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와 누룩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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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해 92
마태복음 13장 31-35절
지난 시간 가라지의 비유로 불리는 말씀을 살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예수님이 뿌리신 좋은 씨와 마귀가 뿌린 악한 씨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와 교회는 악한 씨로 인해서 넘어지게 하는 것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인내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 과정은 힘들고 어렵겠지만, 주님이 정하신 마지막 때가 될 때까지 우리는 우리의 자리를 지키고, 건강한 신자로 자라나는 것이 요구됩니다. 우리를 좋은 씨로 만드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또한 건강한 신자로 자라날 수 있도록 도우시고 인도해 주실 것을 믿으십시오.
오늘 말씀은 두 가지의 비유가 언급됩니다. 먼저 예수님은 겨자씨 비유라고 불리는 말씀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천국은 어떤 사람이 겨자씨 한 알을 자기 밭에 가져다 심은 것과 같다며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예수님은 겨자씨가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일단 사실관계를 따지자면, 예수님의 말씀은 틀린 말입니다. 겨자씨는 모든 씨앗 중에서 가장 작은 씨앗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당시 흔히 접할 수 있는 씨앗 중에 겨자씨가 가장 작은 씨앗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상식 수준에서 하신 말씀이니 과학적 사실을 말하면서 따지지 말라는 겁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랍비들의 과장법을 사용하셔서 아주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처럼 자라는 것을 강조해서 말씀하시려는 의도를 생각해서 받아들이면 되는 겁니다.
겨자씨는 1-2mm 정도의 크기인데, 이것이 자라기 시작하면 매우 큰 나무처럼 보일 정도로 자라게 됩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된다고 표현하시는데, 이것도 랍비식 과장법입니다.
겨자는 나무가 아니라 덤불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겨자나무들이 한자리에서 엉켜서 자랄 때 나무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나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깃들이느니라”라는 표현은 “거주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겨자가 자라나서 나무처럼 되면 공중의 새들이 와서 둥지를 만들고 거주할 정도가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것은 분명합니다. 겨자씨처럼 매우 작은 씨앗이 자라서 새들이 와서 거주할 정도가 된다는 것은 천국이 이처럼 크게 자랄 것임을 말씀하신 겁니다.
그런데 그 시작은 너무도 초라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초라하게 시작하지만, 그 나중은 기대하는 것보다 더 크게 자라나게 될 겁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통해서 새롭게 시작될 하나님의 나라는 매우 화려하고 대단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셔서 시작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매우 보잘것없는 하찮은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죄인과 여자들을 부르시고, 부정하게 여겨지는 자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죄인들이 함께 있는 장소여서 사람들의 생각에 그런 곳은 하나님의 나라와 전혀 상관이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함께 하시기에 아무리 부정한 죄인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예수님 때문에 그곳은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겨자씨는 당시 잡초처럼 여기는 식물입니다. 그것을 자기 밭에 가져다 심는 일은 없습니다. 설령 겨자를 수확하기 위해서 심는다고 한다면, 겨자씨 한 알을 심을 것이 아니라 씨앗을 셀 수 없이 많이 뿌려야 할 겁니다.
그런데 씨앗을 뿌리는 사람은 자기 밭에 한 알만 가져와서 심었습니다. 이것은 보통의 상식과는 완전히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기 밭에 씨앗을 심는다는 것은 그 한 알을 통해서 매우 큰 일을 이룰 것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겨자씨 비유와 함께 예수님은 또 다른 비유를 말씀하시는데, 천국은 어떤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가져다 넣어서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이 비유는 보통 누룩 비유라고 부릅니다.
33절에 기록된 비유는 겨자씨 비유와 동일합니다. 여기에서는 겨자씨 대신 누룩을 언급하셨습니다. 당시 유대인 가정에서는 부녀자가 누룩으로 반죽이 된 옛 반죽을 새 반죽에 섞어서 누룩이 새 반죽 전체에 퍼지도록 만들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누룩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누룩으로 발효가 된 옛 반죽 덩어리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라 누룩을 가루 서 말에 넣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가루 서 말은 약 40리터 정도이고 무게로는 23킬로그램 정도가 됩니다. 이것으로 빵을 만들면 약 100-150명이 먹을 양이 나옵니다.
즉,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서 부풀어진 반죽은 한 마을 전체에서 잔치를 할 정도가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풀게 하는데, 적은 양의 누룩으로 하기에는 너무 많은 양의 가루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갖다 넣어”에서 “넣다”에 해당하는 단어는 숨긴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발효를 시킬 때, 속에다 넣기만 해서는 발효가 잘 일어나지 못합니다. 누룩과 가루가 잘 섞이도록 뒤섞어줘야 하고, 골고루 섞이도록 뒤집어줘야 합니다.
속에다가 숨기듯 넣어두기만 해서는 가루가 제대로 부풀지 못하게 됩니다. 일반적이지도 않고, 가능성도 없을 것만 같은 이야기이지만, 예수님의 의도는 숨겨둔 누룩이 아주 많은 가루를 부풀게 만드는 것처럼 천국이 터무니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작은 일로부터 아주 대단한 역사가 나타나며 천국이 드러나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개의 비유를 가르치셨는데, 마태는 예수님께서 무리에게 비유로만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 비유가 아닌 다른 형식으로 가르치시는 것을 거부하셨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심할 것은 이 말씀은 예수님의 전체 사역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시는 대상은 13장 시작하면서 언급되었던 큰 무리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전체 사역에서 비유로 말씀하신 일이 자주 있었지만, 모든 가르침을 비유로만 주셨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에 관해서 10-17절에서 이미 설명하셨고, 마태는 그러한 내용을 다시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들을 귀를 열지 않으려는 자들은 거절될 것이기에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감추신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가르치신 일을 마태는 예언의 성취라고 설명합니다. 마태가 인용한 말씀은 시편 78편 2절인데, 시편 78편은 이스라엘 역사를 말하면서 이스라엘의 실패와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비와 능력을 베풀어주셨음을 노래하는 시편입니다.
78편 2절에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며 예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을 드러내려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말하는데 그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비유로 말하는 내용이 될 수 없습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비유로 말해서 감춰진 비밀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비유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다 알고 있는 이스라엘의 역사이지만,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기 뜻을 어떻게 이뤄가시는지를 아는 것은 아무에게나 허락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누군가는 그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게 되고, 누군가는 같은 이야기를 듣고도 여전히 불순종과 불신앙으로 하나님을 무시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완악한 자들에게는 비유로 말씀하셔서 그들에게 감추시고, 예수님께 부드러운 마음으로 오는 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셔서 천국 복음의 비밀을 드러내신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가르치신 의도를 마태는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비유로 말씀하셔서 완악한 자들에게 그들의 완악함이 확실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과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는 감춰진 비밀을 드러내는 역할로 비유를 쓰고 계신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두 개의 천국 비유는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만 같은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자기 밭에 잡초와 같은 겨자씨를 심지 않습니다. 그것도 고작 한 알만 심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가루 서 말을 부풀게 해서 빵을 만들려면 숨기듯 속에 넣어 둬서는 안 됩니다. 이미 누룩으로 충분히 발효된 반죽이나 가루를 넣어서 충분히 잘 섞어야 발효되어서 빵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터무니없고 가능성도 낮은 일입니다. 하지만 천국은 바로 그러한 일로 세워져 가고 그러한 일이 벌어지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천국을 전파하고 다니실 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그것을 비웃었습니다. 예수님이 전하는 말씀은 외면했고, 예수님이 보이시는 능력은 거부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우습게 여겼고, 예수님이 만나는 사람들에 관해서 꼬투리를 잡고 비난하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대적하고 있었고, 심지어 제사장 무리도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예수님이 전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마치 이 세상에 오지 않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예수님의 대적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더는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고, 예수님의 대적들은 승리를 기뻐했을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역과 죽음과 부활은 마치 겨자씨 한 알이 큰 나무가 된 것처럼, 그리고 누룩이 가루 서 말을 전부 부풀게 한 것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심지어 폭발력 있게 나타났습니다.
예수님 안에 감춰졌던 천국의 능력이 예수님의 사역 속에서도 나타났지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확실히 나타났고, 그것을 가진 제자들은 이전에 하지 못했던 복음의 능력을 가지고 땅끝까지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에게 외면받았지만,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감춰진 하나님의 나라는 그 실체를 드러내고 강력하게 전파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처음 이 땅에 오신 일부터 생각해 보면, 하늘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태어나서 누울 자리가 없어서 나귀 구유에 누우셔야만 했습니다. 왕 중의 왕이신 분인데, 누울 자리 하나 제대로 얻지 못한 채 태어나셔야만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는 온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못한 채,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겨진 상태에서 못 박혀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죽는 순간에도 사람들의 멸시와 조롱은 계속되었습니다.
태어나서 죽는 모습까지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왕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예수님 안에 감춰진 천국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상관없이 온 세계로 퍼져 나갔고, 지금 우리에게 이르기까지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전파되었고 지금도 계속 전파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너무도 힘없이 돌아가셨지만,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초라하게 돌아가셨고, 그러한 모든 과정을 통해서 지금은 하나님의 나라가 힘 있게 확장되어 가고 있습니다.
또한, 자기 밭에 겨자씨를 한 알 심는 사람이 없고, 누룩을 가루 속에 숨기듯 넣어두고 부풀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상황을 천국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누가 이런 일을 하겠냐고 생각하겠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구원의 역사를 통해서 이 비유처럼 터무니없는 일을 하시는 삼위 하나님을 마주하게 됩니다.
자신에게 불순종으로 죄를 지은 죄인을 구원하겠다고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죽음의 자리로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이 계십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다고 죽음마저 선택하고 순종하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의인도 아니고 다이아몬드처럼 굳은 죄인의 마음에 이런 성부와 성자의 사랑을 심어 부드럽게 만드시는 성령 하나님도 계십니다.
구원을 얻는 유일한 길이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교회를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의 눈으로는 터무니없는 이런 일들을 통해서 삼위 하나님은 천국을 이뤄가십니다. 정말로 천국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있을 것 같지 않지만, 하나님의 놀라우신 뜻 안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되고, 누룩이 가루 전부를 부풀게 만드는 것처럼 터무니없는 일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계속해서 자라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겨자씨는 자라서 새가 둥지를 만들 만큼만 커지고, 누룩은 가루 서 말을 전부 부풀게 할 만큼만 일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그 끝을 알 수 없도록 성장해서 세상에 충만하게 될 겁니다.
알곡이 뿌려진 세상에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뿌리고 가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끊임없이 악이 자리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계속해서 자라갈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계속해서 자라나도록 예수님은 오늘도 필요한 곳에 한 알의 겨자씨를 심고, 누룩으로 가루를 부풀게 만드시고 계십니다.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될 때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누룩으로 가루 전체를 부풀게 만드는 것도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이 들어도 의도한 일이 이뤄지는 것처럼 결국 하나님의 나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확장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하시는 분이 삼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성도의 삶을 살 때, 하나님의 나라가 공격받고 쇠퇴하고 무너지는 것만 같은 상황을 마주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승리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더욱 자라난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될 것입니다.
마태가 시편 78편을 인용해서 설명한 것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시편 78편에는 이스라엘이 보인 불신앙의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를 언급합니다.
그런데 시편 78편이 정말로 말하고자 한 것은 이스라엘의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시며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마태가 시편 말씀과 연결해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비유의 말씀에서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그에 따른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이 가르쳐지고 있지만, 동시에 자기 사람들을 찾기 위한 하나님의 신실하심도 가르치고 계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불신앙은 이전부터 있었던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가 있어도 그 선지자들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했던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패역하고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을 향해서 진노하시는 하나님은 동시에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시고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을 보내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을 하시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 왔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 여러분! 예수님이 가르치신 천국에 관한 말씀은 예수님 당시에도 멸시받았지만,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멸시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천국은 세상이 계속해서 멸시하고 무시하고 거절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자라나게 될 겁니다.
그리고 택함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에 순종할 때 천국은 그들의 삶과 영혼을 통해서 계속해서 자라나게 될 겁니다.
겨자씨가 자라고 누룩이 가루를 부풀게 하는 일이 전혀 진행되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일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먼저 믿고 의지하기 전에 하나님은 구원의 길을 준비하셨고, 우리가 예수님을 알기 전에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알고 사랑하셨습니다. 신실하신 삼위 하나님께서 천국을 자라게 하시고, 천국의 백성인 우리를 믿음으로 자라게 하실 것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의심하거나 온전한 믿음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조급함 때문입니다. 우리는 씨앗을 심고 다음 날 열매를 찾으려고 합니다. 우리는 누룩을 넣고 곧장 빵이 부풀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정해진 때가 있고, 그 정한 때를 세우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은 자기 영광을 위해서 성실하고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보내셔서 천국의 비밀을 말씀하도록 하신 하나님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증거되는 천국이 계속해서 확장되고 성장해서 온 세상을 가득 채우도록 만드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뎌 보이더라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인내할 수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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