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413 주일 저녁예배

저녁예배(부활절)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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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 23:8–10 NKRV
8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9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성도님들은 어느때 스트레스를 받습니까? 여러상황 또 환경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들이 서로 다를 수 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슬플 때도 힘들지만 “억울할 때”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억울함은 해명도 못하고, 누군가 나를 무시한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서 마음속에 오래 남기까지 한다. 그래서 억울한 일은 잊혀지지 않고 계속 생각이나 밤에 잠도 못자고 심하면 마음이 병이 들기까지 한다.
오늘 본문의 욥이 지금 딱 억울한 상황이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욥은 하나님이 인정하신 의인이었다. 그러니 그의 삶이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겠는가?
그런데 욥기 1장에 보면 사탄은 그런 욥을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사탄이 욥을 괴롭힌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는가? 하나님이 사탄에게 욥을 자랑 한 것 때문이다.
Job 1:8 NKRV
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그랬더니 사탄이 하는 말이 욥기 1:9
Job 1:9 NKRV
9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는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10절 이후에는 욥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을 빼앗아가면 하나님을 배반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지금 욥이 고난을 당하는 이유는 욥이 잘못을 저질러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욥을 칭찬해서 사탄이 괴롭히는 것이다. 욥은 지금 자신이 왜 이러한 고난을 당하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이유 없는 어려움이 얼마나 힘드는 일 인지 다들 아실 것이다? 내가 잘 못을 해서 어려움을 당하면 스스로 한탄이라도 한다. 그런데 아무런 이유를 모른채 하루아침에 자녀들이 죽어 나가고,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들이 사라져가고 주위의 사람들마저 떠나버리는 어려움이 오니 욥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뿐아니라 욥과 친하다고 하는 친구들이 와서 하는 말이 욥이 죄인이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고 있으니 어서 하나님 앞에 회개 하라고 한다. 욥의 마음이 얼마나 억울하고 힘들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이런 상황속에 있는 욥이 한 고백이다.
Job 23:8–9 NKRV
8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9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억울한 욥이 얼마나 하나님을 찾았겠는가? 그런데 아무리 구하고 찾아도 하나님이 없는것 처럼 하나님은 침묵 하신다. 그럼에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욥과 함께 하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보이지 않으면, 내가 만질 수 없으면 그래서 내가 느끼지 않으면 없는 것 인가? 우리는 너무 우리의 느낌으로 신앙생활 하려고 하지는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내 느낌에 너무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성도님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신가 안계신가? 계신다. 내가 느끼지 못 할지라도 성경에 우리와 늘 동행하시고 함께 하시며 우리를 절대 떠나지 않으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기에 내가 느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내 안에 계신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나의 삶을 인도하신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가장 전성기라고 한다면 어느 왕 때일까? 그건 두말할 것 없이 다윗왕 시대일 것이다. 그 이유는 그때 이스라엘의 영토가 가장 넓었다. 그래서 많은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두려워 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그 이후에는 계속해서 나라가 줄어들었다. 그런데 제2의 전성기라고 할 만한 시기가 있었는데 바로 북이스라엘 여로보암2세, 남유다는 웃시야 때 이전 다윗왕 때 만큼 영토가 확장 된다. 
조금 전에 이야기 한 것 처럼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된 이후에 이스라엘의 영토는 점점 축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북 이스라엘 위에 위치한 아람이라는 나라 때문이었다. 오늘날 시리아 이다.  아람이라는 나라가 계속 북 이스라엘을 괴롭혀 북이스라엘의 영토는 계속해서 축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아람은 북이스라엘을 괴롭히던 그 강력한 적국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 시대, 남유다에서는 웃시야가 다스리던 그때, 아람이 갑자기 북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것을 멈춥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은 한번 아람을 공격했습니다. 그런데 아람 쪽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더 공격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예 국경을 넘고, 영토를 넓히는 데까지 성공합니다.
그런데도 이상할 만큼 아람은 아무 대응을 하지 않습니다. 다시 세 번째, 더 깊숙이 들어가 공격해도, 여전히 아람은 반응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은 전쟁 없이도 빠르게 번영의 시기로 접어들게 됩니다. 마치 주변 열강이 모두 조용해지고, 이스라엘만 기회를 누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아람이라는 나라는 수백년 동안 계속해서 북이스라엘을 공격하며 괴롭혔는데 왜 이 때에 아람이 북이스라엘을 공격하지 않았을까? 심지어 북이스라엘이 공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응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가 있었을까? 없었을까?
그 이유는 아람 옆에 아람보다 더 큰 나라가 일어났다. 그 나라가 바로 앗수르이다.  당시 앗수르는 어마어마한 나라였다.  그 앗수르가 사방을 다 공격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 앗수르가 아람을 공격한 것이다.  그러기에 아람은 이스라엘을 신경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사실 아람 입장에서 보면 북 이스라엘은 언제든지 공격해서 이길 수 있는 나라였다. 아람 입장에서 북이스라엘은 위협적인 나라가 아니였기 때문에 지금 당장 북이스라엘에게 영토를 빼앗겼다 할지라도 나중에 다시 찾아오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북이스라엘은 무시한채 앗수르만 상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람이 앗수르만 상대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얻어진게 북이스라엘의 번영이고 부흥이었다. 
그런데 신기한것은 앗수르가 아람을 공격하고 있다. 아람을 효과적으로 공격하기 위해서는 한쪽으로만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공격해 이스라엘에서도 아람을 공격하면 위 아래로 공격해 쉽게 아람을 제압 할 수 있다. 그런데 앗수르는 신기하게도 이스라엘을 공격하지 않았다.
사실은 앗수르가 사방의 모든 나라는 공격하였지만, 당시 이스라엘 만큼은 공격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부흥이 왔고 땅이 넓어지는 전성기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심사숙고를 하지 않아도 세상의 모든 일에는 어떤 상황이든지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공격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여기서부터 재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로보암 2세때 북이스라엘에 나타나셔서 한 사람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 어디 보낼테니깐 거기서 내 말씀 좀 전해” 그런데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해서 하나님이 말한 장소와 정확히 정반대 되는 곳으로 떠난다.  이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요나이다.  하나님이 그런 요나를 끝내 어디로 보내는지 아는가? 바로 “니느웨”이다.  니느웨는 바로 앗수르의 왕이 머무는 궁이 있는 곳이었다.  그 이후에 앗수르의 수도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요나 당시에는 수도는 아니었다. 
요나가 니느웨가 간다. 가서 3일을 다녀야 할 정도로 넓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성의 없이 하루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그 말씀이 무엇인가? “너희들 회개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 라는 것이다. 
정말 성의 없이 전한 그 말에 신기하게도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를 하기 시작하고, 심지어 왕이 듣고 동물까지 금식을 시키며 회개한다. 
그런데 사실 이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시 앗수르는 제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거대한 나라다. 그에 반해 이스라엘은 정말 작은 나라인데 그 작은 나라에서 온 선지자 한명의 말로 인해 왕까지 움직인다는 것은 결코 일반적이지 않다.
아주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당시 요나가 니느웨서 말씀을 전한 것이 대략 주전 760년 경이다.  그런데 요나가 니느웨에 가기 약 3년전인 주전 763년 6월 15일에 앗수르에 개기일식이 일어난다. 과거에는 일식이 일어나는 것은 나쁜 징조이다. 나쁜 증조 뿐만 아니라 고대 근동에서는 신이 분노했다고까지 여길정도로 불길한 일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다음해인 주전 762년에 앗수르 전체에 전염병이 일어난다. 이러한 내용은 앗수르의 림무 연대기에 기록이 되어 있다.
우리도 불과 몇해전에 코로나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3년의 시간이 걸렸다. 오늘날처럼 과학이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염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렇기에 기원전 700여년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지금 요나를 니느웨에 보내신 것이다. 
오늘날 처럼 백신도 없고 치료제도 상상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얼마나 두려웠겠는가? 그래서 니느웨 사람들은 무엇이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 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저것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해결이 되지 않아 두려워 하던 바로 그 때에 요나가 와서 회개하라고 선포한 것이다.  그래서 니느웨에 있는 왕부터 모든 사람들이 심지어 가축까지 금식을 선포하며 회개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는데, 주전 759년 다시말해 요나가 다녀간 바로 다음해에 전염병이 끊어진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그렇다면 당시 앗수르 왕의 입장에서 보면 요나는 어떤 사람인가? 앗수르를 구한 영웅이다.  그래서 당시 앗수르 왕은 다른나라는 다 공격하여도 북이스라엘만큼은 공격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부흥이 온 것이다.  요나가 이 모든 사실을 알았을까? 몰랐을까? 당연히 몰랐다. 
처음부터 알려주시면 좋지 않았을까?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숨기고 요나에게는 이렇게만 말씀하신다. “요나야 가서 내 말을 전해라” 그 안에는 여러가지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다. 아마 요나의 순종을 보고 싶어 하셨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알 수 없는 하나님만의 또 다른 계획이 있었을 것이다.
성도님들은 하나님께서 역사를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지 보이시는가?
우리는 흔히 이렇게 착각 할 때가 있다. 우리의 일이 잘 될 때 그것이 내가 잘해서 되었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런데 그럴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그 뒤에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성경은 나의 삶속에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존재함을 깨닫는 것을 지혜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지혜는 내 능력이 아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손길로 이 세상의 역사와 모든 것을 주관하고 다스리시는 그 하나님을 믿고 그 앞에 순복하는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내 힘과 능력으로 지금 내가 이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가리켜 성경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잘 될 때 더욱 하나님께 무릎꿇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바쁠 때, 급할 때 더욱 하나님께 무릎꿇어야 하는 것이다.  바쁘니깐 더 하나님과 교재해야 한다. 급하니깐 하나님과 더 교재해야 한다. 
그래서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는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오늘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고서는 하루를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 세 시간 기도 할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바쁘니깐 기도해야 하고, 급하니깐 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일 하고 계신다.  지금 우리가 이자리에 있는 것도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 때문이다. 
하루에 한국에서 사망하는 사람의 수가 2024년 기준 982명이다. 일년에 358,400명이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2021년 기준 하루에 병원에 입원하는 사람이 2,620명이고, 응급실에 방문하는 사람이 3,657명이다. 한해로 보면 한해동안 병원에 입원하는 사람은 약 95만 6천명이고, 응급실에 방문하는 사람은 약 133만 5천명이다.
오늘 저녁예배 내가 오고 싶어서 왔다고요? 아닙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내가 찬양 하고 싶어서 찬양한다구요? 내가 기도하고 싶어서 기도한다구요? 아닙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볼 수는 없지만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그 주님이 나의 삶을 인도하시고 보호해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이자리에 있는것이고 찬양하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알고 인정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지혜있는 사람이다.  여기에 계신 성도님들은 지혜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반대로 지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그래서 고통가운데 있는 성도님들이 계시다면, 더욱더 오늘 말씀을 마음에 새기길 바란다.
그리고 기억하시길 바란다. 그럼에도 주님은 나와 함께 하신다.
혼자 걷지 않을 거에요 라는 찬양이 있다. 가사가 이렇다.
그대 퐁풍 속을 걷고 있을 때, 비바람을 마주해야 할 때 불빛조차 보이지 않아도 그대 혼자 걷지 않을거에요 두려움 앞에서 하늘을 보아요 외로운 그대여 걱정 마요 꿈꾸는 그 길을 또 걷고 걸어요 그대 혼자 걷지 않을 거에요.
사랑하는 성도님들 주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고 그 사랑하는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삶을 이끄신다. 지금 삶이 너무 힘들어 포기 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겠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의 눈을 들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 주님을 바라보길 간절히 소망한다.
그리고 지금 누리고 있는것에 만족하며 감사하시길 바란다. 남들과 비교하지 마시고 진심으로 감사 하기실 바랍니다. 그것이 지혜있는 사람이다. 매일마다 마주하는 가족들이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아침에 눈을 뜨셨다면 그것에 감사해야 한다. 내가 이렇게 예배당에 나왔다면 그것에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그 손길을 마치 보이는 것 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믿음의 사람들이다.
오늘 본문의 욥의 고백이 바로 이것이다. 다같이
Job 23:8–10 NKRV
8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9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아멘 입니다.
그리고 내일부터 우리는 고난주간에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그분의 십자가 길을 함께 걷는 한 주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고난주간을 맞이하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단순히 예수님의 고통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고통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 고난주간 만큼은 그 고통 속에도, 아무 말씀이 없어 보이던 그 순간에도 일하고 계셨던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을 기억하는 한주가 되길 바란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의 침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도 하나님은 인류 구원의 가장 위대한 일을 이루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늘 그렇듯,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일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 삶 속에서도 그 보이지 않는 손길을 의식하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걸으신 길을 따라, 때로는 침묵하고, 때로는 묵상하고, 때로는 순종하는 우리의 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시 멈추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로 고정하며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걷는 고난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손은 지금도 움직이고 계십니다. 그 손을 신뢰하며, 이 한 주간도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말씀을 통해 보이지 않아도 늘 함께하시며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억울함과 고난 속에서 주님을 찾았던 욥처럼,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심을 믿어지게 하시어 오늘도 우리의 삶을 이끄시는 그 손을 신뢰하며, 느껴지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붙들게 하여 주옵소서.
요나를 통해 니느웨를 살리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습니다.
다가오는 고난주간, 예수님께서 걸으신 그 길을 따라 믿음으로 동행하는 한 주간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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