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하라

우리의 죄, 하나님의 샬롬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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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고난주간 기도회 / 부활절 콰이어
Mark 8:11–17 NKRV
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12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3 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14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6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들어가는 말

우리의 죄, 하나님의 샬롬 3번째 시간 / 계속해서 죄에 대해 살펴보고 있음 /
세상이 올바르게 돌아가고 있지 않다라는 거에 모두가 동의 / 그렇다면 왜 세상에는 폭력과 범죄와 갈등이 난무한 것인가 / 성경은 그 모든 원인은 죄 / 인간 마음 깊숙히 기생하고 있는 죄로 인해 세상은 혼란스럽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죄를 주제로 한 성경 본문을 가지고 살펴보고 있음 / 가인을 통해 우리는 죄의 웅크림에 대해 / 지난주 사울을 통해 죄의 자기기만을 살펴보았다.
오늘은 누룩과 같은 바리새인의 죄에 대해 살펴볼텐데 / 바로 본문으로 넘어가기 전에 / 왜 죄에 대해서 얘기하는 걸까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왜 죄를 알아야 하는가?

아마 이 중에 교회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분들 계실 겁니다. 보통 마음이 평안을 얻기 위해 교회에 간다고 하는데 / 왜 목사님은 죄에 대해서 말하는 걸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 너무나 중요한 세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
첫번째 이유는 성경이 말하는 죄를 이해해야 올바르게 나 자신과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
세상은 기독교의 죄라를 개념을 불편해하고 불쾌해 함 / 그래서 죄의 개념을 지우려 한다
그러다보니 역사상 일어난 끔찍한 악행에 대해 사회적, 생물학적, 심리학적으로만 설명해야 하는데, 이게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 말대로라면 사회적, 심리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면 어떠한 범죄도 일어나지 말하야 하는데, 오히려 더 좋아지는 오늘날에도 폭력과 전쟁은 끊이지 않음 / 세상의 악은 죄를 통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
이것을 진작부터 잘 알고 있는 사람, 도스토예프스키 / 소설 “죄와 벌”을 통해 죄는 단순히 법적인 위반이 아니라, 도덕적이고 영적인 문제 / 환경 때문이 아니라 인간 개인의 선택과 책임이라 말하죠.
따라서 죄를 부정하게 되면, 세상을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게 됨
2)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다
두번째 이유, 죄의 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죄를 알지 못하면, 은혜가 얼마나 눈부시게 빛나는 알 수 없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예화 / 어떤 친구가 와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했다 칩시다
“얼마 전 내가 너희 집에 있었는데, 갑자기 청구서가 날아왔어. 네가 없길래 내가 대신 냈어”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청구서의 돈이 얼마나 큰 돈이었는지 알기 전까지는 어떻게 반응할지 모른다라고 말합니다.
만약, 4, 5천원되는 착불비 정도라면 “오 땡큐, 카카오페이로 보내줄께”라고 말했겠죠.
그런데 만약, 국세청에서 10년치 밀린 세금을 내라는 용지였다면요? / 아니, 그 이상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빚청구서였다면?
그 빚의 크기를 알기 전까지 여러분은 그냥 말과 악수로 고마움을 전할지, 아니면 바닥에 엎드려 그의 발에 입을 맞추며 충성을 다할지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이
여러분에게 기쁨이 되지 않고, 감격이 되지 않고, 삶의 어떠한 변화도 가져오지 않는다면,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지불하신 대가가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 여러분의 죄가 얼마나 크고 심각한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
따라서 여러분이 죄의 심각성의 깊이를 알지 못한다면, 예수님이 얼마나 여러분을 사랑하시는지, 여러분을 얼마나 가치있게 여기시는지 모릅니다.
3) 세상을 보는 균형적인 관점
세번째, 기독교의 죄의 교리는 세상을 보는 균형잡힌 관점을 가져다 줍니다.
“선하게 살면 세상은 아름다워질거야” 이건 현실을 외면한 지나친 이상주의고, 낙관주의죠.
기독교는 세상을 그렇게 이상적으로 보지 말라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세상은 죄로 인해 깨어져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현실적이면? 어떠한 소망도, 어떠한 행복도 꿈꿀수 없게 되는 냉소에 빠지게 되죠.
하지만, 기독교는 죄로 가득한 현실 너머 회복된 완전한 세상에 대한 소망을 가져다 줍니다. 어떤 작가에 말을 빌리면 “기독교는 행복조차 쓰레기처럼 보이게 반드는 영원한 성취가 있다”
따라서 기독교의 죄의 교리는 우리가 삶을 균형있게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도록 / 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소망적인 관점을 동시에 가져다 줍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올바른 죄의 대한 관점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1. 바리새인의 누룩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생생한 죄의 표현이 나옵니다.
Mark 8:15 NKRV
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죄를 “바리새인의 누룩” / 우리말 번역에서는 “누룩”이지만, 원래 의미는 이스트, 효묘
혜화동에 맛있는 빵집이 많은데 / 빵을 부풀게 하거나 술을 만드는 성분이 효모
누룩도 발효에 쓰이는데, 주로 막걸리나 전통주를 만드는데 쓰임 / 그래서, 우리말 성경에 누룩으로 되어 있지만, 효모를 말하는 거임 / 편의상 누룩이라고 말하겠지만, 효모로 이해하면 됨.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룩을 좋은 의미로 사용하시기도 하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심 / 왜 그러셨을까? / 누룩을 통해 죄에 대해서 말씀하실 것이 있기 때문

효모의 특징

효묘는 살아있는 미생물로 / 당을 이산화탄소와 알코올로 분해시킴
그래서 반죽에 효모를 조금 넣어도 금새 전체로 퍼져 나가게 됨 / 그리고, 발효하는 과정에서 알코올은 날라가고 이산화탄소가 나오기 때문에 빵이 부풀어 오름다고 함
근데, 너무 오래 발효시키면 당을 다 분해시키기 때문에 단맛은 사라지고 신맛이나 쓴맛이 나서 먹을 수 없게 된다고 함 / 이것을 위해 빵 만드는 유투브 엄청 봄
이것을 바탕으로 누룩 특징 3가지 1) 누룩은 눈에 보이지 않게 작용한다. 2) 적은 양으로도 빠르게 기하급수적으로 퍼져 나감 3) 단맛을 없앤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누룩을 통해 우리에게 죄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

1) 은밀하게 작용

첫번째, 죄는 누룩과 같이 은밀하게 작용합니다.
예수님은 죄가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인 것이라 말씀하심
빵을 만들 때, 하나는 누룩을 넣고, 또 하나는 누룩을 넣지 않아도 겉으로 보기엔 전혀 차이가 없다. / 효모가 발효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
바리새인들은 눈으로 보이는 외형과 형식과 의식적인 것들에 매우 신경을 쓴 자들인데,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지적하심 / 죄는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숨겨진 우리의 마음의 동기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이것과 관련해 예수님께서 적절한 비유
Matthew 23:27 NKRV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예수님의 일갈 / 유대인들은 무덤을 눈에 잘 띄게 하기 위해 하얗게 칠을 하였는데, 이것이 회칠한 무덤 / 겉은 아름다우나 속은 썩어있음
겉으로 보기에 예의 바르고, 인사도 잘하고, 말도 따뜻하게 하는 나이스한 사람이 있다. 속도 그러한가? 그 안에 누룩과 같이 썩어가고 있는 흉악한 죄가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죄도 눈에 보이지 않게 일하지만, 은혜도 보이지 않게 일한다. / 그렇다면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죄는 어떻게 역사하냐면, 기본적으로 내 것으로 움켜지는 성향이 있습니다. / 하지만 은혜는 다른 이들을 위해 내어주는 성향 / 죄는 움켜지는 삶, 은혜는 내어주는 삶
그리고, 이 두가지 모두가 우리 마음 가운데 보이지 않게 역사합니다. / 사도 바울은 이 두가지 마음에 대해 말했다
Romans 7:21 NKRV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우리는 죄와 은혜,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라는 것
죄에 무기력하게 끌려다니지 않고, 은혜를 선택할 수 있다 / 은혜를 붙잡는 여러분 되시길 축복
예수님은 바리새인에게 말한다 / “너희가 얼마든지 가난한 자들을 도울 수 있다. 도덕적일 수 있고, 항상 성전에서 예배하며, 율법을 지킬 수 있다” / 하지만, 마음은 움켜지고 있는 것이다
겉으론 교회에 정말 열심이고, 봉사도 열심히 하고, 은혜롭게 찬양하는 것 같이 보여도, 설교를 은혜롭게 하는 것 같이 보여도, 그 안에는 움켜지는 죄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 경고하심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라” “네 안에 포식자가 있다는 것을 너는 보지 못할 수 있다.”
위대한 신학자이며 청교도인 존 오웬은 말했다
얕은 개울은 시끄럽지만, 깊은 개울은 조용하다 존 오웬 (John Owen)
죄는 보이지 않고, 조용할 때 강합니다 / 다시 말해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할 때, 내 안에 있는 죄를 의식하지 못하고, 죄를 미워하지 않는다면, 죄가 이미 역사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죄인이라고 말했는데 기분이 나쁘다면, 조심하세요. 죄가 강력하게 역사하고 있을 때다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십시오 / 그래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동기를 계속해서 살펴야 하는거에요.
유진 피터슨: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가장 주된 임무는 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이는 결국 불가능하다-내가 범한 죄를 인정하는 것이다.

2) 빠르게 퍼져나감

둘째, 죄는 누룩과 같이 적은 양이라도 기하급수적으로 퍼집니다.
효모의 확산력은 상상을 초월 / 인간은 최소 20년이 지나야 자손을 낳아 세대를 이어가는데, 효모는 얼마만에 번식을 할까요? 놀라지마십시오. 2-3시간이면 번식합니다. / 무려 1개의 효모가 하루 만에 10억개 이상이 될 수 있다고 함
예수님께서 이것을 통해 말씀하시려는 것이 무엇일까 / 죄는 여러분의 인생에서 그저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것
마치 한번 먹으면 끊지 못하는 맛있는 건어물 같이 한번 죄 짓는다고 끝나는게 아님 / 여러분이 죄의 존재를 인식하고 예의 주시하고 죄를 다스리면 구석에 가만히 있습니다. / 하지만 죄를 내버려두면 여러분 인생에 빠르게 퍼져 나갑니다.
마치 이런거다 / 여러분 다리에 괴사가 생기면 어떻게 할거에요? “냅두면 없어지겠지”라고 하지 않겠죠 / 항생제를 쓰거나 최악은 다리를 절단해야 함 / 왜냐하면 괴사를 잘라내 죽이지 않으면, 그것이 여러분을 죽이기 때문
죄를 내버려두지 마시고, 단호하게 잘라내시기 바랍니다
죄는 누룩과 같은 작은 생각에서부터 시작되서 전체까지 퍼져 나가게 됩니다
예를 들어 미워하는 마음 /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작게 시작합니다 / 하지만 그 미움을 내버려두면 어떻죠? / 그 사람이 뭘 하지 않았는데도 미움은 계속 커져만 갑니다. /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미워하는 그 사람을 묵상하게 되죠. / 그 사람이 안 좋은 일을 당하기를 바라고, 내 삶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라고 상상 / 그렇게 함으로 여러분의 삶은 분노와 미움으로 서서히 채워지게 됩니다 / 미움이라는 누룩이 여러분 삶 전체에 퍼져 나가는 겁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 여러분이 그 누룩을 살아있게 할수도 있고, 잘라낼 수 있다라는 겁니다. / 미워하는 것을 멈추고, 용서하기로 결정할 수 있음 / 여러분이 선택할 수 있어요
미움을 선택하면, 미움이 누룩과 같이 여러분의 삶 전체로 퍼져 나갈 것입니다. / 최악의 경우 심한 말을 하는 언어적 폭력, 신체적인 폭력을 가할 수 있습니다 / 그로 인해 여러분의 삶은 문제에 시달리게 될 것이고, 인생 전체가 씁슬하게 될 것이다 / 미움으로 가득찬 여러분은 매사에 냉소적이게 될 것입니다.

3) 인생의 단맛을 앗아감

자, 여러분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걸까 / 죄가 우리 인생의 단맛을 빼앗아 가고 있는 겁니다. /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인생의 좋은 것들의 달콤함을 죄가 빨아먹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이 싸움에서 절대로 죄가 번식하게끔 내버려두면 안됩니다 / 허용해선 안되죠.
죄가 아닌 은혜를 선택하는 여러분 되시길 축복
또 다른 예는 결혼 / 앞으로 결혼할텐데 예방주사 맞는다 생각하고 듣길
여러분 만약 결혼을 했는데,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감정이 가도록 내버려두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 그 감정과 생각을 끊지 않고 계속 되면, 처음에는 작게 시작했던 생각들이 자라나서 내 마음과 생각을 채우기 시작합니다. / 그리고 성적 환타지에 사로잡히게 되죠
문제는 그게 생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하죠. / 간통과 불륜으로 이어지게 되고, 비난과 죄책감. 가정이 깨어지고 모두가 고통받는 겁니다.
그렇다면 행동하지 않으면 괜찮은 것인가 / 생각으로만 가지고 있는 것도 문제 / 예수님께서는 음욕을 품는 것으로 이미 간음했다고 말씀하심 / 생각은 생각으로 끝나지 않는다 / 삶 전체로 퍼져나가 단맛을 빨아들인다 / 그로 인해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즐거움과 달콤함이 사라지게 됨 / 왜냐하면, 성적 환타지를 실현시킬 사람은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없기 때문
이렇게 죄의 번식력은 무섭다 / 따라서 여러분 삶에 죄로 인해 괴사한 부분이 있다면 단호하게 잘라내시기 바랍니다 / 잘라내지 않으면 모든 곳으로 펴져나갈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2. 누룩의 본질: 교만

그렇다면 바리새인들의 누룩이라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죄를 말하는 것일까
1 Corinthians 5:6 NKRV
6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바울은 고린도전서 5장에서 “자랑하는 것”은 교만을 말하는 건데, 이것을 누룩이라고 부릅니다. /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이 설전을 벌이는 것을 볼 수 있다.
Mark 8:11 NKRV
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게 표적을 요구했다. / “당신이 하나님이라면, 하늘로부터 오는 기적을 보여달라”
이 말은 “우리는 당신이 진짜 메시야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믿을 수 있도록 기적을 보여줘서 우리를 설득해봐라” / 이요구 앞에 예수님 대답하신다
Mark 8:12 NKRV
12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겠다” 예수님 바리새인 요구를 거절하신다.
그런데 여러분 잘 보세요.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 바리새인들은 왜 표적을 구했을까 / 이미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기적을 베푸셨고 그들도 눈으로 그 기적을 똑똑히 보았거든요. 그런데 또 표적을 구하는 겁니다.
또 예수님 편에서도요. 왜 표적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했을까? / 왜냐하면 이 사건 바로 이후에 맹인을 고치는 기적을 행하시거든요. / 얼마든지 예수님은 기적을 보여주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의 요구를 거부하신 것이죠.
결국 예수님이 말씀하고자 하신 것이 무엇이냐면 / 죄의 본질은 교만인데, 교만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원했던 표적

이게 무슨 말이냐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믿을 수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 자신들이 원한 기적을 예수님이 일으키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 / 그들이 원했던 것은 로마 식민으로부터 구해줄 정치적인 메시야, 힘의 메시야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권력의 메시야가 아닌 약함의 메시아, 겸손한 메시야로 오심 / 물론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셨다 / 하지만, 그 기적은 로마를 무너트리는 기적이 아니었다 / 약한 자, 병든 자들을 치유하는 기적이었다 / 어떠한 정치적, 군사적 권력을 취하지 않으셨다. / 예수님은 죄인을 용서하기 위한 은혜의 메시야로 오신 겁니다 /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기적은 이미 충분했습니다. / 맹인이 눈을 뜨고,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듣지 못하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이 원했던 메시야가 아니었던 것이죠. / 이들은 은혜의 복음을 거부하고 또 다른 표적을 구하는 겁니다.
여러분, 이 모습은 우리도 동일합니다.
이미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기적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 우리는 항상 하나님이 충분한 싸인과 응답을 주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 그래서 믿을 수 없다는 것이죠. 내가 원하는 응답과 기적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 그분을 충분히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우리를 보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 “과연 그럴까? 만약에 내가 니 눈 앞에 짠 하고 나타난다면 너는 나를 믿을 수 있겠니? 아니, 아무리 많은 표적을 보여 준다해도 넌 결코 만족하지 않을거야. 언제나 넌 더 큰 기적을 원할거야.”
따라서 죄의 본질은 교만함인데, 교만은 무엇입니까? 은혜를 거부하고, 내가 원하는 표적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미 보여주신 충분한 증거

“하나님, 당신이 살아계신다던데, 왜 내 인생에는 나쁜 일들만 일어나는 겁니까? 내 인생에 확실한 기적을 주지 않는 이상,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내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저는 당신을 믿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아니, 너는 너 자신이 구원받을 자격없는 죄인이라는 것과 그런 너를 위해 내가 죽었다는 것을 부인하기 때문에 나를 믿지 못하는거야.” “왜 너의 믿음 없음의 원인을 나에게 돌리는거니?”
“내가 아무리 많은 표징과 기적을 보여도 너는 항상 또 다른 무언가를 원할거라는 것을 알지 못하니?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보고서도 물이 없다고 불평했어.
“이제 바리새인 같은 교만한 요구를 내려놓고, 내가 이미 베푼 은혜들을 봐봐”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구원하기 위해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었다” 무엇을 더 원하는 거니?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증거가 또 필요한거니?”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표적이고, 그분이 우리의 기적이며, 믿음의 창시자요 증거입니다.
여러분, 표적을 구하는 교만한 자가 아닌 은혜를 구하는 겸손한 자들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표적이 아닌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표적을 구하죠.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하나님 저를 사랑하신다면,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왜 저를 솔로로 두십니까? 아무도 저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데이트 상대를 주세요. 저를 사랑하신다는 신호를 주세요.”
예수님이 뭐라고 하실까요?
“내가 너에게 모두가 부러워할만한 데이트 상대를 준다해도 충분하지 않을거야. 계속해서 또 다른 신호를 요구할거야. 왜냐하면 너는 내가 너를 사랑하다는 나의 신호를 거부했기 때문이야”
“너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실하고 영원한 신호를 받아들이지 않는데, 내가 너에게 어떠한 신호를 줄수 있겠니? 이제 너에게 보여줄 신호는 없어”
여러분은 지금 바리새인 같이 표적을 구하고 있지 않나요?
우리는 은혜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죠.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표적을 보여주시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왜 예배합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나에게 베풀어주신 은혜 때문입니까? 이미 우리에게 넘치는 은혜가 있는데, 그 은혜를 거부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충분한 예배자들인가요?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예배자들입니까? 내 삶에 아무런 표적과 기적이 없어도, 예배하지 못하는 광야 같은 상황 가운데 있을지라도, 오직 은혜만으로 예배하는 자들인가요?
여러분, 바리새인들 눈 앞에는 지금 하나님의 영광 그 자체이신 분이 계셨습니다. 존재만으로 기적이고, 표적이신 예수님이 그들 눈 앞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표적을 구하죠.
이 바리새인들의 교만의 누룩이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독소처럼 퍼져 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씀 앞에 비추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오직 은혜만을 구하는 겸손한 예배자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표적이 아닌 은혜를 구한 여인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성경에 나오는 한 여인을 보고자 합니다 / 겸손하게 은혜를 붙든 여인입니다. / 수로보니게 여인인데요. 이 이야기도 빵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Mark 7:25–30 NKRV
25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이 여인은 헬라인으로 이방 여인 / 아시다시피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더럽고, 불순하다고 여겼습니다 / 그런데 그 이방 여인이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간구합니다 “예수님, 제 딸을 고쳐주세요”
언뜻 보기에 표적을 구하는 것 같이 보이죠. / 그래서 그런지 예수님은 차갑게 반응하십니다. “나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있다. 내 자녀의 빵을 개들에게 줄 수는 없다”
너무 차갑게 얘기해서 당황스럽죠. 지금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을 이방인의 개라고 하신 겁니다.
[반주]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여인의 반응입니다. “맞습니다. 주님. 하지만, 개들도 먹다 남은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
이 여인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 “주님, 저는 개가 맞습니다. 저는 자격없는 사람이고, 합당하지 않은 자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그렇게 말하는 것에 마음이 상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식탁에는 생명의 빵으로 가득하고, 주님은 자비로운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은혜는 넘쳐 흘러 저에게 충분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이 여인은 자신이 자격없는 자임을 알았습니다. 감히 주님의 식탁에 나아갈 죄인임을 알았어요. 하지만, 거기서 포기하지 않죠. 겸손하지만, 담대하게 예수님의 은혜를 붙듭니다.
“저는 자격없지만, 당신은 은혜의 주님이심을 압니다. 주님의 임재를 원합니다. 주님의 능력,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빵을 원합니다”
이 여인은 은혜를 구한 겁니다. 겸손함 동시에 담대하게 은혜를 붙들죠. 그 결과 자신의 딸이 치유되는 역사를 경험합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우리는 이방인이고, 하나님 앞에 개일 뿐입니다 / 이 사실이 불편하신가요? / 그렇다면,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십오 / 교만의 누룩을 조심하세요. / 우리는 겸손하게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나친 겸손은 자책감과 정죄감이라는 덫에 걸리게 됩니다. / “그래 나는 자격 없지. 나는 교회와 어울리지 않아.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예배를 드릴 수 있겠어”
아뇨 여러분, 예수님은 은혜와 자비가 넘치시는 분이십니다. / 포기하지 말고, 담대하게 그 분 앞에 나아가세요. / 겸손함과 동시에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 그분의 식탁은 언제나 풍성한 은혜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분의 은혜를 붙들 때에 예수님의 임재와 축복이 여러분가운데 임할줄로 믿습니다.

생명의 빵이신 예수

그런데, 여러분 이 여인이 깨닫지 못한 한가지 / 그녀가 빵을 얻기 위해 예수님께서 하셔야 했던 일
바리새인의 누룩을 없애기 위해 그분 자신이 천국의 빵이 되셔야 했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식탁으로 초대하셔서 그 빵을 먹으라고 하십니다. / 아시겠지만 빵을 먹으려면 빵을 뜯어야 합니다 / 그분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찢기셨습니다 / 그리고 말씀하시죠 “나를 먹어라”
더 이상 우리에게 무슨 증거와 표적이 필요할까요 / 이미 그분의 은혜는 넘쳐 흐릅니다 / 이 은혜를 맛본 자들은 더이상 다른 어떤 기적과 표적을 구하지 않을 겁니다
더디사이플 공동체가 다른 표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만으로 충분한 공동체 되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을 더 원합니까 / 이미 복음만으로 우리는 예배해야 할 이유가 충분 / 찬양해야 할 이유가 충분 / 우리의 삶을 그분께 기꺼이 내어드릴 이유가 충분합니다
그렇게, 우리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게 될 때, 우리 안에 있는 누룩과 같은 죄는 사라지고, “하나님의 나라는 누룩과 같으니라” 누룩과 같은 은혜가 넘쳐 흐르게 될 것입니다. / 그 은혜로 인해 움켜지는 삶이 아닌 내어주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거 17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목회자였던 조지 허버트의 “사랑”이라는 시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사랑은 말한다, “어서 오라”고. 하지만 내 영혼은 더러움과 죄를 부끄러워하며 뒷걸음질친다. 그러나 눈치빠른 사랑은 내가 들어서려다 망설이는 것을 보고, 내게 더욱 다가와 부드럽게 묻는다. “내가 무엇이 부족해서 그러느냐고” 나는 대답했다. “저는 여기 있을 만한 손님이 못 됩니다.” 사랑은 말한다. “네가 바로 그 손님이다.” “저같이 매정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말입니까? 아 사랑하는 이여, 저는 당신을 쳐다볼 수도 없습니다.” 사랑은 내 손을 잡고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나 말고 누가 그눈을 만들엇는가?” “그렇습니다. 주여 그러나 저는 이미 그것을 더럽혔습니다. 저의 부끄러움에 걸맞은 곳으로 가게 해 주십시요.” 사랑은 말한다. “누가 너의 멍에를 졌는지 모르겠다는 말인가?” “사랑하는 이여 , 그러면 제가 섬기겠습니다.” “앉으라” 사랑은 말한다. “그리고 나의 살을 맛보라.” 나는 앉았다. 그리고 먹었다. 조지 허버트 (George Herbert) / 사랑
죄인인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식탁으로 초대받은 손님입니다.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찬양

보소서 주님 나의 마음을 선한 것 하나 없습니다 그러나 내 모든 것 주께 드립니다 사랑으로 안으시고 날 새롭게 하소서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 아버지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 지도록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게 사랑을 가르치소서 당신의 마음으로 용서하게 하소서 주의 성령 내게 채우사 주의 길 가게 하소서 주님 당신 마음 주소서 주의 성령 내게 채우사 주의 길 가게 하소서 주님 당신 마음 주소서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 아버지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 지도록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기도제목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선한 것 하나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주의 은혜를 간절히 구합니다. 사랑으로 안아주시고, 새롭게 하옵소서,
내 안에 있는 교만과 두려움과 불안은 떠나가고, 주님의 은혜로 채워주옵소서.
주께 가까이
목마른 나의 영혼 주를 부르니 나의 맘 만져 주소서 주님만을 원합니다 더 원합니다 나의 맘 만져 주소서
사랑이 나를 부르네
영원한 주의 품 안으로 / 풍성한 주의 식탁으로 친밀한 주의 음성으로 / 그 사랑이 나를 부르네 그 사랑이 나를 부르네 / 그 사랑이 나를 부르네

봉헌기도

오늘도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
나의 무관심 때문에 주님의 음성을 외면했고, 나의 두려움 때문에, 나의 의심 때문에
나의 연약함 때문에 주님의 음성을 외면했습니다.
하지만, 죄 아래, 법 아래 있는 우리를 자유케 하시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셨고
십자가에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우리에게 이미 충분한 사랑의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부르시는 사랑 앞에 믿음으로 반응하게 해 주시고,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용기를 주셔서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떡을 믿음으로 받아 먹는 자들 되게 하옵소서.
오늘 목장모임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이 시간 하나님이 내 삶과 소유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며 예물을 올려 드립니다.
우리의 신앙 고백을 담은 이 헌금을 통해 이 헌신을 통해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축도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하나님 앞에 겸손히 죄인됨을 인정하고, 담대히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기 원하는
이곳에 모인 청년들에게 항상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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