년 치 임금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이었습니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유다의 말이 합리적으로 들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의 행동은 세상의 경제 논리와 계산법을 완전히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계산으로는 '낭비'였지만,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는 가장 귀한 헌신이었습니다. 향유를 붓는 마리아의 행동은 사막에 강을 내시는 하나님의 새 일과 같이, 인간의 상식과 계산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새 일의 목적은, 21절에 답이 있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새 일을 행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그들이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포로 생활에서 벗어나 다시 한번 시온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도 새 일을 행하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새 일은 우리의 상상과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예상하는 시간에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에서 놀라운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때로는 아무런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하나님은 새 일을 시작하십니다. 삶의 광야에서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영적 사막에서 생명의 물이 말랐다고 느낄 때, 하나님은 그곳에서 길을 내고 강을 만드실 수 있습니다. 마리아처럼 세상의 계산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그 새 일을 발견하고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새 일을 신뢰하는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라"고 하시며 새 일에 집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새 일은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중 가장 위대한 새 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입니까? 죽은 자를 살리는 일입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새 일의 가장 대표적인 사건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하물며 우리 일상에서 직면하는 문제들은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께 못하실 일이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고백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예전에만 그런 일을 하셨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과거에만 사로잡혀 미래를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사순절을 지나며 부활을 앞둔 이 시기에, 우리는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합니다. 그 부활의 능력이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새 일을 행하실 것을 믿습니다. 광야 같은 상황에 길을 내시고, 사막 같은 곳에 생명의 강을 만드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실 새 일을 기대하고 신뢰하며 나아가는 도초중앙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고 새 일을 행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종종 과거의 영광이나 상처에 사로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언제나 새로운 일을 행하시는 분이심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셨습니다.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주님, 우리의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새 길을 열어주시는 주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우리의 계산과 상식을 뛰어넘는 주님의 방식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소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보여주신 가장 위대한 새 일을 기억하며, 우리의 삶 속에서도 주님의 새 일을 기대하고 소망하게 하소서. 사순절의 이 시간, 십자가의 은혜와 부활의 소망을 마음 깊이 간직하며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소서.
이 모든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헌금기도>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을 보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흐르게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새 일을 행하여 주옵소서.
십일조를 정성껏 드린 [십일조 헌금자 이름] 에게 하늘 창고를 여시고 복을 부어주시되 쌓을 곳이 없도록 채워주시옵소서. 이들이 드린 헌금이 주님의 새 일을 이루는 귀한 도구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더욱 깊이 경험하게 하옵소서.
감사헌금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린 [감사헌금자 이름] 의 마음을 귀하게 받아주시고, 이들의 감사가 끊이지 않는 기쁨의 샘이 되게 하옵소서. 광야 같은 상황 속에서도 감사의 강을 내어 생명의 역사를 이루게 하옵소서.
선교헌금으로 하나님 나라 확장에 동참한 [선교헌금자 이름] 를 통해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새 일을 이루어 주옵소서. 이 헌금을 통해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이 구원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주정헌금과 구역헌금, 성미, 그리고 여러 모양으로 봉사하는 모든 성도들의 헌신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이들의 정성이 교회와 지역사회 가운데 하나님의 새 일을 이루는 씨앗이 되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주님, 지금 질병으로 고통 받는 []와 모든 환우들을 치유의 은혜로 덮어주시고, 그들의 아픔 가운데서도 주님의 새롭게 하시는 손길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육신의 질병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와 영적인 어려움도 치유하여 주시고, 회복의 기쁨을 선물로 주옵소서.
이 사순절 기간, 우리 모두가 주님의 십자가를 더욱 깊이 묵상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고난의 길을 기억하며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그 사랑 앞에 우리도 삶을 드리는 결단이 있게 하옵소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새 일을 이루시는 소망이 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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