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413 종려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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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12 다음날에는 명절을 지키러 온 많은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신다는 말을 듣고,
13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들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서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에게 복이 있기를! 이스라엘의 왕에게 복이 있기를!” 하고 외쳤다.
14 예수께서 어린 나귀를 보시고, 그 위에 올라타셨다. 그것은 이렇게 기록한 성경 말씀과 같았다.
15 “시온의 딸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보아라, 네 임금이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16 제자들은 처음에는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으나,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신 뒤에야, 이것이 예수를 두고 기록한 것이며, 또 사람들도 그에게 그렇게 대하였다는 것을 회상하였다.
17 또 예수께서 무덤에서 나사로를 불러내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사람들이, 그 일어난 일을 증언하였다.
18 이렇게 무리가 예수를 맞으러 나온 것은, 예수가 이런 표징을 행하셨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19 그래서 바리새파 사람들이 서로 말하였다. “이제 다 틀렸소. 보시오. 온 세상이 그를 따라갔소.”
왕의 입성
왕의 입성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우리는 사순절의 마지막 주일을 종려주일로 지킵니다. 그 이유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속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들고 예수님을 맞았기 때문입니다.
왜 하필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을까요?
종려나무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의로움’을 상징하는 나무였습니다. 종려나무는 광야에서도 잘 자라난다고 합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자라나는 종려나무는 폭력과 부패가 만연한 세상에서도 올곧게 살아가는 이들을 상징했습니다. 시편 92편에서도 시인은 “의인은 종려나무처럼 우거지고,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높이 치솟을 것(12절)”이라고 노래하면서 이런 사람은 “늙어서도 여전히 열매를 맺으며, 진액이 넘치고, 항상 푸르를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의 올곧으심을 나타낼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어떤 기대를 했는지에 대해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입성하실 때 사람들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에게 복이 있기를! 이스라엘의 왕에게 복이 있기를!”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맞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왕이 되셔서 지긋지긋한 폭력과 부패의 세상을 끝장내고 의로운 새 시대를 열어갈 왕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아마 예수님을 이렇게 맞았던 사람들은 분명 그 시대의 부조리에 희생당하고 억눌린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이들은 다가오는 유월절을 준비하며 예루살렘으로 모였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부터 탈출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광복절’입니다. 로마의 지배 아래에서 억눌려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광복절 행사는 다시금 이스라엘의 해방을 꿈꾸게 하는 절기였을 겁니다. 이 때에 사람들은 ‘예수’라는 사람이 죽음 사람도 살린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새로운 왕이라는 표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긴 식민 생활 속에서 하루 하루를 겨우 살아가는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를 간절하게 소망했습니다. 그리고 새 시대를 열 메시아를 간절히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바로 그 메시아라 확신하고 오늘 말씀에서처럼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을 맞았던 것입니다.
어린 나귀를 탄 왕
어린 나귀를 탄 왕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왕이심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스가랴 9장의 말씀의 성취였습니다. 스가랴 9장 9절에는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스가랴 9:9 “9 도성 시온아, 크게 기뻐하여라. 도성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네 왕이 네게로 오신다. 그는 공의로우신 왕, 구원을 베푸시는 왕이시다. 그는 온순하셔서, 나귀 곧 나귀 새끼인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예수님께서도 스스로 자신이 구약 성경이 예언한 ‘왕’임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뒤이어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복음 12:16 “16 제자들은 처음에는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으나,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신 뒤에야, 이것이 예수를 두고 기록한 것이며, 또 사람들도 그에게 그렇게 대하였다는 것을 회상하였다.”
제자들을 비롯한 당시에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셨다는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요한복음은 제자들이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신 뒤에야”이 말씀을 이해했다고 말합니다.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이 ‘영광’은 바로 ‘십자가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에야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들어오신 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어린 나귀를 타고 올 것이라는 예언을 담은 스가랴 9장의 말씀에서 이어지는 구절은 이렇습니다.
스가랴 9:10 “10 “내가 에브라임에서 병거를 없애고, 예루살렘에서 군마를 없애며, 전쟁할 때에 쓰는 활도 꺾으려 한다. 그 왕은 이방 민족들에게 평화를 선포할 것이며, 그의 다스림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유프라테스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를 것이다.”
이 예언이 말하고 있는 새로운 세상의 비전은 여느 왕들과 같이 군사력이나 폭력을 통해 지배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왕은 세상의 모든 군대와 무기를 없애고, 전쟁이 없는 세상을 만드실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이방 민족들에게 까지 그 평화를 선포하실 왕이었습니다. 왕이 ‘말’이 아닌 ‘어린 나귀’를 타고 온다는 상징이 가진 의미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왕을 바라고 있나요?
우리는 어떤 왕을 바라고 있나요?
우리는 어떤 왕을 바라고 있습니까?
기독교에서 가장 오래된 신앙고백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의 관용어로 굳어버렸지만, 이 말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왕이십니다”라는 고백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신앙고백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갑니다. 자신들의 어려움과 고난들을 모두 예수님 앞에 내어놓고, 우리들을 구원해달라고 소리칩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그 어려움과 고난들로부터 구원해내실 겁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은 그 방법에 있어서 예수님의 방식을 따르지는 않고 세상의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방법은 세상의 방식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