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0: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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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300장 내 맘이 낙심되며 김윤정 집사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파송하신 후, 제자들이 당할 환난과 고난,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앞서 1-15절까지는 제자들이 파송받아 복음을 전할 때에 개인적인 관계 측면에서 환대를 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설명하신다면,
오늘 본문에서는 개인적인 측면을 넘어 복음과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세상이라는 대결 구도로 확장되어 제자들이 세상으로부터 받는 환난과 고난에 대해 다루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6절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을 보낸 것이 이리 가운데 양을 보낸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리와 양은 구약시대부터 사용해오던 상징 이미지이며, 대체로 이리는 포악하며 강한 이방 민족이나 이스라엘 백성을 위협하는 세력이자 존재로, 양은 힘이 없는 약자로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해 왔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제자들을 양과 같다고 말씀하시며 보내신다고 하시는 것은,
양이 항상 긴장속에서 이리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위협받게 되는 것처럼, 제자들이 세상으로 보냄을 받게 되면, 분명히 그러한 위협과 고난, 환란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장차 제자들이 당하게 될 상황이 어떠한지를 예수님께서는 미리 알고 계심에도 세상가운데로 보내신다는 이 말씀은,
그러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시겠다라고 하시는 것도 아니고, 마치 예수님께서 일부러 자신의 제자들을 위험과 환란 속에 빠뜨리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은, 고난 받기를 좋아하고 자처하는 사람이 없듯이, 과연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야 하는가 하는 의문점과 두려움, 걱정과 더불어 주저하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러한 상황이 단순히 제자들이 장차 당하게 될 예측불허한 비극이 아니라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며,
예수님께서 그들을 위한 계획에서 이미 알고 계셨기에, 그런 일을 당하게 되었을 때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그리고 당황하지 않도록 미리 안심시키고 격려하시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자들은 그러한 상황을 마주할 때, 예수님께서 다 알고 계시고 위로하며 격려해주시니 긴장감을 푼 채, 안주하며 아무 생각없이 있으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제자는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기에, 오늘 본문을 통하여 자신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고난과 박해를 받는 것이 바로 자신의 제자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밝히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난 중에서도 결국 끝까지 견디고 이겨내는 자에게는 구원을 이루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로 하여금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그러한 고난과 박해를 받을 때,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당하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점도 동시에 강조하고 계시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뱀처럼 지혜로워져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이 때 지혜롭다 라는 단어는 경계하다, 교활하다, 슬기롭다 등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이는 마치 뱀이 먹잇감을 공격할 때 정확한 순간을 아는 것처럼, 옳은 일을 정확한 시점과 장소에서 행하도록 신중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고난과 어려움의 상황을 직면하였을 때, 신앙적 안일함과 나태함에서 벗어나 경각심을 갖고 항상 주의를 살펴 당하지만 말고, 이 일을 분별하여 지혜롭게 잘 대처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혜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순결하라고까지 말씀하시는데, 이 때 순결하다는 단어는 ‘섞이지 않은’, ‘순수한’의 의미를 갖습니다.
이는 자신의 유익과 이익을 위해 벌이는 위선이나 거짓과는 반대로, 누가 봐도 나무랄데 없는 정직성을 겸비하라는 의미가 됩니다.
이러한 정직함을 겸비하게 된다면, 세상으로부터 지탄받을 만한 빌미를 제공하는 것을 사전에 제거하게 되는 것도 있으며,
만일 아무리 억울하고 손해보는 고난과 역경을 당한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그 정직함이 드러나 세상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존재를 인정하게 됩니다.
아무리 예수님의 제자라는 정체성과 이름으로 뱀처럼 지혜를 발휘하여 분별력을 갖췄다고 한들, 그 상황을 모면하고 위기에서 벗어나는 방식이 만일 세상이 하던 방식대로 똑같이 맞대응 한 것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더한다 라고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게 되기에, 예수님의 제자라는 이름과 정체성을 모욕하게 되며,
덕을 세우기는 커녕 오히려 예수님의 제자라는 정체성으로 살아가기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 없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도 무시하고 거부한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에, 이러한 구별되고 순결한 정직함은 예수님의 제자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 됩니다.
17절 이하를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지혜와 순결함을 갖춘다 하더라도, 자신의 이름올 말미암아 세상으로부터 받는 고난과 역경은 불가피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두려움과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그 이유는 그러한 상황에서 성령님을 통하여 함께 하시는 아버지께서, 모든 상황을 알고 계시며, 그 때 아버지께서 성령님을 통해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미움과 고난을 받게 된다 하더라도,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그러한 핍박과 고난과 역경을 믿음으로 이기고 견디는 자에게는 반드시 구원을 이루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반드시 세상으로 보냄받은 자로써, 세상에서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힘써야 한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밝히셨듯이, 기본적으로 예수님의 제자는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하며 미움을 받는 존재이기에,
세상 속에서 살아갈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하여 고난과 박해를 받는 것이 바로 자신의 제자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라고 자부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속에서는 그러한 정체성을 잃어버린채,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고난과 환란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오히려 세상의 가치와 사상의 흐름에 편승하여 물들여진 채 교회에 들어와서는, 아버지의 나라와 아버지의 일보다는 자신의 삶의 이야기, 세상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교회 안에서 자신과 이해관계가 맞는 사람끼리 잘 지내면, 신앙생활을 만족할만큼 잘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으며,
예수님을 믿는 것을 개인적인 삶의 평안을 추구하는 목적으로 삼아, 개인의 삶의 문제가 잘 해결된 것으로부터 오는 안락함과 평안함이 아버지의 은혜라 함부로 치부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삶에서 얻은 평안함과 기쁨들이, 제자로써 받은 보상이라 여기면, 우리가 닮겠다고, 따르겠다고 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 가운데 오시어 보이신 거룩한 희생과 받으신 고난과 핍박을 모욕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수준의 삶을 살게 하시려고 제자로 부르신 것이 아니며, 이러한 삶은 예수님께서 이전에 말씀하신 크고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의 모습과 다름 없습니다.
진정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고자 하는 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지혜와 순결함으로 무장되어 있기에,
어떤 고난과 어려움, 핍박이 온다 하더라도, 그 상황속에서 이미 함께하시는 아버지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일하실 것을 확신하고 기대하기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받는 이 고난이,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므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큰 위안과 위로가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세상에서 손해보고, 억울하게 당하며, 소외되고, 차별받는 등의 고난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하더라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원리를 가지고 믿음으로 굳건히 이겨내며 살아간다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통하여 복음의 능력이 반드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세상이 자연스럽게 우리를 인정하게 될 것이며, 결국엔 아버지께 영광돌리는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세상이 두려워 회피하고 교회 안에서만 숨어있으려 하는,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복음의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우리의 영적인 아둔함과 무지함이 자꾸만 좁은 문이 아닌 넓은 문, 파멸의 길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우리들이 교회 안에서 스스로 예수님의 제자라고 자부한들, 제자 삼으시는 권한은 오직 주님께 있는 것이기에,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 살았는지, 정말 구원을 얻은 삶을 살았는지는 주님 앞에서 섰을 때, 주님이 그렇다고 말씀해주셔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오늘 본문의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제자는 세상으로 보냄 받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알려주십니다.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 고백한 사도바울 처럼,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받은 고난은 제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확실한 증표이자, 영적으로 매우 유익을 주는 은혜의 수단이 되기에,
어떤 상황일지라도 예수님의 제자라는 정체성을 결코 잃지 않고,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믿음으로 이겨내시어 결국 구원을 얻는 저와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받는 고난을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고난을 통해 일하실 성령님을 기대하며, 지혜와 순결함으로, 믿음으로 그 고난을 이겨내어 구원은 얻은 삶이자 참된 예수님의 제자로의 삶을 잘 감당토록,
담임목사님과 사모님의 영육간의 강건함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동역하는 부교역자들을 위해서도 동일한 은혜를 달라고 기도해주시고
오늘 새음아카데미 봄 나들이가 있는데, 오고가는 일정과 날씨 등 허락하신 은혜 가운데
새음교회에 맡겨진 모든 사역을 주신 은혜에 따라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
육체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우분들을 위해서 함께 기도해주시고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각자 가지고 오신 기도제목 가지고 기도하시다 자유로이 돌아가시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