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와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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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때와 믿음
제목: 때와 믿음
본문: 요한복음 7장 1-7절
본문: 요한복음 7장 1-7절
찬송: 393장 오신실하신 주
찬송: 393장 오신실하신 주
<말씀의 문을 열며>
<말씀의 문을 열며>
우리 인생에서 '때'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언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적절한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결정을 달리 했더라면, 그때 기회를 잡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때'를 놓치면 후회하게 됩니다. 때로는 너무 서둘러서, 때로는 너무 망설여서 적절한 '때'를 놓치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때'는 단순한 기회나 적절한 순간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헬라어로 '카이로스'라고 불리는 이 '때'는 하나님이 정하신 특별한 시간,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순간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시계가 가리키는 흘러가는 시간인 '크로노스'와는 다릅니다. 카이로스는 하나님의 시간표,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때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과 그의 형제들 사이에 이 '때'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 차이를 보여줍니다. 요한복음 7장 1-7 절까지의 배경은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워진 상황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자신을 죽이려 하기 때문에 갈릴리에 머물며 유대 지역에 가기를 꺼리고 계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형제들이 나서서 예수님에게 유대로 가서 능력을 공개적으로 보여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행하는 일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그들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말씀으로 그들의 제안을 거절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때와 인간의 때>
<하나님의 때와 인간의 때>
본문 6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이 말씀은 두 종류의 '때'를 대조합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때'이고, 다른 하나는 형제들의 '때'입니다.
예수님의 '때'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따른 카이로스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좋은 기회나 적절한 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시간입니다. 반면, 형제들의 '때'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의 흐름과 가치관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인기, 명성, 성공과 같은 세상적 가치였고, 이런 것들을 추구하는 데는 특별한 '때'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항상 그런 것들을 환영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때'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희랍인 조르바'에는 인상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주인공 조르바가 부토니에 댄스를 추는 장면입니다. 조르바는 모든 것을 잊고 순간에 완전히 몰입하여 춤을 춥니다. 그는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에 신경 쓰지 않고, 주변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습니다. 오직 현재의 순간, 자신의 감정과 충동에 따라 움직입니다.
이것은 세상적 의미의 '때'입니다. 자신의 욕망과 감정에 따라 결정되는 시간입니다. 조르바의 춤은 자유를 상징하지만, 그것은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자유입니다. 반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때'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에 따른 것으로, 더 깊고 의미 있는 자유를 가리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종종 조르바처럼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보다 우리 자신의 일정을 우선시합니다. 신앙생활에서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의 응답이 즉시 오기를 바라고, 성장과 성숙이 빠르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카이로스는 우리의 기대와 다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고 넓은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불신앙의 실체와 표현>
<불신앙의 실체와 표현>
5절에서 요한은 예수님의 형제들에 대해 중요한 설명을 덧붙입니다.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이 구절은 형제들이 예수님에게 한 요구의 근본 원인을 드러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형제들이 예수님의 능력은 분명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행하는 일들, 즉 기적들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능력을 인정하는 것과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적인 능력은 인정했지만, 그의 정체성과 사명, 즉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메시아라는 사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요구,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라는 말에는 세상적 가치관이 담겨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명성을 얻고, 인기를 끌고, 대중의 지지를 받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인간의 영광을 추구하는 태도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자주 나타납니다. 우리도 종종 하나님을 우리 자신의 성공과 번영의 도구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우리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우리의 계획이 성취되기를 바라며, 하나님의 때보다는 우리가 정한 시간표대로 일이 진행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그의 주권과 지혜에 완전히 순종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형제들과 같은 불신앙의 모습입니다.
<세상과의 관계: 충돌하는 가치관>
<세상과의 관계: 충돌하는 가치관>
7절에서 예수님은 형제들과 자신의 근본적인 차이를 더욱 명확히 하십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이 말씀은 세상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두 가지 다른 태도를 보여줍니다.
형제들은 세상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세상은 그들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의 가치관과 기준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반면, 예수님은 세상과 충돌합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미워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세상의 일들이 악하다고 증언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가치관, 즉 명예와 권력, 부와 쾌락을 추구하는 태도가 악하다고 지적하십니다.
이러한 세상과의 관계에 대한 두 가지 다른 태도는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중요한 도전이 됩니다. 우리는 세상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할지, 아니면 세상과 충돌하더라도 하나님의 가치관을 따라야 할지 선택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기독교 작가 랜디 알콘이 소개한 윌리엄 보든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통찰을 줍니다. 윌리엄 보든은 미국 낙농업 재벌의 상속자로, 스물한 살에 많은 재산을 유산으로 받았습니다. 그는 부와 안전, 편안한 삶이 보장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재산을 선교 단체에 기부하고 중국에 있는 무슬림들을 위한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중국으로 가는 길에 그는 아랍어를 배우기 위해 이집트에 잠시 머물렀는데, 안타깝게도 그곳에서 척추수막염에 걸려 스물다섯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상적 관점에서 보면, 그의 선택은 어리석은 것이었고, 그의 죽음은 비극적인 낭비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묘비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 말고는 이 인생을 설명할 수 없다." 이 문장은 세상의 가치관과 하나님의 가치관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보여줍니다. 보든의 삶은 세상적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깊은 의미를 갖습니다.
참된 믿음은 세상의 가치관과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은 즉각적인 성과와 눈에 보이는 성공을 추구하지만, 하나님은 종종 우리가 보지 못하는 더 깊고 영원한 가치를 위해 일하십니다. 세상은 안전과 편안함을 중시하지만,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불편하고 위험한 상황으로 인도하시기도 합니다. 세상은 지금 당장의 이익을 중요시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한 관점에서 우리의 삶을 바라보십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말씀의 문을 닫으며>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때(카이로스)와 인간의 때의 차이, 참된 믿음과 불신앙의 대조, 세상의 가치관과 하나님의 가치관의 충돌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하나의 중요한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우리는 어떤 '때'를 따라 살아가고 있는가? 세상의 시간표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시간표인가?
우리는 종종 예수님의 형제들처럼 하나님의 때를 무시하고 우리 자신의 계획과 일정을 밀어붙이려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은 인정하면서도, 그분의 주권과 지혜에 완전히 순종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인정과 성공을 추구하면서도, 하나님의 더 크고 깊은 계획을 놓치곤 합니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계획과 기대가 무너질 때도, 하나님이 더 나은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가치관과 충돌하더라도, 하나님의 가치관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윌리엄 보든처럼,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하더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 말고는 이 인생을 설명할 수 없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삶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조르바의 춤이 아니라, 예수님의 순종입니다. 우리 자신의 감정과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박수갈채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즉각적인 만족과 빠른 성과를 추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다른 원리로 움직입니다. 씨를 뿌리고 열매를 기다리는 농부의 인내가 필요합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는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가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고, 우리가 추구하는 '때'가 무엇인지 성찰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며 인내하는 믿음의 삶으로 나아가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의 때와 참된 믿음에 대해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시간표보다 우리 자신의 일정을 우선시하며, 하나님의 뜻보다 우리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죄를 범합니다.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지 못하고 자신의 시간표대로 살아온 우리의 모습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에게 참된 믿음을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며 인내하는 믿음, 세상의 가치관과 충돌하더라도 하나님의 가치관을 따르는 믿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윌리엄 보든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 말고는 이 인생을 설명할 수 없다"고 고백할 수 있는 깊은 신앙을 갖게 하시옵소서.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들이 세상과 구별된 가치관으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지혜와 인내를 갖게 하시옵소서. 세상의 유혹과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때와 방법이 얼마나 아름답고 완벽한지를 세상에 보여주는 증인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