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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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 views다윗 언약은 영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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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언약
다윗언약
오늘 우리가 살펴볼 시편 89편은 다윗 왕조의
흥망성쇠, 흥하고 망하고 다시 회복하여 온전해지는
역사를 담고 있는 시편의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 왕조를 선택하셨고
다윗 가문에 크나큰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우리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선택과
언약이라는 개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창세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가인과 아벨이라는
자녀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가인이 아벨를 시기하여
돌로쳐 아벨을 죽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류 첫 살인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예배를 기뻐 받으셨습니다. 이는 아벨의 혈통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사람이 태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벨이 자신의 친 형에게
살해를 당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 첫 살인사건이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과 민족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데
혈안이 된 영적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다양한 위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아벨을 쳐 죽이려고 할 때 가인의 마음에 움크리고 있는 악한 존재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가인에게 그 악한 존재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악한 존재는 저와 여러분들의 생각, 악한 문화, 좋지 않은 습관과 중독 증상을
통해 우리의 삶을 도적질 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들을 이 세상에서 없애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들을 가리켜 성경은 ‘선택 받은 사람들’이라 표현합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들을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가 세상에 오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택받은 자들을 다양한 모습으로
핍박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가인을 통해 아벨을 죽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셋’이란 자녀를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습니다.
셋의 후손 중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있습니다.
이들 모두는 하나님께 선택 받은 백성들이었습니다.
야곱의 아들 중에 ‘유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유다의 혈통을 통해 ‘다윗’이 태어납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스라엘을 통일한 통일 왕국의 왕이됩니다.
하나님은 그 다윗을 주목하여 보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이를 성경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행 13: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가리켜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선택했다는 다른 표현인 것입니다.
다윗은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겼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죄도 지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사랑하셨고
그 다윗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고 지키시겠다는 약속을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다윗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왜 다윗과 그러한 언약을 하셨을까요?
그렇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선택받은 사람들을 통하여
이 땅에 예수님께서 오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실 유일무이한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다윗과 그의 나라가
영원할 것을 말씀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다윗 언약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나이다
이것이 사무엘하 7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다윗 언약의 내용입니다.
‘언약’은 일종의 ‘계약’ 또는 ‘약속’과 같습니다.
계약과 약속은 상호적인 관계를 통해 체결되거나
이루어집니다. 이를 ‘행위 언약’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최조의 ‘언약’은 ‘행위 언약’이었습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창세기 3장3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언약은 하나님과 아담과 하와가 맺은
행위 언약이었습니다. 이 언약은 상호 신뢰와 약속을 기반으로 체결된
언약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이 언약을 어기지 않는 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영원한 생명과 에덴의 기쁨을 주셔야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에덴 동산에서 자신들의 뜻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나
한 가지만은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선악과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아담과 하와가
맺은 ‘언약’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일종의 계약이요, 엄중한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계약과 약속에는 상호 신뢰 뿐 아니라 ‘행동’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신학자들은 ‘행위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행위 언약은 누군가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을 했을 때 깨어지는
언약이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행위 언약을 깨는 주체는 하나님이
아니라 무조건 인간이었음을 발견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포기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은혜 언약’을 체결하십니다.
이 언약은
상호 신뢰와 행위를 통해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자신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란
성품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인간과 계약 또는 일종의 약속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십계명이란 행위 언약 이야기 바로 뒤에
성막 스토리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십계명은 상호 신뢰와 행동이 중요한
부분을 찾이 합니다. 하지만 성막은 그리스도의 일방적
희생을 예표하는 ‘은혜’를 말씀해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등장하는
다윗 언약은 행위 언약일까요?
아니면 은혜 언약일까요?
그렇습니다. 은혜언약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은혜 언약을 체결한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것이 바로 본문 1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
다윗 왕가가 아무리 잘 났다고 하여도 우리는 그 왕가에서 제일 유명한
다윗의 삶에 벌어진 다양한 죄악들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우리만 알까요?
아닙니다. 하나님도 잘 아십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윗과 맺으신
다윗 언약을 끝까지 지키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왜그렇습니까?
우리를 구원할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들의
행실을 통해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니시라
오로지 하나님의 인자하심, 즉 하나님의 무궁무진한 자비로우심과
성실하심, 즉 변치않으시고 늘 한결같으신 그 분의 성품에 기반하셔서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시편 저자는 또한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내가 말하기를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 하였나이다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
이는 환유법을 사용해 ‘다윗 언약’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환유법이란 어떤 사물을 그것의 속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다른 낱말을 빌려서
표현하는 수사법입니다.
예를 들어 숙녀를 ‘하이힐’로, 우리 민족을 ‘힌옷’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다윗 언약의 성격과 기초가 ‘사람의 행위’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에
있음을 깨닫고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라는 말은 하지만 그 뜻은
‘다윗 언약을 영원히 세우시며’을 나타내고자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는 말씀은
‘다윗 언약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는 뜻을
나태내고자 ‘환유법’사용해 다윗 언약의 특성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에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행위 언약을 통해
하나님 앞에 미달된 채로 발견된 인류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란
성품 때문에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 언약’입니다.
오늘 다윗 언약이 바로 그 ‘은혜 언약’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얼마나 기이했으면
여기서 말하는 기이하다는 뜻은
기적과 같았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늘의 영적 존재들도 그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통해 끝까지
지켜지는 다윗언약이 ‘기이했다’
말씀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기이한 일을 하늘이 찬양할 것이요
주의 성실도 거룩한 자들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하리이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하늘과 거룩한 자들의 모임은
하늘에 있는 영적 존재들을 가리켜 말씀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끊임없는 범죄에도 불구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 끝까지
회개하는 자들에게 유효한 것은...
하늘 나라에서도 ‘기이한’ 즉 기적과
같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6~13절까지의 말씀은
그 기이한 일을 행하고 계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한 절만 인용해 드리겠습니다.
하늘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라 세계와 그 중에 충만한 것을 주께서 건설하셨나이다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모든 것들을 창조하신
분이 능력자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묘사하며
다윗언약이 영원토록 지켜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그 다윗언약을 맺으신 분이
위대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 언약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가문을 영원토록
지키시어 궁극적으로 그 가문을 통해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겠다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20절에서 29절까지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30절부터 분위기가 좋지 않게
됩니다.
30절 “내법을 버리며”
31절 “내 율례를 깨뜨리며,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은혜 언약 안에 있는 자들이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버리고 그 분의 율례를 깨뜨리고
그 분의 계명, 말씀을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무조건 참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니 그럼 다윗 언약도 행위 언약이지 은혜 언약이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 끝까지 따라와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의 행위 때문에
그 언약을 깨뜨시는지 말입니다.
내가 회초리로 그들의 죄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그들의 죄악을 벌하리로다
하나님은 우리가 은혜 언약안에 있다고 하여도
우리의 행실이 그릇될 때 반드시 인생의 회초리로 우리를 연단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반드시 은혜 언약을 성취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버리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나의 인자함을 그에게서 다 거두지는 아니하며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며
그렇습니다. 그분의 인자함과 성실함에 기초한 다윗 언약이었기 때문에
다윗 언약은 폐하여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 언약이 다윗 왕의 인자함과 성실함에
기초한 언약이었다면 분명 인자가 무궁하지도 않고, 한결 같지도 않은 다윗의
연약함 때문에 우리는 분명 버려지는 신세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부도수표를 들고 아무리 천국가는 티컷을 구입하려고해도
구입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슬피 이를 갈며 울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 언약을 통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요, 성실하심의
결정체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는
반드시 구원 받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다윗언약 안에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겠습니까?
초라한 인생의
한계를 인정하고
예수께 나아갈 때마다
그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의
은혜를 경험하고 다시 일어나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말씀 붙들고
계시다면 여러분들은 다윗언약 안에 계신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은 행위와 상관 없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 때문에
다윗언약의 성취자 되시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게 될
분들이십니다.
그렇다고 그 분들이
비도덕적으로 삶을
내어 놓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분들의 행위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맛볼 때마다 거룩함을 쫒게
되어 있습니다.
그 받은 은혜와 사랑을 생각할 때
부도덕함과 실패와 좌절의 자리에
그저 눌러 있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언약의 특징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에
기반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그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에
눈물로 반응하고
양심의 가책으로 반응하고
자발적 순종으로 반응하고
믿음어 순종으로 반응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저
내가 다윗언약 안에
거하는 존재가 아니고
세상에 버려진 존재처럼 느껴질 때
나는 하나님께 선택받지 못한 존재인 것 같은
느낌과 생각이 들 때
오늘도 또 실패와 좌절을 맛보았을 때
오늘도 습관적이고 반복적인 그 죄를 지었더라도
오늘 시편 기자의 마지막 구절을 붙들고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여 주의 성실하심으로 다윗에게 맹세하신 그 전의 인자하심이 어디 있나이까
“주여 주의 성실하심, 즉 변하지 않는 그 성품과 무궁무진한 자비한 성품이신 ‘인자하심’의
은혜가 어디있습니까?
이러한 기도를 통해
죄책감의 늪에서 나와
다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게 되고
다시 예배의 자리로 나서게 되고
다시 믿어 순종하고자 하신다면
여러분들은 반드시 다윗언약을 통해
이 땅에 보내고자 하신 예수님을 만난
분들이시고 그 예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본 받아 예수님의 삶을
재현하고 계승해 나가실 예수님의
제자이심을 믿어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그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의 은혜로 맺어진
다윗언약...
그리고 그 다윗언약을 통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하시고
치료하시고 회복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믿음의 주요 저와 여러분들을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